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11화 (411/468)

제 133장. 첫 교전. -02

부단주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강자존의 율법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게 바로 그와 단주였다.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궁금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천하십대고수들의 실력이 말이다.

“투왕이라.”

“화산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꼭 우리가 갈 필요가 있을까. 지금쯤 제자들을 이끌고 오고 있을 텐데.”

“다른 사단이 먼저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요. 구유마가(九幽魔家)에 의하면 종남파와 함께 이동 중이랍니다.”

따로 알아봤는지 부단주가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나 단주의 태도는 여전히 굳건했다.

“곧 만나겠군.”

“저희에게까지 안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력이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니 오히려 만날 필요가 없지 않나?”

“단주님의 말씀도 틀리지는 않았습니다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하면 된다. 천하십대고수가 투왕만 있는 것도 아니고.”

초조해하는 부단주와 달리 단주는 태연했다.

천하십대고수들의 실력이 궁금한 건 사실이나 교주의 명령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교주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었다.

“투왕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감숙성에 올 만한 천하십대고수는…….”

부단주가 말에 올라탄 채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뿐만 아니라 단원들 역시 똑같은 표정이라는 점이었다.

마교도로서 어마어마한 호승심을 지니고 있는 만큼 다들 중원무림이 자랑하는 천하십대고수의 실력이 궁금했다.

“떠올린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재미로 상상해 보는 겁니다, 재미로. 투왕이 화산파의 장문인이라고 하지만 천하십대고수들 중에서는 끗발이 좀 떨어지는 무인이니까요. 잘 쳐줘야 중간 정도이니. 섬서성의 화산파를 제외하면 사천당가가 가장 빨리 도착하겠네요.”

“독왕이라.”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사천당가는 청성파와 아미파랑 함께 북진 중이라고 합니다.”

“어디인지는 모르겠으나 오긴 오는군.”

휘익!

단주의 중얼거림에 부단주를 비롯해서 단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건 분명 먼지구름이었다.

제법 많은 인원이 이동 중이라는 걸 뜻했기에 부단주가 두 눈을 번쩍였다.

“남쪽에서 오는 이들이라면.”

“부단주가 말한 이들일지도 모르지.”

푸르릉!

흥분하는 부단주의 기색을 느낀 모양인지 타고 있던 말이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철갑을 입고 있음에도 전혀 무겁지 않은 모양인지 가볍게 몸을 떠는 말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부단주가 안력을 집중했다.

내공을 이용해 다가오는 이들을 살펴봤다.

“여승? 비구니? 아미파입니다!”

“그럼 옆에 도복을 입은 이들은 청성파겠군.”

“가운데에서 달려오는 이들이 사천당가일 겁니다.”

“예상보다 빨리 왔는데.”

커다란 언월도를 늘어뜨리며 단주가 두 눈에 내력을 집중했다.

어디 소속인지 파악하려는 게 아니라 인원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세어 보기 위해서였다.

“숫자는 대략 육백에서 칠백 명가량 될 듯싶습니다, 단주님.”

“내가 보기에도 그 정도쯤 되는 것 같군.”

“수적으로는 불리하지만 대신 지형은 저희가 유리합니다. 기마대는 평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니까요.”

“그럼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정천맹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니까.”

“겸사겸사 본교의 위대함도 알리고요. 그 제물로 사천당가와 아미파, 청성파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단주가 비릿하게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월척에 부단주는 언제 투덜거렸냐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두 눈을 번뜩였다.

“가자고.”

“출진이다!”

뿌우우웅!

단주의 지시에 부단주가 목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단원이 뿔피리를 있는 힘껏 불었다.

후미까지 목소리가 닿지 않을 수도 있기에 미리 약속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두두두두!

뿔피리 소리가 그치기 무섭게 총 오백 기의 기마대가 전방을 향해 진격했다.

“전방에 적입니다!”

“철기마, 마교의 철마단(鐵馬團)입니다!”

따로 척후를 두지는 않았으나 눈이 밝은 이들을 앞에 두어 전방을 살피도록 했다.

