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어?”
황제의 표정을 보니 그는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알고 온 눈치가 아닌데.
아니, 그럼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던 거야?
후회해봤자 이미 말은 뱉었고 황제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자기 입가와 턱을 매만졌다.
“오해야.”
나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방금 네 입으로 말해 놓고 오해라고?”
하지만 황제는 이미 자기가 들은 말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지? 난감하다. 젠장, 그럼 대체 뭘 알고 와 놓고서 저렇게 너그러운 척하던 거야? 생각하니 화가 나네!
“떡돌이는 말 좀 똑바로 해. 내가 오해하잖아.”
“누가 누구한테 하고 싶은 말을.”
“뭘 잘못 알고 와서 대인 흉내를 낸 거야?”
“대인 흉내…… 이보세요, 계란 낭자. 먼저 오해하고 제 발 저린 건 그대인데?”
“덕춘이는 대인이 아냐. 소인배야.”
사람들은 내가 검 싸움만 잘하는 줄 아는데, 사실 나는 말싸움도 잘하는 편이다.
내가 조곤조곤 상대의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해주면, 보통 대다수 상대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흥분하지.
흥분하면 기세가 흐트러지고, 무공을 사용할 때 조급해져서 이후 생사를 건 비무를 할 때 도움이 된다.
그런데도 내가 말싸움을 잘하는 게 알려지지 않은 건 나랑 말싸움을 한 인간 중 살아나간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
“하지만 오늘 예외가 생겼군!”
“무슨 소리냐.”
떡돌이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돌연 긴장해서 물었다.
“진짜로 다리를…… 뗐어? 누구 다리를?”
“다리가 아니라 마차 바퀴를 뗀 거야. 마차 바퀴는 마차의 다리나 마찬가지니까 다리라고 표현한 거고.”
하지만 설명을 해주었는데도 떡돌이는 내 말을 믿는 표정이 아니었다. 영 미심쩍게 보기만 할 뿐.
결국 상황을 좀 더 말해주었다.
“걱정 마. 마부는 미리 처리했다.”
떡돌이는 입을 벌리고 뭐라 말하려 했으나, 곧 혼자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죽이진 않았겠지. 그런 일은 보고받지 못했으니. 그래. 생각해보니 온 귀인이 타고 온 마차가 고장 났단 이야기를 얼핏 들었네.”
“넌 내가 뭘 했단 건 줄 알았어?”
“네가 울었다고 들었다.”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나는 양파 깔 때 말곤 울어본 적이 없어.”
“그래. 잘났다. 잘났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떡돌이가 일어났다.
“벌써 가?”
내가 따라 일어서며 물었지만,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정말 나가려 했다.
“폐하!”
그러다 내가 붙잡으니 ‘그럴 줄 알았지!’ 하는 얼굴로 거만하게 돌아보긴 했지만.
“면사 챙겨 가야지.”
그 잘난 척하는 얼굴이 아니꼽기에 웃으면서 면사를 건네자, 떡돌이는 그제야 화가 나서 면사 착용을 하더니 팩 나가버렸다.
* * *
“오늘은 새 후궁들도 문안에 참석하겠네요.”
아침에 일어나 황후에게 문안을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부성이 머리를 빗겨 주면서 한숨을 섞어 말했다.
“그러고보니 어제 다들 들어왔다 했지?”
어떤 후궁들이 왔나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보러 찾아가진 않았다.
기존에 있는 다른 후궁들과도 염 귀인 정도와만 가깝게 지내는데, 뭐하러 친한 척이냐 싶어서.
“누구누구 왔대?”
하지만 이렇게 들어보니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대답은 원웅이 입고 갈 옷을 가져오면서 시큰둥하게 했다.
“황후마마 친척이 들어왔다나 봐요. 온 귀인이래요.”
“결국 들어왔구나. 걔는 통과할 줄 알았어.”
“?”
이런. 내가 후궁 선발을 보러 간 건 궁녀들에게도 비밀이지.
아차 싶었지만, 황후의 친척이 후궁 선발에 왔단 이야기는 다들 수군대고 있었기에, 내가 입을 다물자 원웅과 부성도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 외에는 별달리 눈에 띄는 후궁이 없는지 원웅과 부성은 후궁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신 평소보다 좀 더 공을 들여서 치장해주었다.
