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자객은 뒤처리가 골치아프다
“미리 경고하자면 황제의 엉덩이를 그렇게…… 그렇게 험하게 노리면 안 돼.”
기침을 멈춘 떡돌이는 멀쩡해지자마자 잔소리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 잔소리 내용이 좀 이상해. 험하게 노리면 안 된다고?
“그럼 뭐 부드러운 깃털 달린 도구라도 사용하란 거야?”
그걸로 두드려?
“도구도 안 돼!”
떡돌이는 얼굴이 벌게져서 단호히 외쳤다. 까다롭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안다. 떡돌이가 까다로운 게 아니다.
* * *
그래. 황제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행위 자체는 어렵지 않다. 발을 들어서 ‘탕’ 차면 되는걸.
문제는 황제를 호위하는 수많은 그림자들. 황제를 걷어찬 다음 받게 될 혐의들이다.
25년 전인가. 황제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았다가 시해죄로 처형당한 관리가 있었다지.
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관리가 황제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이나 뽑은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엉덩이를 걷어차도 그럴까? 황제 시해 혐의를 받게 될까? 걷어차는 게 힘들다
면 손으로 치면 어떨까? 손으로 치면 시해 혐의는 안 받을지도 몰라.
음…… 허락을 받고 치면 절대로 시해 혐의가 아니지.
그래. 황제한테 슬쩍 물어봐야겠다. 제가 폐하의 엉덩이를 손으로 두드려도 괜찮을까요?
황제가 “그리하라.”고 허락해주면 두 번 정도 살살 두드려야지. 그러다가 방심하는 순간 온 힘을 다해서 빡!
그러고서 실수라고 잡아떼면 될 거야. 황제는 자존심이 세니까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하겠지?
“완벽하다.”
“예?”
“내 계획이 완벽해.”
원웅이 데친 시금치를 들고 오다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가끔 소주는 혼자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말을 하세요.”
“혼잣말이 습관이 되어서 그래.”
난 혼자서 지내는 일이 많았으니까.
……이거 되게 외롭고 쓸쓸한 얘긴데. 원웅이 ‘네가 언제 그런 습관이 있었는데?’라는 표정이 되었다.
원웅은 천소여가 친정에서부터 함께 지낸 시녀라 했지. 그래서인가 봐.
“있어, 그런 습관이.”
그래도 우겼다. 어쩌겠어, 본인이 그렇다는데.
“근데 시금치는 갑자기 왜 들고 와?”
일단 말을 돌리자.
“이거요-.”
그런데 원웅이 대답하려던 찰나. 한발 앞서 귀자가 사립문 너머에서 나를 불렀다.
“소주, 기몽 장군께서 찾으십니다.”
기몽 장군이란 소리에, 원웅은 시금치가 든 바구니를 내려놓으며 나를 걱정스레 보았다.
“소주, 기몽 장군이래요.”
그러게. 기몽 장군이라니. 이번엔 또 왜?
저절로 불안한 마음부터 든다. 어쩔 수 없다. 그 이름은 떳떳해도 신경이 쓰이는 이름인걸.
우물에서 살해된 태감이 발견되었을 때, 그때는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어서 불려갔나? 아니잖아. 그때도 영문 모르고 갔어.
그래도 피할 길이 없는지라 밖으로 나가보니, 기몽이 사립문에서 딱 한 걸음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넌 제발 좀 오지 마라…….
내가 탐탁지 않게 쳐다보자, 그는 장난스레 웃으며 인사했다.
“오늘은 염 귀인에 대한 일로 찾아왔습니다, 천 귀인. 수사청으로 모시고 가지 않을 테니 이 몸을 너무 싫어하진 마시지요.”
“염 귀인은 왜요?”
“염 귀인이 천 귀인을 저주한 혐의로 수사청에 잡혀 있습니다.”
“그건 들었어요.”
