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장. 진짜 괴물. -01
수백 마리의 늑대와 표범, 곰이 일제히 달려들자 정천맹의 무인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흔히 보던 맹수들과는 덩치가 완전히 달라서였다.
늑대만 하더라도 평범한 늑대보다 배는 족히 컸고, 그건 곰이나 표범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선두에서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거대한 멧돼지는 압권이었다.
“히이익!”
“수, 수혈마가다!”
맹수를 조련하고 조종하는 곳은 마교에서 오직 한 곳뿐이었다.
그렇기에 어디인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만 맹수들의 기세가 너무나 흉포했기에 정천맹의 무인들은 전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화르르륵!
돌진해 오는 맹수들이 향하는 방향에 서 있던 서조운이 앞으로 나섰다.
어째서 이곳으로 오는지 모를 수가 없기에 길을 막아선 것이었다.
“짐승이 사람 말을 하네?”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신기하네. 생긴 건 영락없는 곰인데.”
“닥쳐라!”
서조운의 도발에 달려오던 효욱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한참이나 어린 서조운에게 무시를 당하자 극도로 흥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묘하게 서조운의 얼굴이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닥쳐야 할 건 요놈들인 것 같은데.”
퍼퍼퍼펑!
전부 다 수놈인지 거대한 송곳니를 치솟은 채로 달려들던 멧돼지들의 동체가 일제히 터져 나갔다.
서조운의 일검에 단 한 마리도 버티지 못하고 육편으로 화했다.
그리고 그건 함께 돌진하던 늑대들과 표범들도 다르지 않았다.
멧돼지들보다 날렵한 늑대와 표범이었으나 수혈마가가 오직 돌격 명령만 내렸기에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터져 나갔다.
“흡!”
그런데 홍염(紅炎)을 머금은 검강은 맹수들을 밀어 버리고도 힘이 남았는지 맹렬하게 달려드는 효욱에게도 뻗어 갔다.
그 모습에 효욱의 퉁방울만 한 눈이 더욱 커졌다.
무시무시한 열기를 머금은 검강을 보자 그의 뇌리에 한 명이 떠오른 것이었다.
쩌어어엉!
물론 놀랐을 뿐 서조운의 일검에 순순히 당해 주지는 않았다.
야율천에게는 기를 펴지 못했으나 그는 엄연히 십대마가 중 한 곳인 수혈마가의 소가주였다.
섭율과 야율천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효욱이었기에 강렬하게 파고드는 서조운의 검강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호오.”
주먹으로 검강을 튕겨 내는 효욱의 모습에 서조운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이 아니라는 걸 기감으로 파악하기는 했으나 이렇게 쉽게 자신의 검강을 튕겨 낼 줄은 몰라서였다.
한데 놀란 건 효욱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쩡하다고?”
야율천과 섭율이 비상식적이라 그렇지 효욱은 엄연히 소가주들 중에서는 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자였다.
그런 자신의 권강과 부딪치고도 검강이 부러지지 않자 효욱은 두 눈을 부릅떴다.
“보아하니 수혈마가의 소가주인 것 같은데. 십마룡 중 한 명인가?”
“우리에 대해 아는 모양이군.”
“당연하지. 그쪽이 우리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지. 물론 이렇게 대뜸 형님에게 달려갈 줄은 몰랐지만.”
“소림검신은 내…….”
“늦은 것 같은데.”
효욱을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서조운이 다른 곳을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가뜩이나 험상궂던 효욱의 얼굴이 더욱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가 서조운에게 붙들려 있는 사이 다른 소가주들이 반호진을 향해 달려드는 게 보여서였다.
으드득!
“너무 실망하지는 마. 저들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으니까.”
수혈마가의 맹수들이 죽어가며 만든 길을 얌체처럼 이용하는 소가주들을 노려보던 효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십마룡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아도 자세히는 모를 서조운이 호언장담하듯 말하자 이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곧 드러났다.
야율천과 섭율을 제외한 일곱 명이 질주하기 무섭게 정천맹 쪽에서도 후기지수들이 달려 나왔던 것이다.
“구룡?”
“맞아. 마교에 십마룡이 있다면 정천맹에는 구룡이 있으니까.”
“마교가 아니라 신교다!”
“그건 너희들의 주장이고. 우리에게는 마교야.”
효욱이 진득한 살기를 흩뿌리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살벌한 그의 살기에도 서조운은 능글맞게 웃었다.
자기들이 아무리 신교라고 주장해도 중원에서는 마교일 수밖에 없어서였다.
콰콰콰쾅!
그사이 십마룡과 구룡의 싸움은 점점 더 격해졌다.
특히 서조운과 마찬가지로 반호진을 목표로 달려든 이들을 상대하던 선우방, 모용척, 정이륭의 기세가 살벌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반호진에게 덤벼드는 게 셋 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젠장!”
“크으윽!”
“흡!”
세 사람과 충돌한 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셋의 실력이 출중해서였다.
내심 중원무림의 무공을 깔보고 있었는데 막상 부딪쳐 보니 만만치가 않자 세 명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제법 하는구나!”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호기롭게 달려들었다가 튕겨 나갔던 이들이 재차 땅을 박찼다.
실력이 예상 밖이기는 하나 자신들이 질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방금 전의 결과도 방심해서 당한 거라고 생각했기에 세 명은 진지한 마음으로 단전의 공력을 가일층 끌어올렸다.
자신들이 당한 치욕을 고스란히 돌려줄 작정이었다.
꽈아앙! 꽈광!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좀 전의 결과가 우연이 아니라는 듯이 이번 역시 튕겨 나가는 쪽은 십마룡 쪽이었다.
그 광경에 효욱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속절없이 당할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한 적이 없었기에 놀란 것이었다.
