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34화 (434/468)

제 140장. 선배의 몫. -04

후우웅.

마교주가 씨익 웃으며 검을 내질렀다.

기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평범한 찌르기였다.

하지만 평범해 보인다고 해서 아무나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천하십대고수급은 되어야 막아 내는 게 가능할 터였다.

쩌어어엉!

비슷한 수준이 아니면 감히 맞받아 칠 수 없는 일격을 반호진은 어렵지 않게 받아 냈다.

그와 동시에 참격을 뿌렸다.

손목을 비틀어 소천검을 움직여 그대로 마교주를 향해 찔러 넣었던 것이다.

슈우욱!

기술이라기보다는 임기응변에 가까운 반격이었으나 마교주는 변칙적인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그가 상대한 이들만 수천 명이었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무릎 꿇히고서 오른 자리가 지금의 자리였기에 마교주는 어렵지 않게 반호진의 일검을 튕겨 냈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호진의 공격을 역이용했다.

스윽!

검이 튕겨지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난 반호진의 상반신을 향해 마교주가 검을 밀어 넣었다.

힘을 주었다기보다는 가볍게 찔러 넣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마치 한줄기 섬전처럼 정확하게 반호진의 심장을 노렸다.

‘역시라고 해야 하나.’

군더더기라고는 일절 없는 깔끔한 초식과 연계에 반호진은 내심 감탄했다.

무림에서 손꼽히는 검객인 검왕과 염왕과도 비무를 해 본 게 반호진이었다.

그런데 마교주는 그 둘보다 훨씬 윗줄에 있었다.

검술은 물론이거니와 진기를 다루는 능력도 대단했다.

콰콰콰쾅!

그 사실을 증명하듯 반호진과 마교주 사이에서는 쉴 새 없이 뇌성벽력을 닮은 굉음과 폭음이 터졌다.

둘의 몸에서 흘러나온 무형검강이 끊임없이 상대를 공격해서였다.

“검마가 애를 먹을 만해. 이 정도 실력이면.”

마교주의 두 눈에 언뜻 감탄이 떠올랐다.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실력에 놀란 것이었다.

심기체(心氣體)의 완벽한 합일은 물론이고 경험도 상당했다.

나이를 생각하면 절대 이해가 안 되는 수준이었기에 마교주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지금의 발언, 상당히 거슬리는데.”

“기분 나빠 할 것 없다. 본좌의 인정을 받는 것이니까.”

“당신의 인정 따위 바란 적 없는데 말이지.”

파아아앗!

콧방귀를 끼며 반호진이 검을 휘둘렀다.

달마삼검에서 시작된 무상검법의 절초를 펼친 것이었다.

그의 모든 삶이 담겨 있다시피 한 일검이 공간을 찢어발기며 마교주를 양단할 듯 쇄도했다.

“호오. 훌륭한 검초로군. 검왕이나 염왕보다 훨씬 낫군.”

무지막지한 기세로 뻗어 오는 일격을 보며 마교주가 품평하듯 말했다.

이 정도쯤은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 마교주의 모습에 반호진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무상검법의 다른 초식들을 연달아 펼쳤다.

꽝! 꽝! 꽝! 꽝!

그러나 그 어떤 초식도 마교주의 몸에 닿지 않았다.

단 하나도 유효한 피해를 입히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호진은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쉬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

다른 이였다면 연이은 실패에 초조했겠지만 반호진은 달랐다.

상대가 마교주인 만큼 반호진은 처음부터 예상했었다.

절대 쉬운 싸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 나는 나의 싸움을 하면 된다.’

반호진의 두 눈이 착 가라앉았다.

싸움을 시작한 지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제대로 들어간 정타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마교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력적인 검세를 펼치고 있었으나 반호진 역시 단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웅웅웅!

반호진의 결의를 느낀 것인지 소천검이 잘게 떨렸다.

마검이지만 신병이기나 다름없어 보이는 게 마교주의 검이었다.

