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15화 (415/468)

제 134장. 공동산으로. -03

약속된 집결지에 도착한 반호진은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분위기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상당히 침체되어 있었다.

사천당가와 아미파, 청성파처럼 습격을 당한 곳들이 많은지 부상자들도 눈에 많이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분위기가 너무 안 좋은데요.”

“부상자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주위를 살피던 사마의성과 정이륭이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혹시나 주변 사람들에게 들릴까 싶어 두 사람은 작게 말했다.

“얼핏 보면 패잔병 같은데요.”

반면에 모용척은 대놓고 혀를 찼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았는데 분위기만 보면 패배한 것 같아서였다.

투혼을 있는 대로 불태워도 모자랄 판에 패잔병들처럼 축 처져 있는 모습에 모용척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강적이니까. 마교가.”

“확실히 강하긴 했죠.”

자존심 강한 모용척도 이것만은 인정한다는 듯이 반호진의 말에 동조했다.

직접 싸워 봤기에 천하의 모용척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이라는 별칭이 붙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결국에는 도망쳤지.”

“정확하게는 오빠 때문이지만요.”

“나도 약간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 생각하는데.”

“턱도 없어요.”

모용척이 은근슬쩍 반호진에게 묻어 가려고 했으나 사마의성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분명 모용척도 활약을 하기는 했다.

그건 사마의성도 인정했다.

하지만 모용척 때문에 철마단과 흑풍단이 물러났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농담으로라도 인정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아닌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인 걸요.”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할 말이 없네.”

지극히 냉정한 사마의성의 자기평가에 모용척은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그로서는 할 말이 없어서였다.

“근데 확실한 건 지난번보다는 오빠에게 도움이 확실하게 되었다는 거죠. 우리 모두가요.”

“쳇! 병 주고 약 주는 거냐?”

“척 오빠는 그래서 안 기뻐요?”

“기분은 좋지. 근데 큰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렇지.”

“차차 나아질 거예요. 저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요. 나태해지지만 않는다면.”

마지막 말이 모용척의 가슴에 콱 박혔다.

과거의 그를 떠올리는 말이어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무슨 조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형님.”

“따로 계획이 있겠지. 우리가 아는 걸 수뇌부가 모를 리 없으니까. 괜히 회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겠죠?”

서조운이 동조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쟁이 처음도 아니고 그와 마찬가지로 수뇌부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들이었다.

그런 만큼 나름의 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그게 수뇌부의 역할이기도 하고. 단순히 지휘하고 싸우는 것만이 수뇌부가 할 일은 아니니까. 큰 권한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말 잘했다. 그러니 나와 함께 회의하러 가자꾸나.”

“예?”

함께 도착한 담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법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이었다.

“반응을 보니 참여하지 않을 작정이었구나?”

“사부님과 대사형이 있는데 저까지 굳이 참석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너니까 당연히 참석해야 하지 않겠느냐. 소림사의 속가장문인이 너인데. 더구나 무상문주이자 천하제일인이지 않더냐.”

담현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입을 열었다.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거야 말로 얼토당토않는 소리였다.

소림사 속가장문인에 당대의 천하제일인이면 자격은 차고 넘쳤다.

“천하제일인이라니요.”

“애써 겸양할 필요 없다. 네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군말 말고 따라오너라.”

“알겠습니다.”

담현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때는 가급적 따르는 게 좋았기에 반호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담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용 공자와 서 공자, 사마 소저도 함께 들어갑시다. 모용세가와 서가장도 와 있을 터이니.”

“그리하겠습니다.”

“예.”

“저도요?”

담담히 대답하는 모용척, 서조운과 달리 사마의성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사람이야 모용세가주와 서가장주가 참석해 있을 가능성이 크기에 함께 가도 크게 상관없다지만 자신은 달라서였다.

사마세가의 수장이고 대표이지만 아직 무림의 인식은 멸문한 무림세가일 뿐이었다.

한데 자신도 함께 가자고 하자 사마의성은 놀란 표정으로 담현을 바라봤다.

“사마세가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현재 무상문 소속이기도 하고. 발언권은 없겠으나 참석하는 것 가지고 따지거나 눈치 주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있으면 제가 가만 안 둘 겁니다.”

“허허허. 호진이까지 가지 않을 겁니다. 제가 먼저 허락했다고 말할 것이니까요.”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반호진이 더없이 단호하게 말하자 담현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나올 걸 그는 예상해서였다.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사마의성이 참석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또 이번 정마대전은 소수의 전쟁이 아니라 모두가 힘을 합쳐 싸워야 하는 전쟁이었기에 사마의성도 반드시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장.”

“개인적으로 사마 소저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사마세가가 하루빨리 재건되길 바라기도 하고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공손히 읍을 해 오는 사마의성을 향해 담현은 빙긋 웃어 보였다.

여자였기에 사마세가를 재건하기가 쉽지는 않겠으나 그럼에도 담현은 사마의성이 잘할 거라고 생각했다.

청순한 외모와 달리 여장부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두 분도 함께 들어가시지요.”

따스한 눈빛으로 사마의성을 바라보던 담현이 고개를 돌렸다.

