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장. 구마(九魔). -01
퍼퍼퍼펑!
살기등등한 기세로 달려들었던 부단주와 마찬가지로 성중경의 일검에 수십 명의 광혈단원들이 즉사했다.
단 일격에 말이다.
그 광경에 반호진의 곁에서 지켜보던 사마의성과 유호량이 입을 떡 벌렸다.
보는 순간 두 사람 다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기에 반사적으로 반호진을 쳐다봤다.
“오빠!”
“네가 예상하는 게 맞아.”
“진짜 오르신 거예요? 성 장문인이?”
“올랐으니까 저렇게 쉽게 도륙했겠지? 발전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다만 속도에 개인차가 있을 뿐이지.”
반호진은 알고 있었기에 딱히 당황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중경이 큰 피해를 입힌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전황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마교 쪽에 약간의 충격을 준 것 정도에 불과했다.
정천맹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광혈단을 큰 피해 없이 막아 낸 셈이고.
“하긴. 장문인께서도 연이어 전쟁을 치르셨으니.”
“자격은 충분하시지. 우리로서도 좋은 일이고.”
“맞아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조금 놀랍기는 하지만요.”
“다만 아직 조금 부족해.”
반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파죽지세로 광혈단을 몰아붙이던 성중경의 검이 멈췄다.
구마 중 한 명이 그의 앞을 막아 세워서였다.
“어제의 빚을 갚겠다!”
“네놈의 상대는 나다!”
거기에 남궁호와 황보태경도 나섰다.
구마가 움직이자 두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유마와 창마에게 달려갔다.
어제의 치욕을 갚기 위해서였다.
“늙은이! 지난번의 빚을 갚겠다!”
“갚을 수 있다면야.”
콰콰콰쾅!
흑풍단주 역시 복수를 하겠다는 듯이 상일기를 찾아오자 곳곳에서 구마와 사단의 단주들 대 천하십대고수의 대결이 펼쳐졌다.
드디어 본격적인 전면전이 펼쳐진 것이었다.
투욱.
그리고 반호진의 앞에도 한 명이 내려섰다.
한 자루 검을 품에 안고 있는 중년인이었는데 시선이 오직 반호진에게만 향해 있었다.
“마교주가 올 줄 알았는데.”
“역시라고 해야 하나. 나를 앞에 두고 다른 이를 거론할 줄이야.”
“뭐, 검마도 나쁘지 않지.”
“허허허!”
구마의 일좌이자 신성마가의 가주인 검마가 검을 품에 안은 채로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설마하니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몰랐기에 당황한 것이었다.
“신성마가의 가주면 마교의 이인자는 충분히 될 테니까.”
“이인자라.”
“그 말이 싫으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불러줄까?”
“둘 다 의미 없다.”
“그렇다면야.”
언제 웃었냐는 듯이 정색하는 검마를 바라보며 반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면서도 반호진의 두 눈은 날카롭게 검마를 훑었다.
‘구마의 수장.’
현 마교주인 진혈마가의 가주에 밀려 교주가 되지 못한 이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검마였다.
그리고 그 말은 달리 말하면 당대 교주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무인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확실히 강하긴 해.’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마교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는 건 많은 점을 시사했다.
최소 검마보다 반 수 이상 마교주가 더 강하다는 걸 뜻했기에 반호진은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검마의 수준이 북해빙궁주와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아서였다.
‘정말 끝까지 쉽지 않네.’
반호진이 내심 한숨을 쉬었다.
천하사패부터 시작해서 천사맹과 마도련, 거기에 마교까지 이어지자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곳만 하더라도 백도무림의 사활을 걸어야 하는데 무려 일곱 곳이 연달아 중원을 침공해 온 상황이었다.
그게 반호진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마교가 끝이면 다행이지만 이다음이 더 있다면…….’
반호진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눈앞에 닥친 일부터.’
반호진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분명 눈앞에 있는 검마는 대단한 고수였다.
