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장. 선배의 몫. -03
재수 없게 히죽거리는 도마를 향해 팽만철이 다시 한번 전력을 다해 참격을 뿌렸다.
혼원벽력도 특유의 우레 소리와 함께 강맹한 일격이 도마를 단숨에 쪼개 버릴 기세로 쇄도했다.
그러나 팽만철의 맹렬한 참격을 도마는 피하지 않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똑같이 벼락의 속성을 가진 도마의 도강이 팽만철의 도를 정면으로 때렸다.
쩌어어엉!
팽만철이 들고 있는 거패도와 비교하면 볼품없어 보일 정도로 도마의 애병은 작았다.
그런데 결과는 놀랍게도 백중세였다.
얄팍한 도마의 도를 팽만철의 거패도는 넘지 못했다.
“제기랄!”
그 모습에 팽만철이 거칠게 욕을 내뱉었다.
병기는 물론이고 체격에서도 그가 도마를 압도하는데 정작 싸움에서는 밀리는 게 너무나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콰콰콰쾅!
분노와 함께 팽만철의 도세가 더욱 광포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쏟아부어도 도마에게 닿는 공격은 없었다.
마치 미꾸라지처럼 도마는 도강의 폭풍 속을 요리조리 잘만 피해 다녔다.
“이제 슬슬 끝내자고. 더 이상의 시간은 무의미한 것 같으니.”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개소리인지 아닌지는 직접 겪어 보면 알겠지.”
도마의 도가 번뜩였다.
똑같은 뇌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두 사람의 무공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는 달랐다.
하북팽가의 혼원벽력도가 모든 걸 깨부수는 강맹함을 추구한다면 추뢰마가(追雷魔家)는 달랐다.
벼락을 닮은 극쾌(極快)를 추구했다.
“큽!”
힘보다는 속도에 중점을 둔 도객답게 도마의 일격은 빨랐다.
초월경에 오른 팽만철마저도 제대로 보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가까스로 반응하기는 했으나 완벽하게 피해 내지는 못했기에 팽만철의 왼쪽 어깨가 쩍 갈라졌다.
상처가 제법 깊은 모양인지 솟구치는 피의 양이 상당했다.
“피하면 피할수록 더 고통스러울 텐데. 차라리 이번에 죽었으면 고통은 없었을걸.”
“주둥아리를 찢어 주마!”
“할 수 있다면 해 봐. 근데 못 할걸?”
“으아아아!”
어깨의 상처가 꽤 깊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왼쪽이었다.
도를 휘두르는 데 큰 지장은 없었기에 팽만철은 어금니를 드러내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같이 죽자는 듯이 동귀어진의 기세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번쩍!
방어를 도외시한 채 저돌적으로 달려들었으나 도마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싸움을 거는 이들은 지금까지 수두룩했었다.
그렇기에 도마는 침착하게 일도를 뿌렸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일도를 말이다.
스극.
그 결과 여지없이 팽만철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치명상만 면했을 뿐 또다시 상처가 는 것이었다.
그러나 팽만철이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상처가 늘어나는 만큼 도마와의 간격을 좁혔다.
꽝! 꽝! 꽝!
원했던 대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팽만철은 온몸을 활용했다.
체격적인 우위를 십분 활용하기 위해 몸 전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로 인해 체력 소모 역시 극심했지만 팽만철은 자신 있었다.
적어도 도마보다는 먼저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해서 도마를 몰아붙였다.
“발악하는 게 안쓰럽구나.”
“뒈져라!”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팽만철의 모습에 도마가 비릿하게 웃었다.
이제 끝이 머지않은 것 같아서였다.
특유의 튼튼한 몸으로 지금은 어찌어찌 버티고 있으나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었다.
제아무리 초월경이라 하더라도 신은 아니기에 종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죽을 사람은 너다, 도왕.”
푸욱!
도마의 도가 팽만철의 어깨를 꿰뚫었다.
