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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59화 (59/283)

##  59화. 나는 눈치가 비상하지

미동조차 없이 떡돌이는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자기 눈 안에 진실과 거짓을 파악하는 추가 있어서, 내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바로 그릇됨을 파악할 수 있다는 듯이.

“아닌데.”

한참 동안 내 눈을 들여다본 끝에 떡돌이는 내 말을 부정했다.

“너, 내 정체 모르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

“감.”

“네 감이 왜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딱 보면 보이는 게 있잖아.”

떡돌이는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붙는 모양이다.

이윽고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한쪽 팔로 턱을 괴더니 날 놀려댔다.

“네가 날 뭐라 생각하든 아마 다 착각일걸.”

“너 진짜 사람 말 못 믿는구나?”

“난 널 좋아하지만 천 귀인. 네가 영민하다고 생각하진 않아.”

“난 널 좋아하지도 않고 네가 감이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떡돌이가 ‘진짜 이렇게 나올 거냐’는 눈으로 날 쳐다보기에 나는 어깨를 쭉 펴고서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그래! 이렇게 나올 거다!

바람이 제멋대로 불면서 곱게 묶은 떡돌이의 머리카락을 산발로 만든다.

그는 귀찮다는 듯이 손빗으로 머리를 뒤로 넘기고는 자기 무릎을 툭툭 두어 번 두드리고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뭘!”

“내기를 하자.”

“내기라니?”

“네가 정말로 내 정체를 알고 있는지 그릇되게 알고 있는지.”

“그걸 어떻게 내기하는데?”

“동시에 내 정체에 대해 외치는 거로. 만약 네가 내 정체를 알아맞힌다면 네 승리로, 네가 내 정체를 이상하게 알고 있다면 내 승리로. 그리고 진 사람은 이기는 사람 소원을 무조건 하나 들어주기. 어때?”

뭐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나? 떡돌이는 정말로 내가 자기 정체를 모른다 확신하나?

떡돌이가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오니 괜히 내가 쪼그라들었다.

“자신 없어?”

그 기색을 눈치챘는지, 떡돌이는 대번에 거만하게 웃으면서 놀려댔다.

하지만 나는 발끈해서 넘어가는 대신 차분하게 그를 떠보았다.

“무슨 소원을 빌고 싶어서 그래? 나한테 빌고 싶은 소원 있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떡돌이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투로 대번에 대답했다.

“청혼해야지. 너한테.”

뭐? 청혼? 내시가 후궁한테 청혼하겠다고?

“너 그러면 폐하한테 죽을 텐데?”

이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 아니잖아? 내가 황당해서 되묻자 떡돌이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수긍했다.

“그렇지? 그럼 소원은 바꾸어야겠네.”

“뭐로?”

“안 알려줄 거다.”

“치사하게…….”

“그러는 넌 무슨 소원을 빌 건데?”

“나도 안 알려줄 거야. 하지만 아주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소원이란 건 알아둬.”

거짓말이다. 떡돌이가 자기 소원에 대해 알려주지 않으려 하기에 그냥 해본 말이다.

하지만 떡돌이는 상관없다는 듯 팩 웃고는 기고만장해서 말했다.

“이대로는 네가 가엾으니까, 생각할 시간을 며칠 주마.”

“필요 없어!”

“받는 게 좋을걸?”

“…….”

“보자. 일주일? 일주일 후로 하지. 일주일 후 이 자리에서 답을 말하는 거로.”

자신만만하게 웃은 떡돌이는 손에 묻은 콩고물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동안 더 생각해 봐. 하루 종일 내 생각만 하다 보면 모르지. 답을 알 수 있을지도.”

* * *

“천 귀인께선 폐하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모르시는 것 같은데요.”

천 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청적을 떠나자, 승언이 곁으로 다가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월요 황제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소원을 말할지 골라 놔야겠다.”

“정말로 천 귀인께 소원을 들어달라 하실 건지요?”

“그래.”

승언이 ‘당신은 황제잖아?’란 시선으로 월요를 보았으나, 황제는 그 시선에도 당당했다.

“짐은 상대가 아무리 귀엽다고 해도 봐주는 거 없느니라.”

귀엽다고? 승언은 반사적으로 ‘으악’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황제가 쳐다보자 황급히 고개를 숙여 수습했다.

“그렇군요. 천 귀인께선 귀여우시지요.”

