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2장. 소집령(召集令). -01
“방주님.”
헐레벌떡 달려오는 오중건의 모습에 반호진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떠날 채비를 마친 이백 명도 의아한 표정으로 오중건을 바라봤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개방의 수장이 체면을 버리고 다급하게 달려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서였다.
“잠시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급한 일입니까?”
“예.”
어제와는 전혀 다른 심각한 얼굴로 오중건이 대답하자 반호진은 느낄 수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말이다.
“알겠습니다. 먼저 집무실로 가 계시죠. 최대한 이 자리를 마무리 짓고 바로 가겠습니다.”
“예.”
뒤늦게 반호진이 배웅 중이라는 걸 파악한 오중건이 얼굴 가득 미안한 기색을 띠었다.
급한 마음에 너무 무작정 찾아왔음을 자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오중건은 이백 명을 향해 사과의 의미를 담아 포권을 하고는 재빨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자, 그럼 마저 인사를 할까요.”
오중건을 일별한 반호진은 못다 한 작별 인사를 마저 했다.
이백 명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하며 마지막 조언을 해 주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감명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문주님을 두 번째 스승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럴 것까지는 없습니다.”
너무 과한 말들은 가차 없이 쳐 내며 반호진이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잠시 후 이백 명은 각자의 소속을 향해 출발했다.
다들 한 번씩 잘 가다가 뒤돌아보면서 말이다.
반호진은 그런 이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떠나는 걸 보니까 이제 실감이 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유 호법님.”
“아닙니다. 저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을 이번 기회에 몸으로 느꼈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어서.”
“다음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호량이 눈을 빛냈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 시간조차도 그에게는 유익했다.
또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무인으로서 자극도 많이 되었고.
“기대가 되네요. 유 호법님께서 자신 있다고 하시니.”
“하하하. 이거 괜한 말을 한 것 같네요.”
“아시죠?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자신 있습니다. 이번보다는 잘할 자신이요. 참, 표사들 중에 저에게 은근히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무상문에 입문할 수 있는지를요.”
유호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이런 부분은 반호진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그는 눈치를 살폈다.
호법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무상문의 호법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유호량은 반호진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유 호법님은 본문의 유일한 호법이시지 않습니까.”
“그게, 사실 아직도 좀 얼떨떨해서요. 믿기지가 않는다고나 할까요. 무공교두는 적응이 되었는데 호법은 아직입니다.”
“이제는 머문 시간이 제법 되었습니다만.”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늦게 시작한 무공교두가 익숙해졌는데 호법직은 아직도 낯설다고 하자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부담감 때문인 듯싶습니다.”
“부담감이라. 굳이 부담을 느끼실 필요는 없는데요. 그보다 문도를 당장 더 받을 계획은 없습니다. 어린아이들이거나 무공에 입문하지 않은 이라면 모를까 이미 무인으로 활동하는 이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요.”
“역시 그렇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
“이왕이면 처음부터 같이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유호량이라고 해서 다른 의도가 있어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저 이런 일이 있었다고 보고한 것이었다.
더불어 반호진의 의중도 파악할 겸.
“이제 저희도 들어가죠.”
“예.”
점이 되었던 이들이 이제는 아예 보이지도 않게 되자 반호진은 몸을 돌렸다.
오중건이 기다리고 있을 집무실로 향한 것이다.
그런데 유호량과 헤어지고 집무실에 들어가는데 방에는 오중건 혼자만 있지 않았다.
“왜 다들 모여 있는 거야?”
살짝 놀란 표정으로 반호진이 물었다.
서조운을 비롯해서 모용척, 정이륭, 사마의성, 상일기가 모두 모여 있는 모습에 반호진은 의아한 얼굴로 오중건을 바라봤다.
“제가 모셨습니다. 모두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들어 볼까요.”
“마교가 움직였습니다.”
흠칫!
오중건의 한마디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정도로 다들 충격에 빠졌다.
“……어디까지 왔습니까?”
“어젯밤 공동파가 무너졌습니다.”
“곤륜파가 아니라요?”
반호진은 물론이고 모두가 또 한번 놀랐다.
마교가 움직였다기에 당연히 곤륜산으로 향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뜬금없이 공동파를 공격했다고 하자 다들 두 눈을 부릅떴다.
“예. 청해성만 신강과 맞닿아 있는 건 아니니까요. 좀 더 돌아가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감숙성을 통해서도 중원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적이 처음이라 공동파가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곤륜파야 최전선에 있기에 늘 대비가 되어 있지만 공동파는 그게 아니기에 더 쉽게 무너진 듯합니다.”
“으음!”
공동파가 무너졌다는 말에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상일기가 침음을 흘렸다.
장문인인 음여창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나 그 역시 구대문파 중 한 곳의 수장이었다.
중원의 평화를 위해 함께 싸웠던 전우였기에 상일기는 마음이 무거웠다.
“생존자들은 어디로 향하는 중입니까?”
“……생존자는 없습니다. 음 장문인을 포함해 공동산에 머물고 있던 공동파의 제자들 전부 다 죽었습니다.”
“…….”
침통한 어조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다고 하자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사항전을 했는지, 아니면 일방적인 도륙을 당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모두가 다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마교의 습격 이후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마교의 병력은 현재 어디에 있습니까?”
