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장. 황금 세대. -01
전력을 담아서 그런지 팔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이 얼어붙었다.
극한의 냉기에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은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북궁단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냉기나 한기도 없는 중원에서 수련한 빙백신공으로는 절대 자신의 일격을 막아 낼 수 없을 게 분명해서였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박살 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전력을 다해 내지른 일장이 정면으로 상쇄되는 광경에 북궁단은 입을 쩍 벌렸다.
“별거 없네.”
“어, 어떻게?!”
“어떻게긴 어떻게야. 그냥 막은 거지. 그런데 여전히 보지 못하는 모양이네. 아니면, 인정하기 싫은 건가?”
말한 대로 단순하게 왼손을 뻗어 북궁단의 장강(掌罡)을 막은 북궁열이 씨익 웃었다.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북궁단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찮게 여기던 동생이 자신과 맞먹는 실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북궁단은 이성을 잃었다.
“감히 네놈 따위가!”
쑤아아앙!
흥분과 함께 북궁단의 전신에서 무지막지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북해의 북풍한설을 가볍게 짓밟을 정도로 살벌한 한기였다.
동시에 주위에 얼음알갱이들이 비산하기 시작했다.
북궁단의 몸에서 흘러나온 한기에 공기 중의 수분이 얼어붙은 것이었다.
“여전하네. 날 얕잡아 보는 건.”
무시무시한 한기가 주변을 잠식했건만 북궁열은 여유로웠다.
극도로 흥분한 북궁단과는 상반되게 말이다.
그게 북궁단은 거슬렸는지 광기 어린 눈으로 북궁열을 노려보다가 쌍장을 내질렀다.
압도적인 힘으로 짓뭉개 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근데 말이야. 시간이 흐른 만큼 많은 게 변했어. 즉, 더는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지.”
부우우웅!
묵직한 소성과 함께 거대한 장강이 북궁열을 덮쳤다.
마치 포달랍궁의 밀종대수인처럼 말이다.
그러나 가공할 기운을 품은 두 개의 강기를 마주하고도 북궁열은 여유로웠다.
쩌어어엉!
전력을 다해 날린 북궁단의 쌍장을 북궁열은 어렵지 않게 막아 냈다.
그뿐만 아니라 사방을 잠식한 냉기마저도 밀어 냈다.
북궁단과 마찬가지로 빙백신공의 기운을 이용해서.
퍼서서석!
그로 인해 사방에서 무언가가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알갱이들이 서로 부딪쳐서 소멸하는 소리였다.
“어떻게 이 정도의 한기를 가지고 있는 거지?!”
처음에는 박빙이었던 영역 다툼이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시간이 갈수록 우위가 명확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안타깝게도 북궁단의 패배였다.
점차 밀리는 영역에 북궁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공력이 많아서 밀리는 거라면 이해는 되지 않아도 납득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기는 달랐다.
빙백신공의 기운은 극음지기에 가까운 한기였는데 이 성질은 북해가 아닌 곳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었다.
“한기는 북해에만 있지 않아. 심지어 극음지기를 다루는 무인이 현재 중원에 존재하지. 근데 이게 뭐가 대수라고.”
“말도 안 돼!”
“게다가 경험에서도 넌 내 상대가 안 돼.”
북궁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언제 웃었냐는 듯이 서늘해진 표정으로 북궁열이 쌍장을 내질렀다.
북궁단이 펼친 초식과 똑같은 초식을 말이다.
그러나 초식 안에 담긴 힘과 깊이는 완전히 달랐다.
퍼퍼퍼펑!
그 사실을 북궁열은 직접 눈으로 보여 주었다.
북궁단이 그토록 보여 주고 싶었던 압도적인 수준 차이를 몸소 증명했던 것이다.
“크으윽!”
사방에서 밀려드는 지독한 한기와 냉기에 북궁단은 몸이 얼어붙음을 느꼈다.
북해빙궁주와 대련할 때에나 느낄 수 있는 추위가 지금 느껴지자 북궁단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얕잡아 봤던 북궁열이 자신과 대등한 실력자라는 사실이 그는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래서 그는 우악스럽게 몸을 날렸다.
