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56화 (456/468)

제 147장. 황금 세대. -04

오중건의 옆으로 반호진이 다가갔다.

뒷모습만 봐도 그가 긴장해 있는 게 보여서였다.

하지만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중건의 마음을 알기에 반호진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신강이 처음도 아닌데 이상하게 떨리네요.”

“떨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저만 하더라도 떨리는데요.”

“반 문주께서 말입니까?”

오중건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반호진이 긴장한 걸 그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새외무림이 쳐들어오고 중원의 마도무림과 사도무림이 들고 일어났을 때도 반호진은 긴장하지 않았었다.

마교가 침공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저도 사람이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긴장이라기보다는 설렘이라고나 할까요.”

“역시.”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긴장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마교니까요. 그것도 마교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십만대산이지 않습니까.”

반호진의 시선이 멀리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산으로 향했다.

바로 저곳이 마교도들의 성지라 불리는 십만대산이었다.

“나도 묘한 설렘이 있어. 본가 역사상 십만대산은커녕 신강에 발을 디딘 이는 내가 처음이니까. 즉 이 몸이 최초란 말이지.”

“나 역시.”

반호진과 오중건의 옆으로 두꺼운 피풍의를 입은 팽만철과 남궁호가 다가왔다.

한데 두 사람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둘 다 호승심 가득한 눈빛으로 십만대산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봤다.

“…….”

반면에 당우혁은 조용히 두 눈을 번뜩였다.

끈적끈적한 살기를 흩뿌리면서 말이다.

부친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가 온몸에서 흘러나왔다.

“아미타불.”

“원시천존.”

그리고 그건 법무와 운상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도 당우혁과 마찬가지로 사부를 전대 마교주에게 잃었기에 불호와 도호를 읊고 있음에도 눈동자에는 은은한 복수심이 서려 있었다.

“이보게 개방주.”

“말씀하시지요.”

“우리가 왔다는 걸 마교도 알고 있겠지?”

“지금쯤이면 알게 되었을 겁니다. 구유마가의 정보력은 개방과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으니까요. 더욱이 이곳은 신강이지 않습니까. 아마 지금은 저희가 십만대산 코앞에 도착했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피풍의로 겉모습을 꽁꽁 숨기고 전원 다 육지비행술을 펼치며 단숨에 십만대산까지 날아왔지만 신강은 마교의 앞마당이었다.

오전까지는 몰랐겠지만 지금은 알았을 터였다.

“다행이구먼. 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정정당당함을 기치로 삼은 백도무림의 수장들인데 비겁하게 기습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없잖아? 쳐들어가는 건 사실이지만.”

“보통은 기습하는 게 맞겠지만, 이 정도 전력이면 의미가 없기는 하죠. 말 그대로 소수정예이니.”

“크흐흐흐!”

팽만철이 푼수처럼 웃었다.

천하의 마교를 상대로, 그것도 본거지인 십만대산 앞에 소수정예로 쳐들어왔다는 사실이 그를 흥분시켜서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일우 역시 그와 같은 심정이라는 듯이 두 눈에 투기가 가득했다.

“시작은 내가 하겠소이다.”

“양보하지.”

“하고 싶다면야.”

“어?”

그때 갑자기 황보태경이 치고 나왔다.

과거 마교에 진 빚을 갚겠다는 듯이 황보태경은 솥뚜껑만 한 두 주먹을 움켜쥐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근데 말이 걸어가는 거지 그가 나아가는 간격은 한 발자국에 십여 장이 넘었다.

마치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황보태경이 오른손을 강하게 말아 쥐었다.

웅웅웅웅!

초월경에 오른 무인답게 황보태경이 진기를 끌어올리자 주변의 대기가 사납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흉포한 그의 진기에 대기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스스슥!

그와 동시에 갑자기 황보태경의 앞으로 검은 인영들이 솟구쳤다.

마교가 자랑하는 사단(四團) 중 한 곳인 흑풍단이 소리 없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황보태경은 물론이고 일행들 중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흥!”

절묘한 순간에 나타난 흑풍단이었으나 황보태경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타난 이들을 향해 강권을 내질렀다.

