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장. 공동산으로. -01
주인의 마음을 읽은 듯 애마가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돌진했다.
정확히 반호진을 향해서 전력질주했던 것이다.
거기에 전력을 끌어올린 철마단주의 기세가 합쳐졌다.
방어 따위는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이 일격필살의 기세로 철마단주가 반호진에게 돌진했다.
두두두두!
거대한 철마와 일심동체가 되어 돌진하는 철마단주의 기세는 대단했다.
방어를 도외시해서 그런지 그 무엇도 뚫어 버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했다.
일격에 모든 걸 건 만큼 실패했을 시의 위험부담도 컸다.
스윽.
그렇기에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정면대결을 피했을 것이었다.
굳이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대로 싸울 필요는 없으니까.
또한 상대방 공격이 실패했을 시를 생각하면 피한 후 반격하는 게 훨씬 이득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반호진은 정면대결을 선택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 모습에 철마단주가 비릿한 얼굴로 포효했다.
소림검신이라 불리며 중원제일검인 반호진이라면 절대 승부를 피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정확히 맞았다.
그래서 철마단주는 젖 먹던 힘까지 모조리 끌어올렸다.
꽈아아앙!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던 철마단주와 반호진이 충돌했다.
그로 인해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후폭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초월경의 고수끼리 충돌하자 여파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그 여파가 얼마나 대단한지 꽤나 떨어진 거리에서 싸우던 철마단이 전투를 멈추고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어떻게 됐지?”
“무조건 단주님의 승리다. 속도가 붙을 대로 붙은 상태에서 격돌했어. 제아무리 검신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단주님의 돌격을 정면으로 맞고 멀쩡하긴 힘들지. 방금 전의 일격은 다른 단주들이라고 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
“가급적이면 정면대결을 피하지.”
충돌로 인해 일어난 먼지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며 철마단원들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런 그들의 두 눈에는 한 점의 의심도 서려 있지 않았다.
다들 철마단주의 승리, 혹은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그들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허업!”
서서히 가라앉는 먼지구름 사이로 두 개의 인영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하나의 인영과 한 쌍의 인마(人馬)였는데 놀랍게도 둘은 대치 상태였다.
체급만 봐도 인마 쪽이 압도적이고 심지어 반호진은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무승부였다.
부르르르!
아니, 엄밀히 따지자면 반호진의 압승이었다.
모든 게 불리했음에도 반호진은 철마단주의 공격을 온전히 받았다.
거기에 더해 천천히 철마단주를 밀어 냈다.
“이익!”
안간힘을 써도 덜덜덜 떨리는 오른팔에 철마단주가 악을 썼다.
언제까지고 놀라기만 할 수는 없었기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서 재차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월도에 맞닿아 있는 검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마치 아교라도 발라 놓은 것마냥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에 철마단주가 어금니를 악물었다.
스윽.
그때 왼쪽 팔로 뒷짐을 지고 있던 반호진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막아 냈을 때 말고는 꼼짝도 하지 않던 그가 철마단주를 지그시 바라보며 팔을 움직였던 것이다.
한데 그로 인한 결과가 놀라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움직이지 못하던 철마단주와 달리 반호진의 검은 너무나 가볍게 휘둘러지며 몇 배는 더 큰 언월도를 튕겨 냈다.
푸히히힝!
언월도를 타고 넘어 온 충격이 철마단주의 몸을 지나 최종적으로 말에게 전달되자 철마가 화들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고통도 고통이지만 느껴지는 충격이 상당해서였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고통에 철마단주의 애마가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 이런!”
동시에 철마단주가 대경실색했다.
애마의 본능적인 움직임이 그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와서였다.
지금처럼 그에게 있어 애매한 간격은 반대로 반호진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유리했다.
더구나 말은 태생적으로 앞뒤라면 모를까 좌우로 움직이는 데는 그리 민첩하지 못했기에 회피 능력이 많이 부족했다.
스으윽.
그래서 철마단주는 보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었다.