혹시 모를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당우혁은 늦지 않게 철마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숙성에 들어오자마자 철마단과 마주치다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감숙성을 완벽히 장악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공동산을 벗어나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겠지요.”

청성파 장문인의 말에 아미파의 연정이 쓴웃음을 지었다.

철마단과 마주친 것으로 여러 가지를 유추해 낼 수 있어서였다.

더불어 걱정도 되었다.

사천성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이곳까지 철마단이 왔다는 건 달리 말하면 감숙무림이 정리되었다는 뜻과도 같아서였다.

“이쪽의 숫자를 파악했을 텐데도 달려온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원시천존.”

당우혁의 말에 청성파 장문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역시 당우혁과 같은 생각이어서였다.

무시 받고 기분 좋을 사람이 없기에 청성파 장문인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돌격해 오는 철마단을 노려봤다.

“아미타불. 지원군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으음!”

청성파 장문인이 자기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듣고 보니 연정의 말도 일리가 있어서였다.

현재 육안으로 보이는 건 철마단뿐이지만 멀지 않은 곳에 다른 사단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사단 전체가 몰려오는 중일 수도 있었고.

“반대로 생각하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뭉치기 전에 각개격파할 수 있는.”

긴장하는 청성파 장문인과 달리 당우혁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자존심에 금이 가기도 했지만 말한 대로 기회인 것 또한 사실이어서였다.

더해서 그 대단하다는 철마단의 실력을 직접 견식해 보고 싶었다.

“시간 싸움이 되겠군요.”

“수적으로는 저희가 조금 더 우세합니다. 그리고 저와 두 분이 계시죠. 철마단이 대단하고 이곳이 기마대에게 유리한 평원이라지만 무림의 전쟁은 군대의 전쟁과 많이 다르죠.”

“맞습니다.”

청성파 장문인이 당우혁의 말에 동조했다.

지형적으로 철마단이 유리한 건 사실이나 그게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쪽에는 독술의 명가인 사천당가가 있었다.

거기다 바람 역시 그들의 편이었다.

“때마침 바람도 순풍이고요.”

연정이 굳은살로 가득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만지작거리듯이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안 그래도 궁금했습니다. 그 대단하다는 마교의 사단이 본가의 독에도 버티는지가 말이죠.”

“제자들은 전투 준비해라!”

비릿한 표정의 당우혁에 이어 청성파 장문인이 우렁차게 포효했다.

서로가 서로를 확인한 이상 이제 남은 건 정면 대결뿐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철마단이라면, 마교의 사단 중 한 곳의 전멸이라면 정천맹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공동파가 멸문당한 걸 생각하면 철마단 정도는 사라져야 균형이 맞았다.

“아미타불!”

뒤이어 연정이 불심 가득한 불호를 터트리자 아미파 여승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자대비한 표정에 투혼이 서리기 시작했다.

살계를 피해야 할 불제자이지만 지금의 싸움은 중원의 평화를 위해서였다.

악인 한 명을 죽이는 것으로 선인 백 명을 살릴 수 있다면 아미파의 여승들은 얼마든지 지옥으로 걸어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

파아아앗!

그리고 그건 아미파의 장문인 연정도 마찬가지였다.

당우혁이 살기를 줄기줄기 내뿜으며 앞장서서 이동하자 연정 역시 나란히 경신술을 펼쳤다.

“본파도 있습니다, 연정 사태.”

“시간 싸움이 될 터이니 함께 몰아붙이지요.”

“알겠습니다.”

반대쪽에서 이동하던 청성파 장문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현재 보이는 건 철마단뿐이었으나 사단의 나머지 세 곳이 언제라도 합류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최대한 빨리 전멸시키는 게 좋았다.

합류하게 되면 도리어 밀리는 건 이쪽이 될 가능성이 높았기에 청성파 장문인은 당우혁과 마찬가지로 투기와 살기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두두두두!

