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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1화 (1/283)

< 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 # 코양희 >

##  1화. 고수, 후궁으로 깨어나다

“그 독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심장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니,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듯하다. 아파.

그 가운데 들려오는 덤덤한 남자의 목소리는 몹시 거슬렸다.

내가 독 먹은 거 나도 알거든? 하지만 아직 살아 있잖아? 그러니 곧 죽을 거란 얘기라면 나가서 해줄래?

“아, 안 돼요! 우리 천 귀인님, 이대로 돌아가시면 안 돼요! 우리 소주 좀 살려주세요, 어르신!”

이번엔 엉엉 우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 귀인은 또 대체 누구야? 내가 천씨이긴 하지만, 한 번도 내 성에 귀인이란 좋은 단어가 붙은 적은 없는데.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자가 더욱 거세게 우는 걸 들으니, 고개를 저었다거나 한 모양이다.

엉엉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머리를 울렸다. 결국 참다 못해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렸다.

나 같은 환자는 지금 여기에 누워서 푹 쉬어야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소주?”

나는 당황해서 눈을 대번에 부릅떴다. 눈을 뜨자 보이는 광경이, 내가 죽기 전에 본 광경과 너무 달라서.

고개를 확확 좌우로 돌리다가, 그걸로도 모자라 위아래까지 빼곡히 살폈다.

뭐야 여기? 여기 어디야?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날 쳐다보는 저 영감탱이는 누구고, 얼굴이 빨갛게 되어서 울고 있는 저 여자애는 누구야?

“소주! 깨어나셨군요! 소주!”

날 ‘천 귀인’이라 부르던 여자애가 저 애구나. 목소리가 같다.

그녀는 이번엔 날 ‘소주’라고 부르더니, 다가와서 내 허리를 덥석 안고 흐어엉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몸을 휙 돌려 노인을 쳐다보더니,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이 망할 영감탱이, 우리 소주께서 무사히 깨어나신 걸 봐! 그걸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해!”

고함이 막 끝나는 순간, 문을 열고 들어온 다른 여자가 고함친 여자를 향해 외쳤다.

“탕 궁의님께 그게 무슨 막말이야!”

손에 약사발을 들고 온 여자는, 그러나 날 보자마자 자기는 아예 약사발을 떨어트리며 굳어버렸다.

“소주?”

그러고는 황급히 달려와서 침대가에 무릎을 꿇더니, 내 손을 가져다 꼭 잡고서 “소주? 정신이 드시나요?” 하고 물었다.

당황스럽다. 소주? 내가 왜 소주야?

나는 천년비이다. 무림에서 정영검 개원과 함께 가장 강하다 일컬어지는 고수 천년비.

하지만 사파인 탓에 내 강함은 사적으로 취급되었고, 내 이름 ‘천년비’는 그 자체로 악한 명칭이 되어 별호조차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소주라니?

“누구? 왜 이몸을 소주라 불러?”

결국 대놓고 묻자, 내 손을 붙잡은 여자, 그러니까 두 번째로 들어온 여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소주. 저 부성입니다. 생각나지 않으세요?”

탕 궁의란 자에게 삿대질하던 여자도 황급히 내 다른 쪽 손을 붙잡고 물었다.

“소주, 전 원웅이에요! 전 기억하시지요?”

아니, 둘 다 모르겠는데. 내가 고개를 젓자, 이번엔 두 여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탕 궁의에게 삿대질을 하며 망할 영감탱이라 불렀던 원웅은 황급히 탕 궁의를 돌아보며 애원했다.

“궁의님! 우리 소주가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야. 한순간에 망할 영감탱이란 호칭이 궁의님이 되었네. 누군진 모르겠지만 이 여자분, 아주 상황 적응력이 빠르잖아?

같은 생각인지, 탕 궁의도 몇 번 헛기침을 하며 곱지 못한 눈길로 원웅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내 상태가 궁금하기는 한지, 그는 내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 귀인님. 제가 보이십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여자 둘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 둘이 생각나지 않으신다고요?”

거듭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아시겠습니까?”

고개를 저었다.

난 동굴에서 독을 먹었다.