휘이익!
비록 내공은 비등하고 진기를 다루는 능력에서 밀린다고 하나 그게 곧 패배를 뜻하지는 않았다.
각자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었고, 북궁열은 그게 무형지기를 다루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공력을 섬세하게 다루는 건 북궁열이 월등했기에 북궁단은 자신이 강점이 있는 걸로 싸움을 몰아갔다.
흔히 개싸움이라 표현하기도 하는 근접전이 바로 그가 가장 자신 있는 대결 방식이었다.
부우웅!
체격적으로도 머리 하나는 북궁단이 더 컸기에 마찬가지로 손도 컸다.
또한 근력 역시 월등했기에 북궁단의 정권은 위협적이었다.
묵직한 파공성과 함께 강환조차 뭉개 버릴 것 같은 커다란 권강이 북궁열의 하복부를 노리고서 파고들었다.
단숨에 단전을 파괴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일권이었다.
쩍!
그리고 실제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충돌하자마자 섬찟한 소리가 울려 퍼졌던 것이다.
“큭!”
한데 놀랍게도 신음은 공격을 당한 북궁열이 아닌 북궁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강력한 일권을 찔러 넣었던 그가 신음을 흘리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충돌로 인한 충격을 해소하고자 뒷걸음질 친 것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는 경악이 떠올라 있었다.
“말했을 텐데. 예전하고 다르다고 말이야.”
“닥쳐라! 운 좋게 반격에 성공한 주제에!”
“운이라. 그렇다면 몸으로 직접 느껴 보게 만들어 줘야겠네.”
실력이 아닌 알 수 없는 술수에 당했다는 듯이 소리치는 북궁단을 향해 북궁열이 달려들었다.
처음으로 먼저 쇄도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북궁단은 다시 한번 빙백신공을 극성으로 일으켰다.
더해서 온몸을 강기로 휘감았다.
“차하압!”
북궁열이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전신을 새하얀 강기로 휘감은 북궁단이 손을 뻗었다.
멱살을 움켜쥔 후 그대로 연타를 날리려는 것이었다.
자신이 당한 굴욕보다 더한 굴욕을 주겠다는 듯이 북궁단의 두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스윽.
하지만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북궁단과 달리 북궁열은 여유로웠다.
사실 냉정하게 비교하면 그와 북궁단의 실력은 큰 차이가 없었다.
거의 백중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건 바로 경험이었다.
북궁단이 북해의 절대자인 북해빙궁주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북궁열은 당대의 천하제일인이라 할 수 있는 반호진을 상대로 굴림을 당했다.
편안하게 무공을 익힌 북궁단과 달리 두들겨 맞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피하고 버텨야 하는 단련을 했기에 이 정도 공격은 애교로 보였다.
“헙!”
벼락같은 자신의 일수를 가볍게 목만 움직이는 것으로 피해 내는 북궁열의 모습에 북궁단이 두 눈이 부릅떠졌다.
설마하니 이 거리에서, 그것도 제대로 날린 일수를 저리 쉽게 피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벌써 놀라면 쓰나. 지금부터가 시작인데.”
“개소리 지껄이지……!”
북궁단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비록 공격은 실패했으나 북궁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멱살 말고도 잡을 부위는 많아서였다.
그래서 팔을 뻗은 상태에서 방향만 비틀어 어깨를 노렸는데 그 순간 북궁열의 손이 움직였다.
텁.
희끗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북궁열의 오른손은 정확히 북궁단의 팔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잡아당겼다.
관성을 이용해 끌어당긴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왼손이 반원을 크게 그리며 북궁단의 뺨에 작렬했다.
짜아악!
시원스러운 타격음과 함께 북궁단의 고개가 돌아갔다.
강력한 일장에 북궁단의 오른쪽 뺨이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하지만 북궁단은 고통보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따귀를 맞은 상황이 말이다.
“예전부터 이렇게 한번 꼭 때려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푸네.”
“감히……! 감히……!”
“어때? 동생에게 맞는 따귀가. 때린 적은 많아도 맞은 적은 처음이지?”
