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떡돌이와 계란이
2020.12.25.
떡돌이가 황제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떡돌이가 떡돌이지 어떻게 황제일 수가 있어? 내가 방금 뭘 잘못 들었나?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의 고간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저게 멀쩡하다, 이거지?
이렇게 보아서 알 턱이 있나.
“나더러…… 내시라고?”
그 사이. 떡돌이가 이글이글 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개를 들자 그가 황당하단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표정이 ‘와그작’ 구긴 종이처럼 변했다.
“나더러 내시라고!”
“공공…….”
“아니다!”
이윽고 그는 몇 번이나 허! 허! 허! 하고 과장되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럴 수가 있나. 자신만만하게 내 정체를 알고 있다기에 과연 어떻게 생각하나 했더니, 뭐 내시? 내에시? 대체 내 어딜 보고 내시라 생각했지?”
하지만 이 상황에 헛웃음이 나오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떡돌이가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그가 쩌렁쩌렁 화내는 걸 보다가 나는 기분이 나빠져 허리춤에 손을 얹고서 같이 언성을 높였다.
“날 속여 놓고서 큰소리야 큰소리가!”
그 말을 듣고서야 떡돌이는 헛웃음 치던 걸 우뚝 멈추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마구 들썩거려 내가 화가 났단 걸 그에게 표현한 뒤 단호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게, 그게 멀쩡히 달려 있단 얘기지?”
떡돌이는 잠깐 무표정하게 있으려 했다가, 내가 질문을 던지자마자 또 채신머리가 사라져서는 기가 찬 척 물었다.
“그 부분이 아니라 다른 데서 놀라워해야 하지 않나?”
“하지만 넌! 아니, 폐하의 모든 행동이 폐하는 내시란 걸 가리키고 있었단 말이에요!”
내가 반박하자 떡돌이는 아예 자기 목 뒤를 짚더니 뒤로 넘어가려 했다.
“폐하!”
그러자 승언이 달려와서는 그를 부축하면서 내게 험악하게 눈을 부라렸다.
“모를 때야 어쩔 수 없다 쳐도, 알고서도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천 귀인!”
“어쩔 수 없다! 너는 폐하의 거시기를 네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놀랄 게 없겠지만, 나는 아직 본 적이 없어서 믿기지가 않아!”
그 말에 승언은 얼굴이 벌게지더니 황급히 반박했다.
“저도 본 적 없습니다!”
뭐라? 승언이도 본 적이 없어? 그럼……?
내가 떡돌이를 쳐다보자, 그는 승언이를 팽개치고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양 머리를 두 손으로 딱 쥐고서 자기 이마를 내 이마에 붙이고 으르렁거렸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거기서 멈춰.”
“제가 뭔 생각을 했다고요.”
“떡돌이는 황제지만 내시구나, 황제지만 고자구나, 그래서 행동이 내시 같았구나 등등.”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알아?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자 바로 코앞에 있는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붙인 탓에 우리 눈동자 사이의 거리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거리보다 가까웠던 것이다.
그걸 인식하고 나자 갑자기 호흡하기 어려워져서 나는 숨을 멈추고 눈을 부릅떴다.
황제 역시 씩씩거리던 걸 멈추더니 입을 다물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그가 자기 이마를 내게서 떼더니, 늘 앉던 우리 자리에 앉고서 옆에 앉으라고 톡톡 바위를 두드렸다.
그 옆에 앉자, 떡돌이는 말없이 애꿎은 풀만 발로 뭉개다가 물었다.
“내게 하고 싶은 말 없어?”
“이렇게 잘난 얼굴을 왜 가리고 다녀?”
“!”
“왜 놀라?”
“아니. 너라면 분명 그놈의 거시기 소리를 할 거라 생각했지.”
“그것도 궁금하긴 하지만 널 위해 묻지 않으려구.”
떡돌이가 째려보길래 습관적으로 그의 다리를 찰싹 치려다가 나는 엉거주춤 허공에 대고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어색하게 손을 도로 내리자 떡돌이는 내 손을 가져다 자기 허벅지에 올려 주더니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마음대로 쳐도 돼.”
“응.”
그 말이 기뻐서 사양 않고 찰싹찰싹 허벅지를 두드리자 떡돌이는 그새 마음이 바뀌었는지 자기 다리를 휙 가져가면서 쌀쌀맞게 말했다.
“한두 번만 해라, 한두 번만.”
“하루에 두 번 제한이야?”
