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406화 (406/468)

제 131장. 은밀하고 섬뜩하게. -02

오중건이 단호하게 말했다.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기에 그는 단언할 수 있었다.

반호진은 여느 또래와 확연히 다르다고 말이다.

“원래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쌍둥이만 하더라도 성격이 극과 극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렇게 또 슬쩍 빠져나가시는군요.”

“이왕 오신 김에 편히 쉬고 가시죠. 생각도 정리할 겸. 남창은 조용한 곳이니 잠시 숨을 고르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럴까요? 딱히 급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니. 더욱이 문주님께서 이렇게까지 권하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오중건 특유의 너스레에 반호진은 피식 웃었다.

이제야 좀 오중건다워서였다.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런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고. 또 모용 소저의 음식 솜씨가 얼마나 늘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합니다. 자그마치 백봉이 만든 음식이지 않습니까!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도 하고요.”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

“벌써부터 편들어 주시는 겁니까?”

오중건이 놀리듯이 말했다.

결국 반호진도 똑같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반호진은 반호진이었다.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제가 지켜야 하는 사람인데요.”

“으으!”

상상도 못 한 반호진의 모습에 오중건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예상 밖의 모습에 당황한 것이었다.

그런 오중건을 보며 반호진은 승자의 미소를 머금으며 차를 들이켰다.

사위에 어둠이 짙게 내린 야심한 시각이었음에도 공동파 장문인이 머무는 집무실은 밝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음여창은 잠자리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후우.”

캄캄한 창밖을 보며 음여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였다.

본산제자도 아니고 속가제자인 반호진으로 인해 소림사는 승승장구하는데 공동파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구파일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딱 거기까지였다.

“나에게도 그런 놈이 있었다면…….”

반호진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재능만큼은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소림사가 너무나 부러웠다.

만약 반호진 공동파의 제자였다면 지금 소림사가 누리는 걸 공동파가 누렸을 터였다.

그리고 무당파와 소림사를 넘어 공동파가 천하제일문이 되었을 것이었다.

꾸욱!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음여창은 배알이 뒤틀렸다.

더불어 사문의 모든 이들이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인재를 보는 안목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바뀌어야 해. 우리도, 아니 나도 할 수 있다. 그놈 같은 녀석 한 명만 찾아내서 잘 가르치면 본파도 소림사가 될 수 있어. 검신이 꼭 소림과 무당, 화산에서만 나오라는 법은 없으니까.”

음여창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더는 소림사와 무당파의 독주를 지켜보고 싶지 않았다.

두 문파의 자리를 공동파가, 자신이 차지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의 인재가 필요해. 반호진 이상 가는 인재가. 반호진 따위는 가볍게 찍어 누를 수 있는 녀석이.”

음여창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무림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이가 반호진이었다.

하지만 반호진보다 뛰어난 천재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반호진이 등장하기 전까지 사룡(四龍)이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불렸던 것처럼 새로운 신성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다.

“그런 녀석만 찾으면 향후 이십 년 후에는 공동파가 최고가 될 기틀을 만들 수 있다.”

반호진의 벽이 높다는 걸 음여창도 인정은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기에 반호진도 언젠가는 죽을 터였다.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를 잘해서 기틀을 다져 놓는다면 그 후는 공동파의 세상으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툭. 툭. 툭.

다만 문제는 반호진 이상의, 아니 이상까지는 힘들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재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빨리 찾을수록 공동파가 천하제일문이 되는 시간이 단축될 것이기에 서둘러야 했다.

게다가 단순히 찾아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정도 무재를 가진 아이는 공동파뿐만 아니라 모든 곳들이 탐을 낼 것이기에 그 경쟁에서도 이겨야 했다.

“소림사가 했는데 공동파가 못 할 건 뭐야. 나도 할 수 있다.”

음여창의 두 눈이 욕망으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분명 쉽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소림사가 해냈다면 당연히 공동파도 해낼 수 있었다.

스르륵.

“응? 갑자기 왜 불이 꺼졌지? 바람은 안 불었는데.”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고 하나 바람은 거의 없었다.

심한 날에는 태풍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지만 오늘은 잔잔했기에 밤바람으로 머리 좀 식힐 겸 창문을 열어 뒀었다.

그런데 갑자기 등잔불이 꺼지자 음여창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뻗었다.

삼매진화의 수법으로 다시 불을 켜려는 것이었다.

화르륵.

손가락 끝에 진기를 모아 삼매진화로 심지에 불을 붙인 음여창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불이 켜지자 어둠에 가려져 있던 검은 인영이 나타나서였다.

“누, 누구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겁먹은 개가 시끄러운 법이지. 두려움을 숨기려고 엄청 짖어 대거든.”

“누구냐고 물었지 않느냐!”

차앙!

갑작스러운 침입자에 음여창이 대경하며 검을 뽑았다.

선자불래(善者不來) 래자불선(來者不善)이라는 말처럼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몰래 찾아올 리 없기에 경계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런 음여창의 반응에도 온몸을 검은색 야행복으로 꽁꽁 싸맨 흑의복면인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되레 눈웃음을 지으며 스스로 복면을 턱 아래로 내렸다.

“그게 중요하나? 지금 중요한 건 네 목숨인데. 이 자리에서 살아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를 걱정하는 게 먼저 아닌가?”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허어. 진심이 담긴 충고를 개소리라 매도하다니. 중원인들은 다 이렇게 매정하고 쌀쌀맞은 편인가? 아니면 공동파의 장문인만 이런 건가?”

음여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중원인이라는 세 글자가 유독 강하게 들려서였다.

“……새외무림에서 왔군.”

