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31화 (431/468)

제 140장. 선배의 몫. -01

검마가 상상 속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세상일이라는 게 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마음을 다스렸다.

“근데 또 기회를 줘야 하는지 모르겠군.”

“승부는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린 퇴각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실패라고는 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마로서 어떤 지시라도 따를 생각입니다만.”

대화를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이 해연히 놀랐다.

검마의 대답이 사뭇 도발적으로 느껴져서였다.

원래부터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발언은 도를 살짝 넘은 감이 없지 않아 있기에 다들 놀란 눈으로 검마를 바라봤다.

그런데 정작 검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거 놀랄 일이군. 천하의 검마가 양보를 하겠다니.”

“저 역시 만마의 지존이신 교주님의 수하일 뿐입니다.”

“후후후!”

마교주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별다른 말 없이 검마를 내려다보면서 말이다.

그 묘한 신경전에 다른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물론 개인적으로 한 번 더 붙어 보고 싶은 욕심은 있습니다. 어정쩡한 대결은 너무나 찝찝하니까요.”

“그 심정, 잘 알지.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보고 엉덩이를 닦지 않은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맞습니다. 더구나 검신이지 않습니까.”

“하긴.”

마교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검객이기에 검마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검마였어도 이대로 포기하기는 싫을 터였다.

“그러나 지존께서 양보를 원하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지존께서 검신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좋아. 승부가 난 것도 아니고 내 지시로 인해서 중단된 것이니. 한번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게 맞기도 하고. 대신 그만큼 확실하게 끝맺음을 해.”

“감사합니다.”

“근데 이건 모두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해. 이번에는 못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제대로 싸웠으면 좋겠어. 굴욕을 당할 바에는 죽음이 낫잖아?”

마교주의 시선이 부상을 입은 이들에게로 향했다.

대놓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구마의 이름값에 어울리는 결과를 보여 달라고 말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후배에게 밀리면 좀 그렇잖아?”

끼이익.

마교주의 말이 끝나는 순간 대전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존께 인사 올립니다!”

“너희들은…….”

당당한 걸음걸이로 융단을 가로지르는 두 청년을 본 구마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의 등장에 놀란 것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붙어 보자고. 이왕이면 본교와 정천맹 둘 중 하나가 끝장날 수 있도록. 그러니 우리도 전력을 다해야지. 안 그래?”

“최선을 다해 적을 쓰러뜨리겠습니다.”

“특히나 천이 너는 더더욱 열심히 해야 할 거다. 소교주가 되기 위해서는 말이지. 네가 내 아들이라도 최고가 아니라면 후계자가 될 수는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야율천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난번의 패배로 많은 것을 잃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어서였다.

“이걸 바꿔 말하면 너에게도 아직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섭율.”

“알고 있습니다.”

검마의 아들이자 신성마가의 소가주인 섭율이 눈을 빛냈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눈빛이었다.

비록 무위는 야율천이 더 뛰어나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깨달음 한 번이면 충분히 뒤집힐 수 있었기에 섭율은 형형하게 번쩍이는 눈으로 마교주를 바라봤다.

“강자가 모든 걸 가진다. 모두 그걸 잊지 말도록.”

“존명!”

이제는 피를 넘어 영혼에 새겨지다시피 한 강자존의 율법을 떠올리며 모두가 힘차게 대답했다.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서 말이다.

“지존.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해.”

“곤륜파를 드디어 무너뜨렸습니다. 또한 운왕을 잡았다고 합니다.”

“죽였다고?”

“예. 목숨을 확실하게 끊었습니다.”

유마가 평소답지 않게 살짝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무려 천하십대고수 중 한 명인 운왕이었다.

물론 운왕의 위치가 천하십대고수 중에서는 말석에 가깝다고 하나 그래도 엄연히 천하십대고수였다.

게다가 구대문파 중 한 곳인 곤륜파의 장문인이었기에 정천맹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오래 걸렸군.”

하지만 기뻐하는 유마와 달리 마교주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그로서는 당연한 결과가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나왔기에 오히려 살짝 실망스러웠다.

아무리 구마와 사단이 나서지 않았다고 하나 신강의 교도들이 대거 투입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원하는 결과가 늦게 나왔기에 마교주는 되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죄, 죄송합니다.”

“됐다. 어쨌거나 운왕을 잡긴 했으니. 대신 내일은 빠른 결과를 만들었으면 좋겠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이 풍요로운 중원이 본교의 땅이 될 테니.”

마교주는 채찍만 휘두르지 않았다.

확실한 당근도 제시했다.

모두의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중원의 비옥한 땅을 직접 느꼈기에 다들 눈빛이 달라졌다.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내겠습니다.”

“무조건 만들겠습니다.”

***

반호진은 전장을 찬찬히 둘러봤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는데 사기가 썩 나쁘지는 않았다.

어제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긴 했으나 속속 합류하는 지원군으로 인해 소실된 전력은 충원이 된 상태였다.

거기다 두려움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그 저변에는 중원을 지켜야 한다는 각오가 깔려 있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어제보다는 좀 나은 것 같지?”

“예. 무작정 두려워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여기서 무너지는 순간 중원이 마교의 손에 넘어가는 거니까.”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피던 사마의성이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최악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하긴. 사람이 가장 강할 때는 자신감이 넘칠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지킬 때이니까요.”