이번에는 정확히 오른쪽 어깨를 말이다.
게다가 도마의 공격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그극!
뼈가 갈리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도마의 도가 천천히 옆으로 이동했다.
목을 베기 위해 느릿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
꾸욱!
그런데 그 순간 도마의 도가 멈칫거렸다.
팽만철이 내공과 근육을 이용해 도를 움켜 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팽만철의 왼손이 벼락같이 움직였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공력을 장심에 담아 혼원벽력장(混元霹靂掌)을 펼친 것이었다.
우르르릉!
우레 소리와 함께 뇌전을 닮은 황금빛 강환이 도마의 하복부에 작렬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말처럼 오른쪽 어깨를 준 대신에 도마의 단전을 노린 것이었다.
“큭!”
그야말로 동귀어진의 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그런지 도마의 입에서 처음으로 억눌린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원래 팽만철의 계획은 이번 일격으로 도마의 단전을 박살 내는 것이었다.
한데 도마는 신음을 흘릴지언정 피를 토하거나 단전을 부여잡고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번 공격은 꽤나 위험했어. 자칫 잘못했으면 진짜 단전이 망가졌을 정도로. 아프기도 아프고. 근데 결과적으로 실패했지. 반면에 내 도는 여전히 네 어깨에 박혀 있고.”
주르륵!
도에 꿰뚫린 어깨는 물론이고 팽만철의 입에서도 시뻘건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어찌어찌 붙들고 있기는 하나 내상은 계속 심해지고 있기에 출혈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었다.
‘이대로는…….’
그냥 도에 관통당해도 치명상인데 도마의 도는 강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무인이 아닌 도마의 도강이 말이다.
그렇다 보니 제아무리 팽만철이라도 더 이상은 무리였다.
이제는 오른팔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기도 했고.
“그만 포기해라. 포기하면 편해. 너만 죽는 게 아니기도 하고.”
다 이겼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도마가 이죽거리며 과장되게 눈짓했다.
다른 천하십대고수들의 상황 역시 팽만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그 눈짓에 팽만철이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크흑!”
“컥!”
도마의 말대로 근처에 있는 남궁호와 당우혁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팽만철처럼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었으나 위태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우위를 점하기는커녕 점차 수세에 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팽만철의 두 눈이 흔들렸다.
“외롭지는 않을 거다. 너 혼자 가는 게 아니니까.”
“맞아.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러니 편안히 보내 주마.”
“나 혼자 가지는 않을 테니까.”
“어?”
처음으로 맞장구를 치는 팽만철의 모습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머금던 도마가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팽만철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였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기운에 도마는 화들짝 놀라며 도를 움직였다.
서둘러 팽만철의 목을 베기 위해서였다.
꾸욱!
그러나 도마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애병을 놓은 팽만철이 오른손으로 그의 도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움켜쥐어서였다.
그 상태에서 팽만철은 단전에 남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왼팔로는 도마의 몸을 껴안으면서.
“놔, 놔라!”
팽만철이 무엇을 노리는지 너무나 명백했기에 도마가 다급하게 왼손을 움직였다.
우악스럽게 자신의 몸을 붙잡은 팽만철의 왼팔을 떨쳐 내기 위해서였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진짜 같이 죽을 것 같았기에 도마는 처음으로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팽만철의 팔꿈치를 움켜잡았다.
여차하면 팔뚝을 끊어 빠져나갈 속셈이었다.
“흐흐흐! 같이 죽는 거다!”
“이, 이 새끼가!”
광기로 번들거리는 팽만철의 눈빛에 도마가 당황했다.
딱 봐도 진심이었기에 도마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왼손에 힘을 주었다.
어떻게든 서둘러 빠져나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팽만철도 그런 도마의 마음을 알았기에 절대 놓아줄 수 없다는 듯이 온몸의 근육을 팽창시켰다.
