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장. 공동산으로. -04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다들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걸 오중건이 말했기에 모두들 눈치를 봤다.
“아미타불. 이 이상은 욕심인 것 같습니다.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으나 그걸 위해 과하게 전력을 배치하는 건 낭비입니다.”
“원시천존. 빈도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열지 못할 때 담현과 운상이 입을 열었다.
점창파 장문인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전쟁에 있어 정보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두 사람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모든 걸 쉽게 얻을 수는 없었고,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했다.
“두 분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제갈가주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저도 방장과 같은 생각입니다. 한 명의 고수가 아쉬운 마당에 고급 전력을 분산시키는 건 옳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장은 신강이 아니라 중원입니다. 지리적 이점은 저희에게 있습니다. 저희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별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점창파의 장문인을 바라보며 제갈문곡이 담현의 손을 들어 주었다.
정보는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승리였다.
전투에서는 져도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그게 이기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더욱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미타불. 꼭 우리가 유리하다고 보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공동산에 머물면서 지형에 대해 빠삭하게 파악했을 텐데요. 적어도 공동산에 한해서는 동등하지 않겠습니까?”
“연정 사태의 말도 맞습니다. 공동산만 놓고 보면 저희에게 큰 이점은 없습니다. 다만 감숙성, 그리고 중원 전역을 놓고 보면 어떻겠습니까?”
“호오.”
“일단 가장 먼저 보급에서 저희가 유리합니다. 마교도 나름 비축을 해 놓았겠으나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유리한 건 저희입니다. 또한 마교의 성향상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요.”
연정뿐만 아니라 회의장 안에 있던 대부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자존의 율법을 제일 중요시하는 마교의 성향상 수성전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단순무식하게 공격 일변도로 달려들지는 않겠으나 최소한 방어적으로 나오지는 않을 터였다.
“다만 변수가 있습니다.”
“지원군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정확하게는 신강이 아니라 중원무림에서의 지원군입니다.”
“……마도무림.”
“그렇습니다.”
연정은 물론이고 모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마도련은 와해되었으나 그렇다고 마도인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게다가 적의 적은 동료라는 말처럼 백도무림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교 쪽에 붙을 수도 있었다.
“전쟁을 빨리 끝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요.”
“다시 한번 모두의 힘을 모으고 합친다면 제아무리 마교라도 물리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그래 왔잖습니까.”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킬 요량인지 점창파 장문인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동조하듯 백리세가주가 맞장구를 쳤다.
한데 두 사람의 말에도 침체된 분위기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힘을 모으고 합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떻게 싸우느냐다. 무작정 우르르 달려든다고 해서 마교가 무너질 것 같은가?”
“패, 팽가주님.”
대놓고 면박을 주는 팽만철의 한마디에 점창파 장문인의 얼굴이 붉어졌다.
민망함에 터질 듯이 벌게진 것이었다.
그러나 팽만철을 향해 감히 따지지는 못했다.
“장문인이 보기에 가능할 것 같으면 솔선수범해 보이시든가. 보아하니 아무도 안 말릴 것 같은데.”
“끄응!”
누가 봐도 빈정대는 말투였으나 누구도 팽만철을 만류하지 않았다.
표현이 과격해서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해서 점창파가 앞장서준다면 그들로서는 나쁠 게 없기도 했고.
“우선은 마교의 전력부터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예.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점창파 장문인의 입을 다물게 만든 팽만철이 예의 퉁방울만 한 눈으로 오중건을 바라봤다.
째려보는 게 아니라 설명을 계속하라고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걸 이제는 잘 알기에 오중건은 당황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 갔다.
“좋아.”
“현재 공동산에는 십대마가와 사단이 집결해 있습니다. 십대마가에 대해서는 혹시라도 모르는 분이 계실 것 같아 부연설명하겠습니다. 십대마가를 듣고 마도련의 십대마문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원류는 십대마가입니다. 십대마문은 바로 십대마가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본인들은 강경하게 부인하지만 이게 사실입니다.”
“허어!”
“그랬었군.”
아는 이들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그런 사람들은 소수였다.
군소방파 출신들은 모르는 이들이 훨씬 더 많았기에 여기저기에서 놀람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희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십대마가 소속의 마인들은 이백 명 내외, 사단은 각각 오백 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중 철마단과 흑풍단은 제법 큰 피해를 입은 상태고요.”
“충원이 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잠자코 듣고 있던 남궁호가 입을 열었다.
감숙성이 신강과 연결되어 있는 만큼 충원의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더욱이 마교가 충원과 증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마교 역시 그동안 힘을 비축해 놓았으니 충원이 될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신강이 황폐한 지역이라고 하나 그렇다고 사막은 아니니까요. 충원을 넘어 증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그런가.”
오중건에게 묻기는 했으나 남궁호도 알고 있었다.
역지사지라고 그가 마교주였어도 충원을 지시했을 터였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 더더욱 빨리 결판을 내야 합니다. 충원과 증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시간이 꼭 우리 편이 아니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오중건의 시선이 남궁호를 지나 다른 이들에게로 향했다.