“자연스럽게 말을 놓는구나.”
“하루에 두 번 제한이어요?”
떡돌이는 나를 흘겨보더니 다시 다리를 원위치하고서 나를 계속 곁눈질했다.
할 말이 한가득 있는데 이걸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처럼.
혹시 ‘네가 내기에서 졌으니 내 소원을 말하마’라고 나올까 봐 나는 얼른 모른 척 내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시선을 피하긴 했지만 떡돌이가 너무 말이 없기에 슬그머니 다시 눈을 들어 살피자, 날 유심히 바라보는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깜짝 놀라서 그의 눈을 콕 찌르자 떡돌이는 으악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넘어갔다.
“계란!”
“미안해. 너무 놀라서.”
승언이가 달려와서 다시 황제를 챙기는 동안 나는 발을 동동 구르다가 전투적이고 위험한 내 손을 탓했다.
진짜로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
사방이 적인 고립된 악적으로 살다 보면 누군가 날 기습한단 판단이 서자마자 얼른 공격을 해야 하는데.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기를 끌어모으고 뭐고 할 때가 없으면 일단 막싸움이라도 해야 한단 말이다.
눈을 찌르는 것도 그중 하나이지.
비겁하다면서 이건 무림인의 싸움이 아니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지만, 막싸움을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고.
생명이 달린 와중에 비겁하고 뭐고 찾는 게 멍청한 거잖아?
하지만…… 지금은 생명이 걸린 일이 아닌데 떡돌이 눈을 찔러 버렸어. 어쩌지?
“미안해요 폐하. 미안해 떡돌아. 어쩌지?”
승언은 도끼눈을 뜨면서 나를 노려보고는 숨어 있는 다른 호위에게 외쳤다.
“어의를 불러와라!”
“되었다.”
하지만 다른 호위가 달려가기 전.
황제가 손을 저어 말리고는 자기 눈을 손으로 가린 채 숙였던 허리를 폈다.
그러고는 손을 내리는데…… 눈이 빨개.
애가 토끼가 됐네. 이를 어쩌지?
눈을 보자 더 미안해져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자니, 떡돌이는 나를 바라보면서 가장 높고 푸른 대나무처럼 고아하게 웃었다.
“내기에서 졌으니, 우리 계란이. 내 소원을 하나 들어주어야지?”
웃는 건 청량한데 목소리가 왜 저래. 소원 들어달란 말을 왜 저렇게 으스스하게 하는 거야. 무슨 소원을 빌려고.
화난 거 같은데…… 나한테도 눈을 대라고 하려나.
긴장감에 발가락이 막 말려 들어간다. 그의 눈치를 보고 있자니 떡돌이가 완전히 악독해 보이게 웃었다.
“아, 알았습니다.”
결국, 나는 마음을 딱 먹고 눈을 부릅뜬 다음 얼굴을 그의 코앞에 가져다 댔다.
“찔러! 나도 한 번 받아줄게!”
난 떡돌이가 내 용기에 감동 받아서 실수한 거니까 화를 풀어주겠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떡돌이는 유심히 나를 쳐다보더니 방긋 나쁜 놈처럼 웃으면서 물었다.
“진짜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눈을 더욱 부릅떴다.
“그래. 그러니까 빨리 찔러. 더 오래 뜨고 있진 못해.”
“진짜 찌른다.”
“그래!”
“진짜로.”
“그러라니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떡돌이가 움직였고, 나는 주먹을 꼭 쥐고 시린 눈을 맞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다가온 건 그의 손가락이 아니라 눈이었다.
‘왜 눈을……?’이라고 생각하고 있자니, 그의 숨결이 바로 근처에서 느껴졌다.
토끼가 된 그 눈동자를 쳐다보는 사이. 아주 느릿하게 그가 물었다.
“눈 말고. 입도 되나.”
곧 입술 위로 그의 입술이 느껴졌다.
승언이 달아나는 뒷모습이 잠시 보였으나, 곧 떡돌이의 눈이 내 시야에 꽉 차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심장이 송어처럼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놀라서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자니 눈이 새빨개진 떡돌이가 눈매가 휘어지게 웃고서 입술을 뗐다.
당황해서 내 입가를 얼떨떨하게 만지고 있자니, 떡돌이는 내가 하듯 내 다리를 찰싹 두드리고서 말했다.
“둘이 있을 땐 계속 떡돌이로 대해도 좋아. 나도 널 계란이라 부르니까 그게 공평하지.”