“벌써부터 놀라기에는 이른데.”
“꼴에 백도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는 거냐.”
“그건 아냐. 최고의 후기지수는 따로 있거든. 정확하게는 나서지도 않았다.”
“너라고 말하는 거냐?”
“그럴 리가. 나 정도로는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릴 수 없지. 최상위권인 건 맞지만.”
얄미운 미소와 함께 서조운이 땅을 박찼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효욱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런데 서조운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초반부터 전력을 다하는 모양인지 전신에서 가공할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흥!”
하지만 온몸에 불꽃을 휘감고서 거의 날다시피 쇄도하는 서조운의 모습에도 효욱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투기를 끌어올리며 서조운에게 마주 달려들었다.
수혈마가의 소가주로서 정면 대결을 피하지 않겠다는 듯이 양손에 조강(爪罡)을 잔뜩 일으켰다.
서조운을 단숨에 찢어발기겠다는 뜻이었다.
쩌어어엉!
이윽고 두 사람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동시에 묵직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이 정도면, 할 만한데?’
열 손가락에 솟아 있는 회색빛 조강을 응시하는 서조운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마교가 자랑하는 십마룡의 일인이기에 서조운은 내심 긴장했었다.
전신에서 풍기는 기도도 상당했고.
근데 막상 정면으로 부딪쳐 보자 할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끄아아악!”
“커헉!”
그러나 다른 곳의 상황은 달랐다.
선우방과 모용척, 정이륭이 대등하게 십마룡을 상대하는 것과 달리 다른 구룡의 상황은 처참했다.
누구도 비등은커녕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중이었다.
“으음!”
전장을 살피던 사마의성이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한때 중원 최고의 후기지수라 불리던 천룡 남궁광이 입가에 피가 흥건한 모습으로 연신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가슴이 답답했다.
새삼 마교의 저력을 볼 수 있어서였다.
게다가 상황은 다른 이들도 비슷비슷했다.
‘역시 마교라고 해야 하나.’
사마의성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전장 곳곳을 빠르게 훑었다.
수적으로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밀리는 건 오히려 정천맹이었다.
고수의 질이 마교가 압도적으로 뛰어나서였다
절정고수라고 해서 다 같은 절정고수가 아닌 것처럼 마교의 마인 한 명 한 명은 끔찍하게 강했다.
크아아앙!
거기다 수혈마가가 데려온 맹수들도 엄청나게 위협적이었다.
품종개량이라도 한 것인지 원래 덩치보다 최소 반 배에서 최대 두 배 가까이 큰 맹수들은 광기에 잠식당하기라도 했는지 다치거나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특히 호랑이나 사자보다도 멧돼지들의 활약이 더 두드러졌다.
커다란 덩치도 덩치지만 맷집이 좋아서 웬만한 둔기는 맞아도 그대로 달려들었고, 심지어 검기와 도기도 버텨 냈다.
“우아악!”
“뭐 이딴 놈들이 다 있어!”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떼로 달려드는 멧돼지들의 모습에 정천맹의 무인들이 질린 표정을 지으며 몸을 피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제아무리 일류무사라도 버티지 못할 것 같기도 하거니와 우르르 몰려다녔기에 짓밟히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고수라고 해서 이빨이 안 박히고 뼈가 부러지지 않는 게 아니었기에 무인들은 무모하게 도전하기보다는 영리하게 맹수들을 상대했다.
“확실히 마교는 마교인가 봐요, 오빠. 마도련의 십대마문과는 격이 달라요.”
“괜히 최악, 최강의 세력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이대로 가다가는 다들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사마의성의 시선이 일행을 제외한 구룡들에게로 향했다.
다들 간신히 버티고만 있을 뿐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사마의성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정작 반호진은 십마룡이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교를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반호진은 냉정한 눈으로 전장을 살폈다.
‘정보가 너무 없어.’
개방이 전력을 다해 정보를 수집하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부족했다.
십마룡과 구마에 대해서만 알지 그들의 얼굴, 특징에 관한 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반호진은 염려가 되었다.
천사맹, 마도련 때처럼 아는 게 너무 적어서였다.
‘아직 마교주나 구마는 나서지 않은 것 같고.’
공동산은 넓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마교주와 구마를 찾았다.
꼭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하나인 금적금왕(擒賊擒王)의 계책을 펼치려는 게 아니라 우선은 그들의 경지를 파악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인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끄어억!”
“서건아!”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반호진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당우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동시에 거대한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솟구쳤다.
당서건의 위기에 당우혁이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나선 것이었다.
“오, 오빠!”
“우웨액!”
뒤이어 사마의성이 대경하며 반호진을 불렀다.
효욱과 싸우던 서조운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각혈을 하자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소리친 것이었다.
휘이익!
마교주와 구마를 찾는다고 해서 친구와 동생들에게 아예 관심을 끈 건 아니었다.
찾아보면서도 중간중간 상황을 확인했기에 사마의성이 입을 열자마자 반호진은 땅을 박찼다.
피를 토하는 서조운에게 번개같이 날아갔던 것이다.
쌔애액!
주춤주춤 물러나는 서조운을 향해 거대한 손이 뻗어 왔다.
사람의 손이라기보다는 맹수를 닮은 듯한 손이었는데 손톱도 남달랐다.
맹수처럼 휘어진 손톱에서 회색빛 강기가 번뜩이며 서조운의 목을 노리고서 파고들었다.
단숨에 목을 따 버릴 기세였는데 내상이 심한 모양인지 서조운은 평소와 달리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크큭! 뒈져라!”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힘겹게 검을 들어 올리는 서조운의 모습에 효욱이 광소를 터트렸다.
이제 손만 뻗으면 건방진 서조운의 목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림없는 소리. 내가 이 녀석을 어떻게 키웠는데.”
터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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