강렬한 눈빛으로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했던 것이다.
머뭇거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움직이자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동조하는 이들은 반 정도뿐이었다.
나머지 반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또 이 꼴인가.’
그 어느 때보다 단결력이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었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결속력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뭉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았기에 오중건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개방주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어찌 됐든 마교는 침략자입니다. 집 앞마당에 호랑이가 들어왔는데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죠. 쫓아내든가 죽이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역시 무상문주라니까. 말이 아주 시원시원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도망칠 거면 애초에 여기에 올 필요가 없지요. 항복하면 되니까.”
팽만철에 이어 호전적인 성격의 일우가 맞장구를 쳤다.
과거 반호진과 다투기도 했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한 명의 무인으로서 일우는 반호진을 존중했다.
“항복이란 단어는 좀…….”
“내가 틀린 말 했는가?”
일우의 시선이 작게 중얼거리는 중년인에게로 향했다.
바로 오중건의 눈빛을 슬그머니 피했던 이였다.
어쩔 수 없이 참전했다는 듯이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던 중년인을 일우는 매섭게 쏘아봤다.
“그게, 그러니까…….”
강렬한 일우의 눈빛에 중년인이 말을 더듬었다.
차마 마주 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누구도 그런 일우를 말리지 않았다.
몇몇은 일우와 같은 생각이었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자신도 똑같은 꼴을 당할까 봐 나서지 않았다.
-이럴 거라 예상 못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한데요.
-예상했는데 너무할 게 뭐가 있어? 다 입장이 달라서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패배하는 순간 모든 걸 잃을 텐데.
-배수진까지는 아니니까. 패배하더라도 봉문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거지.
툴툴거리던 사마의성이 반호진의 전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사마의성은 싸늘한 눈으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들을 노려봤다.
-너무 안일한 거 같아요. 봉문도 마교가 허락해야 할 수 있는 건데.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게 봉문이잖아요.
-본보기로 당할 이들이 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거지.
-하!
사마의성이 콧김을 내뿜었다.
어디라고 말하지 않았으나 그녀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반호진이 말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말이다.
그래서 더욱 기가 찼다.
-여기 있는 사람들 무시하면 안 돼. 어수룩해 보여도 다 살길 하나씩은 쥐고 있어. 그래야만 하는 이들이기도 하고.
-그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한 건 사실이니까요.
사마의성도 엄연히 일가의 수장이었다.
때문에 반호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건 아니었다.
-회의는 이제 겨우 시작했을 뿐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느냐. 힘뿐만 아니라 마음도 하나로 맞춰 가야지. 어쨌든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제갈가주님이 참으로 대단하신 것 같아요. 백도무림을 위해 제갈세가가 많이 희생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니 이제는 그 부담을 네가 나눠 가져야 하지 않겠어? 너무 한 곳에 치중되어 있는 것도 좋지 않아. 언제까지고 제갈세가가 지금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고.
-맞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마의성도 동의했다.
결국 고이면 썩는 법이었다.
그 예로 과거의 사마세가가 있었고.
어쩌면 제갈세가는 그걸 보았기에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까지 살아남은 걸지도 몰랐다.
“흐음.”
한편 서조운의 표정은 점점 못마땅하게 변했다.
어째 제갈문곡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반호진에 의존하는 듯한 기색이 많이 보여서였다.
대놓고 반호진을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무심코 힐끔거리는 수많은 눈길에 서조운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까지 반호진이 보여 준 게 있다지만 그럼에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왜 그래?”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요.”
“너도 눈치챘구나?”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정이륭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장 그만하더라도 수뇌부가 반호진을 의식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데 서조운이 모를 리 없었다.
상일기 역시 눈치챈 듯했고.
“하긴. 근데 보통은 다른 분들을 의존하는데 말이지.”
정이륭은 말을 아꼈다.
듣는 귀들이 많았기에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투에서는 못마땅한 기색이 선명하게 서려 있었다.
“내 말이요.”
“그렇지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냐. 보여 주신 게 있으니.”
“저도 알죠. 근데 아무리 그래도 과해요.”
“일단은 지켜보자고.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니.”
정이륭의 시선이 선우방과 모용척에게로 향했다.
여기 있는 두 사람만 같은 생각이 아니라는 듯이 둘의 표정도 비슷했다.
‘신기하네.’
반호진의 뒤를 묵묵히 지키고 있던 유호량은 지금 보이는 모든 광경이 신기했다.
떠돌아다니던 자신이 이런 회의에 참석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그것도 보통 회의가 아니라 백도무림을 이끄는 이들 대부분이 참석한 대회의였다.
당장 근처에 앉아 있는 이들만 하더라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이었다.
꿀꺽!
다시 봐도 놀라운 광경에 유호량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 정도로 긴장한 것이었다.
물론 무상문에 적을 둔 순간부터 이런 자리가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하는 것과 직접 겪는 건 차이가 컸다.
‘내가 이런 자리에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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