“이 새끼가!”
어리둥절한 것도 잠시, 북궁단은 오른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따귀를 맞았다는 건 그만큼 서로가 가깝다는 뜻이었다.
즉 자신이 맞았다면 북궁열의 뺨도 때릴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북궁단은 똑같이 따귀를 날리겠다는 듯이 진기를 가득 담아 휘둘렀다.
쌔애애액!
따귀가 아니라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다는 듯이 거력이 담긴 일장이 맹렬한 파공음을 토해 내며 쇄도했다.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주위의 대기가 뒤흔들릴 정도였다.
그러나 북궁열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쇄도하는 일장을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면으로 왼손을 뻗었다.
꽈아아앙!
공력이라면 북궁열도 북궁단에 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승부를 생각하면 근접전을 피해서는 안 되었다.
겨우 이기는 게 아니라 완벽하게 찍어 누르는 승리를 원했기에 북궁열은 더는 피하지 않았다.
“큭!”
“흡!”
그로 인한 결과는 모두의 예상대로 막상막하였다.
막아 내기는 했으나 북궁열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처음으로 억눌린 신음이 흘러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북궁단의 충격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슈우욱!
게다가 북궁열은 막아 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충돌로 인한 반동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재차 무릎을 들어 올렸다.
후속타를 곧바로 날린 것이었다.
퍼억!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복부로 파고든 일격에 북궁단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북궁열은 오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말 사정없이 북궁단의 전신을 두들겼다.
퍼퍼퍼퍽!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연타에 북궁단의 육신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었다.
물론 북궁단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처음에야 예상치 못한 일격에 당했지만 그 역시 초입이기는 하나 초월경에 오른 무인이었다.
콰우우우!
손에 넣은 기세를 넘기지 않겠다는 듯이 연달아 맹공을 퍼붓는 북궁열을 향해 북궁단은 단전의 모든 기운을 폭사시켰다.
우선은 수세에 몰린 상황부터 뒤집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일단 호흡과 흐름을 수습할 시간을 벌어야 했기에 북궁단은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 내공을 폭발시켰다.
키이잉! 키잉!
다만 문제는 그런 북궁단의 속내를 북궁열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이미 진즉에 그가 반호진을 상대로 썼던 수법이기에 대응 방법도 너무나 잘 알았다.
“무, 무슨?!”
“생각이 얕아.”
똑같은 방법으로 북궁단의 무형강기를 날려 버린 북궁열은 말 그대로 힘으로 찍어 눌렀다.
북궁단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파상공세를 퍼부었던 것이다.
수준은 비슷할지 모르나 심리전에서는 완전히 밀렸기에 북궁단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 젠장!”
뒤늦게 그 사실을 북궁단도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더욱이 이런 류의 싸움은 북궁열에게 유리했다.
극한까지 몰려 본 적이 없는 북궁단과 달리 북궁열은 한 번 대련을 하면 끝장을 봤기에 고통도 익숙했다.
쿠웅!
그 결과 북궁단은 얼마 가지 않아 바닥에 쓰러졌다.
끝내 반전을 이루지 못하고 허망하게 패배한 것이었다.
“넌 모를 거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다, 다시 붙으면 내가 이길 거다!”
“그럴지도 모르지. 차이는 미세했으니까. 근데 문제는 그럴 일이 없다는 거지. 나는 이겼고, 너는 패배했지. 승자독식이라는 말은 알고 있겠지?”
“빌어먹을……!”
피투성이가 된 북궁단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딱 그것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북궁열이 물었다.
유언 정도는 들어 주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 말에 북궁단은 두 눈을 감았다.
“멈춰라!”
휘이익!
아무 말이 없는 북궁단을 내려다보던 북궁열이 손을 들어 올렸다.
승패가 결정되었으니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북해빙궁주의 목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지켜보던 북해빙궁주가 날아오는 것이었다.
움찔!
동시에 북궁열의 몸이 떨렸다.
북해빙궁주가 힘을 써서 그를 제압한 것이었다.
“이렇게 치졸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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