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장. 진짜 괴물. -02
득의양양한 얼굴로 손을 뻗던 효욱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낯선 목소리와 함께 서조운의 목젖을 찔러 가던 오른손이 너무나 허무하게 튕겨 나가서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방해에도 효욱의 대응은 기민했다.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튕겨 나가는 오른손의 반동을 이용해 왼팔을 휘둘렀다.
쌔애액!
자연스럽게 몸을 회전시키며 공격했기에 속도도 속도지만 상대가 예측하기 어려운 일격이었다.
게다가 원래부터 거구였던 효욱은 수혈마가가 자랑하는 야수마공(野獸魔功)을 극성으로 일으킨 상태였기에 키가 구 척이 넘은 상태였다.
그만큼 팔도 길어졌고 몸도 무거워졌기에 위력이 배가되었다.
턱.
“어?”
그냥 휘둘러도 두꺼운 쇠기둥 정도는 가볍게 부러뜨릴 수 있었다.
한데 지금은 강기로 뒤덮여 있었다.
즉 단순히 부수는 걸 넘어 매끈하게 절단 내는 것도 가능한 게 현재 효욱의 팔뚝인데 그 팔이 도중에 멈췄다.
그의 팔에 비하면 너무나 빈약해 보이는 손과 팔에 의해서 말이다.
“혀, 형님!”
“고생했다. 이제 그만 하고 물러나 있어.”
“죄송합니다, 형님.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서조운이 고개를 푹 숙였다.
호기롭게 나섰음에도 승리하기는커녕 현격한 차이로 패배하자 그는 반호진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아니다. 충분히 잘 싸웠어. 그러니 너무 의기소침하지 마라. 넌 할 수 있는 걸 다했으니까.”
“예?”
“뒤는 나에게 맡기고 의성이에게 가서 내상부터 다스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
서조운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말투로 보건대 실망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효욱을 제압하지 못해서 반호진이 나선 것이었기에 서조운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뭐 해? 안 오고?”
“지금 간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혼자만의 세계에 매몰되어 가던 서조운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귓전을 때리는 듯한 사마의성의 음성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사마의성과 그녀의 호위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제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서 공자님.”
“감사합니다, 유 호법님.”
마교와의 전쟁에 바짝 얼어 있는 사마세가의 가솔들과 달리 유호량은 지금과 같은 대규모 전투를 겪어 본 적이 있어서인지 차분한 기색으로 다가와 팔을 어깨에 걸치며 부축해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조운의 몸 상태를 안다는 듯이 최대한 편히 걸을 수 있게 부축해 주자 서조운은 고마움을 표하며 고개를 돌렸다.
효욱과 대치하고 있는 반호진을 쳐다봤던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드디어 만났군, 소림검신. 아니, 반호진.”
“내가 마교에서도 유명하긴 한 모양이야.”
“모르는 이는 없지. 중원제일인이자 중원제일검이니까.”
“중원제일이라.”
효욱의 말에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중원제일이라는 네 글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려서였다.
효욱 역시 부정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듯이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히죽 웃었다.
“천하제일이라는 말은 네놈들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뭐, 생각은 자유니까.”
도발하려는 듯이 속을 계속해서 긁었으나 반호진은 넘어가지 않았다.
이런 유치한 말장난에 흥분할 정도로 그의 수양은 결코 얕지 않았기에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근데 그게 효욱의 신경을 건드린 듯했다.
“천하제일인이라는 칭호는 오직 교주님께만 허락된 칭호다. 네놈 따위가 가질 수 있는 칭호가 아니지.”
“애초에 원한 적도 없어.”
“뭐라고?”
“별로 가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효욱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관심 없어 하자 놀란 것이었다.
“어째서?”
“그건 알 거 없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효욱을 향해 반호진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뒷짐을 지고서 가볍게 한 발을 내디뎠는데 그로 인한 결과가 놀라웠다.
상당한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흥!”
마치 축지법을 펼친 것처럼 간격이 순식간에 좁혀졌으나 효욱은 당황하지 않았다.
특이한 수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빠르게 접근한 것뿐이었기에 효욱은 반호진이 가까이 다가오기 무섭게 조강이 번뜩이는 손톱을 휘둘렀다.
몸이 거대해졌기에 움직임이 둔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착각이고 오판이었다.
거대해진 만큼 감각과 신체능력 역시 보통의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되었기에 효욱의 일격은 빠르고 강력했다.
쌔애애액!
예리한 파공성과 함께 회색빛 조강이 반호진의 심장을 노리고서 쇄도했다.
단숨에 왼쪽 가슴을 꿰뚫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더욱이 반호진은 효욱에게 접근하는 중이었기에 이번 공격이 더욱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슈욱!
그런데 효욱의 조강이 가슴에 닿기 직전 반호진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극성의 이형환위가 펼쳐진 것이었다.
“쳇!”
회색빛 조강이 심장 부근을 꿰뚫었으나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없었다.
심지어 긁히거나 닿은 느낌도 없었기에 효욱은 신경질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며 왼팔을 크게 휘둘렀다.
육안으로는 놓쳤으나 그의 예민한 감각은 반호진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극성으로 일으킨 야수마공이 키워 주는 건 육신만이 아니었기에 효욱은 조금 늦기는 했어도 정확하게 반호진의 위치를 파악했다.
부우우웅!
이번에는 손톱이 아니라 두꺼운 팔뚝 전체가 허공을 갈랐기에 파공음도 묵직했다.
거기에 왼팔 전체가 회색 강기로 뒤덮여 있었기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가루로 만들고도 남았다.
상대가 중원제일인이라 할 수 있는 반호진이었기에 가루가 되거나 우그러지지는 않겠으나 쉽게 막아 내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다.