“공동산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동파를 점거한 상태로요.”
“기다리겠다는 뜻이군요.”
“반대로 본대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 공동산에는 선발대만 와 있는 상태이고.”
오중건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꼭 백도무림을 기다린다고만 볼 수는 없어서였다.
늘 무지막지한 전력을 보여 주었던 마교라면 선발대만으로 공동파를 무너뜨리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결국 가 봐야 알겠군요.”
“그렇습니다.”
“곤륜파는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급히 알아봤는데 다행히 마교의 습격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곤륜산에서 신강은 그리 멀지 않으니까요.”
반호진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파에 이어 곤륜파까지 멸문지화를 입었다면 피해도 피해지만 사기에도 문제가 있었을 터였다.
한데 다행스럽게도 곤륜파가 건재하다고 하자 반호진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교의 전력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된 게 없소이까?”
“송구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상 문주님.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기는 한데 공동파 내부로 접근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곳들에도 소식이 전해졌습니까?”
“현재 빠르게 전달하는 중입니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모두 전달되었습니다. 아마 내일 중으로 소집령이 떨어질 겁니다. 정천맹의 이름으로요.”
상일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단번에 정천맹의 이름이 나올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마교인 만큼 어설프게 준비했다가는 단숨에 잡아먹힐 터였다.
초반부터 전력을 다해도 이길까 말까 한 상대가 마교였기에 상일기는 빠른 대응이 만족스러웠다.
“우선은 감숙성으로 향해야겠군요. 마교가 언제까지 공동산에 머물지는 모르겠지만.”
“거리를 두고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변동사항은 즉시 알 수 있습니다. 전서구가 아닌 전서응을 전부 다 배치해 놓은 상태이고요. 곤륜파와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발 빠른 개방의 제자들도 현재 곤륜파에 파견 나가 있습니다.”
“역시 개방이군요. 조치가 빠르네요.”
“상대가 마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문주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오중건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조차도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사방이 시끄럽기도 했고.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실 의향이 있으신지가 궁금합니다.”
“당연히 참전합니다. 중원무림을 위한 일이지 않습니까.”
“감사합니다, 문주님.”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대답에 오중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나서지 않으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했었기에 오중건은 한시름을 놓았다.
보통은 소집령에 불응할 수 없지만 반호진은 달랐다.
지금까지 쌓아 온 업적들이 있기에 불응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었는데 당연하다는 듯이 참전하겠다고 하자 오중건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저 역시 감사합니다, 문주님.”
“아니, 상 문주님까지 왜 이러시는 겁니까.”
오중건에 이어 상일기도 고맙다는 듯이 말하자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그런데 더 웃긴 건 다들 반응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었다.
“혹시나 해서요.”
“저만 걱정한 게 아니었군요.”
“다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방주.”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하하하.”
자신만 걱정한 게 아님을 알자 오중건이 예의 넉살 좋은 웃음을 흘렸다.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그렇지만 바로 출발하는 건 힘듭니다. 작은 문파지만 준비할 것들이 제법 있거든요.”
“당연하지요. 연락을 받은 다른 곳들도 비슷합니다.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바로 움직이는 건 힘들죠. 이미 다들 경험해 보기도 했고요.”
“방주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무래도 저는 연락통이라 이리저리 바삐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공동산과 청해성의 정세도 계속 살펴봐야 하고요.”
“따로 움직여야겠군요.”
반호진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선을 옮겼다.
정이륭과 나란히 앉아 있는 상일기를 바라봤던 것이다.
“저와 이륭이는 무상문과 함께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주신다면야 저야 감사하지만 중간에 들를 곳이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움직일 거였으면 진즉에 움직였을 곳이 마교입니다. 패도를 숭상하는 곳이 마교이니까요. 그러니 시간이 촉박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궁세가만 하더라도 감숙성까지 오는 데 시일이 제법 걸릴 테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상일기는 귀신같이 알아들었다.
이미 짐작하고 있기도 했고.
그러니 조금 돌아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지 먼저 공동산에 도착하는 게 아니었다.
“이해라니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저와 이륭이에게 많은 배려를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주님께서는 먼저 일어나셔도 괜찮습니다.”
상일기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반호진은 오중건을 쳐다봤다.
옴짝달싹하는 모습에서 그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어서였다.
현재 가장 바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오중건이었기에 반호진은 먼저 운을 떼 주었다.
“감사합니다, 문주님. 그럼 모두 공동산에서 뵙겠습니다.”
반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중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짧게 읍을 하고는 곧장 집무실을 나섰다.
이곳에서의 볼일을 다 봤기에 다른 곳에도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저희도 준비하죠.”
“알겠습니다.”
“척이는 희수 좀 불러 줘.”
“예.”
상일기와 정이륭, 서조운이 일어나는 걸 보며 반호진은 모용척에게 부탁했다.
출발하기에 앞서 모용희수에게 할 말이 있어서였다.
“응?”
자신의 처소로 향하던 서조운이 두 눈을 껌뻑거렸다.
방문 앞에 예유화와 백휘경, 백휘성 형제가 서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가갔다.
“오빠.”
“형님!”
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