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1장. 이별은 갑자기. -03
담현은 협공하는 이들을 차례대로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생각해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다시 고민해 봐도 답은 하나였다.
이 일을 다른 이에게 떠넘길 수는 없었다.
‘대의를 위한 길. 미련은 없다.’
담현이 옅게 웃었다.
그라고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불제자도 사람이었다.
그러나 중원을 위해서는, 두 제자를 위해서는 그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가장 완벽한 순간에 움직인다.’
결단을 내렸지만 섣부르게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괜히 서둘렀다가 천금 같은 기회를 날릴 수 있기에 담현은 기다렸다.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완벽하게 살릴 최적의 순간을.
‘그러니 조금만 더 버텨 다오.’
담현의 시선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반호진에게로 향했다.
다른 이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지만 현재 가장 힘들고 괴로운 이는 누가 뭐래도 제자인 반호진이었다.
그렇기에 담현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반호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끈질기구나.”
“내가 할 소리를 하는군.”
“버틴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다. 내가 지치는 것보다 너희들이 죽는 게 먼저다.”
기형검을 휘두르며 마교주가 말했다.
이쪽의 계획을 훤히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꼭 차륜전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럼 동귀어진인가?”
마교주가 비릿하게 웃었다.
어느 쪽이든 이미 패는 전부 다 드러나 있어서였다.
“비장의 한 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나?”
“허장성세는.”
마교주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여서였다.
만약 진짜 구명절초가 있었다면 반호진이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아끼고 아꼈을 것이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반호진이 일부러 씨익 웃었다.
이렇게 해서 방심을 유발할 수 있다면 그로서는 이득이었다.
심리전 또한 싸움의 일부분이었기에 반호진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뻗어 오는 마교주의 기형검을 튕겨 냈다.
그런데 그때 마교주의 등 뒤에서 눈부신 금광이 솟구쳤다.
“음?”
찬란하다 못해 경건한 황금빛에 반호진의 동공이 커질 때 마교주 역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모양인지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이들에게는 자애롭고 따스한 기운일지 모르나 그에게는 달랐다.
불가(佛家)의 기운은 상극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마교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금광을 쳐다봤다.
쑤아아앙!
그 순간 거대한 금광이 송곳처럼 마교주에게 파고들었다.
소름 끼치는 파공음을 흩뿌리며 마교주에게 쇄도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마교주는 반사적으로 기형검을 휘둘렀다.
푸욱!
한데 마교주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기형검이 너무나 쉽게 육신을 꿰뚫자 마교주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의 결과가 믿기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담현은 시간을 벌었다.
“……지금이다, 호진아!”
“사부님!”
“어서!”
마교주 이상으로 놀란 반호진이 이를 악물었다.
사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벌였는지 알기에 반호진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담현의 희생을 헛되게 할 수 없었기에 반호진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마교주를 향해 기형검을 찔러 넣었다.
“이놈들이……!”
정확히 심장을 노리고서 파고드는 반호진의 기형검에 마교주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호신강기만으로는 반호진의 일격을 막을 수 없기에 마교주는 재빨리 담현의 복부를 관통하고 있는 기형검을 회수하려 했다.
기형검을 막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기형검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현의 몸에 박힌 기형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미타불!”
찬란한 금광에 휩싸인 담현이 양손으로 기형검을 붙잡았다.
애초에 복부를 꿰뚫린 것도 다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반호진에게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기에 담현은 단장(斷腸)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담담한 얼굴로 불호를 외웠다.
“이익!”
그 모습이 마교주는 너무나 섬뜩하게 다가왔다.
지금의 모습에서 담현의 결의를 느낄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언제까지 감탄만 할 수는 없기에 남아 있는 공력을 모조리 끌어 올려 오른손에 집중했다.
어떻게든 기형검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푸욱!
하지만 그걸 지켜볼 반호진이 아니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사부인 담현이 목숨을 담보로 만들어 준 기회였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무시무시한 살기를 번뜩이며 마교주의 심장에 황금빛 기형검을 꽂았다.
“끄으윽!”
피할 틈도 없이 심장을 꿰뚫는 기형검에 마교주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 소리가 나왔다.
물론 그도 순순히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이 순간을 반호진이 놓칠 리 없다는 걸 알기에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일으켰다.
완벽하게 막아 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반호진의 기형검은 너무나 쉽게 그의 호신강기를 가르며 심장을 관통했다.
“죽어라!”
“뒈져!”
반호진의 일격이 심장에 정확히 꽂히자 당우혁과 일우의 공격이 마교주에게 쏟아졌다.
독강이 단전을 꿰뚫었고, 검강이 양팔을 잘랐다.
심장이 찢어졌음에도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공격했다.
마교주 정도쯤 되는 고수는 심장이 파괴되어도 약간의 시간 동안은 움직일 수 있어서였다.
“감히 아버지를……!”
특히 당비를 잃은 당우혁은 이성을 잃은 듯이 양손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마교주를 갈가리 찢어 버릴 기세로 휘두르자 이내 두 다리가 푸줏간의 고기들처럼 뜯겨졌다.
“원시천존.”