뻐어어엉!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도적인 일권은 쇄도하던 이들을 무자비하게 휩쓸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이었던 이들이 크고 작은 육편으로 화했다.

퍼퍼퍼펑!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이들이 손을 쓰자 주변이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어차피 중원도 아니고 마교의 영역이었기에 일행들 중 누구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맞히려고 노력은 하지만 굳이 적중하지 않아도 상관없었기에 다들 마음 편히 강격을 뿌렸다.

“끄아아악!”

“어째서 천하십대고수가 이곳에?!”

“다, 단주님이나 마가주님들을 불러!”

“몇몇은 원로원에게 연락해!”

우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천하십대고수들의 맹공에 흑풍단은 속절없이 밀렸다.

한둘도 아니고 천하십대고수들과 그와 비견되는 이들이 저돌적으로 달려들자 그들로서는 별수가 없었다.

막고 싶어도 막을 수가 없었기에 최대한 버티는데 중점을 두며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렸다.

정확하게는 십대마가의 수장들과 사단의 단주들, 그리고 전대고수들로 이루어진 원로원의 노마(老魔)들을 말이다.

“으아아아!”

그러나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선두에서 한풀이를 하겠다는 듯이 날뛰는 두 사람 때문에 흑풍단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 어서 지원이 와야……!”

“죽어라.”

공포를 느끼기보다는 주로 공포의 대상으로 불린 게 마교의 마인들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히려 마인들이 겁에 질렸다.

그 정도로 오중건과 당우혁이 흩뿌리는 살기는 무시무시했다.

그나마 오중건은 초월경에 갓 발을 디딘 상태이기에 조금이라도 비벼 볼 여지가 있었지만 당우혁은 아니었다.

주르륵.

오중건과 달리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당우혁의 독은 절독의 수준을 넘어 멸독에 닿아 있었다.

손짓 한 명에 수십 명이 한 줌 독수로 되어 흘러내렸다.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채 그저 검붉은 빛의 독수로 변하는 광경에 흑풍단원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나를 잊으면 쓰나.”

“선대가 당한 빚을 갚을 때가 왔도다!”

거기에 남궁호와 일우까지 날뛰자 흑풍단 혼자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사단 중 한 곳인 흑풍단이라고 하지만 적이 너무 막강했다.

뒤늦게 나머지 적멸단과 광혈단, 철마단도 합류했지만 전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받아 낼 인물이 없다 보니 사단의 단원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멈춰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파죽지세의 기세로 밀고 들어오는 일행들의 앞으로 사단의 단주들이 내려섰다.

경종 소리를 듣고 이제야 도착한 것이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나섰음에도 그들 역시 단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정마대전을 겪으며 더욱 강해진 무림십왕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중원 놈들 따위가…….”

비록 정마대전에서 패배하기는 했어도 마교는 마교였다.

괜히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이 새롭게 단주가 된 이들도 초마경의 고수들이었다.

그렇지만 초마경에도 수준 차이가 있듯이 초입에 불과한 실력으로는 무림십왕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게다가 무서운 건 무림십왕이라 불리는 천하십대고수만이 아니었다.

‘……미쳤군.’

거패도를 휘두르던 팽만철은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본 순간 그는 알았다.

아이들이 전부 다 후기지수의 수준을 탈피했음을 말이다.

‘이게 말이…… 되는군. 선례가 있으니. 그런데 이런 괴물들이 동시대에 나온 적이 있었나?’

팽만철이 서조운, 선우방, 모용척, 정이륭을 힐끔거렸다.

후기지수라 불리던 시절에도 뛰어난 실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이들이 저 사인방이었다.

한데 지금은 속된 말로 격이 달라졌다.

네 명 전부가 그 넘기 어렵다는 벽을 넘었다.

“말도 안 돼!”

“돌아가신 소가주님 수준의 재능이란 말인가!”

그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마교도들이 절규했다.

특히 진혈마가와 신성마가의 마인들이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십 대에 초월경에 올랐다는 건 죽은 야율천, 섭율과 비슷한 재능이라는 걸 뜻해서였다.

