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그 얼굴로 시무룩해 있지 마!
“경하드립니다, 황후 마마.”
다음날, 황후가 좌경을 보며 머리를 빗고 있을 때였다. 황후의 궁녀 하나가 안으로 들어오더니, 밝은 얼굴로 황후에게 인사를 올렸다.
“왜 그러느냐?”
몹시 기뻐하는 얼굴이기에 황후가 호기심이 들어 묻자,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제 온 귀인이 시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새로 입궁한 후궁 중 처음이에요.”
궁녀는 정말로 기뻐하는 얼굴이었지만 황후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손에 힘이 쭉 빠졌다.
들고 있던 머리빗이 바닥에 툭 떨어지자, 곁에서 머리 장식을 골라주던 측근 궁녀가 황급히 허리를 굽혀 빗을 주웠다.
소식을 전한 궁녀는 자신이 말실수를 한 건가 싶어 황후의 눈치를 살폈으나, 황후는 이후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 * *
같은 시각.
온 귀인은 문안 갈 준비를 하기 위해 머리에 자수정을 꼬아 만든 화려한 장신구를 달고 있었다.
어머니가 챙겨 준 장식으로, 이 장식을 머리에 꽂으면 그녀는 유달리 눈에 띄고 화사해 보였다.
“이젠 폐하께서 소주를 가장 잘 챙겨주실 거예요.”
“그럼요. 새로 입궁한 후궁 중 소주만 한 분이 없던걸요?”
그런 주인을 보며, 온 귀인이 친정에서부터 데리고 온 측근 궁녀들은 좋은 말만 퍼부어주었다.
“왜. 개 답응이 가장 아름답잖아. 꼭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던걸.”
온 귀인은 뿌듯하게 웃으면서도 겸양을 떨었지만, 입가에는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온 귀인의 측근 궁녀들은 모시는 아가씨의 빈말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면 뭐 하나요, 신분이 낮은걸요.”
“제 눈엔 소주가 훨씬 더 어여쁘세요.”
“소주는 반듯하고 예쁜 눈썹이 가장 매력인데, 그걸 억지로 내려서 그리니 아쉬워요. 이 엉성한 앞머리랑 우울하게 만든 눈썹이 아니라면 소주가 연비보다 아름다울걸요?”
온 귀인은 뿌듯하게 웃으면서 턱을 치켜들었다.
“원래 모습이야 폐하의 총애를 받고 나면 조금씩 찾아가면 되지. 잠시 감춘다고 그게 어디 가겠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온 귀인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더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태감과 궁녀들이 줄지어 선 문가를 노려보았다.
“왜요, 소주?”
“언니도 참 너무한다 싶어서. 나는 폐하의 관심 한 자락 못 받는단 언니를 지원하기 위해 여기에 온 건데. 어제 문안 자리에서 나한테 눈길 한번 안 주시더라. 기가 막혀.”
“소주를 질투하시나 봐요.”
* * *
어젯밤 일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온 귀인과 시침한 황제는 누구고, 청적에서 떡만 먹던 떡돌이는 또 뭔가.
그 생각을 하느라 나는 밤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침상에 누워도 잠이 들만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문안 갈 준비를 하면서도 그 생각을 접을 수 없어서, 결국 대중궁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옆자리에 앉은 온 귀인에게 슬며시 묻고 말았다.
“어제 폐하랑 얼마나 오래 있었어요?”
황제가 고자라서 빨리 온 귀인을 내보낸 건지, 아니면 진짜 황제가 둘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황제가 둘이라면 분명 떡돌이가 가짜라고 확신한다.
이유는 둘.
첫 번째 이유. 떡돌이는 툭하면 떡을 먹으면서 놀고 있다. 너무 한가해 보여.
두 번째 이유. 황제는 자기 후손을 남기는 게 중요하잖아? 그런데 굳이 후궁에게 가짜를 보낼 이유가 있을까?
“그걸 왜 물으시는지.”
하지만 내 질문에 온 귀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딱 잘라 선을 그었다. 기분 나빠하는 모습.
자기가 왜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단 얼굴로.