나와 가는 길은 다르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마음을 주었던 사내…… 나와 달리 모든 무림인들에게 영웅이라 칭송받던 사내 정영검 개원의 함정에 빠져서.

그런데 깨어나니 이상한 곳이고, 이상한 사람들이 날더러 ‘소주 소주’ 해댄다. 이 상황에 대해 알 리가 없지.

확실한 건 이 사람들도 나만큼 뭔가 많이 혼란스러워 보인단 건데…….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중얼거린 탕 궁의가 내 얼굴로 손을 가져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턱 쥐었지만, 탕 궁의가 놀라서 쳐다보자 얼른 손을 내려놓았다.

그나마 힘이 이전처럼 꽉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독을 먹어서 그런가?

“귀인님의 상태를 살피겠습니다.”

탕 궁의는 내가 놀라서 자기 손목을 쥐었던 거라 생각했는지, 이번엔 제대로 자신의 행동을 설명한 후, 내 눈꺼풀을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이어서 다른쪽도 눈꺼풀을 까뒤집어 확인하고, 맥박을 짚고, 목 부근에 손을 대어보았다.

몇 번을 그랬을까. 탕 궁의가 손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나더니 갑자기 “흐음…….” 하는 걱정스러운 소리를 냈다.

“왜 그러세요? 우리 소주께서 몸이 안 좋으신 건가요?”

그 소리를 듣자, 탕 궁의가 오는 바람에 잠시 옆으로 물러났던 부성은 더욱 놀란 표정으로 다급히 물었다.

탕 궁의는 고개를 저었다.

“그 극독을 먹었는데 몸이 정상이실 리가 없지요. 아무래도 기억을 잃어버리신 듯합니다.”

“기억을! 아!”

부성이 충격받은 얼굴로 탄식하자, 탕 궁의는 혀를 차며 충고했다.

“하지만 사라졌던 맥이 제대로 잡히고 있어요. 용고를 먹었는데 이렇게 멀쩡히 깨어난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이건 기뻐할 일이에요.”

* * *

탕 궁의가 약을 조제해준 후 나가자마자, 난 피곤하단 핑계를 대고서 원웅과 부성을 다른 곳으로 보냈다.

이후 방 안을 뒤지고 다닌 끝에 서랍 뚜껑에 달린 석경을 찾아냈다.

황급히 석경을 열자, 예상한대로 전혀 낯선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어쩐지.’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날 아는 것처럼 말하기에 영 찝찝하다 싶더니.

‘정말 내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온 건가?’

거울 속 여자는 소심해 보이는 입술과 슬픔에 잠긴 눈매, 축 처진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미인이지만 너무 우울해 보이는 인상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좀 답답한 마음이 들게 하는 분위기.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내가 아니다. 혀를 차다가, 나는 석경을 원래 위치에 돌려놓고 다시 침상으로 가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정리하자.

나는 천년비. 그리고 내가 들어온 이 몸은 ‘소주’ 혹은 ‘천 귀인’이라고 불리는 사람.

천 귀인에겐 ‘탕 궁의’란 사람이 와서 진맥을 해주고, 아랫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 두 명이 있지. 궁의가 진맥하러 올 정도면 꽤 귀한 사람 같은데…….

팔을 뻗어 확인하니 빼빼한 손목이 보인다. 눈을 감고서 확인하니, 단전 속 내공은 텅텅 비어 있고.

‘아주 엉망이로구만.’

혀를 차면서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무공 ‘천수비’를 사용해보았다.

내 특기 중 하나로, 내공이 폐해진 적이 있을 때 필요성을 절감하고 익힌 무공이었다.

하지만 워낙 몸 자체가 약한 탓인지, 내공이 없어도 되는 무공을 펼치는데도 움직임이 느렸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보기엔 그래도 빠른 속도겠지만, 내 눈엔 느렸다.

‘엉망이야 엉망.’

게다가 신경 쓰이는 게 하나 더 있었다. 탕 궁의가 말한 용고.

용고는 심장을 녹이는 극독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함정에 빠져 먹은 그 독이었다. 그런데 ‘천 귀인’도 용고를 먹었다고?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탁상에 놓인 종을 흔들어 밖에 나간 두 여자 중 아무나 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로 부성이란 여자가 나타나 물었다.

“소주. 부르셨나요?”