“반말도 괜찮아?”
“그래.”
“그게 소원이야?”
“꿈도 야무지군.”
“…….”
잠시 두근두근하던 심장이 도로 제자리를 찾아가더니 부채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흥흥’ 콧김을 들이마시고 있자, 떡돌이가 얄밉게 웃으면서 내 입술을 손으로 한 번 툭 누르며 놀렸다.
“영민해져라, 천 귀인.”
* * *
-사실 무슨 소원을 빌 건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고 알려주지.
떡돌이, 아니 황제는 끝내 자기 소원이 무엇인지 빌지 않았고, 나는 청적 밖으로 나와 털레털레 내 처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연한 분홍색 꿈속에 푹 잠겼다 들어오는 것처럼 기분이 아주 묘해서…….
내 떡돌이가 황제였다고? 떡돌이가 황제였어. 게다가 떡돌이는…… 나랑 입을 맞췄어. 어떻게 맞췄더라?
기억이 안 나네. 기억나는 건 토끼처럼 눈이 빨개져서 나를 쳐다보던 그 웃음기 어린 눈빛뿐이다.
“소주?”
“어? 어?”
“왜 그렇게 웃고 계세요? 좋은 일 있으셨어요?”
“어? 아니!”
평상에 앉아 떡돌이와 입 맞춘 걸 곰곰이 되짚고 있는데 부성이 아무것도 모르고서 내가 웃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간다,
나는 딱 잘라 말하고서 얼른 정색한 얼굴로 근엄하게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고서 명상을 하자, 확실히. 떡돌이가 황제였을지도 모르는 순간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전에 황제가 호숫가에 뒷짐을 지고 서 있을 때. 나는 그 모습이 수묵화 같아서 떡돌이랑 좀 비슷하다고 생각했지.
게다가 떡돌이는 변명에 서툴러서 내가 ‘평소 변명할 일이 많이 없나 봐?’ 하고 예리하게 지적한 적도 있었다.
떡돌이가 황제한테 너무 이입해서 말하길래 그를 꾸짖어 준 적도 있고.
굉장해! 잠깐 잘못된 결론을 내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내 관찰 실력도 대단한데?
만약 갑자기 내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떡돌이의 정체를 스스로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런 확신이 들어. 그 생각을 하자 괜히 소원권 하나만 날린 듯해 아쉬워진다.
젠장! 사자 친왕이 어제 떡돌이가 내시라고 확신만 안 해줬어도 내가…… 내가?
그러네? 사자 친왕 그 인간, 떡돌이가 내시 맞다고 했잖아!
“날 속였어!”
* * *
“천 귀인이 생각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폐하.”
사자 친왕이 웃으면서 위로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뱉자, 황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서 웃었다.
그는 천 귀인이 진실을 알게 된 후, 속았다고 화를 내거나 서운해할까 봐 일주일 내내 걱정했다.
하지만 천 귀인은 그러지 않았다. 게다가 황제란 걸 알게 됐다고 행동이 변하지도 않았다.
승언이 “너무 안 변한 거 같은데 괜찮을까요? 저러다가 사람들 앞에서 실수라도 하실까 염려됩니다.” 하고 걱정할 정도로.
사자 친왕은, 감추려고는 하지만 좋아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 그의 이복동생을 모른 척해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폐하는 이제 모든 오해를 풀고 천 귀인과 가까워지게 생겼는데. 소신은 이제부터 시작이라 두렵네요.”
“이제부터 시작이라니?”
“어제 천 귀인이 ‘떡돌이는 내시다’라고 하기에 맞다 했거든요. 제가 거짓말 한 걸 알았으니, 천 귀인 성정에 어떻게 화풀이를 해대실지.”
“만날 일도 드물 텐데 뭘 벌써 고민하느냐.”
“그건 그렇지요.”
사자 친왕은 순순히 인정하더니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웃었다.
“어쨌든 감축드립니다, 폐하. 이걸로 천 귀인과 모든 앙금을 씻고 속을 터놓는 사이가 되셨으니까요.”
황제는 그런 소리 그만두라고 손을 저으려 했으나 돌연 떠오른 생각에 주춤했다.
‘속을 터놓는 사이’라고 하자 무언가 떠올라서.
“왜 그러십니까, 폐하?”
“생각해 보니…… 내가 정체를 알려주기 싫다고 했을 때, 천 귀인이 그랬는데. 자기도 숨겨둔 정체가 있으니 상관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