“이상한데.”

“예?”

“네가 왜 내 아내한테 귀엽다고 하지?”

“아, 그게…… 송구합니다. 천 귀인께서 귀엽지 않으십니다.”

“이것도 기분이 좋진 않은데.”

“!”

그럼 어쩌란 건가 싶어서 승언은 입을 다물고 함구하는 편을 선택했다.

월요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호위의 뒤통수를 쳐다보았으나, 곧 그 화제를 더 추궁하길 멈추고 갑자기 초조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천 귀인이 너무 당당하게 ‘난 이미 네 정체를 안다’며 나오는 통에 내기까지 하게 되었지만, 그 역시 이토록 갑작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밝힐 생각은 없던 탓이다.

월요는 천 귀인이 편하게 그의 다리를 두드려대던 청적과 두 사람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바위를 바라보다가, 심란해져서 눈을 감았다.

* * *

일주일이고 뭐고 시간 끌 필요도 없다.

나는 내 처소로 돌아오자마자 당당하게 ‘떡돌이는 내시’라고 쪽지에 적어두고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로 불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아니면?’

만에 하나라도 떡돌이가 내시가 아닐 경우, 나는 녀석의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는데. 솔직히 들어주기 싫었다.

“부성아.”

결국, 확신을 위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해보기로 하고서 내첨 장식의 먼지를 털고 있는 부성을 불러보았다.

“네, 소주!”

“폐하의 호위나 장군과 친하게 지내고, 글씨가 반듯하고, 폐하와도 친분이 좀 있는 것 같고, 하지만 폐하한테 막, 말을 함부로 할 위치는 아니고, 좀 자신감 없고 매사에 속도가 느리고…….”

“예?”

“그런 사람이 있다면 누구 같아?”

“예에? 통 모르겠는데요. 너무 막막해요, 소주.”

“그래도 하나 짚자면?”

“어…… 중간 정도 직급인 대신 아닐까요?”

내시가 아니라?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간을 찌푸리자, 방 밖에서 소리를 다 듣고 온 원웅이 얼른 손을 들고 나섰다.

“소주 소주, 제 생각엔요, 왕족 중 하나일 거예요! 왕족이지만 친왕 전하만큼 폐하와 가깝진 않은 왕족이요.”

뭐야. 내시는 왜 안 나와.

“사관이 아닐까요? 폐하의 곁에 머무르긴 하되 너무 친하진 않고, 폐하 곁에 자주 있으니 호위나 장군과도 알고 지내게 될 테니까요.”

심지어 우두커니 서 있던 귀자까지 묻지 않은 말을 보태는데, 그 대답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뭐야…… 왜 내시란 말이 안 나오지?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소주?”

눈을 반짝이며 묻는 부성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 웅얼웅얼 대답하고서, 처소 밖으로 나가 청적에 도로 뛰어갔다.

하지만 떡돌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바위 밑에 ‘내기 꼭 해야 돼?’라고 써 놓고 돌아왔다.

* * *

다음날 청적으로 가보니, 내가 써 둔 쪽지 아래에 ‘응’이란 답변이 쓰여 있다.

나는 바위 위에 털썩 앉아 종이를 손바닥 안에 넣고 구기면서 내기를 괜히 했다고 어제의 나를 질책했다.

나 혼자 생각할 땐 분명 내시였는데! 왜 다른 사람들한테 물으니 이렇게 답이 많이 나오는 거야?

얼마나 그렇게 한탄하고 있었을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져서 올려다보니, 사자 친왕이 부채질을 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죽을상입니까, 귀인?”

잘됐어! 부성이나 원웅, 귀자는 모두 다 궁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지.

하지만 사자 친왕은 좀 더 신분이 높은 사람이니, 그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이 상황을 보아줄지도 모른다.

“이리로 와 보세요.”

그가 다가오자마자, 나는 부성에게 설명한 것과 같은 설명을 한 다음, 이런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 것 같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사자 친왕은 대번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손가락을 딱 튕겼다.

“떡돌이 얘기로군요.”

나는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떡돌이를…… 알아? 아니, 아는 건 그렇다 치고 내가 지어준 별명까지 알아?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게 얼른 설명했다.

“그 친구와는 나도 꽤 친한 사이이지요.”

흑합 장군과 절친한 친구라더니, 사자 친왕과도 안다고?