반호진조차 만만하게 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잡을 수만 있다면 마교에 큰 타격을 주는 게 가능했다.
‘마교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을 때 최대한 약화시켜야 해.’
검마는 단순한 마교의 강자가 아니었다.
마교를 떠받치는 십대마가 중 한 곳의 수장이었다.
그런 만큼 검마를 잡는다면 마교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게 가능했다.
‘이 자리에서 잡는다.’
반호진은 마음의 결정을 내리며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그런데 상대를 살펴보는 건 검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호진이 그를 살펴보듯 검마도 반호진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시했다.
‘더 크기 전에 죽여야 한다.’
소림검신에 대한 이야기는 신강에서도 유명했다.
처음에는 나이 때문에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는 것이기도 했고.
한데 반호진을 직접 보는 순간 검마는 오히려 소문이 과소평가되었음을 깨달았다.
‘지금 죽이지 못하면 본교의 미래는 없다. 그나저나 어제 야율천을 죽였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반호진의 무공과 잠재력에 경각심을 느끼던 검마가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왕이면 어제 야율천을 잡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서였다.
그랬다면 남의 손으로 깔끔하게 아들의 경쟁자를 치워 버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검마는 못내 아쉬웠다.
‘정녕 하늘이 신성마가 대신 진혈마가를 택한 것이란 말인가.’
섭율의 재능도 신성마가 역사상 최고를 논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야율천의 재능이 섭율보다 조금 더 뛰어났다.
검마는 그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아니. 기회는 또 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우선 소림검신부터.’
검마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자식과 야율천에 대한 생각을 거둔 것이었다.
대신 눈앞에 있는 반호진에게 무서울 정도로 집중했다.
스르릉.
반호진과 검마가 동시에 검을 뽑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너무나 절묘하게 말이다.
하지만 청아하고 부드러운 소리와 달리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는 살벌했다.
보이지 않는 기세가 삽시간에 사방을 잠식했다.
키이이잉! 키이잉!
검을 뽑은 순간부터 두 사람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뿐 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지기는 끊임없이 상대를 공격했다.
사납고 흉포하게 이루어지는 공방에 허공이 수도 없이 찢어졌다.
“제법이야.”
“후배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선배라고 생각하는 건가? 이건 좀 어이가 없는데.”
“사해가 동도라는 말도 있는데 너무하는군.”
검마가 짐짓 서운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나 여유로운 태도와 달리 검마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가공했다.
반호진의 무형지기를 금방이라도 찢어발길 기세로 맹렬히 달려들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다면 그걸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 사해(四海)에 마교는 없다.”
“매정하기는.”
“또 모르지. 목을 내어준다면 동도라고 생각해 줄 수도.”
“허허허허!”
검마가 고개를 들고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그 정도로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반호진의 욕심에 얼이 빠졌다.
“근데 그럴 일은 없겠지. 당신도, 마교도.”
“신교다. 마교가 아니라.”
“그건 그쪽의 주장이고. 우리한테는 마교다. 이것보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도 없고. 또 당신들의 주장을 나에게 강요하지 마.”
“이래서 중원은 교화가 필요하다니까.”
검마의 표정이 일변했다.
언제 웃었냐는 듯이 눈빛과 표정에서 냉기가 풀풀 날렸다.
더불어 그의 무형지기 역시 더욱 난폭해졌다.
지금부터가 진짜라는 듯이 무시무시한 기세가 사방을 휩쓸었다.
“할 수 있다면 해 봐. 근데 쉽지는 않을 거야.”
끼이이잉!
반호진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소름 끼치는 소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건 반호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윽.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 속에서 반호진이 땅을 박찼다.
이윽고 반호진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검마의 앞에 귀신처럼 나타났다.
그런데 그 엄청난 속도에도 검마는 반응해 냈다.
당황하지 않고 마주 검을 휘둘러 쇄도하는 반호진의 검을 쳐 냈다.
까아아앙!
