## 74화. 아가도 탕후루 먹어
“세상에 저 사람들 좀 봐.”
“다 큰 사람들이 왜 저러고 있대?”
황제에게 업힌 채 포대기로 싸매고 손에는 딸랑이까지 든 채 야시장에 나오자, 사람들이 우리 근처에는 오지 않으려 한다.
승언이는 자꾸만 몇 발자국 앞서 가서 황제의 등에 머리를 대고 있는 나를 노려보며 신호를 보냈다. 당장 안 내려와? 하고.
응, 안 내려가. 이러고 다닐 거야. 난 하나도 안 부끄러워.
-짤랑짤랑.
딸랑이 소리가 참 맑네.
내가 승언이를 향해 딸랑이를 빠르게 흔들어주자 승언이는 자기 얼굴이 더 새빨개져서는 나무를 손톱으로 벅벅 긁어댔다.
반면 황제는 꽤 얼굴이 두꺼운지, 조금씩 아래로 흘러내리는 나를 다시 쭉 위로 올려 업고는 인자하게 웃으면서 달랬다.
“우리 아가가 오랜만에 나오니 신이 난 모양이구나.”
대답 대신 딸랑이를 짜르르 옆에 대고 흔들어주자 황제는 웃고 넘겼지만, 승언이는 아예 바닥에 엎어져서 숨까지 헐떡였다.
지나가던 사람이 보고서 달려와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로.
‘쟤는 그림자가 왜 저렇게 존재감이 뚜렷해?’
그렇게 얼마나 걸어 다녔을까. 황제가 갑자기 멈추어 서더니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뭘 보나 싶어서 같이 그쪽 방향을 보자, 한 노점 상인이 윤이 번쩍번쩍 나는 탕후루를 팔고 있었다.
“저거 먹고 싶어?”
아예 거기서 시선조차 떼지 못하기에 묻자,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저건 아기가 먹기엔 너무 달지 않을까?”
이 새끼…… 진짜 독하잖아. 절대로 역할극을 벗어나지 않네. 황제라면서 왜 이렇게 지독해?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해서 빤히 쳐다보자, 황제는 힐긋 뒤돌아 내 눈치를 보더니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웃으며 물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외출했으니 사줄까?”
딱 표정을 보아하니, 여기서 ‘응 사줘!’라고 하는 순간 ‘안 돼. 역시 아가가 먹기엔 달지.’ 하고서 그냥 가버릴 표정이다.
친절함을 가장한 장난기가 눈 안에서 번쩍번쩍 빛나고 있다. 분명해.
그렇다면…….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서, 딸랑이를 흔들면서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탕후루 탕후루우 탕탕후루우!”
“아 맙소사. 계란아.”
짤랑짤랑 하는 박자에 맞춰서 춤을 추자 그게 효과가 있었나. 결국 떡돌이는 나를 업은 채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고서 끅끅 들썩거리는 걸, 내내 지켜보던 승언이가 달려와서 얼른 부축해 일으켜주었다.
“귀인. 이제 그만하고 내려오시지요. 귀인은 진짜 아기가 아니라 계속 업고 다니면 폐하께서 힘드십니다.”
그러면서도 이때다 싶은지 낮은 목소리로 내게 경고했다.
“덕춘아, 승언이가 네 다리가 부실하단다.”
내가 그 말을 자의로 해석해서 떡돌이에게 돌려주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그게 아닙니다!” 하고 버럭 외쳤지만.
다행히 떡돌이는 아직도 혼자 끅끅대느라 나와 승언이가 주고받은 대화를 아예 못 들은 게 분명했다.
그 사이, 나는 얼른 포대기를 풀고 밖으로 나가서 기지개를 켜고 다리의 자유를 만끽했다.
역시 내 발로 걷는 게 좋긴 해. 업혀 다니면 편하긴 하지만 가고 싶은 곳에 갈 수가 없잖아?
그런데 두 팔을 이리저리 쭉쭉 펼치면서 몸을 돌리는데, 눈에 의외의 사람이 들어왔다.
‘정보호?’