“염 귀인이 천 귀인을 저주했을 때, 천 귀인이 쓰러진 거로 아는데요. 혹시 그 전후로 이상한 점이 없었습니까?”
“이상한 점이라면…….”
천년비. 내 이름, 내 진짜 이름을 누군가 속삭였지. 뇌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가 났다. 근데 이 일을 말해도 되나?
그 순간.
“혹시 천 귀인, 원래 이름이 ‘천년비’였습니까? 개명한 적 없습니까?”
놀랍게도 기몽이 먼저 내 이름을 말했다.
“없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서 눈을 부릅뜨고 주장했다.
“천소여란 이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지니고 있던 이름이고, 그 이름에 담긴 뜻은 높고 비상한데 어디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져와서 개명했니 어쩌니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지금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아주 당황스러운데요?”
젠장. 변명하다 보니 말이 너무 길어졌나.
천소여의 이름이 높고 비상한지 아닌지는 당연히 모른다. 그냥 놀라서 발뺌한 거다. 원래 도둑은 제 발 저리니까. 난 도둑은 아니지만.
기몽 장군은 눈을 깜빡이다 물었다.
“그러니까…… 모르는 이름이란 거군요?”
내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자, 기몽 장군은 의외로 순순히 알겠다면서 돌아갔다. 하지만 내 심장은 원래 속도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멀어지기를 기다리다가, 그가 아예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평상에 앉아서 손부채질을 했다.
와. 엄청 놀랐어.
“소주, 괜찮으세요?”
“아니. 난 저자랑 안 좋게 몇 번이나 얽혔잖아. 그래서 저자만 보고 나면 막 심장이 쿵쿵 뛰고 그래.”
놀라서 묻는 부성에게, 나는 적당히 둘러대고서 손부채질을 더욱 빠르게 했다.
태연한 척하기에는 심장이 너무 많이 뛰어서, 침상에 돌아와 누워서도 여전히 잠들 수가 없었다.
왜? 기몽 장군은 왜 갑자기 내 이름, 내 진짜 이름을 말한 거지? 왜 나한테 개명했냐고 한 거야?
염 귀인에 관해 수사하다가 그 이름을 말했다는 건…… 염 귀인이 내 이름을 알고 있던 건가? 그래서 그 이름에 관해 물어봤나?
아니면 내가 가짜라는 걸 알아서 떠보는 걸까? 모르겠다. 그런 분위기는 아니긴 했는데.
어쨌든 앞으로는 최대한 ‘천년비’와 철저하게 다르게 행동해야겠어. 내가 나라는 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게.
무슨 상황인지도 좀 알아보고.
* * *
그러나 결심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벌어졌다.
그날 밤. 아무리 이불 안에서 몸을 뒤척여도 잠이 오지 않아서, 결국 찬 바람을 쐬기 위해 밤 산책을 하고 있는데.
이상한 기척이 가까이 오는 게 느껴진 것이다.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자란 꽃을 구경하다가, 숨을 멈추고 들려오는 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와 섞였지만, 누군가 내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구지? 원웅? 부성? 아니야. 걔들은 늘 인기척을 내고 다니잖아.
귀자도 아니다. 지금 발소리. 자기의 접근을 최대한 숨기는 발소리인걸.
침입자라고 판단을 내린 후에도 나는 계속 꽃을 구경하는 척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침입자가 바로 뒤까지 오는 순간.
내공 없이 펼칠 수 있는 비장의 한 수인 천수비를 펼쳐 상대의 급소를 내려쳤다.
동시에 그쪽의 내공을 빠르게 뒤흔들었다.
이게 천수비의 무서운 점이다. 내 내공이 없을 때, 남의 내공을 뒤흔들어 공격하는 방식. 상대가 내공이 많을수록 효과적이지.
침입자는 엄청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푹 기절했다.
‘이크.’