“흘흘흘! 역시 팽가주구먼. 혼자 죽을 바에는 같이 죽겠다는 그 마음가짐. 역시 팽가주다워. 근데 아직 팽가주는 죽기에는 일러.”
“태상……방주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웃음소리와 목소리에 팽만철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이곳에 있을 리 없는 개왕의 음성에 놀란 것이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 일은 따로 있었다.
“팽가주는 이곳에서 죽으면 안 되네. 자네는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어, 어르신?”
새하얀 도복을 휘날리며 모습을 드러낸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모를 가진 노도인의 등장에 팽만철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상상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정말 크게 놀란 것이었다.
반면에 팽만철과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한 도마는 의문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체불명의 노도인이 등장하자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였다.
“귀신을 보는 표정이구먼. 허허허.”
“어떻게 이곳에?”
“설명을 해 주고 싶지만, 상황이 급하니 어쩔 수 없구먼.”
푸욱!
개왕보다도 배분이 높은 종남파의 전대 장문인인 노도인이 망설임 없이 도마의 오른쪽 손목을 잘라 냈다.
백도무림의 명망 높은 검객이었던 그가 기습 공격을 가하자 도마는 물론이고 팽만철도 놀랐다.
설마하니 노도인이 비겁하게 기습을 할 줄은 몰라서였다.
그런데 놀랄 일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푸욱!
어느 틈에 접근한 개왕이 오른손을 잃고 얼빠진 표정의 도마의 심장에 일장을 날렸다.
등 뒤로 다가가서는 그대로 내가중수법으로 심장을 터트린 것이었다.
“커헉!”
“태, 태상방주님?”
“하나만 생각하게나. 이기는 것만.”
정정당당하지 않은 공격이었으나 개왕은 담담했다.
모든 오명은 자신이 짊어지겠다는 듯이 즉사한 도마의 시신을 떼어 내고는 노도인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아버지!”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팽만철의 귓전을 때렸다.
멍한 그의 정신을 단번에 일깨우는 고함에 시선이 절로 움직였다.
“……태상가주님?”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던 팽만철이 다시 한번 놀랐다.
그의 두 눈에 사천당가의 전대 가주인 당비가 가득 들어와서였다.
일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당비는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 주며 독마(毒魔)를 몰아붙이고 있었는데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독마의 독에 당한 모양인지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퍼퍼퍼펑!
게다가 나타난 건 노도인과 당비만이 아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전대고수들이 대거 나타나 구마를 공격했다.
금분세수(金盆洗手)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은퇴하다시피 한 이들이 갑자기 참전하자 팽만철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대고수들의 등장으로 밀리는 전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그만큼 피해도 크지만.”
전대 천하십대고수들이었기에 실력은 확실했다.
다만 노쇠한 육체로 인해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정천맹에 큰 힘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늙은 몸으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 결과 피해도 크다는 점이었다.
거의 동귀어진하다시피 하는 전대고수들의 모습에 팽만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꽈아아앙!
전대고수들의 희생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 어마어마한 굉음이 공간을 갈랐다.
그리고 잠시 뒤 무지막지한 후폭풍이 몰아쳤다.
당대의 천하십대고수인 팽만철조차도 휘청거릴 정도의 후폭풍이었다.
쩌어어엉!
칠흑처럼 검은빛을 가진 마교주의 검이 허리를 갈라왔다.
흔한 검강 하나 서리지 않은 일격이었으나 그 안에는 거력이 담겨 있었다.
마교주의 무경이 온전히 담겨 있는 일검이었기에 소천검과 충돌하자 무지막지만 폭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반호진과 마교주 사이의 대지가 갈라졌다.
“중원까지 온 보람이 있군. 솔직히 실망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었거든. 아무래도 자네의 나이가 너무 어리지 않나.”
“가는 데 나이는 중요치 않지.”
“맞아.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지. 알 수도 없고. 그래서 재미있는 게 인생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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