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26화 (426/468)

제 138장. 드러나는 음모. -01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는 선우방의 모습에 반호진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작전이 사마의성에게는 통했는지 반호진의 뒤에 서 있던 그녀가 안쓰러운 얼굴로 선우방, 모용척, 정이륭, 서조운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괜찮으세요?”

“당연히 안 괜찮지. 제대로 당했는데.”

“난 나쁘지 않아.”

솔직하게 말하는 선우방과 달리 모용척은 되도 않는 허세를 부렸다.

다친 것 가지고 허세를 부리는 모용척의 모습에 사마의성은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다.

“부상이 심각하대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조금 요양이 필요한 정도야. 호진이가 정말 시기적절하게 도와줘서. 만약 호진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내상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을 거야.”

선우방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아직 그는 갈 길이 멀었다.

더해서 자신이 내심 자만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된통 당하니까 어때?”

“어떻긴. 다시 한번 세상이 넓다는 걸 깨달았지. 괴물도 많고, 천재도 많다는 것 또한.”

“나도 놀라기는 했어. 십마룡이 대단하다고 해도 초마경에 이르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초마경이야?”

“응. 두 명이나.”

선우방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건 모용척과 정이륭, 서조운도 마찬가지였다.

반호진이야 규격 외의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넷 다 충격이 컸다.

“다들 너무 좌절하는 거 아냐?”

“좌절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나보다는 약하잖아?”

“전혀 위로가 안 돼.”

선우방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교 대상 자체가 잘못되어서였다.

정이륭과 모용척도 선우방의 의견에 동의하는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쯧쯧! 또 단면만 보네. 반대로 생각해 봐.”

“반대로?”

선우방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모용척도 마찬가지인 듯 두 눈을 연신 껌뻑였다.

“아!”

서조운과 정이륭도 미간을 좁히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는데 그때 사마의성이 탄성을 터트렸다.

가장 먼저 반호진의 말을 이해한 것이었다.

“역시 의성이가 가장 빠르네.”

“제가 짐작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말해 봐.”

“야율천과 섭율이 가능했으니 오빠들과 조운이도 가능하다고 말하시는 거 아닌가요?”

“정확해. 근데 너는 왜 빼?”

반호진의 심유한 눈동자가 사마의성을 담았다.

보는 순간 빠져들 것 같은 눈빛에 사마의성은 순간 멍해졌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저요? 저는 무재가…….”

“초월경은 그저 수많은 무경 중 하나일 뿐이야. 반선지경(半仙之境)이라고도 불리지만 신선은 아니지. 그리고 신선이 되는 방법은 무공만이 아니고.”

“……!”

사마의성의 두 눈이 다시 한번 커졌다.

역사적으로 신선이 된 이는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도 분명 있었다.

“꿈과 야망은 크게 가져야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진짜 안 돼. 된다고 생각해야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거지. 게다가 세상에는 기적도 분명히 있으니까.”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도 가능하다는 말이지.”

반호진의 시선이 선우방을 시작으로 서조운, 모용척, 정이륭에게 차례대로 닿았다.

위로의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욱 정진하기를 바랐다.

오늘의 패배가 일종의 충격요법이 되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지금의 발언은 위안이 되는데.”

“근데 알지? 세상에 공짜나 거저는 없어. 다 대가가 필요해.”

“알지. 그러니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노력해야겠지. 그 전에 살아남아야 하겠지만.”

선우방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가뜩이나 한 손이 아쉬운 상황에서 자신은 물론이고 동생들까지 부상을 당했기에 선우방은 마음이 무거웠다.

“우선은 회복하는 것만 생각해. 그게 먼저야. 또 상황은 마교도 비슷하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마교도 야율천과 효욱이 부상 중이니까. 다만 변수는 신강에서 지원군이 와 전력이 충원되는 건데.”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오히려 그 부분은 정천맹이 유리하지.”