심지어 죽은 둘과 달리 넷은 현재 살아 있었고 미래가 창창했다.

‘호진이만 있어도 무림의 홍복인데 저런 아이들이 우르르 등장했으니. 아니, 호진이가 있기에 저 아이들이 나온 건가?’

정마대전 때와 달리 잔뜩 겁에 질려 있는 마인들을 도강으로 쓸어버리며 팽만철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소위 말하는 황금 세대가 운 좋게 나타난 건지, 아니면 반호진이 저 아이들을 고수로 이끌었는지 정확히 구분이 가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고민을 하면 할수록 그는 후자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반호진은 혼자서도 잘하는 녀석이지만 다른 넷은 달랐다.

만약 반호진이 없었다면 언젠가 초월경의 벽을 넘기는 하겠으나 그 시기가 결코 지금일 것 같지는 않았다.

더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도 되었다.

‘저 아이들이 나타난 건 분명 중원무림의 홍복이지만 반대로 내 자식들에게는…….’

팽만철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암울한 미래가 떠올라서였다.

하나 그렇다고 두 아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수많은 천재를 만났고, 부대끼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기에 자식들도 자신처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포기한다면 거기까지밖에 안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로서도 별수 없었다.

“멈춰라!”

“이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온 것이냐!”

팽만철이 안쓰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실 때 노호성과 함께 거대한 기운이 밀물처럼 장내를 덮쳐 왔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도가 사방을 잠식한 것이었다.

“이제야 나타났군.”

“중원의 겁쟁이들이 여기까지 올 줄이야.”

툭. 투욱.

하나같이 허리가 굽고 왜소했지만 풍기는 존재감은 오히려 반대였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은 엄청난 위압감을 흩뿌리는 노인들의 등장에 팽만철이 이를 드러냈다.

이제야 붙어 볼 만한 이들이 나타나서였다.

“겁쟁이라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짜 겁쟁이였다면 여기까지 직접 오지도 못했지.”

“팽가의 아이가 주둥이만 살았구나.”

“아이라. 오랜만에 듣는 말이로군. 근데 그쪽들은 진즉에 뒤졌어야 할 나이 아닌가?”

찌릿!

한마디도 지지 않고 응수하는 팽만철의 모습에 노인들이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봤다.

과거 구마라 불렸거나 혹은 사단의 단주들이었던 이들이었기에 눈빛이 살벌했다.

“생각보다 늦게 나왔군. 좀 더 일찍 나올 줄 알았는데. 설마 자신들이 공격받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건가?”

“그런 머저리들이 없었으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이곳은 십만대산이니까.”

“십만대산이 뭐가 대단하다고.”

“허!”

가당찮다는 듯이 나불거리는 당우혁의 모습에 전대 독마라 불렸던 노인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중원인들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라서였다.

그건 다른 노인들도 마찬가지라는 듯이 다들 어이없다는 기색이었다.

“그저 마굴(魔窟)일 뿐인데.”

“맞아. 조금 특이할 뿐이지. 어쩌면 오늘 최초로 함락당할지도 모르고.”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함락이라는 두 글자에 원로원의 노괴들이 격노했다.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단어에 극도로 흥분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스무 명 남짓한 원로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웅웅웅!

비록 세월을 피하지 못해 신체적으로는 노화되었으나 대신 오랜 시간을 살아왔기에 축적된 내공이 어마어마했다.

원로원의 노인들은 바로 그 점을 십분 활용했다.

무지막지한 마기로 일행들을 찍어 누르려 했던 것이다.

“크흠!”

자신만만하게 말하기는 했어도 팽만철 역시 알고 있었다.

눈앞의 노괴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들인지 말이다.

그러나 피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노괴들이 대단한 건 사실이나 그 역시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쌔애애액!

정마대전 이후 팽만철은 절치부심했다.

그때의 치욕과 굴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더해서 복수를 꿈꿨다.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언젠가는 복수하기를 원했고, 그 시기가 왔기에 팽만철은 전력을 다해 힘을 쏟아 냈다.

콰콰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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