반호진이 어떤 식으로 공격해 올지 말이다.
그리고 반호진은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황금빛 검강을 거대하게 일으키며 그와 애마를 동시에 양분할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한 발 내디디는 것조차 귀찮다는 듯이 반호진은 검만 휘둘렀다.
검강을 키워서 그대로 휘둘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속도가 벼락을 방불케 할 정도라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회피하는 속도가 느린 게 기마대인데 반호진이 빠르게 일격을 뿌리자 철마단주는 모든 기력을 끌어올려서 언월도에 집중했다.
“크으윽!”
철마단주는 애초에 맞받아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제자리에서는 힘이 부족하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철마단주는 오로지 반호진의 일검을 받아 내는 것에만 목적을 두었다.
쿠웅!
그런 노력 덕분인지 철마단주는 반호진의 일격을 가까스로 막아 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겨우 막아 내기는 했으나 철마단주는 볼썽사납게 애마와 함께 주저앉아야 했다.
속된 말로 단 일검에 처참하게 발린 것이었다.
까드득!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철마단주의 얼굴이 살벌하게 일그러졌다.
치솟아 오르는 분노가 얼굴에 드러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얼마 가지 못했다.
연이어 쇄도한 반호진의 참격이 그에게 작렬해서였다.
뻐어어엉!
눈부신 금광이 허공을 가득 채움과 동시에 철마단주가 나뒹굴었다.
간신히 반호진의 일검을 받아 내기는 했으나 충격은 어찌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철마단주의 애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호진의 참격에 철마도 주인과 함께 처참하게 뒤로 넘어갔다.
“저, 저런!”
“말도 안 돼!”
그 광경에 지켜보던 모든 철마단원들이 경악했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사단의 단주면 마교를 지탱하는 열 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십대마가(十代魔家)의 가주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 실력자가 바로 사단의 단주들인데 그중 한 명인 철마단주를 어린아이 다루듯 반호진이 다루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저벅저벅.
하지만 반호진은 철마단이 놀라거나 말거나 여전히 왼팔로 뒷짐을 진 채로 철마단주에게 다가갔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한 걸음걸이였는데 그 모습을 본 철마단주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반호진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쌔애액!
말과 떨어졌기에 힘은 상대적으로 떨어졌으나 대신 철마단주는 속도와 자유를 얻었다.
그 점을 그는 십분 활용했다.
더불어 경시하던 마음을 버렸다.
얕잡아보기에는 지금까지 반호진이 보여 준 무위가 압도적이었기에 철마단주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언월도를 휘둘렀다.
꽝! 꽝! 꽝! 꽝!
무게가 상당한 언월도를 철마단주는 마치 공깃돌 다루듯이 다루었다.
그뿐만 아니라 보법의 수준 역시 상당했다.
기마대의 대장이었기에 경신술이 당연히 부족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쩌어엉!
다만 문제는 대단한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유효타가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분명 철마단주는 강했다.
괜히 초월경에 오른 절대고수가 아니라는 듯이 그가 언월도를 한 번 휘두르면 대지가 갈라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엄청난 위력이 반호진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젠장!”
전력을 다해 언월도를 휘두르고 강기를 뿌렸음에도 반호진의 몸에는 닿지 않았다.
단 일격도 반호진이 허용하지 않아서였다.
오히려 간간이 쇄도하는 반호진의 일검에 철마단주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맞는 순간 사지 중 하나는 무조건 잘려 나갈 것임을 잘 알아서였다.
“끄아아악!”
“니, 니미럴!”
언월도를 휘두르던 철마단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익숙한 목소리가 비명을 내지르는 게 들려서였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철마단주는 반호진과의 싸움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정신이 딴 데 가 있네? 지금 그럴 때가 아닐 텐데.”
“큭!”
철마단주의 입에서 다시 한번 신음이 흘러나왔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왼쪽 어깨에 깊은 자상과 함께 화끈거리는 고통이 느껴지자 신음이 앙다문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뭐, 나한테는 좋으려나. 쉽게 끝내면 나야 편하니까.”
