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25화 (425/468)

제 137장. 거래 혹은 교환. -02

유마가 먼저 남궁광과 황보성윤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말에 반호진도 흔쾌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야율천과 효욱을 놓았다.

“의외로 군말 없이 따르는군?”

“아직까지는 허튼짓을 안 하니까.”

“허튼짓을 하면 가만 안 있겠다는 말인가.”

“당연한 거 아닌가.”

반호진은 유마에게 건성으로 대꾸하며 남궁광과 황보성윤의 상태를 살폈다.

강자존과 패도를 숭상하는 마교인 만큼 얄팍한 수작질을 부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확인해서 나쁠 건 없어서였다.

마도이기에 정정당당함과는 거리가 좀 있었고.

살수들과 독인들로 이루어진 마가가 있는 만큼 깐깐하게 확인해서 나쁠 건 없었다.

“역시 백도인이군. 깨끗해.”

“누구들과는 다르군.”

“우리도 대놓고 비열한 짓은 하지 않아.”

“대신 들키지 않게 하겠지.”

반호진처럼 확인 작업을 마친 유마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무언의 긍정이었다.

패도를 숭상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마도이기도 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구유마가와 흑랑마가의 소가주가 서운해할 것 같은데.”

“그건 우리들의 문제다.”

“뭐, 그렇긴 하지.”

반호진은 더 이상 긁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로서는 얻은 게 적지 않기도 했고.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점혈이 풀렸음에도 남궁광은 물론이고 황보성윤은 반호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돌아가는 도중에 기습하지는 않겠지?”

“적어도 나는 먼저 뒤통수치지는 않아. 그냥 면전에서 목을 날리면 모를까.”

“후후후.”

유마가 실소를 흘렸다.

당당하다 못해 오만한 발언이었으나 반호진이 하니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반면에 호기롭게 반호진에게 달려들었다가 된통 당한 야율천과 효욱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유마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누가 봐도 기가 제대로 죽은 모습이었으나 유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이렇게 좋게 헤어지지 못할 거야.”

“그 말 그대로 돌려주고 싶군.”

“그런 상황을 만든 다음에 해. 지금은 어쭙잖게 들리기만 하니까.”

“하나 충고하지. 세상은 넓어.”

“맞아.”

너무나 순순히 인정하는 반호진의 대답에 유마가 눈을 껌뻑였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것이었다.

당연히 부정하거나 반박할 줄 알았는데 곧장 수긍하자 유마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반호진은 유마가 당혹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남궁광과 황보성윤을 부친에게 돌려보냈다.

스윽.

멀찍이 떨어져서 그걸 지켜보던 창마가 손을 들어 올렸다.

남궁광, 황보성윤과 마찬가지로 야율천과 효욱이 돌아오자 수신호로 퇴각을 명령한 것이었다.

이윽고 마교의 마인들이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섭율이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신성마가의 마인들과 함께 이동했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회의장에 내려앉았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붙어 보니 다들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교라는 세력이 얼마나 막강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괜히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이 마교의 마인들은 한 명 한 명이 지독하게 강했다.

“남궁 공자와 황보 공자는 어떻습니까?”

“내상을 입기는 했으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네.”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일세.”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분위기에 제갈문곡이 물꼬를 틀었다.

인질로 붙잡혔던 둘의 상태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했다.

“그럼 싸울 수 있는 몸 상태입니까?”

“그건 아닐세.”

“흠흠! 며칠의 시간은 주어야…….”

예상했던 답변에 제갈문곡은 쓴웃음을 지었다.

후방에 있었다고 하나 제갈문곡 역시 무인이었다.

반호진과 유마가 주고받는 대화를 들을 정도는 되었고, 또한 몸 상태를 알아볼 최소한의 안목 역시 있었다.

그렇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고 혹시나 해서 물은 것이었기에 실망하지는 않았다.

“둘은 당분간 회복에 전념시켜야 하겠군요.”

“아무래도 그게 나을 것 같네.”

“커험!”

남궁호가 평소와 다르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마교주의 자식과 남궁광을 교환했기에 아무리 그라도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었다.

황보태경 역시 같은 심정이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어색하게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상황은 마교도 비슷할 겁니다. 진혈마가의 소가주가 변수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인물이 마교에 있을 줄은 몰랐네. 그 나이에 초월경이라니.”

“마교의 표현으로는 초마경(超魔境)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대단하긴 하지요. 구룡과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 않는데. 거기다 신성마가의 소가주로 초마경이니.”

“거기서 또 한번 놀랐었지.”

남궁호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삼 년 전만 하더라도 그는 자식보다 더한 재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사실을 남궁광이 증명하기도 했고.

하지만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았다.

“역시 마교라고 해야 하겠지. 흘흘!”

“맞습니다, 대협.”

“근데 이상할 건 없지 않나? 충격받을 일도 아니고. 우리는 더한 이와 이 자리에 함께 있는데.”

개방주의 자리에서 물러나 반쯤 은퇴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다가 마교의 침공으로 인해 거의 끌려 나오다시피 한 개왕이 히죽 웃으며 어느 한 곳을 바라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다들 반호진을 쳐다봤던 것이다.

후르릅.

그러나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시선 집중에도 반호진은 태연하게 차를 들이켰다.