“딱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얼굴도 다르고 억양도 다르고. 내가 일부러 보여 준 거거든. 보통은 얼굴까지 보여 주지는 않아. 설사 보여 준다고 해도 상대는 볼 수가 없지.”

흑의인이 히죽 웃었다.

온기라고는 일절 느껴지지 않는 싸늘한 미소였다.

그래서 더욱 섬뜩하게 다가왔다.

무슨 의미인지 너무나 명백해서였다.

“어디에서 왔지?”

“생각해 봐.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고.”

흑의인이 조롱하듯 이죽거렸다.

누가 보더라도 속을 긁는 표정과 말투였으나 음여창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침입자의 소속이 어디인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였다.

‘철혈성은 사라졌고, 구천문이나 포달랍궁, 북해빙궁은 아냐. 그렇다고 대막 쪽도 아닌 것 같고…….’

음여창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암만 생각해도 떠오르는 곳이 없어서였다.

“이거이거, 시간이 그렇게 오래 흘렀나. 본교를 잊어버릴 정도로.”

부르르르!

음여창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그뿐만 아니라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본교라는 두 글자에서 흑의인의 소속이 어디인지 알 수 있어서였다.

퍼어엉! 퍼펑!

그와 동시에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폭음과 함께 사방에서 비명 소리와 금속음이 난무했다.

“너, 너는……!”

“이제야 눈치를 챈 모양이야. 근데 너무 늦었어. 아니, 이미 늦었다고 해야 하나. 오늘 공동파는 사라질 예정이거든.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없이. 모두 죽일 거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동산에 있는 공동파의 제자들 전부.”

“왜, 왜! 왜 우리지? 곤륜파가 아니라!”

두려움에 잠식당한 음여창이 이성을 잃은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역사적으로 마교는 중원을 침공할 때 늘 청해성을 거쳐서 들어왔다.

늘 곤륜파부터 공격하고 중원으로 진격했는데 이번에는 다르자 음여창이 악을 썼다.

“식상하잖아. 매번 곤륜파부터 공격하는 게. 네 말마따나 모두가 당연히 곤륜파부터 노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고.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른 경로를 이용해 보기로 했어. 길이 꼭 청해성만 있는 건 아니니까. 감숙성 역시 신강이랑 연결되어 있잖아?”

“어째서, 어째서 우리를……!”

“알아봤는데, 곤륜파와 달리 공동파는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더라고. 마치 우리더러 잡아먹어 달라는 듯이 말이야. 후후후!”

대놓고 흘리는 조소에 음여창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전혀 대비가 안 되어 있다는 말이 사실이어서였다.

당장 그만 하더라도 마교가 습격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요 모양 요 꼴이 된 것이었고.

꾸욱!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일단 살아서 하산만 한다면 방법이 있어.’

부들부들 떨던 음여창의 몸이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암습이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죽었겠지만 지금 상대는 그의 눈앞에 있었다.

게다가 다수가 아니라 단 한 명뿐이었다.

즉 눈앞에 있는 흑의인만 쓰러뜨리면 몰래 빠져나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우선 공동산을 무사히 빠져나간다. 그런 다음 곧장 섬서성으로 넘어가는 거야. 종남파나 화산파로 가면 최소한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어.’

음여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다른 곳도 아닌 마교인 이상 그는 싸우는 걸 포기했다.

싸워 봤자 개죽음만 당할 게 뻔하기에 음여창은 도주를 선택했다.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놈부터 죽여야 한다.’

음여창의 두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언제 겁먹었냐는 듯이 살기가 서렸다.

“눈빛을 보아하니 허황된 꿈을 꾸는 모양인데 이런 생각 안 해 봤나? 내가 왜 모습을 드러냈는지를.”

“주둥아리를 나불거리려고 나타났겠지.”

“그럴 거면 굳이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지. 육합전성(六合傳聲)을 펼쳐도 되니까. 그럼에도 내가 모습을 드러낸 건 네가 공동파의 장문인이기 때문이야. 그래도 수장인데 수장다운 대우는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푸욱!

흑의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음여창은 등에서부터 파고드는 서늘한 감촉을 느꼈다.

정확히 심장을 꿰뚫어 버리는 일격에 음여창의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어느 틈에……!”

“그리고 왜 내가 혼자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군.”

“비, 비겁한!”

“이런이런. 비겁하다니. 애초에 우린 손속을 나누기에 격이 안 맞아. 나와 겨루려면 적어도 천하십대고수는 되어야지. 그래야 구마(九魔)와 격이 맞지.”

“……!”

음여창이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의 말은 자신이 구마 중 한 명이라는 걸 뜻해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관통당한 심장이 이내 박동을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털썩.

이윽고 음여창의 몸이 쓰러졌다.

공동파의 장문인치고는 허무한 죽음이었다.

***

“감사합니다, 문주님!”

“무상문에서 배운 것들을,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다시 올 때까지 강녕하십시오!”

무상문의 정문이 시끄러웠다.

드디어 훈련을 마치고 다들 각자의 소속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처음의 기대와 달리 전원 다 절정의 벽을 넘지는 못했으나 그 숫자는 소수였다.

또한 닿을락 말락한 상태였기에 얼굴이 어두운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벽을 넘지 못한 분들도 너무 괘념치 않으셨으면 합니다. 계속 정진한다면 결국에는 벽을 넘으실 겁니다.”

“예!”

반호진의 말에 절정의 벽을 넘지 못한 이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비록 계약 기간 동안 벽을 넘지는 못했으나 다들 느끼고 있었다.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얼굴이 밝았다.

“모두에게 무운을 빕니다.”

“지나갈 때가 있으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문주님!”

“예.”

“문주님!”

이백 명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등 뒤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오중건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로 달려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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