검과 검이 충돌한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청명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충돌로 인한 여파는 소리와 정반대였다.
가볍게 부딪친 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후폭풍이 사방을 휩쓸었다.
“큭!”
“허업!”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는 후폭풍에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던 정천맹의 무인들과 마교의 마인들이 휘청거렸다.
갑자기 휘몰아치는 광풍에 중심을 잃은 것이었다.
그러더니 하나같이 놀란 표정으로 반호진과 검마가 서 있는 곳을 쳐다봤다.
광풍의 근원지가 두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에 자기도 모르게 바라본 것이었다.
까앙! 깡! 까가가강!
그러나 정작 반호진과 검마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있어서였다.
한데 둘 다 검에 검강은커녕 검기 하나 서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검이 충돌할 때마다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휘몰아쳤다.
쩌어어억!
검격과 검격이 부딪친 순간 반호진의 좌우로 땅이 갈라졌다.
충돌로 인해 일어난 충격파에 대지가 찢어진 것이었다.
근데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쩌어엉! 쩌저저적!
공격이 막힌 순간 반호진은 재차 손목을 비틀었다.
앞을 가로막은 검신을 타고서 검마의 손목을 베어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속셈을 간파한 검마가 마주 손목을 흔들었다.
얄밉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검을 움직여 반호진의 일격을 막아 낸 것이었다.
“후후.”
그뿐만 아니라 검마는 재수 없는 미소까지 곁들였다.
마치 표정으로 고작 이것밖에 안 되냐고 묻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반호진은 어쭙잖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결은 이제 막 시작했고, 본 실력은 아직 발휘하지도 않았다.
스극.
그 사실을 반호진은 반응 대신 실력으로 보여 주었다.
검신에서 기파를 일으켜 왼쪽 귓불을 베었다.
“아직 감각이 살아 있네? 나이가 적지 않아서 감이 무뎌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얕은수를 쓰는군.”
“얕은수도 통하면 그만이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실망인데. 천하의 검신이 이런 허접한 수법을 쓸 줄이야.”
검마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중원에서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반호진이 이런 조잡한 공격을 펼칠 줄은 몰랐기에 검마는 서늘한 눈빛으로 검을 휘둘렀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단하면서도 강맹한 일격이 반호진의 중단을 노렸다.
제대로 들어간다면 허리를 단숨에 갈라 버릴 일검이었다.
터어엉!
그러나 검마의 일검은 도중에 막혔다.
반호진이 어렵지 않게 받아 낸 것이었다.
“허접한 수에 당한 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당했다니!”
“그럼 귓불에서 흐르는 피는 뭐지?”
“실수일 뿐이다.”
흥분하는 것 자체가 치욕이라는 듯이 검마가 목소리를 낮췄다.
대신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는데 말투처럼 그의 검 역시 사나웠다.
검마의 감정을 닮은 듯 맹렬한 기세로 반호진의 전신요혈을 파고들었다.
지금까지의 검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쌔애애액!
그렇기에 검마는 자신했다.
급격하게 달라진 변화만큼 제아무리 반호진이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검마의 예상과는 달리 반호진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터터터텅!
오히려 이 정도쯤은 예상했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검마의 검세들을 튕겨 내고는 그대로 거리를 좁혔다.
검마의 품 안으로 거의 파고들다시피 쇄도해서는 검을 찔렀다.
“흡!”
자신이 변화를 택한 것처럼 반호진 역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공격해 오자 검마의 두 눈이 커졌다.
그러나 놀란 기색과 달리 그의 반응은 기민했다.
한줄기 벼락처럼 파고드는 반호진의 검을 검마는 검신을 이용해 궤적을 비틀었다.
절묘하게 검로만 살짝 비튼 것이었다.
츠츠츠!
그와 동시에 검마의 검에서 칠흑과도 같은 빛깔의 검강이 솟구쳤다.
처음으로 검강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리고 새까만 검강은 순식간에 반호진의 미간을 향해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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