이런 시선이 이제는 익숙해졌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듣고 보니 그러네요.”

“야율천과 섭율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검신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지극한 나이임에도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개왕을 보며 제갈문곡이 옅게 웃었다.

개왕의 말대로 그 역시 섭율과 야율천을 보고도 충격이 덜했었다.

이미 반호진이라는 존재를 봤기에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지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부담스러운 적이 더욱 까다로워졌다고만 생각했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숫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결국 질이 모든 걸 평정하니까. 결국 승패를 결정짓는 건 마교주와 구마를 잡느냐, 못 잡느냐야. 거기에 좀 더 추가하자면 야율천과 섭율 정도를 더할 수 있겠지.”

“두 사람이 다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끔찍한 일이고.”

개왕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들 질린 표정을 짓는 것과 달리 개왕의 표정은 담담했다.

“만약 초마경의 고수가 더 있다면…….”

“그래 봤자 죽기보다 더하나? 애초에 마교의 전력이 대단할 거라는 걸 모두 다 알고 있었잖나?”

말끝을 흐리는 제갈문곡을 일별한 개왕이 장내를 천천히 훑었다.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야율천과 섭율이 초마경의 고수라는 것에 많은 이들이 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초마경의 마인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게 다일 수도 있지. 근데 말이야, 제갈가주. 그게 중요한가?”

“……!”

제갈문곡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명석한 그답게 개왕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어. 다른 선택지는 없었지. 아, 물론 이건 내 생각이고. 다른 이들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지.”

“저도 대협과 같은 생각입니다. 다른 선택지는 애초부터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참으로 다행이지만 십인십색이라고 우리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이도 분명 있을 거야.”

“그렇긴 합니다.”

제갈문곡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선례가 있었기에 무조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지만 나중에는 다른 마음을 품는 이도 분명 있을 터였다.

혹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거나.

“근데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쓸 겨를도 없고.”

“맞습니다.”

“안 그런가?”

천연덕스럽게 웃던 개왕의 표정이 일변했다.

정색하듯 싸늘한 얼굴로 장내를 훑었다.

꿀꺽!

눈이 마주친 이들이 하나같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 정도로 개왕의 눈빛은 강렬하고 서늘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한순간에 달라진 분위기에 몇몇 수장들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동조하지 않으면 배신자로 몰릴 것 같은 분위기에 다들 경쟁하듯 맞장구를 쳤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해야겠군요.”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나. 패배하는 순간 모든 것을 잃으니.”

“방주님. 개방에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개왕 덕분에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질 수 있었던 제갈문곡이 고개를 돌렸다.

사부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오중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말씀하시지요.”

“힘드시겠지만 공동파 주변을 확실하게 감시하여 주십시오.”

“합류를 걱정하시는군요.”

“예. 절정고수들로 이루어진 지원군이라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요. 반대로 중원의 마도무림에서 지원군을 보낼 수도 있고.”

오중건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둘 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기에 오중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께서도 취침 시 경계를 확실하게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빈틈을 보이는 순간 귀영마가가 침투할 것입니다.”

“으음!”

“그러면서 시간을 벌 겁니다. 아직 우리의 전력은 다 모이지 않았습니다.”

침음을 흘리던 수장들이 눈을 빛냈다.

안 좋은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참전하겠다고 집결하는 협객들이 꾸준히 있었기에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견뎌 내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후대에게 미래를 줄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제갈문곡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서서히 고조되었다.

개왕의 말마따나 어차피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더욱이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자식과 후대의 미래까지 걸려 있는 일전이었기에 모두의 눈에 결연한 기색이 하나둘 떠올랐다.

‘제갈가주님도 발전하셨군.’

몇 마디의 말로 좌중을 휘어잡는 제갈문곡의 모습에 묵묵히 경청하며 차를 마시고 있던 반호진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위기는 사람을 힘들게 만들지만 반대로 성장도 시켜 줌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그리고 몇 번의 전쟁을 통해 발전한 건 제갈문곡만이 아니었다.

스윽.

살아남은 모두가 크든 작든 발전했다.

그중에는 비약적인 성장을 한 이들도 있었다.

반호진은 그 두 사람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마교의 숨겨진 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밀리지는 않겠어.’

후르릅.

두 사람을 일별한 반호진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끼이익.

제법 길었던 회의를 마친 반호진은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정확하게는 부상자들만 모아 놓은 천막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인물 두 명도 함께 있었다.

“여어.”

“오셨습니까, 형님!”

“두 사람이 왜 여기에 있어?”

천막에 들어가기 무섭게 알은체를 해 오는 선우방과 모용척의 모습에 반호진이 고개를 삐뚜름하게 꺾었다.

각각 선우세가와 모용세가의 천막에 있어야 할 두 명이 이곳에 있는 게 이상해서였다.

“뭐야? 설마 부상자를 쫓아내려는 거야? 매정하게?”

“쫓겨날 걱정보다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게 먼저일 것 같은데.”

“이왕 다친 거 다 함께 치료받고 회복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언제 능글맞게 웃었냐는 듯이 선우방이 머쓱하게 말했다.

반면에 모용척은 당당했다.

자신은 여기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듯이 변명은 하지 않았다.

“동병상련이냐?”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고.”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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