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18화 (418/468)

제 135장. 십마룡(十魔龍). -02

모용궁은 할 수만 있다면 손으로 자신의 볼을 꼬집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체면이 있기에 차마 실제로 꼬집진 못했다.

대신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허락하고 말고 할 게 있습니까? 저희야 무조건 찬성이지요. 형님과 희수가 맺어지는데요!”

“혼인 허락이 아니라 교제를 허락받으러 온 것이다만.”

“교제나 혼인이나 똑같지요! 안 그렇습니까, 아버지?”

모용척이 푼수처럼 말했으나 모용궁은 나무라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에 한해서는 모용척의 반응이 도움이 되어서였다.

솔직히 그 역시 혼인이나 교제나 비슷하다고 생각했고.

아니, 정확하게는 전시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혼약을 확정 짓고 싶었다.

“흠흠! 무상문주의 말이 맞다. 아직은 일러. 엄연히 전시 상황인데. 마교를 앞에 두고 혼인을 운운하는 건 좀 그렇지.”

“그래서 불허하시겠다고요?”

“그럴 리가. 다만 조금 늦추자는 거지. 전쟁이 끝난 후에 혼사에 대해 얘기해도 늦지 않으니까.”

“흐음.”

의외로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모용궁의 모습에 모용척이 미간을 좁혔다.

당장 날짜를 잡아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이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아서였다.

‘후우. 떨리는군.’

한편 모용척이 모용궁과 옥신각신할 때 반호진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태연한 척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달랐다.

싸움이나 전쟁과 달리 교제를 허락받는 건 난생처음이었기에 천하의 반호진도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

입술이 바짝 말라 오는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근데 그게 반호진은 싫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거니와 앞으로 그의 인생에 있어 필요한 일이었기에 피하기보다는 최대한 마주 보려 애썼다.

‘한 번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반호진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이기에 가슴이 벌렁거리지만 동시에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

애초에 피하는 건 반호진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기도 했고.

다만 모용궁의 반응은 조금 의외였다.

이렇게 어려워할 줄은 몰랐기에 반호진은 내심 당혹스러웠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긴. 어른의 뜻에 따르는 게 맞지.”

“만약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요?”

“그럼 별수 없지.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도 희수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

“근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형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리가 없으니까요.”

모용척이 천연덕스럽게 웃었다.

만약이라고 가정했지만 진짜 그렇게 될 일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용척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조건 찬성이라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다고나 할까. 문주에게 고맙기도 하고.”

“고맙기는요. 감사한 건 저인데요. 희수를 믿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셨을 텐데.”

“맞네. 사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희수는 나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라네.”

모용궁이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떠올리는지 얼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저도 반대했습니다, 형님. 아니다 싶은 것에 굳이 모든 것을 걸 필요는 없으니까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실패한다면 잃는 게 너무 컸으니까요.”

“이해해. 나였어도 만류했을 테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희수가 옳았습니다. 이렇게 결과를 만들어 냈으니까요.”

“여걸이긴 해. 겉모습과 달리.”

“어릴 때도 괄괄하기는 했습니다.”

모용척이 흠칫했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강렬한 안광에 저도 모르게 움찔한 것이었다.

“그럴 것 같기는 해.”

“하하. 그래도 지금은 많이 유순해졌습니다.”

“너한테는 안 그런 것 같은데?”

“저야 혈육이지 않습니까. 친남매 사이가 다 거기서 거기죠.”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괄괄했으나 모용척은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오히려 잘해 주면 불안했다.

“사이 좋은 남매들도 많아.”

“그렇긴 한데 저희는 아니니까요.”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네. 호칭은 바꾸지 않고 이대로 계속 유지할 건가?”

흐뭇한 얼굴로 반호진과 모용척의 대화를 경청하던 모용궁이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간과하고 있던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지금이야 큰 문제가 없다지만 반호진과 모용희수가 혼인할 경우 모용척은 손윗사람이 되었다.

그렇기에 모용궁은 그 부분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금의 호칭에 불만이 없습니다. 형님께 형님이라 불리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요. 처남은 그나마 낫긴 한데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져서요. 그리고 아직 희수와 혼례를 올린 건 아니잖습니까. 이번에는 너무 앞서가신 것 같습니다.”

“좀 그런가?”

“예, 아버지. 약간 주책이었어요.”

모용궁이 살짝 벌게진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듣고 보니 주책인 감이 없지 않아 있는 듯해서였다.

“가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얼마든지 형님으로 모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닐세. 두 사람이 괜찮다는데 내가 강요할 수는 없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반호진의 모습에 모용궁이 도리어 놀랐다.

시원시원한 성격인 건 알았지만 그래도 동생이었던 모용척에게 선뜻 형님이라 부를 줄은 몰랐기에 모용궁은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한 차례 저었다.

“강요할 자격은 있으시죠. 예비 장인이지 않습니까.”

“으허허허!”

모용척이 예비 장인이라고 말하자 모용궁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예비 장인이라는 네 글자가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어서였다.

더욱이 남궁호와 당우혁, 팽만철이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말이었기에 그는 더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지금은 예비 장인이지만 혼례를 올리면 장인어른으로 바뀌었기에 모용궁은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아버지.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너 같으면 싫겠느냐?”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너무 티를 내시는 것 같아서요.”

