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66화 (466/468)

외전. 6. 각자의 길. -03

모용척이 콧대를 세우며 대답했다.

자신이 논 것도 아니고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 왔기에 모용척은 당당했다.

“허참.”

“제가 온 게 피곤하시면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어딜 돌아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후계 수업을 받아야지! 더구나 이제는 모용세가의 얼굴이 되었는데!”

“그럼 반갑게 맞아 주세요. 웃으며 반겨 주시면 어디 덧납니까?”

투덜거리는 모용척의 모습에 모용궁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 나이를 먹어도 철없던 십 대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모용척이 어떻게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초월경의 벽을 넘게 된 것인지가.

“여전하구나. 하나도 안 변했어.”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고 합니다. 더욱이 저는 이미 한 번 변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또 변하면 저 진짜 죽을 때가 된 걸지도 모릅니다.”

“말은 아주 청산유수야, 청산유수.”

“어릴 때부터 이러지 않았습니까. 뭘 새삼스럽게 그러십니까. 하하하.”

“칭찬한 거 아니다.”

모용궁이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의 표정이나 분위기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모용척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차를 들이켰다.

“오랜만이네요, 용정차는. 확실히 가세가 커졌다는 게 느껴지네요.”

“하아. 언제 철이 들꼬.”

“철은 충분히 들었습니다. 한 사람 몫은 하잖아요.”

“넌 모용세가의 후계자다. 머지않아 가주가 될 몸이고.”

“꼭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용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들의 말도 맞아서였다.

애초에 그와 모용척은 다른 존재인데 같은 사람이 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지. 꼭 같을 필요는 없지.”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모용세가를 이끌어 갈 겁니다. 아버지와 가문에 누를 끼치지도 않을 거고요. 일단 가문의 명성은 꽤 많이 올렸다고 생각합니다. 오대세가의 후계자들보다 먼저 초월경에 올랐으니까요.”

모용척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특유의 오만함이 서린 표정과 행동이었으나 모용궁은 타박할 수가 없었다.

무인으로서의 역량을 따지면 모용척은 충분히 거들먹거릴 자격이 있었다.

“아버지를 추월하니까 좋더냐?”

“그럼 절정의 경지에서 빌빌댈까요?”

“녀석이 말을 해도 꼭.”

“어차피 제가 이길 수밖에 없다는 걸 알려 드리는 겁니다.”

“에휴. 이제는 다 커서 때릴 수도 없고.”

모용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마음은 표정과 달랐다.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뿌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철만 들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말 그대로 개과천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리려고 해도 제가 안 맞죠. 지금의 저는 형편없던 과거의 제가 아니거든요.”

“이제는 나이도 적지 않은데 품위 있게 말할 수는 없는 거냐?”

“둘밖에 없잖아요. 밖에서는 저도 다르죠.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나한테는 이래도 되지만 엄마한테는 잘해. 널 진짜 많이 기다렸으니까.”

“알겠습니다.”

모용척이 순순히 대답했다.

모친에 대해서는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야 어떻게 지낼지 잘 알고, 남자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섬세하고 여린 분이기에 모용궁과 대화가 끝나면 바로 찾아갈 계획이었다.

“아마 가면 중요한 대화를 나누게 될 거다.”

“……설마.”

“참 이럴 때는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

흠칫하는 모용척의 모습에 모용궁이 실소를 흘렸다.

온갖 거만을 떨다가 긴장하는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통쾌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저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이제야 도착했지. 불효자식도 이런 불효자식이 없을 정도로.”

“대신 일개 후기지수에서 검존(劍尊)이 되어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네가 절대고수가 되었다고 해도 나와 부인에게는 하나뿐인 장남이다.”

“끄응!”

이번에는 모용척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그로서는 할 말이 없어서였다.

“또한 소가주로서의 의무이기도 해. 네가 그토록 존경하는 무상문주도 자식이 두 명이야. 너보다 더 젊었을 적에 혼례를 올렸고.”

“…….”

모용척이 두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딱히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오자마자 이 얘기를 꺼내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충분히 기다려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냐?”

모용척이 입을 벌리다 말았다.

부친의 말도 일리가 있어서였다.

그래서 모용척은 차마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나도 당장 가주직을 넘길 생각은 없다. 보다시피 아직은 정정하니까. 그런데 손주는 보고 싶구나.”

“으음!”

“희수는 어쩔 수 없던 경우였고. 그러니 희수를 물고 늘어질 생각은 하지 말거라.”

“애초에 생각도 안 했습니다. 저 그렇게 없어 보이는 짓은 안 합니다. 자존심이 있지.”

“그럼 올해 안으로 갈 수 있는 거지?”

모용궁이 반색했다.

끝까지 반대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듯싶었다.

“올해 안이요?”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한 게야?”

“너무 서두르시는 거 아닙니까? 당장 손자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결혼하면 애가 바로 생긴다더냐?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지금부터 준비해도 올해 안에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어. 사위와는 상황이 달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모용궁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내도 동의한 사항이었기에 모용궁은 조금의 여지도 두지 않았다.

“아버지 말씀은 이해합니다. 거부할 생각은 없고요. 그런데 저희가 빨리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상대측 사정도 있는데.”

“괜찮아. 너는 결정만 하면 돼. 나머지는 다 나와 엄마가 알아서 할 터이니.”

“저에게 선택권은 있는 겁니까?”