그런 마검을 정면으로 받아 내는 게 쉽지 않을 텐데도 소천검은 다행히 잘 버텨 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더더욱 힘을 냈다.

‘다행히 상성도 나쁘지 않고 말이지.’

소림사의 무공은 기본적으로 항마(降魔)의 힘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무상검법의 뿌리는 소림사의 비전절기인 달마삼검이었다.

그런 만큼 반호진은 마교주의 천마삼검이 아무리 대단해도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그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고.

‘그러니 피하지 않는다.’

반호진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지금까지 반호진은 싸울 때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택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상대가 마교주이기에 반호진은 정면 대결을 선택했다.

꽈아아앙!

반호진의 의지를 가득 담은 일검이 허공을 꿰뚫었다.

가공할 기세로 마교주의 목젖을 노렸던 것이다.

“재미있군.”

단순한 일격이었으나 마교주는 알아차렸다.

반호진이 어떤 마음가짐인지 말이다.

그래서 그 역시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런 식의 대결은 그도 환영하는 바였다.

꽝! 꽝! 꽝! 꽝!

마교주의 검과 반호진의 검이 허공에서 연거푸 충돌했다.

둘 다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고서 말이다.

한 걸음이라도 밀려나면 열세를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두 사람 다 반보도 밀릴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쩌저저적!

계속되는 격돌에 둘 사이의 대지가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허공은 수도 없이 터져 나가며 구름까지 갈라졌다.

인간의 싸움에 자연이 비명을 지르고 지형이 뒤바뀌는 모습에 정천맹은 물론이고 마교도들 역시 질린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저런 광경을 만든다는 게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쿠그그긍! 콰아앙!

하지만 정작 반호진이나 마교주는 그런 시선을 느낄 새가 없었다.

두 사람 다 오직 상대에게만 집중한 상태였다.

땅이 갈라지고 지진이 일어나도 둘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이제 슬슬 제대로 붙어 볼까? 몸은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은데.”

반호진과 격렬한 난타전을 벌이던 마교주가 씨익 웃으며 검을 놓았다.

그러자 그의 흑검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허공을 갈랐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반호진에게 쇄도한 것이다.

따아아앙!

섬광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으나 궤적이 단순했기에 막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마교주 역시 이번 일격이 반호진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웅웅웅

이기어검은 말 그대로 장난일 뿐이었다.

진짜는 따로 있었다.

“……기형검.”

“너도 얼른 꺼내지 그래? 그 검으로는 한 번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마교주가 씨익 웃었다.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던 검마와 달리 그는 반호진의 무경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 끝까지 가 보자고.”

소천검에서 손을 뗀 반호진이 진기를 끌어올렸다.

이윽고 마교주의 칠흑처럼 검은 빛깔의 기형검과는 상반되는 황금빛 찬란한 기형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역시 소림사에 뿌리를 두어서인가. 아주 거슬리는 기운이야.”

“피차일반이다.”

“소림의 검이라. 아마 역대 선조들 중에서 소림의 검을 받아 본 이는 없겠지.”

“동시에 최초로 죽는 마교주가 되겠지.”

“후후후후.”

반호진의 도발에도 마교주는 웃었다.

아들인 야율천보다도 어린 게 반호진이었기에 그는 도발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강과 신교의 절대자인 그를 이런 식으로 대한 이는 없어서였다.

쌔애애액!

하나 그렇다고 마교주는 반호진을 마냥 귀여워하지만은 않았다.

신선한 대접이기는 했으나 도를 넘은 건 사실이었기에 그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 낼 작정이었다.

“흥!”

선회해서 되돌아갔던 마교주의 검이 재차 쇄도했다.

높은 곳에서 정수리를 노리고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마교주의 검은 튕겨졌다.

반호진의 소천검이 어느새 날아와 밀어 버린 것이었다.

꽈아아앙!

동시에 반호진과 마교주가 다시 격돌했다.