그사이 철마단이 어느새 삼백 장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굳이 안력을 집중하지 않아도 육안만으로 마인들의 수염까지 보이는 거리였다.

“모조리 쓸어버려라!”

“단 한 명도 살려 두지 마라!”

철마단의 질주가 더욱 빨라졌다.

지금까지는 가볍게 달려왔다는 듯이 속도를 급격히 올렸는데 사천당가와 청성파, 아미파의 제자들이 느끼기에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빨라진 듯했다.

파아아앗!

하지만 달라진 건 속도만이 아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철마단이 흩뿌리는 기세 역시 점점 더 강렬해졌다.

온몸을 넘어 철갑을 뒤집어쓴 말에게서까지 무시무시한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모든 기운과 기세가 합쳐져 위압감이 되어 사천당가, 아미파, 청성파를 짓눌렀다.

“흥!”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몸으로 분명하게 느껴지는 철마단의 기세에 당우혁이 코웃음을 치며 절대고수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분명 철마단은 대단했다.

그러나 초월경의 고수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 버린 존재였다.

당우혁은 그 사실을 몸소 증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슈아아앗!

폭발적인 당우혁의 기도에 철마단의 기세가 찢어졌다.

혼자만의 힘으로 철마단의 기세를 갈라 버린 것이었다.

뒤이어 연정과 청성파 장문인도 공력을 잔뜩 끌어올렸다.

당우혁처럼 철마단의 기세를 찢어 버리기 위해서였다.

파바바밧!

한데 그 순간 철마단이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쐐기 모양으로 돌진해 오던 철마단이 갑자기 세 개로 나뉘어졌다.

‘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건가?’

갑작스러운 철마단의 움직임에 당우혁이 미간을 좁혔다.

이것 말고는 딱히 예상 가는 게 없어서였다.

이 추측이 가장 현실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세 무리로 나뉘어져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당우혁의 두 눈이 예리하게 번뜩였다.

앞서 겪은 전쟁으로 그는 확실하게 느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절대 독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끼면 똥 된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스슥!

살아만 있다면 독은 얼마든지 만들어서 비축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당우혁은 출발할 때 최소한의 양만 남기고 전부 가지고 왔다.

그 독들을 그는 모조리 살포하도록 수신호로 지시했다.

쌔애액!

한곳을 노리면 효과야 확실하겠지만 당우혁은 전방위적으로 독을 뿌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독에 관해서는 중원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사천당가의 독이었다.

거기다 바람까지 사천당가의 편이었기에 당우혁은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당우혁의 귓전으로 사나운 파공성이 들려왔다.

퍼퍽! 퍼퍼퍽!

“끄아악!”

“커헉!”

동시에 비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그것도 그의 가솔들에게서 말이다.

쌔애애액!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당우혁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을 때 예의 맹렬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그의 부하들을 공격한 무언가가 이번에는 그를 노리고서 날아오는 것이었다.

터터텅!

“……손도끼?”

호신강기를 일으킬 것도 없이 가볍게 팔을 휘젓는 것으로 날아오는 것들을 튕겨 낸 당우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 뼘을 살짝 넘는 평범한 손도끼에 수하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퍼퍼퍼펑!

그러나 당우혁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철마단이 무자비한 기세로 아미파와 청성파를 쓸어버렸다.

상대가 기마대였기에 나름 대비를 하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철마단의 전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뛰어났다.

단순히 돌파력만 뛰어난 게 아니라는 듯이 유려한 기동력을 선보이며 청성파와 아미파 제자들을 학살했다.

“안 그래도 궁금했었지. 독왕의 실력이.”

“……철마단주인가.”

“맞다.”

“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의 패기는 사라지고 단말마만 가득했다.

하지만 당우혁은 물론이고 연정과 청성파 장문인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각자의 앞에 선 이들의 실력이 결코 세 사람에 비해 크게 부족하지 않아서였다.

파바바밧!

한데 놀랄 일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먼지구름과 마기에 당우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새로운 적의 등장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것이었다.

“서두른 보람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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