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장. 소집령(召集令). -03
마교가 침공해 왔다는 말만 짤막하게 들었으나 그것만으로 모용희수는 유추할 수 있었다.
어째서 반호진이 보자고 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맞아. 여기보다는 모용세가가 더 안전하니까. 너도 심리적으로 더 편안함을 느낄 테고.”
“아니요. 제 생각은 달라요.”
“다르다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반호진은 물론이고 모용척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용희수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서였다.
“네. 본가라고 해서 꼭 더 안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거리상으로만 보더라도 본가보다는 이곳이 더 나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예요. 혼자만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으음.”
진심을 담아 설득하는 모용희수의 모습에 반호진이 침음을 흘렸다.
하나하나가 다 설득력이 있어서였다.
“안전을 말씀하셨는데 본가나 이곳이나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마교 입장에서 봤을 때 여기보다는 본가를 노릴 가능성이 더 크고요. 게다가 이곳에는 사마 소저가 직접 만든 절진도 설치되어 있잖아요. 차출될 병력을 생각하면 본가의 전력이 압도적이라고 말하기도 힘들고요.”
“반박하기가 힘드네.”
모용희수의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모용척이 자기도 모르게 설득되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건 반호진도 마찬가지였다.
조목조목 말하는 게 다 신빙성이 있었다.
“한마디로 이곳에 남는 게 낫다?”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저 혼자 떠나고 싶지도 않고요. 그렇다고 이곳에 숨어 있겠다는 게 아니에요.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오빠 대신에 이곳을 지키고 싶기도 하고요.”
모용희수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에게 있어 여기는 제이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녀가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장소이기도 했고.
그래서 전쟁이라는 이유로 모두를 버리고 혼자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 대신이라.”
“또 천영각도 있잖아요. 오빠 성격상 천영각을 전부 데려가지는 않을 테고요.”
“맞아. 개방이 있는데 굳이 데려갈 필요는 없지. 이곳을 지킬 인원도 필요하니까.”
반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고 하나 그래도 제대로 된 살수 훈련을 받은 이들이 천영각원들이었다.
거기다 반호진이 직접 개량한 무공까지 익혔기에 혹시 모를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최소한의 방어는 충분히 해낼 역량이 있었다.
“무력은 부족하지만 저는 대신 모용세가주의 딸로서 약간의 영향력이 있어요.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여러 곳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단 얘기죠.”
“반대로 네가 표적이 되어 노려질 수도 있어.”
“그건 모용세가주의 딸로서 예전부터 감당하고 있던 것이기도 해요.”
걱정이 담긴 반호진의 어조에도 모용희수는 씩씩하게 말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 모용희수의 모습에 반호진은 반쯤 넘어가고 말았다.
“모용 대협께서는 네가 본가로 복귀하길 바라고 계실 수도 있어.”
“분명 마음은 그러실 거예요. 근데 아빠라면 제 결정을 존중해 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못 가는 대신에 오빠가 가기도 하고.”
“왜 나는 걸고넘어져?”
잠자코 있던 모용척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만 오빠 운운해서였다.
그런데 모용희수는 당돌했다.
이게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럴 때라도 써먹어야지.”
“참나.”
“아빠를 잘 부탁해. 알지? 오빠를 믿어서 내가 남겠다고 한 거.”
“말은 잘하지.”
“호진 오빠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그새 닮은 모양이네.”
모용척이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반호진과 자신을 함께 묶자 어이가 없어서였다.
“허!”
“안 그래요, 오빠?”
“이건 인정하기가 좀 그러네.”
편들어 주지 않는 반호진의 모습에 모용희수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자기 편을 들어 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자 모용희수는 반호진을 샐쭉한 표정으로 흘겨봤다.
“너무해요.”
“어쨌든 네 마음은 알겠어.”
“허락해 주시는 건가요?”
“응. 이유가 제법 타당하니까. 그래도 모용 가주님께 편지는 써서 보내. 많이 걱정하고 계실 테니까. 척이는 어디서 합류하실 건지 여쭈어보고.”
“감숙성에서 만나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요?”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리는 여동생을 일별한 모용척이 조심스레 말했다.
모용세가를 경유하지 않는다면 굳이 중간 지점에서 만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네 말도 맞기는 한데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니까. 지금 공동산에 있다고 해서 우리가 갈 때까지 공동산에 머무를 거란 보장이 없잖아.”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요. 가만히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죠. 알겠습니다. 희수랑 같이 바로 서찰을 작성하겠습니다.”
“출발할 준비도 하고.”
“예.”
모용척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황이 얼추 정리된 듯해서였다.
복잡했던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모용척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모용희수에게 눈치를 주었다.
얼른 일어나라고 눈빛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오빠 먼저 가. 나는 할 말이 조금 남아서.”
“얼른 해.”
찌릿!
눈치 없이 지껄이는 모용척을 모용희수는 매섭게 노려봤다.
모용척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눈빛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 눈빛에 모용척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그,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그래.”
강렬한 모용희수의 눈빛에 깨갱 하며 모용척이 물러나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는데 정작 모용희수에게는 당해 내지 못하는 게 너무 웃겼다.
달칵.
모용척이 조심스럽게 집무실을 나서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반호진은 물론이고 모용희수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아서였다.
후르릅.
대신 반호진이 차를 들이켜는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모용희수도 반사적으로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오빠.”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분위기를 잡는 거야?”
“분위기를 잡기는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생각을 정리한 거예요.”
“생각을 정리할 필요까지 있어?”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쓸데없이 너무 진지한 것 같아서였다.