여자를 소개해 주기로 한 다음 나를 소개해 주고, 그다음 유부녀란 걸 밝혔더니 날 사기꾼으로 몰아갔던 그 정보호가 탕후루를 입에 문 채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는 눈으로 나와 떡돌이를 빠르게 살피더니,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웃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딱 이쪽을 가리키면서 의미심장하게 웃는데…….
젠장. 나는 X 됐다 싶어서 얼른 떡돌이의 등을 두드려 일으켜 세웠다.
떡돌이는 내가 밖에 두 번이나 나간 걸 모른다. 한 번은 아는데 두 번 나간 건 모르고 있어.
게다가 나가서 한 행동도 떡돌이에게 알릴 만한 행동은 아니니, 어떻게든 정보호가 오기 전에 떡돌이를 챙겨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아 좀 일어나봐! 그만 끅끅대고!
하지만 떡돌이를 일으켜 세우자마자 정보호가 우리 앞으로 도착했다.
정보호가 가까워지자, 승언이도 떡돌이를 부축하는 건 내게 맡기고, 돌 같은 그림자의 표정으로 돌아와 정보호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정보호는 굳이 승언이가 그은 선 안으로 들어오려 애쓰는 대신, 빈정거리는 미소를 띤 채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저 여자랑 그 남자랑 부부?”
여기서 ‘무엄하다!’ 같은 말을 외쳐서 ‘우리는 왕족이에요!’라는 걸 고래고래 알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승언이는 휘말리는 대신 차갑게 대응했다.
“이분은 우칙승상의 삼남인 산허공자와 그 부인이시다. 예의를 갖추어 대하라.”
아까 궐 밖을 빠져나오면서 설명 듣기론 저 산허 공자는 실존 인물인데, 본인도 황제가 가끔 자기 이름을 빌려 쓰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어쨌든 누군가를 사칭하는 데는 실존 인물 사칭만 한 게 없는지라, 정보에 빠삭한 정보호는 우칙승상 이야기를 듣자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곧 못된 웃음을 짓더니 눈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렇군요. 정말 귀하신 분들입니다. 예상보다 더.”
정보호야, 네 앞에서 고개를 비스듬하게 한 남자는 네 그 예상보다 더더더 귀한 사람이란다.
어쨌든 이 상황은 나에게 좋지 않다. 나는 심장이 조마조마해서 말도 못 하고 행동도 못 하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여기서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정보호가 ‘이게 약점이구나!’ 싶어서 더 그 부분을 파고들어 올 건데.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저자는 정보를 다루는 걸 업으로 하고 있잖아.
누가 자기에게 무슨 정보를 사 갔는지는 비밀로 하겠지.
나쁜 놈이지만 최소한 정보통으로서의 명성은 신경 써 관리하니까.
굳이 사자 친왕을 불러 내게 ‘진짜 팔고자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물어본 것처럼.
“하지만 참 이상하군요.”
하지만 정보호는 생각보다 더 나쁜 놈이었다.
그는 기민한 눈치로, 승언이와 떡돌이가 내 이전 행적을 모른단 걸 눈치채고는 아주 악독하게 웃으면서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승상가의 며느리가 왜 홀로 다루를 찾아와 황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려달라 했을까?”
첫 번째로 그를 만났을 때 내가 했던 질문이 가짜 질문이란 걸 아니, 정보통으로서의 명성은 지키면서 복수는 할 겸 이걸 풀어버린 거였다.
정보호의 말에 떡돌이와 승언이가 동시에 내쪽을 휙 쳐다보았다.
내가 움찔해서 딸랑이로 얼굴을 반쯤 가리자, 정보호는 못되게 웃고는 다른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새끼. 치고 빠지는 솜씨가 발군이구만.’
나는 계속 딸랑이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떡돌이가 ‘너 딱 걸렸다’는 표정으로 내 앞으로 다가오자 딸랑이를 내리고서 항의했다.
“처음 보는 사람 말을 믿어, 날 믿어?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서 한마디 하고 갔다고 어떻게 날 그렇게 봐?”
“널 믿는다, 계란아.”
“진짜야……?”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떡돌이가 온화한 척 웃으면서 내 딸랑이를 뺏어갔다.
“당연히 널 믿지. 그러니 이러는 거지. 네가 온몸으로 ‘나는 켕기는 게 있어요’ 라고 외치고 있거든.”
“!”