“그렇지. 이번 전쟁은 말 그대로 생존이 걸려 있으니까.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역사적으로 마교는 봉문을 인정하지 않았으니까요. 굴복이냐 죽음이냐. 딱 두 개의 선택지만 제시했죠.”

“그렇다고 들었어.”

반호진의 시선이 새벽안개로 자욱한 공동산으로 향했다.

아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정천맹이 움직인다면 마교 역시 움직일 터였다.

“그러니까 반드시 이겨야 해요. 더욱이 곤륜파까지 무너진 상태라.”

“설마하니 곤륜이 무너질 줄은 몰랐어.”

사마의성과 반호진의 곁으로 서조운이 다가왔다.

몸 곳곳에 붕대를 감고 있기는 했으나 안색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로 선우방과 모용척, 정이륭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그건 충격이었어. 운왕께서 돌아가실 줄은…….”

개왕과 비슷한 연배였으나 정정했던 운왕을 떠올리며 선우방이 말끝을 흐렸다.

직접 만나 보기까지 한 인물이 죽었기에, 그것도 강호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무인이 마교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에 선우방은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동파에 이어 곤륜파까지 무너질 줄이야.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다른 곳도 아니고 구대문파 중 두 곳이라니.”

“그 말은 어떤 곳이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지. 구대문파뿐만 아니라 오대세가나 명문세가도.”

“그러니까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지원군이 속속들이 와 주고 있다는 사실이지.”

“검후께서도 와 주셨으니까요.”

모용척의 시선이 슬그머니 보타문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도 보타문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신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전투가 중요해. 곤륜파가 무너짐으로써 청해성을 통해 마교의 지원군이 도착할 수도 있어. 그 전에 결판을 내야 해.”

“마교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테니 오늘은 방어적으로 나올 수도 있어요.”

“공성전이라.”

“성은 없지만 공동산을 이용하면 비슷하게 활용할 수는 있어요. 제갈가주님께서도 그 부분을 경계하셨고요.”

사마의성의 시선이 공동산으로 향했다.

모든 걸 꿰뚫어 보겠다는 듯이 눈빛이 아주 매서웠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해. 그리고 빨리 끝내려면 마교주와 구마, 사단의 단주들을 잡아야 하고.”

“그게 최선이기는 하죠. 또 마교도 같은 생각일 테고요.”

사마의성의 말에 일행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교 입장에서도 정천맹을 빠른 시간 안에 무너뜨리기 위해서 수뇌부를 노릴 터였다.

“이번에는 절대 형님의 발목을 붙잡지 않겠습니다.”

“나 역시.”

“저도요.”

모용척과 선우방, 서조운이 결연한 눈빛을 뿌렸다.

지난번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겠다는 각오를 드러낸 것이었다.

비록 몸 상태는 최상이 아니었지만 마음가짐만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했다.

“저번에도 말했었지만, 무리하지 말고. 아무리 총력전이라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어. 철저하게 지휘에 따라서 움직여.”

“알겠습니다.”

“물론이야.”

굳은 얼굴로 대답하는 일행들과 마지막으로 한 번씩 눈을 마주한 반호진이 땅을 박찼다.

커다란 북소리와 함께 천하십대고수와 성중경, 검후, 해남파의 장문인이 앞으로 나서자 반호진도 보보를 맞추기 위해 이동한 것이었다.

그러자 공동산에서도 반응이 나왔다.

묵직하고 우렁찬 북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마교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군. 숨어 있는 건지 안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선두에 서 있는 천하십대고수의 모습에서 마교 역시 무언가를 느낀 듯 구마와 사단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그 옆에 야율천과 섭율도 있었다.

“핏덩이들도 나왔군.”

“핏덩이라고 하기에는 수준이 살벌하지만 말이야.”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섭율과 야율천에게 시선이 가는지 당우혁과 남궁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정작 야율천과 섭율은 두 사람이 아닌 반호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제도 모르고 말이지.”

“아미타불.”

같잖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팽만철에 이어 법무가 불호를 읊었다.

마치 동의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법무는 자연스럽게 반호진의 옆에 섰다.

“조심하십시오, 대사형.”

“사제도.”

“예.”

법무를 지나 담현과 상일기와도 눈을 마주한 반호진이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망설이지 않고 마교의 진영을 향해 몸을 날린 것이었다.

그러자 그 뒤로 다른 이들 역시 신형을 날렸다.

“우린 어제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해야 하지 않나?”

하늘을 쭉쭉 날아가던 반호진의 귓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동시에 하나의 인영이 앞을 가로막았다.

바로 어제 겨뤘던 검마였다.

그런데 검마의 등장에도 반호진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설마 천하의 검신이 도망치는 건가?”

“그럴 리가. 고작 검마 정도에 도망칠 이유가 없지.”

“고작?”

검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반호진은 그를 도발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솔직한 마음을 말한 것뿐이었다.

“내 목표는 마교주거든. 그리고 당신 상대는 따로 있어.”

투욱.

반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으로 하나의 인영이 내려섰다.

하늘을 날아온 것이었다.

그 기척에 검마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당신은.”

“원시천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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