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24화 (424/468)

제 137장. 거래 혹은 교환. -01

남궁광과 황보성윤의 신음에도 반호진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인질이 있는 건 유마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걸 보여 주듯 반호진은 여전히 움켜쥐고 있는 야율천을 들어 올렸다.

친히 목까지 한번 더 강하게 조여 주면서 말이다.

“큭!”

목에서 느껴지는 거친 압박감에 축 늘어져 있던 야율천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두 팔로 반호진의 왼팔 팔뚝을 움켜잡았다.

좌절감에 허우적거리던 그가 이제야 정신을 어느 정도 차린 것이었다.

그러나 저항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툭.

허공에 뜬 채로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발악하는 야율천을 반호진은 느릿하게 점혈했다.

마치 유마와 창마더러 보라는 듯이 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여서 점혈하고는 히죽 웃었다.

“얘를 잊으면 안 되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너도 좋을 게 없을 텐데.”

“왜 좋을 게 없어? 두 사람과 나는 딱 아는 사이일 뿐인데.”

“…….”

주도권을 절대 넘겨줄 수 없다는 듯이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던 창마가 입을 다물었다.

반박하고 싶지만 반호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유마에게 사로잡힌 황보성윤과 남궁광은 엄연히 남이었다.

안면은 있지만 친분이 있다고는 보기 힘든 사이였기에 창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근데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흑랑마가와 구유마가의 가주들이 진혈마가와 수혈마가의 소가주들을 꼭 구해 줄 의무는 없을 텐데? 오히려 자식들의 경쟁자 아닌가?”

“…….”

반호진이 오히려 기회이지 않느냐는 투로 말했다.

그런데 반호진의 은근한 말에도 둘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아니면 두 사람 다 이쪽에 줄을 댄 건가? 진혈마가에?”

“거래에만 집중했으면 하는데.”

“아, 민감한 사항인가? 둘에게도?”

“불필요한 말은 하고 싶지 않은데.”

창마가 딱 잘라 말했다.

인질 교환 말고는 다른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

한데 그런 창마의 모습에 반호진은 오히려 짙게 웃었다.

“왜 불필요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군. 소통이야말로 거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거래는 양자 간의 합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거니까. 혼자서 하는 건 거래가 아니지.”

“그래서 하지 않겠다?”

창마 대신 유마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감정을 다스리는 건 창마보다 그가 나았다.

그렇기에 유마는 지금부터 자신이 반호진과 흥정을 하겠다는 듯이 창마에게 눈짓했다.

“나는 상관없지.”

“이 두 명이 죽을 텐데도?”

“마찬가지로 진혈마가와 수혈마가의 소가주가 죽겠지.”

심리적으로 반호진을 압박하려는 듯이 말했으나 안타깝게도 실속은 없었다.

긴장하기는커녕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똑같이 나오자 유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반호진을 흥분시켜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효욱은 몰라도 야율천만은 반드시 생환시켜야 했기에 유마는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로 반호진을 주시했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너무 감정적인 것 같군.”

“그럴 리가. 난 지극히 냉정해.”

“저 둘은 아닌 것 같은데.”

유마의 시선이 반호진의 뒤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안절부절못하며 서 있는 남궁호와 황보태경에게로 말이다.

그나마 남궁호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황보태경은 달랐다.

조마조마한 심정을 숨기지 못하고서 하나뿐인 아들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무상문주.”

“이, 이보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섣불리 대화에 끼어들지 못했던 두 사람은 유마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다급히 입을 열었다.

지금이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내가 염치없다는 것을 아네. 또한 자격이 없다는 사실도. 그럼에도 부탁하네.”

“나도 부탁하겠네. 한 번만, 한 번만 양보해 주면 안 되겠나?”

자식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게 부모라는 말처럼 천하십대고수 중 두 명이 반호진에게 부탁해 왔다.

무림에서 염왕과 권왕이라 불리는 두 사람이 말이다.

둘 모두 야율천의 신분에 대해서 알기에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잘 알았다.

하지만 야율천이 아무리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자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심지어 남궁광과 황보성윤은 각 가문의 후계자였기에 남궁호와 황보태경은 얼굴 가득 미안한 기색을 띠면서도 부탁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유마와 창마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봤다.

“흐음.”

간절한 두 사람의 시선을 마주하며 반호진이 미간을 좁혔다.

다른 이도 아니고 남궁세가와 황보세가의 가주들이었기에 반호진으로서도 단칼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반호진 역시 향후 중원무림의 미래를 위해서도 남궁광과 황보태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머릿속에 저울을 떠올리고서 한쪽에는 야율천과 효욱, 반대쪽에는 남궁광과 황보태경을 올렸다.

‘죽이는 게 무조건 이득이기는 한데.’

효욱은 넘겨도 상관이 없었다.

서조운을 몰아붙일 정도로 효욱은 상당한 실력자였으나 반호진은 그의 잠재력을 그리 높게 생각하지 않았다.

현재는 서조운보다 분명히 위에 있지만 이 격차는 오래 안 가서 따라잡힐 터였다.

반대로 야율천은 위험했다.

‘기회가 왔을 때 죽이는 게 맞아.’

반호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다른 십마룡들의 실력은 솔직히 거기서 거기였다.

구룡보다 뛰어난 건 사실이나 그건 나이가 좀 더 많아서이지 재능의 크기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야율천과 섭율은 달랐다.

둘의 재능은 나머지 십마룡을 압살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야율천은 특히 더 대단했고.

‘정신적으로는 아직 부족하지만 이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문제이니까. 어쩌면 오늘이 계기가 될 수도 있었고.’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변할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야율천이 위험했다.