나는 몸을 옆으로 피해 침입자가 맨땅에 쓰러지게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으로 누운 침입자를 발로 굴려서 정면을 보게 눕히자, 침입자가 쓴 까만 복면이 드러났다.
복면을 쓰고 몰래 다가오다니! 역시 나쁜 뜻을 품고서 날 찾아온 놈이로구만! 그런 거라면 날 너무 쉽게 보고 접근했는데?
코웃음을 치면서 나는 손을 뻗어 침입자의 얼굴을 가린 복면을 확 벗겨냈다.
누군지 면상이나 보자!
“…….”
모르는 사람이네. 도로 씌워주자.
그냥 사람이나 부르자. 그러면 병사들이 알아서 수사청에 끌고 가겠지. 수사 욕구에 가득 찬 기몽 장군은 좋다고 잘 수사를…….
그러나 잘 나가던 생각은 중간에 우뚝 멈추었다.
‘안 돼.’
기몽 장군. 아까 있었던 기몽 장군과의 대화가 떠올라서.
오늘 기몽이 나더러 천년비 이름에 관해 물었잖아? 난 모른다고 대답했고.
그런데 무공을 익히지 않은 ‘천 귀인’이 이 와중에 자객을 때려잡았다?
기몽 장군은 분명 이상하게 여길 거다. 그러다 천년비가 실존하는 무림 고수 이름이란 것까지 알게 되면…….
젠장. 내가 사람을 부를 일이 아니야. 이 자객, 치워둬야겠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발견하게 하자.
‘하지만 어디에?’
기절한 자객을 처리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1번. 여기에 버리고 간다.
2번. 땅에 묻는다.
3번. 다른 데 숨겨둔다.
땅에 묻으면 죽겠지? 죽으면 괜히 더 의심을 살 거다. 입을 막기 위해서 죽인 거냐 의심할 테니.
좋아 2번은 제외하자. 그러면 1번 아니면 3번인데…….
1번으로 할까? 여기 버리고 가는 거. 그래, 다른 데로 이동하다가 괜히 들키기라도 하면 골치 아플 거야.
버리고 가는 게 낫겠어. 결정하자마자 나는 얼른 자리를 떴다. 하지만 다섯 걸음 만에 다시 돌아왔다.
저쪽 앞에서 발소리가 나서. 심지어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다.
결국 돌아서서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데, 젠장! 반대 방향에서도 발소리가 나잖아!
여기는 삼거리였기에, 이렇게 된 이상 남은 길은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남은 길로 달아나는 것도 곤란했다. 여기에 이 자객을 버려두고서 딱 하나 남은 길로 내가 달아나 봐.
이쪽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쓰러진 자객을 발견하면 당연히 내가 달아난 길로 쫓아올 텐데.
아직 내 내공은 사람들을 따돌리고 달아날 정도가 아닌걸.
어쩔 수 없이 나는 자객의 발을 잡고 남은 길로 같이 끌고 갔다
그런데 질질 걸어가고 있자니 저만치에서 또 누군가 오는 소리가 났다. 젠장, 이번엔 외길인데!
미치겠네! 길 좀 여러 개 만들어! 황궁 건물은 누가 구조를 만든 거야?
다행인 건 이번에는 옆쪽에 약간 틈이 있단 거. 사람 하나는 집어넣을 수 있는 틈이다.
팔을 좀 구겨야 하겠지만 괜찮다. 내 팔 아니잖아.
나는 얼른 기절한 자객을 그 틈에 집어넣었다. 다리와 팔을 접어서 욱여넣으니 쏙 들어가네.
작업을 끝내자마자 발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태감이든 궁녀든 그냥 날 향해 인사 한번 하고 지나가겠지?
누구든 얼른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나는 자객을 집어넣은 틈을 내 몸으로 막고 섰다.
이러면 바깥쪽에선 자객이 보이지 않지. 완벽해!
“천 귀인?”