맞아. 대답할 필요는 없지.
“그냥 궁금해서요.”
혹시 시비를 거는 거라 오해할까 봐 얼른 둘러댔지만, 근처에 있던 우 귀인은 그새를 못 참고 잘됐다 싶은지 바로 조롱했다.
“시침 한 번에 벌써 온 귀인을 견제하는 거예요?”
내가 쳐다보자 우 귀인은 목소리까지 높여서 웃었다.
“천 귀인은 투기가 심하군요? 이러다 온 귀인이 먹을 찻잔에 독이라도 타겠어요.”
“무슨 소리예요, 우 귀인. 내가 독을 탄다면 왜 온 귀인 차에 타겠어요. 우 귀인 차에 타지.”
“뭐라고요? 지금 말이면 단 줄 알아요?”
“이런 경우는 행동까지 안 가는 게 좋죠.”
우 귀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버럭 고함을 지르려 했지만, 황후가 차갑게 쳐다보자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전에 염 귀인 사건 때 나를 범인으로 몰아가려다가 황후에게 자기가 찍히더니.
그 이후로 황후의 눈치를 많이 보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 온 귀인은 나와 우 귀인을 번갈아 보더니, 몹시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로 뒤늦게 대답했다.
“폐하는 다정하신 분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지요.”
떡돌이가 다정하던가? 아니야. 걔는 안 다정해. 그럼 역시 온 귀인이 함께 있던 사람은 떡돌이가 아닌가?
아니, 떡돌이도 가끔은 다정하기도 하고…… 혼란스럽네.
어쨌든 이렇게 물어봐도 알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냥 넘어가야겠다.
그러나 내가 대화를 끝내고 시선을 돌리려 하자, 이번에는 온 귀인이 말을 걸었다.
“천 귀인께서 저와 몹시 닮았단 이야기는 이전부터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떤 분일까 정말 궁금했는데. 이렇게 뵈니 정말로 저와 많이 닮았네요.”
닮은 게 아니라 닮은 척하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지만 온 귀인은 황후와 한패이니 입을 다물자.
하지만 온 귀인은 내가 입을 다물자 더욱 활짝 웃더니, 날 향해 친근하게 물었다.
“제가 꼭 천 귀인의 친동생 같지 않나요?”
“누가 네 언니야. 네가 나란 말이냐.”
영빈이 옆을 지나가면서 비꼬는 말에 바로 조용해졌지만.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온 귀인은 화들짝 놀라서 웃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지만, 영빈이 너무 투명해서 무서운 호수 같은 눈으로 쳐다보자 얼굴이 굳어서 시선을 내렸다.
영빈은 흥 코웃음을 치면서 버들가지처럼 걸어가더니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는 연비 옆으로 가 앉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온 귀인을 향해 경고조로 손가락을 딱 내밀고서 한 번 휘젓는데…… 온 귀인이 내 동생을 자칭했단 것만으로도 몹시 화가 나는 듯했다.
쟤는 가족관계에 집착이 심하구나. 천소여를 싫어하면서도 누가 천소여 동생이란 소리 하는 것도 싫은가 보네.
‘난 그냥 떡돌이가 고자인지 가짜 황제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뭐가 이렇게 일이 꼬인대.
하지만 온 귀인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모든 후궁이 다 도착하고 정식으로 문안이 시작됐는데, 황후가 뜻밖에도 자기 친척인 온 귀인을 부르더니 얼음과 철을 섞은 듯한 목소리로 그녀를 질책한 것이다.
“온 귀인은 옷차림에 좀 더 신경 쓰는 게 좋겠군. 입궁한 지 한 달도 안 된 귀인이 벌써부터 옷차림이 그리 방정맞아서야 쓰겠는가.”
영빈과 황후에게 연달아 혼이 나자 온 귀인은 조용해져서는 눈을 내리깐 채 이후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옷차림 가지고도 꾸중을 듣고 그러는구나.”
문안이 끝난 후 돌아가는 길. 내가 중얼거리자, 원웅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서 호응해주었다.
“네. 하지만 소주께선 입궁하셨을 때부터 옷차림으로 혼난 적은 없으세요.”
