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08화 (408/468)

제 132장. 소집령(召集令). -02

“왜 다들 여기에 모여 있어?”

서조운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평소대로라면 각자 개인 훈련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기에 그는 의문이 떠오른 눈빛으로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했다.

“저희도 얘기 들었어요.”

“무슨 얘기?”

“마교가 침공해 왔다면서요?”

“그건 또 어떻게 들었대? 나도 방금 전에 알았는데.”

“부총관님이 아이들에게 말해 주는 걸 들었어요.”

예유화를 보며 서조운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 짧은 사이에 장원 전체에 퍼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으니 퍼지는 건 금방일 터였다.

“맞아. 마교의 습격으로 공동파가 전멸했다네.”

“허!”

“저, 정말요?”

이어지는 서조운의 말에 백휘경, 백휘성 형제가 경악했다.

아무리 공동파가 구대문파 중 말석이라고 하나 그래도 구대문파였다.

백도무림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가 공동파였다.

그런 공동파가 소리 소문 없이 전멸했다고 하자 쌍둥이 형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교면 그럴 수 있지. 단일 세력으로는 최강이라 불리는 곳이니까.”

반면에 예유화는 놀라기는 했어도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다.

전설처럼 회자되는 마교라면 공동파 하나쯤 멸문시키는 건 손쉬울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듣고 보니 그러네.”

“역시 마교라고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놀라운 건 사실이지. 강하다, 강하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공동파를 무너뜨리는 건 다른 문제니까.”

“맞아.”

백휘경, 백휘성 형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납득은 되지만 그럼에도 놀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왜 셋 다 날 찾아온 거야?”

“오빠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맞아요.”

“누나가 대표로 말할 거예요.”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때문에 서조운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체 뭔데 셋 다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

“저희도 함께 가고 싶어요. 중원무림을 위한 전쟁이잖아요. 저희들도 힘을 보태고 싶어요. 오빠가 그랬잖아요. 저희를 치료한 건 중원무림을 위해서라고요. 그러니 저희도 함께 싸우고 싶어요.”

“안 돼.”

서조운은 단칼에 거절했다.

셋 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었다고 하나 그래 봤자 아직 꼬맹이들이었다.

평범한 전투에 참여시키는 것도 고민이 되는데 상대가 다름 아닌 마교였다.

일단 움직이기만 하면 천하를 피로 잠기다시피 하는 곳인.

그렇기에 서조운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에 딱 잘라 말했다.

“오빠.”

“형님!”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이제 막 무공에 입문한 것이나 다름없는 녀석들이 어딜 함께 가겠다고. 절대 안 돼.”

세 명이 간절하게 쳐다봤지만 서조운은 단호했다.

셋 다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그래 봤자 이제 애송이 수준을 벗어나는 정도였다.

절정은커녕 일류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 게 세 명이었기에 서조운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싸울 수 있어요!”

“맞습니다!”

“구명지은을 갚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셋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서조운의 말대로 셋 모두 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싸움이라는 게 꼭 고수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너희들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전장은 공동산만이 아니야. 이곳 역시 전장이야.”

“예?”

“전면전이 벌어지는 곳은 공동산이나 감숙성이 될 확률이 높아. 하지만 전투가 꼭 감숙성에서만 벌어지라는 법은 없어. 그 예로 천사맹의 살방을 들 수 있지. 형님께서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지만 사도육주 중 한 곳인 살방은 방주가 정예 병력을 이끌고 여기를 습격했어. 즉, 이곳도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뜻이지.”

꿀꺽!

천사맹, 마도련과 전쟁한 것만 알았지 이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예유화와 백휘경, 백휘성 형제의 안색이 해쓱하게 변했다.

더불어 서조운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십분 이해했다.

“그렇다고 꼭 위험하다는 건 아니고. 내 말은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에게도 임무가 있어.”

“임무요?”

“응.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해. 장원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아!”

예유화와 쌍둥이 형제가 동시에 탄성을 터트렸다.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떠오른 것이었다.

무상문 소속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 무공을 익히기는 했으나 그 성취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나마 무인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천영각원들이었으나 살수 훈련을 주로 받았기에 정면 대결에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거기에 너희들 가족도 있지. 그런데도 떠날 거야?”

“…….”

세 사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의 모습과는 달리 고민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대의와 가족을 같은 선상에 두자 섣불리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역할이라는 게 있어. 물론 이게 절대적이지는 않지. 그러나 지금의 너희들에게는 정해져 있어. 막말로 너희들이 같이 간다고 해서 과연 큰 도움이 될까? 전쟁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아니요.”

“그건 나도 불가능해. 하지만 이곳에서는 너희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지키는 것 말이죠?”

기세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예유화가 말했다.

그 모습에 서조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오직 너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오직 우리들만 할 수 있는 일…….”

“으음!”

서조운의 말에 백휘경, 백휘성 형제가 곱씹듯이 중얼거렸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참전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게 바로 무상문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었다.