그러나 궁녀 아니면 태감이라 여겼던 행인은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하얀 머리, 짙은 눈화장. 기몽 장군이잖아.
젠장, 얘하고는 또 왜 이렇게 자주 마주치는 거야?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심지어 기몽 장군은 그냥 지나가는 대신 다가와 묻기까지 했다.
나는 최대한 온화하게 웃으면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달빛이 예뻐서. 산책을 좀. 밤하늘이 좋아서. 공기도 쐬고.”
뭐야 기몽 장군. 내가 달빛이 예쁘다는데 왜 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쓰러진 지 얼마 되지 않으실 텐데. 지금은 안정을 취하는 게 낫지 않으십니까?”
“멀쩡한데요 뭘.”
“하긴. 격구 하시는 걸 보니 이미 쾌차하신 것 같긴 했습니다.”
격구 이야기에 황제가 한 말이 떠올라 기분이 상했지만, 나는 그래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억지로 웃기까지 해주면서.
자, 그러니 얼른 돌아가. 가버리라고. 가던 길이나 가세요.
그러나 기몽 장군은 꺼지지 않았다. 대신 내게 친절하게 제안했다.
“그래도 천 귀인께서는 몇 번이나 습격을 받으셨지 않습니까. 혹시 모르니 이 기몽이 처소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
웃겨! 언제부터 제가 나한테 저런 친절을 베풀었다고! 아주 쓸데없이 착한 척이었다.
“괜찮아요.”
웃으면서 거절했지만 그래도 기몽은 가지 않았다.
“절로 가요.”
결국 손가락으로 그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자, 기몽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물론 다리는 여전히 그대로.
젠장, 저 가느다랗게 변하는 눈 좀 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혹시 뒤에 뭘 감추고 계십니까?”
으악! 심지어 대놓고 묻잖아! 비명이 나올 뻔했다.
“아니요.”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이미 수상한 냄새를 맡은 모양인지 발이 내게로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그래도 버티고서 비키지 않자, 기몽 장군은 한 걸음 더 다가왔고, 우리는 코앞에 마주하고 서게 되었다.
기몽은 그 거리에서 날 내려다보았다. 발목을 차서 눈높이를 맞추고 싶게.
“뒤에 뭘 감추고 계신 듯한데요.”
“아닌데요?”
“그러면 잠시 옆으로 비켜주시겠습니까?”
“싫은데요?”
“…….”
“난 누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면 싫어서.”
“저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습니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비켜주신다면 서로 편할 텐데요.”
질긴 놈. 내 궁정 생활 최대의 방해물은 얘로구나. 무조건 내 등 뒤를 확인하겠단 놈의 태도를 보니 아주 이가 갈린다.
하지만 여기서 더 버티면 정말로 이상해 보일 것 같아서, 나는 생각 끝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으로 비키는 척을 하다가…….
‘천수비!’
기몽 장군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큭.”
기몽 장군은 짧게 신음을 뱉고 내게로 쓰러졌다.
나는 얼른 그를 받아 들었다.
‘아 무거워.’
그러고 나서 옆으로 던진 다음 주위를 살폈다.
젠장. 어쩌지? 숨겨야 할 사람이 두 명이 되어 버렸어. 진짜로 어쩌지?
고민 끝에 일단 구석에 박아둔 자객을 도로 꺼내서 기몽 장군 옆에 눕혔다.
다행히 둘을 번갈아 살피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나는 기몽 장군의 허리춤에서 검을 꺼낸 다음 검을 기몽 장군의 손에 쥐여주었다.
짠! 이러면 둘이 다투다가 기절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음……. 아니네.’
좀 어색해서, 이번에는 자객의 손을 움직여서 방어하는 자세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바꾸고 나서 봐도 여전히 어색해서, 마지막으로 기몽을 그 위에 덮어주었다.
그다음 두 발 물러나서 보자 저절로 박수가 나왔다.
‘완벽해!’
* * *
‘뭘 하시는 거지?’