하지만 이후에 대중궁으로 가 문안을 시작하니, 막상 황후의 친척이라는 온 귀인보다는 개 답응이 가장 많이 관심을 받았다.
“후궁 선발 때도 생각했지만 개 답응은 정말로 아름답군.”
심지어 개 답응에게 관심을 먼저 보인 건 황후였다.
“황송하옵니다, 황후마마.”
그리고 개 답응은 내 관심도 독차지했다. 개원이 닮아서.
개원이 닮았으니 아름답겠지. 개원이도 개새끼지만 얼굴 하나는 지독하게 잘생겼으니.
솔직히 가끔은 개원이가 인기 많은 데는 얼굴이 한 9할은 차지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는걸.
그런 개원이와 쌍둥이 누이처럼 닮았는데 개 답응이 아름답지 않을 리가 있나. 별개로 나는 몹시 기분이 나쁘지만.
그래도 닮기만 한 다른 사람이라 다행이지, 혹시라도 개원이 그 자식과 관련이 있다면 내가 진짜 두고두고 노려볼…….
“듣자 하니 개 답응의 가문에는 무림 영웅이 있다지?”
무슨 소리야? 순간 황후가 한 말에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무림 영웅?
영웅이라고 하자마자 바로 개원이 생각이 났다.
‘아니겠지?’
하지만 개원이와 쏙 닮은 데다 성까지 같은 여자의 집안에 무림 영웅이 있다고 하니 몹시 불안해지는데…….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억지로라도 좋게 생각해보자.
“집안에 무림인이 있단 건가요?”
“신기하네요. 난 그런 사람들은 소설에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후궁이 된 걸 보니, 집안에 무림인도 있고 대신도 있나 본데 정말 대단하네요. 문무가 모두 출중한 거잖아요?”
반대로 다른 후궁들은 그 무림 영웅이란 데 호기심을 보였다.
게다가 아직 원한 관계가 없기 때문인지 다들 개시시에 관해 좋게좋게 표현해주었다.
여기서 개시시를 경계하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아서, 나도 눈에는 힘을 주었지만 입은 억지로 빵긋 웃었다.
“영웅이라 표현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황후 마마. 영웅이라 할 정도는 아니오나, 미명을 얻고 있는 ‘개원’이란 친척 오라비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개시시의 말을 듣자마자 양 입꼬리가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축 처졌다.
속으로 쌍욕이 나왔다. 개원이 이름을 내가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콧김을 내뿜지 않기 위해 나는 얼른 호흡을 가다듬었다.
내가 개원의 가족 중 만나본 사람은 개원의 아버지뿐이었고, 개원의 가족들에 대해 아는 건 날 싫어한단 것뿐이었다.
개원과 연애를 할 때도 정파 집안의 자랑거리이자 영웅이었던 녀석의 가문에 악적 취급을 받는 내가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갈 수도 없었다.
그러니 저렇게 닮은 친척이 있단 걸 알 리가…….
‘어쩐지 닮았다 했더니.’
닮아서 이미 싫었는데. 친척이라고 하니 더 싫네. 앞으로 볼 때마다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면서 지나가야겠다.
딱 봐도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비무를 청해 때려눕힐 수는 없고, 눈이라도 실컷 부라려야겠어.
* * *
“새로 온 후궁들은 어떻던가요, 소주?”
방 안에 들어와 무거운 장신구 위주로 빼고 있자니 부성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원웅도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면서 눈을 빛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따뜻한 차밖에 없어?”
“얼음을 넣어 올까요?”
“응.”
원웅이 새로 가져다 준 시원한 차를 마시면서 나는 딱 잘라서 말했다.
“개 답응이 마음에 안 들어.”
“온 귀인은요?”
“황후 마마 친척이라더니, 한 마디도 말을 안 거시던데?”
“정말요? 무척 챙기실 줄 알았는데.”
“너무 대놓고 챙긴단 소리를 들을까 봐 그런 거 아냐?”
뭐 온 귀인도 후궁 선발 때 내 대답을 따라 해서 기분이 나쁘긴 한데. 개원의 친척인 개시시에 비할 바는 아니지.
내가 불만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않자 원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후궁들이 왔으니 폐하께서 며칠간은 그 후궁들을 위주로 보살피실지도 몰라요, 소주. 그래도 너무 서운해하진 마세요. 잠깐일 뿐이니까요.”