그러고는 걱정스럽고 충성스러운 얼굴로, 내 상태부터 조심스럽게 살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질문했다.

“너희는 날 소주라 부르고, 아까 탕 노인은 날 천 귀인님이라 부르던데. 난 누구지? 이름이 귀인이야?”

부성은 ‘이름이 귀인’이냐는 내 질문에 입술을 꿈틀하다가, 얼른 표정을 관리하고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귀인’은 소주의 직책으로, 소주의 성은 천씨, 이름은 ‘소여’이십니다.”

“직책? 귀인이란 직책이 있어?”

“예.”

“무슨 직책인데?”

“소주께서는 황제 폐하의 후궁이십니다.”

“…….”

뭐? 후궁?

내가 후궁이라고?

후궁이 뭔가. 황제의 공식적인 첩 아닌가.

물론 직책에 따라 호적에 올라가기도 하고, 아이를 낳으면 황제의 자식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무림에서 바라본 후궁은 황제의 여인이란 인상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무림에서 가장 강하단 소리를 듣고, 모든 무림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이 무림사적 천년비가 후궁이라고?

‘이게 말이 돼?’

황당해서 벌떡 일어났지만, 몸에 힘이 쭉 빠져서 도로 침상에 앉았다. 놀란 부성은 황급히 내쪽으로 손을 뻗었다.

“소주.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지금 무리를 안 하게 생겼을까요, 내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그래, 너네는 내 입장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지.

나는 목을 큼큼 다듬고서 다시 질문을 이었다.

“내 이름은 소여. 천 씨 가문. 후궁. 직책은 귀인. 극독 용고를 먹고서 쓰러졌단 거지?”

“예.”

완전히 나와 공통점이 없진 않네. 같은 천 씨이고, 극독 용고를 먹고 쓰러졌단 것까지.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독은 왜 먹었는데?”

용고는 거의 만독불침에 가까웠던 나조차 즉사시킨 극독 중의 극독이다.

구하기도 어렵고 만드는 건 더욱 어렵지. 사실상 제조법 자체도 거의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극독을, 구중궁궐 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을 후궁이 왜 먹은 거지?

아! 혹시……?

“내가 황제한테 굉장히 총애 받던 후궁이었어? 그래서 다른 후궁들, 아니면 후궁들을 따르는 관리들이 나한테 그런 걸 먹인 거야?”

부성의 표정에 ‘곤란함’이란 세 글자가 떠올랐다.

“아니야?”

거듭 묻자, 그녀는 손을 깍지낀 채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아니구나. 그러면 어떻게 된 건데?”

“그게…….”

“이런 건 자세히 말해줘야지. 그래야 나도 대처를 하지.”

재촉하자, 부성이 어두운 얼굴로 느릿하게 털어놓았다.

“소주께서는 자결하신 겁니다.”

자결? 용고를 먹고 자결했다고?

“정말이야?”

“예.”

“아니, 왜? 내가 그 정도로 황제의 총애를 받았어?”

일반적인 후궁이라면 평범한 독약을 먹어도 알아서 죽을 것 같은데. 굳이 그런 귀한 극독을 찾아 먹고 자결해야 할 상황이 있었나?

당황해 묻자, 부성의 표정에 다시 ‘곤란함’ 세 글자가 떠올랐다.

“이것도 아니구나.”

“그게…….”

“괜찮다니까? 솔직하게 말해줘.”

부성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깔고 한참을 우물거렸다.

그 모습은 몹시 답답해 보였지만, 나는 그녀가 대답하기를 꾸준하게 기다렸다.

체감상 차를 석 잔은 마신 후에야 부성이 털어놓았다.

“소주께서는 총애 받는 후궁이 아니었어요. 황제 폐하께서 단 한 번도 찾지 않으신 후궁이지요.”

“어…… 그래?”

“네.”

부성은 이젠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나는 이마를 긁적였다. 그렇구나. 후궁이지만 황제의 얼굴조차 못 보고 방치된 후궁이었어.

그럼 황제가 안 찾아서 자결한 건가?

아니, 뭐 상관이 없긴 한데. 역시 이상하네.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자결했다 해도, 역시 용고를 먹고 자결한 건 이상해.