“연비 때문에 그래? 영빈이 전에 그런 말을 했어.”
“그럴지도 몰라요. 괜한 꼬투리를 잡히기도 하는데, 그런 적은 없으시거든요.”
“그런데 황후는 왜 자기 친척을 자기가 나서서 꼬투리를 잡을까?”
“그랬나요?”
“어, 있지…….”
안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기 위해서 나도 같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막 설명을 하려고 보니, 저만치 앞에서 온 귀인이 개원이 닮은 개시시를 앞에 두고서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뭐라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지만 좋은 말은 아닌 게 분명했다. 개시시가 얼굴이 벌게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걸 보니.
아니, 온 귀인 쟤는 왜 황후한테 혼나 놓고서 개시시한테 화풀이야?
‘무슨 상관이야.’
잠깐 화가 났지만, 개원이 친척을 굳이 챙겨줄 마음은 없어서 나는 확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갔다.
“…….”
신경이 쓰여서 결국 다시 오고 말았지만.
하지만 왔을 때는 이미 온 귀인은 사라진 후였고 개시시는 시무룩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화가 너무 났다. 개원이 닮은 얼굴로 저러고 있으니 내 속이 막 부글부글 끓었다.
나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 오지랖을 떨고 말 만큼.
“뭐라 했는진 모르겠지만 헛소리하면 참지 말아요.”
개시시는 멍하니 땅을 보고 있다가 어리둥절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아차 싶은지 급하게 인사를 올렸다.
“천 귀인께 인사를-.”
하지만 나는 지금 인사를 주고받으러 온 게 아니기에, 일어나라고 바로 손짓하면서 계속해서 하던 말을 이어갔다.
“친척 중에 무림인이 있다면서 뭘 그렇게 힘없이 당하고만 있어요?”
다음에 또 그러면 찰싹 때리라고 말하려다 보니, 그러면 더 큰 일 나겠구나 싶어서 말을 멈춰야 했지만.
그래. 같이 입궁했어도 온 귀인이 더 품계가 높으니까, 찰싹 때리면 안 되지. 여기선 강한 게 권력이 아니잖아.
하지만 이 화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계속 씩씩거리자 개시시는 꼭 개원이만큼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천 귀인께서는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염려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염려한 거 아니야!
* * *
“소주, 왜 그렇게 개 답응에게 신경 쓰세요?”
아직도 개원이, 아니, 개시시가 기운 없이 있던 게 화가 난다.
하지만 원웅은 내가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는 개시시 일에 감정을 높이는 게 영 이해가 안 가는 눈치였다.
“신경 쓰는 거 아냐.”
“그런가요?”
“……조금 쓰이긴 해.”
이게 다 걔가 개원이를 닮아서 그렇다.
젠장! 개원이에겐 내가 복수할 건데, 날 죽이기까지 한 개원이 개자식이 다른 사람한테 한 소리 듣고 시무룩해 있는 건 싫다고!
그놈은 내가 죽일 거란 말이야! 개시시는 개원이 아니지만 얼굴이 똑 닮아서 싫어!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겠지.
“성이 특이해서 그런가 봐.”
“네?”
그런데 한참 이 분노를 누르면서 처소에 도착하니, 뜻밖에도 사립문 앞에 낯익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기몽 장군!’
그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떡돌이에 대한 것도 개시시에 대한 것도 싹 저 멀리 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마차 사건 때문에 왔구나! 바보! 떡돌이를 보는 바람에 그걸 까먹었어!
내가 입을 벌리고 멍청하게 서 있자니 기몽이 내게 사람들을 물려달라 청했다.
눈짓으로 측근들을 멀리 보내자, 기몽은 내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서 물었다.
“혹시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오늘은 안에서 얘기하자고도 안 하네. 많이 화가 났을까?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무공을 감출 자신도 있었다. 다행히 나는 내공을 숨기는 방법을 아니까.
게다가 수련을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아직 천년비 몸일 때만큼 근육을 단련하진 못했고. 그러니까 일단 무조건 발뺌하면…….
“그럼 혹시 천년비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