* * *
“궁금한 게 있으면 내게 직접 묻도록 해라.”
정보호의 난입으로 야시장에서 건진 거라곤 탕후루 뿐이다.
내가 탕후루를 깨 먹으면서 힘없이 걸어가는데도, 떡돌이는 뒤에서 잔소리나 퍼부어댔다.
“위험하니 혼자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황제가 뭘 좋아하나 묻고 다니지 말고.”
“…….”
“넌 수시로 날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인데, 왜 그런 짓을 하는 게냐.”
하지만 순식간에 황제의 총애를 얻기 위해 온갖 짓을 다 하는 후궁이 되어버린 나는, 그의 잔소리에 정성껏 화답할 수 없었다.
아 물론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서 무림의 악명 높은 사람을 찾고 다녔단 것보단 낫긴 하지. 그건 정말로 수상한 일이니까.
“본인한테 그런 걸 어떻게 물어. 민망하게.”
어쨌든 입을 다물어봐야 더 오해만 살 일이라, 나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마지못해 떡돌이의 오해를 방치했다.
“네가 민망한 기분도 느낄 수 있던가?”
“사람을 이상하게 보네? 당연하지.”
“민망함을 느끼는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포대기 두르고 어깨춤 추면서 딸랑이를 흔들어?”
하지만 어느 쪽으로 가든 내 위엄은 사그라들고 있어서, 결국 나는 탕후루를 한 번에 와작와작 깨물어 먹고서 남은 막대를 그에게 내밀고 통보했다.
“내 처소에 돌아가서 잘 거야. 덕춘이는 혼자 자.”
* * *
“어? 소주? 왜 벌써 오세요?”
한밤중에 내가 처소로 돌아오자, 아침까지는 내가 안 올 거란 생각에 각자의 방으로 갔던 원웅과 부성이 허둥지둥 나오며 물었다.
나는 당직 궁녀에게 입고 간 겉옷을 건넨 다음 상에 앉아 빠르게 손부채질을 했다.
“말도 마. 아주 짜증 나 죽겠으니까.”
“네?”
“폐하와 싸우셨어요?”
원웅과 부성은 아직 잠이 덜 깨서 눈이 풀려 있었지만, 그 상태로도 바쁘게 움직이면서 찬물을 가져다주고 머리카락 장식을 풀어 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야시장에서 있던 일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
오 공공이 화를 내며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고서 ‘귀인, 폐하와 잠행을 나갔단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하셔선 안 됩니다.’라고 당부했는걸.
“소주?”
어리둥절한 두 궁녀에게 들어가서 쉬라 말한 뒤, 나는 편한 옷차림으로 침상 안에 기어들어 갔다.
‘황제가 설마, 내가 자기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정보를 캐고 다닌다 오해하진 않겠지?’
* * *
“귀인께서 폐하를 진심으로 사모하시나 봅니다.”
넓은 목욕통에 홀로 들어간 황제가 생각에 잠겨 하늘을 보고 있자니, 곁에서 시중을 들던 승언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행동은 거칠지만 말은…… 아니, 말도 거칠지만, 그래도 폐하를 진심으로 연모한다면 그걸로도 좋지요.”
“넌 천 귀인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같이 있으면 화날 일이 많긴 하지만 싫은 분은 아닙니다. 폐하와 천 귀인이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생각합니다. 물론…… 가끔 과하다 싶을 때도 있지만요.”
말을 마친 승언이 황제의 어깨와 목덜미 위로 물을 조심조심히 뿌렸다.
머리카락과 피부가 물에 젖은 월요 황제는 달빛 아래에서 유난히 아름다워서, 황제가 아니라 사람을 홀리는 요사스러운 구미호처럼 보였다.
그래서 승언은 천 귀인과 황제가 함께 있을 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홀로 있을 때의 황제는 어느 순간에라도 내키면 승천할 것처럼 보였으나, 천 귀인과 함께 있을 때의 황제는 어딘가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만 띠고 있을 뿐 별 반응이 없어서, 승언은 좀 걱정이 되어 물었다.
“폐하는 다르게 생각하시는지요?”
“천 귀인이 그자에게 질문한 건 나에 관한 게 아닐 거다.”
“예?”
“그자를 잡아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