전쟁에 참여하려는 것 또한 어찌 보면 가족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굳이 반호진과 서조운을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냉정한 말인데 내가 허락해도 형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같이 갈 수 없어. 아마 높은 확률로 형님께서 허락하지 않을 테지.”

“역시 그런가요.”

“떼를 써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야. 그리고 어린애들이 무슨 전쟁이야.”

“저는 두 아이들과는 달라요.”

“누나!”

나이 얘기가 나오기 무섭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배신을 때려 버리는 예유화의 모습에 백휘경이 고성을 질렀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기에 백휘경은 물론이고 동생인 백휘성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이잖아.”

“누나도 어리거든!”

“너희 둘보다는 많아.”

“하아.”

티격태격대는 셋의 모습에 서조운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만 했는데 이상하게 온몸의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죄송해요, 조운 오빠.”

“허!”

서조운의 한숨 소리에 예유화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쌍둥이 형제를 상대하느라 서조운을 잠시 잊고 있었음을 자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에 쌍둥이 형제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둘의 눈에는 내숭 떠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서였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괜찮아. 근데 이왕이면 다른 곳에 가서 싸워 줄래? 나는 짐을 좀 싸야 해서. 따로 준비할 것도 있고.”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혼자 할 수 있어. 너희들이 할 일도 있고.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잘 다독여 줘. 의평각도 신경 써 주고.”

“알겠어요.”

대부분이 무공을 익히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렇기에 예유화는 부언하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고마워. 그리고 잘 부탁한다.”

“걱정 마세요!”

“저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을게요!”

연합전선이 깨졌기에 백휘경, 백휘성 형제는 더 이상 예유화만 믿지 않았다.

이제는 각자 목소리를 내겠다는 듯이 힘차게 대답하자 서조운은 빙긋 웃었다.

든든하기보다는 귀여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일단 믿을 수 있었기에 서조운은 그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셋을 돌려보낸 후 처소로 들어갔다.

모두가 나간 집무실에서 반호진은 홀로 생각에 잠겼다.

오중건 앞에서는 크게 당황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실상은 달랐다.

마교의 침공 소식을 듣고 반호진은 내심 크게 놀랐다.

동시에 참으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하사패에 이어 마도련, 천사맹이 나타나더니 이제는 마교? 허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반호진은 기가 찼다.

암만 생각해 봐도 하늘이 그가 쉬는 걸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혹시나 천하사패가 다시 중원을 재침공할까 봐 반호진은 천하십대고수들을 이끌고 직접 싹을 잘랐다.

그런데 십 년은커녕 이 년이 채 가기도 전에 마교가 침략해 오자 반호진은 어이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일찍 침공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깊은 한숨과 함께 반호진은 두 눈을 감았다.

일부러 감은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감겨졌다.

막막하고 짜증 난 상황에 잠시 현실 도피라고 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반호진에게 그런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교라.”

잠시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두 눈을 감고 일체의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있던 반호진이 나지막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중원의 무인들 중에 마교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나 자세히 아는 이는 드물었다.

신강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거니와 제대로 겪어 본 이가 단 한 명도 없어서였다.

그래서 반호진 역시 마교에 대해서는 딱히 아는 게 없었다.

“지난 생에서도 마교가 침공해 왔으려나? 아니, 천하사패를 너무 일찍 정리했기에 벌어진 일인가?”

반호진은 미간을 좁혔다.

어쩌면 미래를 바꿨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벌어진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눈곱만큼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서 그런지 반호진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툭. 툭. 툭.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남은 건 딱 두 가지였다.

바로 마교주와 구마였다.

마교의 핵심이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바로 이 열 명이었다.

“밝혀진 게 너무 없어.”

단일 세력으로 마교가 최강이라 불리는 까닭은 규모도 규모지만 바로 강자존의 절대법칙 속에서 탄생한 이 열 명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에 대해서 알려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반대로 반호진을 비롯해서 천하십대고수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불리함을 안고 있는 상태였기에 반호진은 얼굴을 굳혔다.

“구마는 어찌어찌 상대한다고 해도 문제는 마교주다.”

마교의 구마가 대단하다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마교주였다.

구마를 잡더라도 마교주를 잡지 못하면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에 반호진은 가슴이 답답했다.

북해빙궁주를 상대할 때보다 강해진 건 사실이나 워낙에 정보가 없었기에 마교주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불리하더라도 싸워야 해.”

똑똑똑.

아무리 고민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쟁취해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절묘하게도 모용척, 모용희수가 도착했다.

“형님, 접니다.”

“저도 왔어요.”

“들어와.”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두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에 반호진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살짝 긴장한 얼굴의 모용희수가 모용척을 따라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데려왔습니다, 형님.”

“둘 다 앉아.”

“예.”

평소와 달리 긴장한 여동생의 모습을 힐끔거리며 모용척이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이유로 반호진이 모용희수를 불렀는지 짐작이 갔기에 그는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보자고 한 건 할 말이 있어서야.”

“저를 본가로 보내시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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