“사실 많이 당황했거든요. 티를 최대한 안 내려고 해서 그렇지. 다른 곳도 아니고 마교가 대대적으로 침공한 상황이잖아요. 진짜 정마대전이 발발한 것이기도 하고요.”
“중원 마도(魔道)와는 격이 다르긴 하지. 마도련과 비교하는 게 마교를 무시하는 것일 정도로.”
반호진이 씁쓸한 기색을 띠었다.
그 정도로 마교라는 이름이 가지는 위압감은 어마어마했다.
마교가 침공할 때마다 중원무림이 거의 피에 잠기다시피 했고.
그리고 중원무림이 늘 이기기만 한 건 아니었기에 다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있으니까 움직인 거겠죠?”
“마교 입장에서는 정말 좋은 기회인 게 사실이니까. 연이은 전쟁에 백도무림의 전력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이니. 심지어 사도무림과 마도무림의 힘 역시 약해져서 중원무림의 전력 자체가 낮아진 상태라 놓치기 아까웠을 거야.”
반호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교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어서였다.
만약 그가 마교주였어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었다.
“조심하세요, 오빠. 꼭 건강히 돌아오셔야 해요.”
말을 아끼던 모용희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지만 결국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이 두 마디뿐이었다.
대신 모용희수는 짧은 두 마디에 모든 감정을 담았다.
“꼭 전쟁터에 남편을 보내는 부인처럼 말한다?”
“그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요?”
“이상하지. 우리가 혼인한 사이는 아닌데.”
“그렇긴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는 않잖아요.”
“뭐, 그것도 맞긴 하지.”
반호진은 부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할 자격이 모용희수에게는 있어서였다.
그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었고.
“저는 오빠가 다치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내 뜻대로 되나.”
“매일 아침 정화수를 떠 놓고 빌게요. 오빠가 무사귀환하기를요.”
모용희수의 커다란 눈이 반호진을 지그시 바라봤다.
마치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두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겠다는 듯이 말이다.
“나보다는 척이와 가주님의 무사귀환을 먼저 빌어야 하는 거 아냐?”
“두 사람은 저 말고 빌어 줄 사람이 많거든요.”
“나도 없지는 않아.”
“그렇지만 저보다 더 간절하게 염원하지는 않을걸요?”
모용희수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마음을 밝히고 나서부터는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저돌적으로 감정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에 반호진이 오히려 얼굴을 붉혔다.
“알았어. 노력해 볼게.”
“약속하신 거예요?”
“약속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리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이유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잖아요.”
목표를 명확하게 정할수록 달성할 확률이 높은 것처럼 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없는 자보다 이유가 있는 사람이 더 생존할 확률이 높았기에 모용희수는 맑은 눈으로 반호진을 직시했다.
“최대한 노력해 볼게. 그러니 너도 조심해. 이상하다 싶으면 절대 무리하지 말고 무조건 안전한 쪽으로 선택해.”
“알았어요, 명심할게요. 그리고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지키고 있을게요.”
“그래.”
스윽.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듯이 모용희수가 싱긋 웃었다.
그러고는 슬쩍 팔을 뻗어 반호진의 손등에 손을 포갰다.
한데 그럼에도 반호진은 손을 빼지 않았다.
***
마교의 침공이 알려져서인지 남창의 저잣거리 분위기도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걸 난희주는 확실하게 느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활기가 넘치는 건 똑같았으나 그 저변에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벌써 몇 번째 전쟁인지.”
“그러니까요.”
“무림 역사상 이렇게 전쟁이 연달아 일어난 적이 없던데.”
“보통은 하나씩 벌어지죠.”
난희주를 근접 호위하던 백설이 맞장구를 쳤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서였다.
“내 말이.”
“천사련과 마도련을 물리친 게 얼마나 됐다고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이번에도 이길 수 있을까요?”
백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교가 공동파를 무너뜨린 건 알려졌으나 그 외에는 전혀 밝혀진 게 없어서였다.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마교주와 구마가 누구인지도 알려지지 않았기에 백설은 굳은 얼굴로 난희주를 바라봤다.
“나도 모르겠어. 정보가 너무 없어서. 금가장은 물론이고 개방도 딱히 파악한 게 없는 것 같고.”
“역시 붙어 봐야 알까요.”
“다만 한 가지 짐작할 수 있는 건 마교가 승산 없는 싸움을 걸 리가 없다는 거지. 정천맹의 전력이 너무 많이 드러나 있기도 하고. 반대로 정천맹은 마교에 대해서 파악한 게 아무것도 없고.”
“거기에 공동파까지 무너졌죠. 곤륜파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고요.”
백설의 어조가 무거워졌다.
여러 면에서 정천맹이 불리했기에 백설은 굳은 얼굴로 멀리 보이는 장원을 응시했다.
“맞아. 정천맹이 불리한 건 사실이야. 근데 결과는 나와 봐야 알 수 있어. 연이은 전쟁으로 인해 소실된 전력이 상당하지만 반대로 현재 정천맹의 무인들은 역전의 용사들이야. 정예 중에 정예이기도 하고. 그러니 지레짐작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하긴. 무림 역사상 이렇게 연달아 전쟁을 치른 정천맹은 없었으니까요.”
정천맹, 무림맹 등등 백도무림이 뭉친 적은 과거에도 꽤 많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노련한 무인들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경험은 무시하기 힘드니까. 또 중원이기도 하고. 지리적인 이점을 무시하기 힘들거든. 그래서 마교가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어. 식량 문제도 그렇지만 지리적 불리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공동산에 똑같이 익숙해지면 결국 승패는 힘의 우열에 따라 결정될 테니까.”
“소, 소문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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