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1장. 이별은 갑자기. -01
무언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난입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마교주에게는 낯선 음성이었으나 반호진에게는 아니었다.
특유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반호진은 두 눈을 부릅떴다.
“감히 나의 싸움을 더럽히다니!”
놀란 반호진과 달리 마교주는 처음으로 노성을 터트렸다.
신성한 대결을 방해받자 극도로 분노한 것이었다.
더욱이 끼어든 인물이 안중에도 없던 개왕이자 마교주는 싸늘한 눈빛으로 애검을 움직였다.
반호진의 소천검과 난타전을 벌이던 검을 개왕에게 날려 보낸 것이었다.
쌔애애액!
흔한 검기 하나 서리지 않은 검이었으나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그럴 뿐이었다.
내재된 힘은 강환조차 찢어발길 정도로 강력했다.
“흐읍!”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개왕은 특유의 취팔선보(醉八仙步)를 펼치지 않았다.
대신 옷차림과는 상반되게 찬란하게 빛나는 강기를 양팔에 휘감고서 전광석화처럼 쇄도하는 마교주의 검을 붙잡았다.
애초에 막는 게 목적이 아니라 검을 움켜잡는 게 목적이라는 듯이 말이다.
푸아아앗!
그리고 그 목적을 개왕은 반만 이루었다.
마교주의 칠흑빛 검을 움켜쥐기는 했으나 대신 양팔이 피범벅이 되었다.
누가 봐도 치료가 쉽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찢어지며 허공에 피가 솟구쳤다.
그런데도 개왕은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지 오히려 웃었다.
“이걸로 검은 봉쇄.”
“뭐라고?”
“천하의 마교주를 잡는 건데 나 혼자만 왔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휘이익!
히죽 웃는 개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교주의 영역으로 다섯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개왕이 마교주의 신경을 모두 끌어당긴 틈을 타 다섯 명이 접근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중 반호진이 아는 얼굴도 있었다.
“흥! 고작해야 병신들 따위가!”
처음에는 당황했던 마교주가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전대고수들로 보였는데 풍기는 기도와 달리 몸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하나같이 큰 부상들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마치 부나방들이 죽기 직전 마지막 힘을 다해 날아오는 것 같았기에 마교주는 가소롭다는 듯이 기형검을 휘둘렀다.
퍼퍼퍼펑!
반호진의 기형검에는 번번이 막혔지만 전대고수들에게는 달랐다.
병장기며 팔이며 가리지 않고 모조리 박살을 냈다.
“크윽!”
“흡!”
평생을 함께 한 애병은 물론이거니와 강환에 버금가는 강기에 휩싸인 손을 두부 가르듯이 절단 내는 기형검의 위력에 모두가 피를 토했다.
상처도 상처지만 체내로 침투하는 진기에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당비를 비롯한 전대고수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들을 입은 몸이기도 했거니와 처음부터 그들은 이곳으로 올 때 살아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하압!”
“마교주!”
애초부터 다섯 명은 마교주와 동귀어진을 할 생각으로 왔기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이, 이것들이!”
그 모습에 천하의 마교주도 당황했다.
다섯 쌍의 눈빛에서 그들의 각오를 읽을 수 있어서였다.
한 명 한 명은 그의 상대가 안 되지만 초월경의 고수 다섯은 마교주에게도 충분히 위협이 되었다.
단순히 다섯 명만 있다면 쓸어버리는 게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 자리에는 반호진이 있었다.
반호진이 이들과 힘을 합친다면 제아무리 마교주라도 위험했다.
특히나 지금처럼 죽음을 각오한 상태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스윽!
그렇기에 마교주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반호진에게만 집중하던 그가 처음으로 전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와 함께 마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구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명도 말이다.
“흘흘흘! 구마를 찾는 거라면, 늦었다. 이미 다 죽었거든. 우리가 괜히 다친 게 아니라고.”
“……그럴 리가.”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바동거리는 마교주의 검을 여전히 붙잡은 채로 개왕이 히죽 웃었다.
빠르게 굴러가는 마교주의 눈동자만 보고도 속내를 꿰뚫어 본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 역시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거야.”
언제 웃었냐는 듯이 개왕의 표정이 일변했다.
한순간에 싸늘해진 눈빛으로 마교주를 노려봤다.
“본좌를 죽이겠다라. 좋아, 인정하지. 너희들은 충분히 위협적이야. 근데 말이지. 딱 거기까지야.”
“크억!”
개왕의 입에서 처절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붙잡고 있는 검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교주의 공격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피투성이가 된 개왕이 비틀거리며 물러난 것과 동시에 다섯 명을 향해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푸욱!
“비, 비겁하게……!”
“어이가 없군. 누가 누구더러 비겁하다고 말하는 건지.”
기형검에 단전이 꿰뚫린 당비를 내려다보며 마교주가 비릿하게 웃었다.
먼저 협공한 주제에 비겁 운운하는 게 어처구니가 없어서였다.
그에 비하면 그는 상당히 정당하게 공격했다.
암습을 가하거나 은밀히 독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힘으로 밀어 버렸다.
“죽어라!”
“같이 죽는 거다!”
개왕에 이어 당비마저 순식간에 전력에서 이탈하자 남은 네 명이 황급히 마교주를 공격했다.
현재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을 날린 것이었다.
죽음을 각오했기에 넷 다 진원진기까지 사용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말 그대로 모든 걸 쏟아부은 것이었다.
“소용없다.”
생명을 거의 갈아 넣다시피 한 파상공세였으나 마교주는 마교주였다.
괜히 마제(魔帝)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이 탄탄한 호신강기로 넷의 공격을 튕겨 내고는 그대로 기형검을 휘둘렀다.
“큭!”
“커헉!”