누군가 자살로 위장해 용고를 먹였다 해도 이상해.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후궁을 그런 희귀한 극독을 먹여서까지 죽일 필요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니, 부성이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 염려 마세요, 소주. 무사히 깨어났으니 이젠 다 괜찮아요. 소주께서는 빼어나게 아름다우시니, 폐하께서도 곧 소주께 마음을 주실 거고요.”

아니, 굳이 황제가 날 총애할 필요는 없는데. 그렇지만 후궁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이상하겠지.

적당히 분위기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부성을 밖으로 내보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혼자 있고 싶었다.

* * *

이 몸으로 깨어난 지도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고 있단 말이 정말인지, 그 한 달 동안에 황제는 직접 찾아와서 몸이 괜찮나 묻기는 커녕 심부름꾼 한 명조차 보내주지 않았다. 죽다 살아났는데도.

‘천소여는 완전히 버려진 후궁이구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죽었다 살아난 천소여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건, 황제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후궁들 역시 단 한 명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죽었다 깨어났단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진짜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천소여는 나처럼 무림사적도 아니고, 들어보니 되게 나쁜 애도 아니던데.

“이곳에선 폐하의 총애가 곧 힘이에요.”

“폐하께서 총애하지 않으시니, 다들 굳이 가깝게 지낼 필요가 없다 무시하는 거지요.”

내 측근궁녀라는 원웅과 부성은, ‘왜 아무도 내 문병을 안 오냐’는 질문에 씩씩거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이야기를 듣자, 천소여가 그 귀한 극독을 먹고 자결을 했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천소여는 궁궐 내에서 완전히 외톨이였던 것이다.

방 세 칸으로 이루어진 작은 전각의 측근궁녀 두 사람만이 그녀의 모든 대인관계였다.

‘가엾어라.’

난 무시 받거나 화가 나면, 강한 무공을 이용해 날 조롱하는 이들에게 마구 복수라도 하고 지냈지만. 천소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그녀에 대한 동정과 별개로 나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악명을 떨치는 무림사적으로 생활하는 건 꽤 피곤한 일이었다.

날 죽이고 싶어하는 이들이 수두룩이었고, 나와 겨루어 이기고 싶어하는 이들도 수두룩이었다.

수많은 무림인들, 단체들이 힘을 모아서 날 잡으려 애썼지. 외톨이는 외톨이지만 난 외로울 틈이 없었다.

그 탓일까. 온전히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여기저기서 칼을 들고 달려드는 이도 없는 이 평온한 삶이 나는 꽤 마음에 들었다.

사실 후궁들이 찾아온다 해도 더 문제지. 난 귀한 집 자제들과 제대로 대화한 적도 없다고.

같은 무림인들도 나와 대화를 나누면 날 이상하게 쳐다봤는데. 귀한 자제들은 더 이상하게 볼 거 아냐.

‘지금이 딱 좋지. 암.’

그러나 조용하게 사는 게 좋긴 해도, 한 달간 한 방에 틀어박혀 있는 건 몹시 지루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젠 무림인으로 지내는 게 아니어도 무공은 되찾아야 했다. 강해서 나쁠 일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

한 달 하고도 사흘째 되는 날.

결국 난 원웅을 졸라서, 사람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한적하고 음침한 후원을 밤중에 찾아갔다.

전각 앞에서 무술을 익히면 너무 눈에 띄니 며칠 간 여기를 잘 살펴본 다음, 괜찮다 싶으면 여기에서 무공을 수련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30분 정도 제자리에 있다가, 정말로 사람이 오지 않는단 걸 확인한 후.

나는 슬그머니 주먹을 쥐고서 훅훅 앞으로 내질러 보았다.

속도는 느렸지만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느낌과 간만에 제약 없이 몸을 움직이는 감각이 너무 좋았다.

신이 나서 마구잡이로 허공을 향해 주먹질을 하며 낄낄 웃었다.

멍청한 무림 놈들! 멍청한 개원아! 너희는 날 죽이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난 너희가 죽었다 깨어나도 올 수 없는 곳에서 부활했다고!

그 순간.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황급히 돌아보자, 까만 장포 차림의 남자가 ‘저건 뭐지?’ 하는 시선으로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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