“가장 큰 변수는 섭율인가.”

선우방의 중얼거림에 모용척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초월경의 고수 한 명이 지니는 무게감이 어떠한지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초절정 고수는 절정고수나 최절정고수가 숫자로 어찌해 볼 수 있으나 초월경은 달랐다.

같은 초월경의 고수가 아니라면 숫자는 의미가 없었다.

“숨겨 놓은 전력도 생각해야지.”

“우리 쪽에서도 초월경의 고수가 하늘에서 뚝 안 떨어지나.”

“그게 저였으면 진짜 좋겠네요.”

“욕심이야.”

한탄하듯 중얼거리는 선우방을 향해 모용척과 정이륭이 입을 열었다.

방향은 약간 다르지만 종국에는 바라는 게 같았다.

그래서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욕심 좀 부릴 수도 있지.”

“넌 너무 과해.”

“혹시 알아? 내일 갑자기 내가 대오각성을 해서 초월경에 오를지?”

“아무리 대오각성을 한다고 해도 한 번에 몇 단계를 뛰어넘지는 않아.”

현실적인 성격의 정이륭이 단호하게 말했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얘기라고 생각해서였다.

사마의성도 정이륭과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형님.”

“왜?”

“야율천을 놓아준 것에 대해서는 별말 없던가요?”

모두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한 십마룡에 대해 걱정할 때 혼자 조용히 있던 서조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에게는 십마룡에 관한 것보다 반호진이 훨씬 더 중요했다.

“별말이 있을 수가 있나. 물론 네가 걱정하는 대로 불만을 가진 자들이야 있겠지. 다른 이도 아니고 현 마교주의 아들이자 진혈마가의 소가주이니까. 소교주에 가장 근접해 있는 녀석이기도 하고. 근데 불만을 입 밖에 꺼낼 수는 없지.”

“맞아. 그럴 경우 남궁가주님과 황보가주님의 분노를 감당해야 하니까. 불만을 표출하는 순간 남궁세가와 황보세가를 적으로 돌리는 꼴인데 그럴 수가 없지.”

사마의성이 시기적절하게 부연설명을 했다.

함께 회의장에 있었기에 여기 있는 누구보다 분위기를 잘 알기도 했고.

“하긴. 두 분 다 성격이 보통이 아니니까.”

“아쉬운 마음이야 이해하는데 불만을 토로하면 좀 어이가 없지. 야율천과 효욱을 사로잡은 건 오빠인데. 자기들에게 결정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마의성이 코웃음을 쳤다.

불만이야 가질 수 있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늘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걸 탐하니까.

다만 염치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했다.

“남궁세가와 황보세가가 나서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제는 그런 불만 정도는 찍어 누를 정도가 되니까. 막말로 야율천을 상대할 사람은 천하십대고수를 제외하고 셋 정도밖에 없다.”

“아, 그렇긴 하겠네요. 형님이니까 야율천을 사로잡았지 다른 이였다면 죽었겠네요.”

서조운이 박수를 쳤다.

듣고 보니 애초에 불만을 표출할 자격이 있는 이들은 얼마 없었다.

자격이 되는 이들은 반호진에게 불만을 가지지 않을 테고.

거기에 남궁세가와 황보세가와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니 설사 불만이 있다고 해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라고 아쉽지 않은 건 아니야. 효욱이야 건네줘도 상관없지만 야율천은 아깝지.”

“마교주의 아들이니까요. 현재 후계자에 가장 가깝기도 하고.”

사마의성이 입맛을 다셨다.

다시 생각해 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그리고 꼭 우리가 손해인 건 아니야.”

“백도무림의 미래를 생각하면 오빠의 선택이 옳아요. 그래서 인질교환 제안을 받아들이신 거잖아요.”

“맞아. 길게 보면 중원무림에 남궁 공자와 황보 공자가 필요해. 백도무림을 대표하는 후기지수이기도 하고.”