나는 귀걸이도 빼겠다고 부성에게 손짓하다가 뜬금없는 말에 황당해 되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해? 폐하가 새 후궁들을 챙기실지 말지 어떻게 알고?”
원웅이 또 한숨을 내쉬었다.
“적응도 하고 해야 하니까, 보통은 새로 들어온 후궁들을 위주로 보살펴 주신대요. 혹시 소주께서 그걸 모르고 서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럼 혹시 나 때도 그랬어? 나 때도 폐하가 나를 입궁 초기엔 많이 신경 써줬어?”
질문하자마자 원웅이 갑자기 열렬히 내 장식을 빼내 주기 시작했다. 부성은 얼음이 녹았다면서 가져오겠다고 나갔고.
바로 대답이 보이네.
“난 찬밥이었구나.”
“그…… 찬밥은 아니고…… 그냥 관심이 없으셨어요, 소주.”
“…….”
“하지만 이젠 소주를 가장 총애하시니까요. 그러면 된 거죠!”
* * *
그날 밤.
경사태감이 후궁들의 이름이 써진 패를 들고 황제에게 와 무릎을 꿇었다.
“패를 뒤집으시지요, 폐하.”
월요 황제는 흑합에게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다가 눈두덩이를 누르면서 힐긋 경사태감이 든 쟁반을 보았다.
천 귀인의 패를 뒤집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쟁반에는 천 귀인의 패가 없었다.
“천 귀인의 패는 왜 없는 게냐.”
그걸 보고 묻자 경사태감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황후 마마께서 오늘은 새로 입궁한 후궁들 이름만 올리라 명하였습니다.”
황제가 인상을 찌푸리자 경사태감은 더욱 고개를 푹 숙이고 팔만 올렸다.
황제가 쟁반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더라도 그는 계속 이러고 있어야 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황제는 골치 아프다는 듯 혀를 차고서 오원요에게 눈짓을 보냈다.
눈짓을 받은 오원요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 * *
정말 떡돌이가 다른 후궁이랑 시침을 할까?
물론 나와 어울린 후에도 황후는 찾아간 적이 한 번 있지. 사자 친왕이 그 얘길 하면서 날 놀렸어.
하지만 다른 후궁을 찾아갔단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절대로 질투하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졌다.
다른 후궁들도 계란말이 시킨 채 옆에 두기만 할지, 아니면 다른 후궁들이랑은 이것저것 오만것 다 할지.
아. 그러고보니 황제한텐 ‘진짜’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지.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정황상 분명 있는걸.
떡돌이와 황제가 동일 인물이었단 걸 알게 되고서 황제가 좋아하는 그 여자 존재를 잠시 잊어버렸는데.
새삼 그 여자 생각이 난다. 그러면 다른 후궁들도 그 여자를 위해 계란말이 취급만 당하려나?
그때 저녁 세안 물을 가져온 부성이 상 옆 탁자에 그릇을 놓으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괜찮다고 말해보라고 하자 부성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해주었다.
“폐하께서 온 귀인을 찾아가셨대요, 소주.”
* * *
떡돌이가 온 귀인을 찾아갔구나. 내 대답을 똑같이 따라 하고 천소여랑 머리 모양도 같고 눈썹도 처진 그 여자를.
황제 그놈은 눈썹만 처지면 다 좋은 건가.
자려고 누웠는데 잠은 안 오고 화만 나서, 결국 산책이나 하자 싶어서 나는 같이 가자는 궁녀들도 만류하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나쁜 떡돌. 나쁜 떡돌.’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떡돌이를 향해 욕을 했다. 사실 욕을 할 이유는 없지만 그냥 하고 싶어서.
그런데 청적으로 가 보니 떡돌이가 혼자 떡을 먹고 있지 않은가.
혹시 온 귀인을 데리고 왔나 싶어서 살펴보았지만 아니었다. 그는 혼자서 떡을 먹고 있었다.
‘뭐지? 분명 황제가 온 귀인한테 갔다 했는데.’
너무 놀라서 얼결에 은신술을 펼쳐서 수풀 뒤에 숨어 있자니,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능성은 두 개다. 떡돌이가 황제지만 고자가 맞아서 대충 시늉만 하다 끝내고 나왔을 경우. 다른 하나는…… 황제가 둘일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