반면에 스승을 눈앞에서 잃었음에도 운상은 담담히 도호를 외웠다.
분노가 일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이었다.
운상 역시 사람이었기에 스승의 죽음에 화가 나고 슬펐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리고 복수를 했기에 운상은 더 이상 마교주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대신 두 눈을 감고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방장.”
“…….”
단전을 잃었기에 폭사도 하지 못한 마교주가 당우혁과 일우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 갈 때 반호진과 담현의 곁으로 상일기와 남궁호가 다가왔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에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반호진과의 시간을 빼앗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누가 뭐래도 담현의 마지막을 함께할 이는 제자인 반호진뿐이었기에 두 사람은 침통한 얼굴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미타불. 그렇게 미안해 할 것 없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건 자연의 이치이니까요. 무의미하게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중원을 위해 죽는 게 훨씬 낫지 않습니까.”
“방장…….”
남궁호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물론이고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았다.
모두를 살리기 위해 담현이 자신을 희생했음을 말이다.
만약 담현이 나서지 않았다면 여기 있는 이들 중 최소 반은 죽거나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터였다.
“허허허. 제가 선택한 일입니다. 그러니 다들 너무 미안해할 것 없습니다. 빈승 한 명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이지 않습니까. 안 그러느냐?”
“……사부님.”
분명 고통스러울 텐데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미소를 짓는 담현의 모습에 반호진은 울컥했다.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밝은 모습을 보이려 하는 걸 알아서였다.
“아직 안 늦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자하단(紫霞丹)을……!”
황급히 담현에게 달려온 일우가 품안을 뒤적거렸다.
소림사에 대환단이 있고, 무당파에 태청단이 있다면 화산파에는 자하단이 있었다.
비록 대환단, 태청단과 비교하면 살짝 부족하기는 했으나 자하단 역시 영단이었다.
그렇기에 일우는 손을 떨며 자하단이 담겨 있는 목함을 꺼냈다.
“괜찮습니다.”
“……장문인.”
툭.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함을 꺼내던 일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담현의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의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당우혁이 조용히 고개를 젓고 있어서였다.
그게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수가 없기에 일우는 단단히 밀봉된 목함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빈승의 몸은 빈승이 가장 잘 압니다.”
“크흑!”
“장문인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결국 일우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일우와 같은 마음이었기에 차마 담현과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사부님.”
“그래도 다행이로구나.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이 있어서. 쿨럭!”
다른 이들이 고개를 숙인 건 침통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반호진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사부인 담현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시간을 말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슬픈 사람이 반호진일 것이었기에 다들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다가 담현이 피를 토하자 모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부님!”
“괜찮다. 잠시 기침이 나온 것뿐이야. 이제는 고통도 없다.”
“…….”
반호진이 아랫입술을 피 나도록 깨물었다.
이 말의 의미를 모르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눈가가 촉촉해질지언정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담현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줄어들고 있었기에 반호진은 기를 쓰고 눈물을 참았다.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는 건 모두가 똑같으니. 더욱이 마지막을 내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충분히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유언을 남기지 못한 분들도 계시지 않더냐.”
“하오나…….”
“법무에게는 미리 말을 해 두었다.”
“예?”
반호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근데 그건 조용히 서 있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말을 해석하면 싸움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는 걸 뜻했기에 모두가 커다래진 눈으로 담현을 쳐다봤다.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거든.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조차도 이루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고. 한데 다행스럽게도 천운이 닿아 최상의 결과가 나왔지.”
“최상이라니요.”
“허허허. 이 정도면 최상이지 않더냐. 나의 선에서 끝났으니. 더 나은 결과가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너무 욕심을 부리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니.”
“……사부님.”
눈곱만큼의 미련도, 아쉬움도, 후회도 없는 담현의 모습에 반호진은 다시 한번 울컥했다.
하지만 넘칠 듯한 슬픔을 겨우겨우 억눌렀다.
“호진아.”
“예.”
“뒤를 부탁한다거나 소림사를 부탁한다거나 하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건 법무의 몫이니. 너에게는 다른 말을 남기고 싶구나.”
“……경청하겠습니다.”
반호진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었으나 지금은 반호진도 별수 없었다.
“행복하게 살거라.”
“예에?”
“너에게는 늘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었단다. 너무 큰 부담을 지운 것 같아서. 그러니 앞으로는 네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구나. 가끔 소림과 법무를 생각해 주면서.”
담현의 목소리가 점차 흐릿해졌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게 목소리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래서 반호진은 잡고 있던 담현의 손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꼭 그리하겠습니다.”
“미련은 없지만 딱 하나 아쉬운 건 있구나. 네 자식을 보고 싶었는데…….”
떨리는 반호진의 목소리에 담현이 빙긋 웃었다.
늘 보여 주던 따스하고 인자한 미소였다.
그러나 눈빛은 점차 흐려졌다.
회광반조를 지나 진짜 끝을 향해 가는 것이었다.
“저도, 저도 보여 드리고 싶었어요.”
“허허허. 비록 이승에서는 못 보지만 대신 하늘에서 지켜보마.”
“꼭 지켜봐 주세요, 사부님.”
“사랑한다, 호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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