……역시 내시 같은데.

“두 사람이 내기를 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는 내가 설명하지 않은 부분까지 이야기하면서 부드럽게 웃었다.

더욱 놀라 쳐다보자, 사자 친왕은 주위를 휙휙 둘러보더니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서 내게 소곤거렸다.

“떡돌이 정체가 뭔지 내가 알려 줄까요?”

“정말인가요? 네!”

나는 기뻐서 얼른 대답했다.

하지만 사자 친왕은 부채를 탁 거두고서 뒷짐을 지더니 놀리는 투로 말을 바꾸었다.

“정보호에게 뭘 물어본 건지 알려준다면 나도 알려주지요.”

그러면 안 말해줘도 된다고 내가 손을 젓자, 사자 친왕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는 내게 옆으로 좀 가라고 밀어내고는 바위에 자기 자리를 만들어 앉으며 제안했다.

“아까 건 그냥 해본 말이고.”

‘거짓말.’

“이렇게 하지요. 귀인께서 생각하는 떡돌이의 정체에 대해 내게 말해주면, 그게 맞는지 아닌지만 내가 확인해 주겠습니다. 딱 한 번에 한해서. 어떻습니까?”

“전하께서 왜요?”

“우리는 친구니까요.”

또 우리가 친구래.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사자 친왕은 저번에도 나를 도와주었고, 뭐, 나름대로 여러 번 도와주긴 했지.

매번 생글생글 웃고 있어서 껄끄러운 점이 있긴 하지만.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떡돌이는…….”

하지만 말하려다 보니까 문득 불안해진다. 사자 친왕이 떡돌이와 한패면 어쩌지?

떡돌이가 사자 친왕에게 내가 정답을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하고 오라 시킨 거면 어쩌지?

불안해서 쳐다보자, 사자 친왕이 말갛게 웃으면서 풀 끄트머리를 똑똑 따기 시작했다.

‘아니야, 짜고 치는 거라 하더라도 나는 다 파악할 수 있다. 나는 눈치가 좋으니까!’

고민 끝에 나는 그에게 내 생각을 알려주었다.

설령 사자 친왕이 떡돌이와 한패라 하더라도, 만약 내가 오답을 말한다면 오답을 들은 태가 나겠지!

“내시!”

나는 말을 하자마자 사자 친왕의 반응을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사자 친왕은 나만큼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눈썹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고, 눈은 밤송이만 해졌고, 입은 쩍 벌어졌다.

그 표정은 나의 예리한 안목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진실이구나!’

내가 흐뭇하게 웃자, 사자 친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박수를 치다 엄지를 내밀었다.

“귀인은 참으로 안목이 좋군!”

“정답이죠?”

“그럼! 내기는 귀인의 승리로 끝나겠는걸?”

거봐, 내가 안목이 좋다니까! 가슴이 쭉 펴지면서 입꼬리가 올라간다.

하지만 너무 으쓱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나는 헛기침을 하고 턱을 들어올렸다.

“내가 이리 영특합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그가 다시 박수를 친다. 그걸 보자 내 안목이 더욱 자랑스러워졌지만, 또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나는 신중하게 부탁했다.

“떡돌이한텐 비밀로 해줘요. 내기를 취소하면 안 되니까.”

사자 친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서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절대로 얘기하지 않으리다. 떡돌이가 자기 귀로 그걸 꼭 들어야 하거든.”

* * *

마침내 일주일이 지나 결전의 날이 되었다.

나는 아직 떡돌이에게 무슨 소원을 말할지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 내기에서 이겨야 했기에 청적으로 갔다.

당장 빌 소원이 없으면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쓰지 뭐.

떡돌이는 평소보다 좀 더 반짝반짝하고 멋진 비단옷 차림으로 먼저 도착해 있었는데, 내가 당당하게 걸어오자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답은 구했나?”

“그럼!”

내가 자신 있게 외치자, 그가 다시 웃더니 신신당부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외치는 거다. 늦게 외치는 사람도 내기에서 지는 거고. 알았어?”

“암!”

내가 소맷자락을 펄럭이고서 허리를 쭉 펴자 떡돌이가 손짓을 했다.

그러자 승언이 얼른 다가오더니 자기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말이 끝나자마자 나와 떡돌이는 동시에 그의 정체에 대해 외쳤다.

“내시!”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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