턱.
한데 그 생각은 창졸간에 박살 났다.
제대로 휘두른 일격을 반호진은 이번에도 가볍게 받아 냈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집중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반호진은 단순히 효욱의 일격을 받아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휘이익!
왼손바닥으로 효육의 두꺼운 팔뚝을 부드럽게 받아 낸 반호진은 곧바로 발을 움직였다.
이동하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앞차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발차기에 진지함이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차듯 가볍고 느리게 다리를 움직였는데 발목을 맞은 효욱이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쉽게 넘어갔다.
쿵!
가벼운 발길질에 무게 중심을 잃고 넘어지자 효욱이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강기에 휩싸인 발차기도 아니고 단순한 발차기에 자신이 쓰러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하지만 굴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반호진은 발차기를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퍼어억!
내질렀던 오른발이 자연스럽게 지면에 착지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왼발이 움직였다.
허공에 시원스럽게 반원을 그리며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몸을 반쯤 일으킨 효욱의 아래턱에 작렬했다.
“큭!”
정확히 발등으로 강타한 일격에 효욱은 일어서다 말고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그것도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말이다.
물론 효욱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눈에 훤히 보이는 느린 공격을 가만히 맞아 줄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반사적으로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일으켰는데 안타깝게도 소용이 없었다.
스윽.
호신강기를 깨부수며 아래턱뼈를 분질러 버린 반호진의 왼발이 그대로 허공 높이 치솟았다.
올려 차는 힘을 그대로 이용해 높이 들어 올렸던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발뒤꿈치에 힘을 집중해서 내려찍었다.
뻐어어억!
그런데 효욱의 반응도 기민했다.
아래턱을 맞았기에 골이 울려 제대로 반응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맷집이 상당한 모양인지 두 팔을 들어 교차했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반호진의 내려찍기를 막기 위해서였다.
“끄억!”
그러나 안타깝게도 효욱의 방어는 실패했다.
반호진의 발이 교차한 두 팔을 그대로 밀어붙이며 안면을 내려찍어서였다.
이번에도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강기가 전혀 서려 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위력이 어마어마한지 효욱의 두꺼운 양팔이 기괴한 각도로 뒤틀렸다.
단 일격에 두 팔의 하박이 아작 난 것이었다.
스윽.
단 세 방에 전투불능이 되어 누워서 꿈틀거리는 효욱을 내려다보며 반호진이 재차 발을 들어 올렸다.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눈빛으로 공격을 이어 가려는 것이었다.
겉모습만 보면 효욱이 어른이고 반호진이 어린아이 같았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서조운을 몰아붙이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효욱은 저항다운 저항을 하지 못하며 복부에 일격을 맞고 혼절했다.
“…….”
“으음!”
그 모습에 싸움을 지켜보던 수혈마가와 다른 마가의 마인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하지만 섣불리 나서는 이는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반호진이 기절한 효욱을 죽일 수도 있었기에 다들 눈치만 봤다.
짝짝짝.
그때 느릿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난데없는 박수 소리에 다들 반사적으로 시선을 집중한 것이었다.
“역시 소림검신이라고 해야 하나. 검도 뽑지 않고 효욱을 제압할 줄이야.”
“이게 뭐 대수라고.”
“배포도 대단하고. 괜히 검신이라는 칭호를 가진 게 아니라는 건가.”
대수롭지 않아 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박수를 치던 야율천이 씨익 웃었다.
자신의 상대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적어도 그와 손속을 겨루려면 저 정도 품격은 있어야 한다고 야율천은 생각했다.
“약자를 괴롭히는 건 그쯤 하지.”
“응?”
전장 한복판에 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하던 야율천의 표정이 일변했다.
섭율이 끼어들자 정색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율천의 살벌한 눈빛에도 섭율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반호진만 바라봤다.
“어이가 없군. 자기는 되고 남은 안 된다는 건가?”
“…….”
섭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교의 행태를 꼬집어 말하는 것임을 알아서였다.
“끼어들지 마라, 섭율.”
“나에게 이래라저라래할 자격이 없을 텐데.”
입을 다무는 섭율을 향해 야율천이 사나운 기세를 숨기지 않고 풍기며 말했다.
대놓고 무력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이놈에게는 관심이 없나 봐? 아, 수혈마가만 관심이 있으려나?”
자기들끼리 기 싸움을 벌이는 둘을 바라보며 반호진이 발끝으로 널브러져 있는 효욱을 툭툭 건드렸다.
한데 발끝이 닿는 위치가 단전 바로 옆쪽 옆구리라서 그런지 수혈마가의 무인들이 움찔거렸다.
반호진의 발이 닿는 순간 반응하듯 흠칫거렸던 것이다.
반면에 야율천이나 섭율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약해서 죽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연의 섭리지.”
“그건 마음에 드네.”
섭율과 야율천의 대답에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사단(四團)이야 마교주의 직속 조직이었지만 십대마가는 달랐다.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기에 늘 알력 다툼이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 다 효욱이 죽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다.
“자, 잠깐만!”
반대로 수혈마가의 사정은 달랐다.
가문의 소가주였기에 효욱을 보좌하던 중년인이 다급하게 반호진을 불렀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반호진이 기절한 효욱을 죽일 것 같았기에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
“싫은데.”
하지만 반호진은 수혈마가 소속의 중년인이 부르거나 말거나 허공섭물로 축 늘어진 효욱을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에 뒤로 던졌다.
정확하게는 내상약을 먹고 몸을 추스르고 있는 서조운의 앞으로.
“형님?”
“데리고 있어.”
“무슨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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