“겸사겸사 두 가문에 빚도 지우고 말이죠.”

“정확해.”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역시 사마의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목숨값이니 무거운 빚을 지웠네요. 근데 형님. 만약에 저희가 인질로 잡혔으면 어떻게 하셨을 거예요?”

서조운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반호진에게 집중되었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지만 그래도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망설이지 않았겠지. 나에게는 야율천보다 너희들이 더 중요하니까.”

“역시!”

“흐흐흐흐!”

예상했던 대로의 대답에 서조운과 모용척이 푼수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선우방과 정이륭은 짐짓 담담한 척하고 있었으나 입술 끝이 미세하게 씰룩였다.

“물론 중원무림을 위해서.”

“뒷말은 안 붙여도 되는데.”

“얼른 회복이나 해라. 그래야 싸울 수 있으니.”

“우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다.”

“퍽이나.”

어울리지 않게 허세를 부리는 선우방을 보며 반호진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선우방은 진지했다.

진심으로 싸워야 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는 망설이지 않고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농담 아니다. 중원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쯤은 초개처럼 바칠 수 있다.”

“새신랑이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아내 생각을 해라.”

“크흠!”

“일단은 몸조리에 집중하고 있어.”

“알았어.”

아내라는 두 글자에 약해진 선우방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선우방을 제압한 반호진은 서조운과 모용척, 정이륭에게도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고는 천막을 나섰다.

***

“극악무도한 마인들을 죽여라!”

“공격해라!”

“한 놈이라도 더 죽여 사형제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

“우아아아!”

날이 밝기 무섭게 정천맹이 움직였다.

공격의 주도권을 마교에게 줄 수 없다고 판단한 제갈문곡이 이른 아침부터 총공세를 펼친 것이었다.

공동산의 지형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그 이점을 활용하려했다.

마교가 제법 오랫동안 점거했기에 함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수적으로는 정천맹이 압도적으로 유리했기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다.

“크아아악!”

“그르륵!”

살기와 광기, 투지가 휘몰아치는 전장을 응시하며 반호진은 두 눈을 감았다.

몇몇의 욕심으로 인해 또다시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답답해진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 전쟁을 막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그가 강해지고 절대고수가 되었다고 해도 혼자만의 힘으로 전쟁을 끝내는 건 불가능했다.

‘현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쟁을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것뿐인가.’

두 눈을 감아도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신음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보였다.

이곳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거쳐 온 전장들까지 머릿속에 떠올랐다.

스윽.

마치 주마등처럼 지난 생의 전쟁까지 떠오르자 반호진은 결국 감았던 눈을 떴다.

이제는 잊힐 만도 한데 전생의 기억은 너무나 선명했다.

망각이라는 단어를 비웃듯이 말이다.

‘확실히 강하긴 해.’

반호진의 시선이 격전지 너머로 향했다.

밀물처럼 돌격하는 정천맹을 막기 위해 마교 역시 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전투에 참여하는 건 아니었다.

마교의 수뇌부 역시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교주에 구마, 야율천과 섭율. 거기에 사단의 단주들까지. 초마경에 이른 고수만 열여섯이니.’

반호진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드러난 전력만 이 정도였다.

이게 다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기에 반호진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확실히 공동파의 기세가 가장 강렬한 것 같아요. 대부분이 속가제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기세만큼은 다른 구대문파에 밀리지 않네요.”

“본산을 되찾아야 하니까.”

사마의성의 말을 들으며 반호진이 시선을 옮겼다.

바로 공동파의 제자들이 싸우고 있는 곳이었다.

다른 무인들과 달리 공동파의 제자들은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본산의 탈환과 복수를 위해 진짜 목숨을 걸고 싸웠다.

“특히 저 사람이 대단한 것 같아요. 의복을 보면 속가제자인 것 같은데, 장로보다 더 강한 것 같아요.”

“더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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