바로 상일기와 정이륭이 서 있는 곳으로.

“알겠습니다.”

“예.”

서조운과 모용척, 사마의성까지 참석하는 마당이었기에 상일기와 정이륭도 거절하지 않았다.

사태가 사태이니만큼 둘 역시 수뇌부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럼 들어가시죠.”

이윽고 담현을 필두로 일행 모두 커다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떠들썩하던 장내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담현과 법무를 비롯해서 반호진과 상일기, 당우혁, 연정, 청성파의 장문인이 차례대로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이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방장.”

“아미타불.”

천사맹, 마도련과 전쟁을 치를 때보다 더 초췌해진 제갈문곡이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반겨 주었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담현의 등장에 한시름 놓았다는 기색이 얼굴 가득 서려 있자 반호진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는 빠르게 장내를 살폈다.

아직 전부 다 오지는 않았으나 얼추 반 이상은 집결지에 도착한 듯싶었다.

“이쪽에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의 자리도 금방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등장만으로 조용해진 장내에 제갈문곡이 옅게 웃으며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상일기와 정이륭이 앉을 자리를 따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조운은 서이경의 옆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부친에게 눈인사만 하고 반호진의 옆자리를 지켰다.

“상황이 썩 좋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방장께서도 아시겠지만 집결지로 오는 동안 꽤 많은 곳들이 사단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몇몇 곳들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고요.”

“분위기를 보고 어느 정도 짐작하기는 했습니다.”

담현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예상하기는 했으나 이렇게 직접적으로 전해 듣자 씁쓸해진 것이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이런 상황까지 상정하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제가 미흡했습니다.”

“그게 어찌 제갈가주의 잘못이겠습니까. 마교가 과거와는 다르게 움직인 것을. 잘못이 있다면 우리 모두에게 있겠지요. 과거의 마교만 생각하고 대응했으니.”

“방장의 말씀도 틀리진 않으나 잘못의 경중으로 따지자면 제가 큽니다.”

제갈문곡은 말만 하지 않았다.

앉아 있는 수뇌부들을 향해 일일이 허리를 숙였다.

담현을 비롯해서 반호진 일행이 도착하기 전에도 사과를 했지만 한 번 더 했다.

허리 한 번 숙이는 게 힘든 일도 아니었기에 제갈문곡은 망설이지 않았다.

“어허! 괜찮소이다!”

“이미 사과는 하시지 않았습니까.”

“적어도 저는 제갈가주님을 탓하지 않습니다.”

깍듯한 제갈문곡의 사과에 대부분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정천맹의 군사로서 아예 잘못이 없다고는 보기 힘들었으나 그렇다고 그가 전적으로 잘못한 건 아니었다.

그걸 다들 알았기에 제갈문곡에게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이 사안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고, 공동산에 자리 잡은 마교의 전력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더 알아낸 것들이 있습니까?”

분위기를 환기시킬 겸 담현이 화제를 돌렸다.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고.

마교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작 현재까지 알려진 건 극히 적었다.

“흠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안 그래도 방장과 당가주님, 연정 사태와 장문인께서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먼저 와 있던 오중건이 헛기침을 하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모든 전력이 집결한 건 아니지만 올 사람은 다 왔기에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미리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전력입니다. 지원군이 올 가능성도 있으니 그 부분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지원군 말인가?”

이어지는 오중건의 말에 당우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당장 마교의 전력만 생각했지 지원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재 곤륜파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현재 곤륜파는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유는 신강의 무인들이 곤륜산 인근에 집결하고 있어서입니다. 오늘 아침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현재 집결한 인원이 곤륜파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 말은 감숙성으로 넘어올 수도 있단 뜻이로군.”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게 아니라면 곤륜파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히 견제할 목적이 아니라.”

“곤륜파가 막을 수 있겠나?”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신강무림 쪽은 저희도 자세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서요.”

오중건이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당우혁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은 오중건에게 따지지 못했다.

새외무림, 그것도 마교의 총본산이 있는 신강이었다.

그런 곳에 개방의 제자가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하긴. 신강은 서장이나 묘강과는 완전히 다르니까.”

죄송하다는 듯이 말하는 오중건을 보며 당우혁은 고개를 저었다.

새외무림 중에서도 특히 신강은 개방의 영향력이 전혀 닿지 않는 곳임을 잘 알아서였다.

“신강은 힘들어도 곤륜산은 청해성이지 않나. 곤륜산으로 향하는 길목을 예의주시하면 지원군의 유무나 규모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이 가능할 듯싶은데.”

점창파의 장문인이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신강이 특별하고 위험한 지역이라는 점에서는 그도 동의했다.

그러나 곤륜산은 엄연히 청해성에 있었다.

“안 그래도 그런 방법으로 매일 마교도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절정고수들입니다. 절정고수들이 마음먹고 움직이거나 몸을 숨기면 제아무리 본방이라도 완벽하게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으음!”

곳곳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개방은 방도수들도 많고 고수도 많았으나 전원 다 높은 경지의 무인은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공동산에 있는 마교도들은 최소가 절정고수입니다. 그 밑이 없습니다. 그래서 집결지로 오는 도중에 많이들 당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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