쌔애애액!
이제는 악마의 손길처럼 느껴지는 금빛 검강이 전광석화처럼 목을 향해 뻗어왔다.
목을 베겠다는 의도가 명백하게 서려 있는 일격이었다.
그런데 단순하다 못해 정직한 공격을 철마단주는 피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반호진이 피할 수 없도록 상황을 만들었다.
‘……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언월도의 넓은 도신을 이용해 가까스로 반호진의 찌르기를 막은 철마단주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철마단은 물론이고 흑풍대의 피해가 상당하지만 아미파와 청성파, 사천당가도 멀쩡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건 자신들이라는 점이었다.
‘이대로 가면 전멸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강한 반호진의 모습에 철마단주는 이를 악물었다.
분하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마교도로서 결사항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후일을 도모할 것인지를.
‘내가 죽을 자리는 이곳이 아니다.’
철마단주는 이내 결정을 내렸다.
죽음이 두렵다기보다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판단했기에 그는 물러나는 쪽을 선택했다.
자신의 목숨은 교주의 것이기에 죽더라도 주군에게 도움이 된 후에 죽어야 했다.
그래서 철마단주는 망설이지 않고 남은 진기를 전부 다 애병에 쏟아부었다.
웅웅웅웅!
막대한 공력이 한순간에 집중되자 언월도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한계까지 공력이 주입되자 폭발할 것처럼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이내 반호진이 서 있는 방향으로 폭발했다.
파검술(破劍術)처럼 병기의 파편을 이용해 반호진을 공격한 것이었다.
터터터텅!
잘게 부서진 수백 개의 파편들이 강기를 머금은 채로 반호진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기습과도 같은 일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철마단주의 공격은 실패했다.
반호진이 일으킨 호신강기를 끝내 넘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공격은 실패했을지 몰라도 목적은 달성했다.
“역시 도주인가.”
“전원 퇴각하라!”
호신강기를 거둔 반호진의 눈에 애마를 타고 전력으로 질주하는 철마단주의 뒷모습이 잡혔다.
처음의 패기는 내다 버렸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리고 있었는데 그의 지시에 철마단 역시 빠르게 퇴각하기 시작했다.
“갈 땐 가더라도 하나는 내놓고 가야지.”
순식간에 멀어진 철마단주의 모습에 반호진이 진기를 움직였다.
그러자 근처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던 철검 한 자루가 섬광이 되어 쏘아졌다.
이기어검을 펼쳐 철마단주를 공격한 것이었다.
쌔애애액!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한줄기 섬광이 철마단주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심장을 노렸는데 철마단주가 가까스로 피한 것이었다.
그러나 철마단주는 목숨을 챙긴 대신 왼팔을 잃었다.
“단주님!”
“멈추지 마라!”
왼쪽 어깨에서 시뻘건 피가 솟구쳤지만 철마단주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멈추면 겨우 부지한 목숨을 잃을 게 뻔했기에 철마단주는 부하들을 독려하며 악착같이 도망쳤다.
“흐음.”
상황은 흑풍단주도 다르지 않았다.
왼팔을 통째로 잃은 철마단주만큼은 아니지만 흑풍단주 역시 상일기에게 왼손을 잃은 채로 피를 흘리며 도주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 문주님. 어차피 곧 다시 만날 테니까요.”
“이번에 둘 다 잡았다면 마교에 제법 큰 타격이 되었을 겁니다.”
“대신 부단주들을 싹 다 잡지 않았습니까. 아쉬움은 있지만 이 정도 성과면 나쁘지 않습니다.”
반호진은 얼굴 가득 아쉬운 기색을 띠는 상일기를 달랬다.
그라고 아쉽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했다.
“맞습니다, 상 문주님. 비록 단주들은 놓쳤지만 대신 적잖게 피해를 입혔으니 더는 마음대로 날뛰지 못할 겁니다.”
“피해는 어떻습니까?”
“본가보다는 청성파와 아미파의 피해가 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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