단순한 횡베기였으나 그걸 펼친 게 마교주였다.
그렇다 보니 달려들었던 네 명이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기형검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마교주에게서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에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친 것이었다.
“욱!”
그런데 그때 마교주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삐져나왔다.
동시에 한줄기 선혈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흐흐흐!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 죽을 수는 없지.”
“……혈독인가.”
“맞아. 내가 평생 동안 쌓아 온 독공의 정수라고 할 수 있지. 네놈이 아무리 마교주라지만 혈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거다. 만독불침지체라고 해도 말이지.”
하복부의 상처를 지혈한 당비가 히죽 웃었다.
단전이 파괴되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독공이 소실된 건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내공이 자연으로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공력이 상당했다.
그리고 피에 축적된 독은 내공과 무관했기에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확실히 독마의 독보다는 독하군. 근데 전대 묵성마가의 가주만큼은 아니야.”
“중독된 주제에 말이 많구나.”
“이까짓 독쯤은 금방 날려 버릴 수 있다. 반면에 너희들은 상황이 다르지.”
푸스스스…….
당비는 물론이고 개왕과 네 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뱉은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듯이 마교주가 손가락 끝을 통해 독정을 배출하는 모습을 보자 다들 놀란 것이었다.
특히 당비의 놀람이 가장 컸다.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그의 혈독을 체외로 배출할 줄은 몰랐기에 당비는 격렬하게 흔들리는 눈으로 마교주를 멍하니 바라봤다.
“다시 공격해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개왕이 소리쳤다.
마교주가 서둘러 공격한 이유를 그는 알았기에 다급한 목소리로 독촉했다.
그런 그의 노력 덕분인지 넋 나간 얼굴이던 다섯 명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는 다시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미 늦었다.”
“아직 안 늦었어.”
“소림검신으로서 부끄럽지도 않더냐?”
“부끄러움이라. 정정당당하지 않음을 비꼬는 거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설계를 했으면 안 되지. 흡정마공을 흘려 천사맹을 만든 게 누구인데? 설사 우연찮게 사도무림에 흘러들어 갔다고 쳐. 그럼 우리가 전력을 복구할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침공을 해야 진짜 정정당당한 게 아닐까? 아, 물론 기습공격도 안 돼. 선전포고 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해.”
“…….”
찬란한 금광을 흩뿌리는 기형검을 쥐고서 앞을 가로막은 반호진을 보며 마교주가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어서였다.
“진짜 공평하게 싸우려면 나와 나이도 비슷해야지.”
“하!”
“그러니 헛소리할 거면 때려치워. 애초에 정정당당한 전쟁은 존재하지가 않으니까.”
쌔애애액!
소천검이 맹렬한 파공성과 함께 마교주에게 작렬했다.
절묘한 순간에 예리하게 파고들었던 것이다.
더욱이 마교주의 검은 여전히 개왕에게 붙잡혀 있었기에 막을 수 있는 건 기형검뿐이었다.
쩌어엉!
벼락처럼 쇄도한 소천검을 마교주는 어렵지 않게 기형검으로 튕겨 냈다.
한데 문제는 그를 덮쳐 오는 검이 한 자루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으득!
반호진만큼 매섭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이기어검과 이기어도에 마교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막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반호진이었다.
반호진을 제외한 여섯 명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일곱 명이 함께 한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그런 그의 우려대로 시간이 갈수록 상처가 늘어 갔다.
스극! 슥!
점점 더 깊어지는 상처에 마교주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 정도로 점차 몰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 짜증 나는 건 여섯 명이 물러나서 원거리 공격만 한다는 점이었다.
처음처럼 직접적으로 달려들었다면 우선적으로 죽였을 텐데 개왕과 당비를 포함한 네 명은 얄미울 정도로 거리를 벌렸다.
그의 속셈을 알았기에 일정 거리를 무조건 유지했다.
“자존심도 없느냐!”
결국 짜증이 날 대로 난 마교주가 노성을 터트렸다.
분노도 분노지만 어떻게든 반호진을 흔들기 위해서였다.
젊은 만큼 부동심의 수련이 깊지 않을 것이기에 마교주는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살아 보니까 자존심이 삶에 있어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고.”
반호진이 얄밉게 웃었다.
하지만 도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저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낀 걸 그대로 내뱉은 것뿐이었다.
근데 마교주는 그걸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이를 갈며 마기를 폭사시켰다.
쑤아아앙!
이윽고 마교주의 전신에서 무지막지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가공할 기압에 반호진조차 순간적으로 밀려날 정도였다.
그리고 그 틈을 마교주는 십분 활용했다.
손에 쥐고 있던 기형검을 날려 멀찍이 떨어져서 공격하던 네 명의 몸을 터트려 버렸다.
퍼퍼퍼펑!
한줄기 섬전처럼 날아간 기형검은 단숨에 넷의 몸을 관통했다.
초월경의 오른 절대고수 네 명이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죽은 것이었다.
그러나 마교주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로 움직이는 기형검을 움직여 당비와 개왕을 노렸다.
까아아앙!
“헉!”
코앞에서 멈춘 칠흑빛 기형검에 개왕이 대경실색했다.
만약 반호진이 막아 주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 앞서 죽은 넷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게 분명해서였다.
그래서 개왕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꿀꺽!
그건 당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개왕 다음은 그의 차례였기에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쌔애애액!
그때 예리한 파공성이 허공을 갈랐다.
마교주의 기형검과 애병이 모두 손을 떠나 있었기에 반호진이 소천검을 조종해 공격한 것이었다.
물론 마교주 정도의 고수에게 있어 검의 유무는 크게 상관이 없을지 모르나 이기어검을 펼치는 이가 반호진이었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마교주라도 소천검을 만만하게 보기는 힘들 터였다.
터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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