거기에 두 자루의 검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며 충돌했다.

기형검으로 공격하면서 동시에 이기어검을 펼치는 것이었다.

콰콰콰쾅!

그로 인해 둘의 주위는 쑥대밭이 되었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폭발과 강기의 편린에 모든 게 갈리고 쓸려 나갔다.

그리고 그건 사람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하자 충격파와 후폭풍이 미치는 여파가 엄청나게 넓어져서 정천맹과 마교를 덮쳤다.

“피, 피해라!”

“휩쓸리면 죽는다!”

휘몰아치는 무형검강은 지형지물마저 바꿔 버릴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정천맹의 무인들과 마교도들은 망설이지 않고 몸을 피했다.

휩쓸리는 순간 뼈도 못 추릴 것이 분명해서였다.

꽈아앙! 꽈앙!

한편 반호진은 저릿한 손목을 느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충돌하면 충돌할수록 새삼 마교주의 무경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장기전으로 가면 내가 불리해.’

반호진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현재까지의 싸움은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이제 서른셋인 반호진에 비해 마교주의 나이는 최소 두 배 이상 많았다.

그렇기에 쌓은 내공이 그보다 훨씬 많을 터였다.

‘어떻게든 빨리 승부를 내야 해. 그래야 승산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어. 다만 문제는 마교주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는 건데.’

반호진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가 알고 있는 걸 마교주가 모를 리 없어서였다.

오히려 역으로 반호진의 심리를 이용하려 들 것이 분명했다.

그게 싫다면 힘으로 찍어 누르든가.

‘지금까지의 성향을 보면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그렇다면…….’

반호진의 두 눈이 번뜩였다.

만약 마교주가 후자를 택한다면 그걸 역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쌔애액!

마교주의 검세가 점점 더 강맹해졌다.

예상했던 대로 힘으로 찍어 누르려는 모양인지 마교주는 강격을 연이어 펼쳤다.

그 결과 반호진은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마교주의 파상공세에 점점 상처가 늘어났다.

꽈앙! 꽝! 꽝!

그러나 거의 두들겨 맞다시피 하고 있음에도 반호진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수세에 몰린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상황이 최악인 건 아니었다.

아직 반전의 여지는 충분히 있었기에 반호진은 방어에 집중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버티면 기회는 온다.’

어차피 승부는 찰나에 가려질 터였다.

아무리 승기를 잡았다고 해도 실수 한 번에 뒤집어지는 게 승패였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끈기 있게 기다렸다.

언젠가는 절호의 기회가 올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반호진은 최악의 상황을 준비했다.

최후의 방법이 그것 말고는 없어서였다.

그리고 한 번 해 봤었기에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결심한 순간 모용희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 내 한 몸 희생해서 중원을 구할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야.’

반호진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 생에서는 북해빙궁주만 잡았기에 전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교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은 누가 뭐래도 마교주였기에 그가 죽는다면 승리의 추는 정천맹 쪽으로 기울 게 분명했다.

꾸욱!

다른 삶을 살겠다고 맹세했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도망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는 소림사의 제자였으며 무상문의 주인이었고, 중원의 검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고민은 하지 않았다.

단지 각오가 필요했을 뿐.

“인정하마. 넌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무인들 중 가장 강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지. 아마 실수를 한다면 너는 그걸 놓치지 않고 물어뜯겠지. 그러나 내가 실수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기는 건 나다.”

반호진의 각오를 느낀 모양인지 지금껏 묵묵히 묵빛의 기형검을 휘두르던 마교주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반호진을 내려다보는 기색은 똑같았으나 두 눈에는 깊은 감탄이 서려 있었다.

적이지만 한 명의 무인으로서 반호진을 순수하게 인정한 것이었다.

더불어 절대 방심하거나 실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기도 했다.

“흘흘! 당신 말은 틀렸다. 죽는 건 우리 반 문주가 아니라 당신이거든.”

지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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