초한은 황제의 그림자로, 황제가 천 귀인이 무얼 하는지 보고 오라며 자주 보내는 그림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은신술에 가장 뛰어난 그림자이기에, 후궁 하나를 감시하는 일 외에도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당연히 하루종일 천 귀인만 보고 있진 않는다.
오늘도 그랬다. 그녀는 다른 일로 자리를 비웠다가, 황제에게 특수한 밀명을 받고서야 천 귀인을 찾아 나섰다.
그 밀명이란 ‘천 귀인이 왜 갑자기 짐에게 적의를 보내는지 조사하라’였다.
그런데 처소로 가 보니 천 귀인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에 행적을 따라가다가 이곳으로 왔는데. 뜻밖에도 도착해서 보니, 천 귀인이 쓰러진 두 남자를 이용해서 인형 놀이를 하는 게 아닌가.
‘한 명은 기몽 장군인데? 왜 저 둘을 겹쳐두지?’
이상해서 쳐다보고 있자니, 천 귀인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내려다본다.
그러다가 고개를 젓더니, 기몽 장군의 각도를 슬쩍 옆으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아래에 깔린 복면인의 옷을 찢었다.
‘저걸 왜?’
초한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 사이, 복면인의 멀쩡한 옷을 찢은 천 귀인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더니 만족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뭘 하는 거야? 왜 저렇게 뿌듯해하는 거지?’
그렇게 알 수 없는 행동을 한 후.
천 귀인은 혼자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하더니, 낄낄 웃으면서 기몽 장군과 복면인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예고했다.
“두고 보라지. 폐하도 내가 이렇게 만들어 줄 테니.”
이윽고 그녀는 춤을 추며 팔랑팔랑 사라졌다.
천 귀인이 사라지자, 초한은 황급히 복면인의 복면을 벗겨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서 다시 복면을 씌워주고 천 귀인을 뒤쫓아갔다.
다행히 천 귀인이 이후 바로 처소로 돌아갔기에,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자마자 초한은 황제를 찾아갈 수 있었다.
황제는 달빛 아래에서 홀로 술을 마시다가, 초한이 나타나자 차갑게 물었다.
“알아냈느냐?”
“송구하옵니다. 폐하께서 명령하신 건 아직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벌써 오느냐?”
황제의 목소리가 시린 칼날처럼 변했다.
“그게…….”
초한은 입을 우물거렸다. 그 모습을 본 황제가 차갑게 명령했다.
“말하라.”
초한은 다시 어물거리다가 가까스로 보고했다.
“천 귀인이 어떤 사내의 옷을 찢는 걸 보아서…….”
말이 끝나자마자 황제가 든 술잔이 손바닥 안에서 깨어졌다. 이어 황제는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무어라? 사내의 옷을 찢어? 어느 사내를?”
“모르겠습니다.”
황제가 입술을 꽉 깨무는 걸 본 초한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오해이십니다. 옷을 찢어서 뭘 어떻게 하신 게 아닙니다. 아니, 뭘 어떻게 하신 게 맞는데, 폐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걸 하신 건 아닙니다.”
“재단사도 아닌데, 천 귀인이 사내의 옷을 찢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단 말이냐?”
“그 위에 기몽 장군을 겹쳐 두셨…….”
깨진 술잔을 내려놓고 황제가 새롭게 든 술잔이 툭 아래로 떨어지며 또 깨졌다. 황제의 표정이 혼란으로 가득해졌다.
“기몽을 왜?”
“저…… 그리고 이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상한 말이라니? 여기서 더 이상한 말을 했다고?”
초한은 머뭇거렸다. 이번 말은 황제와 관련된 말이다 보니, 내뱉기가 곤란해서.
하지만 그녀는 그림자였기에, 있던 일은 그대로 보고해야 했다.
“천 귀인께서 말씀하시길, 폐하도 꼭 이렇게 해줄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