주접스럽다는 말을 나름 돌려서 말했으나 모용궁은 씨익 웃었다.

반호진이 사위로 들어오는데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오히려 더한 모습도 보여 줄 수 있었다.

“사람이 솔직해서 나쁠 건 없지. 너무 자기 감정을 숨기는 것도 좋지 않아. 안 그런가?”

“맞습니다.”

“우리 희수, 잘 부탁하네.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 거라 믿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막내딸이라. 정말 금이야, 옥이야 키워 온 아이라네.”

“이해합니다. 최대한 눈물 흘리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네. 아참, 날짜는 독촉할 마음이 없네. 우선은 전쟁이 먼저이기도 하고. 대신 상견례는 가급적 빨리 잡았으면 하네.”

모용궁은 서두르지 않았다.

대신 차근차근 확실하게 하고자 했다.

서로의 마음이 확고한 만큼 혼사가 어그러지지는 않겠으나 그래도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했다.

서두르지는 않아도 단계는 확실하게 밟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부모님과 상의하겠습니다.”

“하하하. 좋구먼.”

“그보다 아버지. 이번에도 형님과, 그러니까 무상문과 함께 싸우실 겁니까? 아니면 따로?”

거의 하루 종일 회의를 하긴 했으나 결정된 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결정된 것조차 내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기에 모용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같이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느냐. 손발을 자주 맞추기도 했고. 그 차이는 무시 못 하지. 선우세가도 마찬가지일 듯하고.”

“확실히 그렇긴 하죠.”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전쟁으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전쟁을 앞두고 있는 데다가 그 상대가 다른 곳도 아닌 마교였기에 셋은 이내 진중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서 그런지 선우방의 얼굴은 밝았다.

혼례를 올린 뒤 처음 모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방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새신랑이라서 그런지, 얼굴에서 아주 윤이 나는데요.”

“부러우면 너도 장가가. 널 원하는 곳은 많잖아?”

“어마어마하죠. 현재 가치도 훌륭하지만 잠재력 또한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탐을 내는 곳이 많을 수밖에요.”

“보통은 그런 말을 자기 스스로 잘 안 하는데 말이지.”

“요즘은 솔직한 게 대세인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당찬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서조운의 모습에 선우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째 서조운에게서 모용척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스윽.

오늘따라 이상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서조운을 일별한 선우방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달리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앉아 있는 사마의성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다.

중간중간 맞장구만 쳐 줄 뿐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거나 주도하려 하지 않았다.

선우방은 그게 조금 안쓰럽게 다가왔다.

“저에게 할 말이 있으세요?”

“아니.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근데 너는 딱히 안 그래 보인다?”

“저도 반갑죠. 다만 저는 조운이랑 입장이 달라서. 팽 언니에게 미운털 박히고 싶지도 않고요.”

“그걸 왜 걱정해.”

시선을 느낀 듯 사마의성과 눈이 마주치자 선우방은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어쭙잖은 자신의 연민이 사마의성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었기에 선우방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대했다.

“걱정할 수밖에요. 여자 마음은 여자가 잘 알거든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죠.”

“우리 수매는 그렇게 속이 좁지 않아.”

본래대로라면 영매라고 불러야 하는 게 맞았으나 팽수영의 형제자매들이 다 영자 돌림이었기에 선우방은 수매라는 애칭을 선택했다.

팽수영도 그걸 바라기도 했고.

다만 선우방의 입에서 흘러나온 낯선 호칭에 다들 두드러기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일하게 반호진만이 친구라고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티를 안 내는 것일 수도 있지. 누가 자기 속 좁게 보이는 걸 원하겠어.”

“그, 그런가?”

“근데 일단 티를 안 내려는 점에서 대단하기는 하네. 솔직함이라는 핑계로 대놓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데.”

“수매는 좋은 여자야. 좋은 아내이기도 하고. 그리고 늦었지만 축하한다.”

사마의성이 신경 쓰인다고 해서 친구에게 축하를 안 할 수는 없기에 선우방은 빙긋 웃으면서 진심을 담아 말했다.

개인적으로 반호진과 모용희수가 잘되기를 바라기도 했고.

모용희수의 순애보는 남자가 보기에도 대단했기에 그는 남몰래 그녀를 응원했었다.

한때는 마음에 담아 둔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오직 팽수영뿐이었다.

“고맙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말이지.”

“나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어.”

“알지. 근데 그것도 알지? 여자로서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거.”

“당연히 알지. 그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기울었으니까.”

선우방이 씨익 웃었다.

새삼 여느 남자답지 않은 세심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번 대답으로 느낄 수 있어서였다.

“잘해 드려. 좋은 분이야.”

“한때 짝사랑해서 그래?”

“무, 무슨 소리야?”

“말은 왜 더듬을까?”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까 당황하지. 다른 사람이었어도 똑같았을걸?”

순간적으로 평정심을 잃은 선우방이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일행들만 있는 방이었음에도 본능적으로 주위를 확인한 것이었다.

“나는 이해해. 많은 이들이 좋아했던 여인이니까. 괜히 삼봉이라 불린 게 아니니까.”

“아니라니까 그러네.”

선우방은 극구 부인했다.

사실이었어도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한 뜻이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드러났다.

“다행히 놀지는 않은 모양이네.”

“경쟁자들이 워낙 대단해서 말이지. 혼인을 핑계로 뒤처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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