모용척이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소가주가 아니라 초월경에 오른 절대고수가 자신인 만큼 혹시나 선택권이 있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모용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발언권은 있으나 선택권은 없다.”

“그 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잖습니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만은 없으니 어느 정도는 간추려 놓기는 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아이를 선택하면 된다.”

“진짜 정략결혼이군요.”

깊은 한숨과 함께 모용척이 중얼거렸다.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으나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닥치는 것은 많이 달랐다.

“가문을 위해서다.”

“알고 있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어련히 고르고 고르셨을까요. 다만 제 눈이 많이 높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여동생이 아버지 딸 희수입니다.”

“외모가 전부는 아니야.”

“…….”

모용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지금의 대답에서 논의되고 있는 여인들의 외모가 썩 뛰어나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어서였다.

“그렇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야. 비교 대상이 희수면 삼봉이 아닌 이상 비슷한 수준이 없어.”

“삼봉이 아님에도 비견되는 여인을 저는 두 명이나 알고 있는데요.”

“하나 너와는 인연이 없지.”

“……일단 알겠습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모용척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 수 있었기에 모용척은 체념했다.

“오늘은 푹 쉬거라. 내일부터는 바빠질 테니. 떠나 있던 시간이 긴 만큼 새로운 얼굴들이 많을 게다. 또한 너의 사람을 만들어야 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니.”

“예.”

모용척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인재를 찾아내고 등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일례로 무상문을 들 수가 있었기에 모용척도 나름 구상한 게 있었다.

‘봉구 같은 녀석이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모용척은 문득 무상문에 있을 봉구가 떠올랐다.

무재는 평균 정도지만 대신 봉구는 다른 쪽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현재 그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재능이 그것이었기에 얼굴 가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언제 찾아서, 언제 키우나.’

순간 모용척은 막막했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기에 더더욱 인재가 고팠다.

하지만 인재라는 게 원한다고 해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인재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었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느냐?”

“언제 인재를 찾고, 키울지 막막해서요.”

“본가는 넓다. 안목만 있다면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게야.”

“전부 아버지의 사람이잖아요.”

“꼭 그렇지만은 않지. 모용세가의 가솔은 맞지만 내 사람은 아닐 수 있지.”

모용궁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미소였는데 그걸 본 모용척이 콧방귀를 끼었다.

“모용세가의 주인은 아버지입니다. 저는 아직 후계자일 뿐이고요. 그마저도 제가 죽으면 다른 이가 소가주가 되겠죠.”

“말을 해도 꼭 그렇게 재수 없게 해야 하느냐?”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죠.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오면 모용세가의 가솔들은 전부 다 아버지의 사람이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외부에서 찾을 생각이더냐?”

“안에서 찾을 수 없다면 외부에서 찾을 수밖에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모용척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 모습에 오히려 모용궁이 당황했다.

이렇게 대놓고 외부에서 구하겠다고 말할 줄은 몰라서였다.

“믿을 수 있겠느냐?”

“벌써 천사맹과 마도련 때를 잊으신 모양입니다. 모용세가의 사람이라고 해서 꼭 믿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건 그렇다만.”

모용궁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의 말도 일리가 있어서였다.

“일단은 하나씩 차근차근 해 볼 생각입니다. 실패도 하겠지만 그조차도 저에게는 양분이 될 겁니다.”

“그래. 알았다. 나도 최선을 다해 지원해 주마.”

“감사합니다.”

“부디 너의 대에서는 본가가 오대세가 중 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오대세가를 넘어 천하제일가를 노리겠습니다.”

모용척의 말에 모용궁의 두 눈이 커졌다.

천하제일가라는 다섯 글자가 그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서였다.

한데 더 놀라운 건 이 호언장담이 허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천하제일가라.”

“이왕이면 오대세가의 한 곳보다는 천하제일가가 낫지 않겠습니까. 경쟁자가 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쉬운 건 재미가 없으니까요.”

“가능하겠느냐?”

“그 누구도 제가 여기까지 오리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걸로 대답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용궁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동시에 기대도 되었다.

눈앞의 모용척이라면 정말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래.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응당 야망을 가져야지. 암!”

“맞습니다.”

“물심양면으로 내가 도와주마. 그러니 넌 앞만 보고 달리거라.”

“예.”

모용궁의 눈빛이 달라졌다.

허황된 목표라면 무조건 뜯어말리겠으나 그가 생각하기에도 가능성은 있었다.

그렇기에 모용궁은 비장한 표정으로 모용척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

활짝 열린 창밖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살랑살랑 불어온 바람에 등잔불이 부드럽게 일렁거렸다.

“읏차!”

어두컴컴한 창밖의 풍경을 보며 서조운은 기지개를 켰다.

그러자 몸 곳곳에서 뼈마디가 비명을 내질렀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온몸에서 느껴지는 개운한 느낌을 만끽하며 서조운은 다시 책상 위로 시선을 옮겼다.

제법 넓은 책상에는 온갖 서류들과 책들이 아무렇게나 펼쳐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서조운이 막 작성한 것들도 있었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

초월경에 올랐으나 서조운의 일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최선을 다해 무공을 수련하고 연구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더 이상 혼자 연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가 발전한 만큼 예유화와 아이들도 성장했기에 이제는 함께 상의하며 무공을 개량했다.

똑똑똑.

“오빠, 저예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