약점이 명확하기는 하나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너무나 확실하기에 어떻게든 개선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반호진이 선뜻 손을 쓰지 못하는 건 바로 남궁세가와 황보세가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고민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은데.”

“급한 건 내가 아니니까.”

“저 둘은 다른 듯한데?”

먼저 입을 열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유마가 대놓고 남궁호와 황보태경을 향해 눈짓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 다 조마조마한 건 피차일반이었다.

“반 문주.”

남궁호가 간절한 눈빛으로 다시 한번 반호진을 불렀다.

그라고 반호진의 고민을 모르지 않았다.

만약 그가 반호진의 입장이었어도 당연히 고민했을 터였다.

그 정도로 야율천을 순순히 보내 주는 건 위험했으니까.

“알겠습니다. 인질을 교환하죠.”

심상치 않은 이곳의 분위기 때문인지 전장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다들 대치 중인 이곳을 예의주시했던 것이다.

그때 반호진이 장고 끝에 결정을 내렸다.

결국 인질들을 교환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저, 정말인가?”

“고맙네!”

고대하던 결정에 남궁호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서렸다.

반면에 황보성윤은 대뜸 고마움부터 표했다.

혹시라도 반호진이 번복할까 싶어 선수를 친 것이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남궁호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으나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이 빚, 언젠가는 갚으셔야 합니다.”

“물론이네. 정말 고맙네.”

“약속하겠네!”

다름 아닌 자식의 목숨값이었기에 남궁호는 부담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자식도 아니고 가문의 후계자였다.

차기 남궁세가의 가주가 될 이가 남궁광이었기에 남궁호는 걱정 말라는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황보태경은 거구에 어울리는 호탕한 모습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목을 묶은 은사부터 풀었으면 하는데.”

“우리도 수혈마가의 소가주를 데려왔으면 하는데.”

유마가 남궁광과 황보성윤의 목을 휘감고 있는 은사를 느슨하게 풀며 눈짓했다.

서조운의 발아래 깔려 있는 효욱을 향해서 말이다.

그 시선에 서조운이 얼굴 가득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효욱의 배를 짓누르던 발을 뗐다.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형님.”

“그럴 것 없다. 회복에 집중해.”

“예.”

서조운이 엎어져 있는 효욱에게 손을 뻗었지만 반호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몸 상태가 많이 나아지기는 했으나 아직 정상은 아니었다.

전투가 소강상태이기는 해도 언제든지 다시 싸움이 발발할 수 있었기에 반호진은 서조운에게 휴식을 지시하고는 무형지기로 아직도 기절해 있는 효욱을 들어 올려서 야율천의 옆에 데려다 놓았다.

“이제는 거래를 해도 될 것 같은데.”

“방식은 어떻게 할 거지?”

“어떻게 하긴. 서로 허튼 짓거리 못 하게 만나서 교환해야지. 그게 가장 낫지 않겠어? 당신이나 나나 서로를 믿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위험할 수도 있는데?”

“당신이 위험하겠지.”

유마의 입매가 비틀렸다.

설마하니 구마 중 한 명인 자신을 앞에 두고 저런 오만방자한 말을 할 줄은 몰라서였다.

근데 더 웃긴 건 저 말을 듣고도 강력하게 반박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중원에서의 위상은 물론이거니와 실력으로도 그에게 꿀리지 않는 무인이 지금 눈앞에 있는 반호진이었다.

“해보자는 건가?”

반호진의 태도가 못마땅한 건 지켜보던 창마도 마찬가지였는지 사나운 기세를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이 이상은 가만히 지켜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창마가 나서기 무섭게 반호진의 곁으로 두 명의 중년인이 모여들었다.

바로 남궁호와 황보태경이었다.

“진짜 해보자는 거냐?”

“그쪽은 끼어들지 말았으면 하는데.”

창마와 마찬가지로 황보태경과 남궁호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특히 황보태경은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거구를 꿈틀거렸다.

싸움을 원한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워워. 진정하라고.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그건 그쪽들도 알고 있을 테고.”

“먼저 시작한 놈이 나불거리기는.”

“말조심해라.”

“이것도 순화해서 한 거다. 원래 내 성격대로였으면…….”

창마를 노려보는 황보태경의 기세가 달라졌다.

흉포함을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창마 역시 기도를 드러냈다.

키이이이잉!

이윽고 두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러나 둘 다 직접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쯤 했으면 싶은데. 싸움을 원하는 거면, 바로 시작하고. 난 상관없어.”

반호진이 좌수를 흔들며 말했다.

한데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 사이의 기세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물론 둘 다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기세를 일으킨 것 또한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반호진이 가볍게 제압하자 유마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내가 흥분했군.”

“끄응!”

반호진의 중재 아닌 중재에 창마와 황보태경이 동시에 한 발짝씩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이 과하게 흥분했음을 깨달은 것이었다.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게 야율천과 황보성윤의 안위였기에 둘은 더 이상 각을 세우지 않았다.

“슬슬 시작했으면 싶은데.”

“바로 하지.”

“좋아.”

끝까지 존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반호진의 말투였으나 유마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적이었기에 그러려니 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실력으로 증명하면 되었고.

유마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은사를 풀고서 맨손으로 남궁광과 황보성윤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꾸욱.

그리고 그건 반호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던 효욱의 뒷덜미를 왼손으로 붙잡고는 질질 끌고서 걸음을 옮겼다.

들기에는 효욱의 덩치가 컸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유마도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서, 성윤아!”

대신 반호진과 똑같이 황보성윤을 질질 끌고 이동했는데 그걸 본 황보태경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부정(父情) 가득한 황보태경의 외침에도 유마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직 반호진만을 응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바꾸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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