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8장. 느리지만 착실히. -02
알쏭달쏭한 말에 중년인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건 귀를 기울이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중년인처럼 바짝 긴장해 있던 무인들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지금부터 오 표사님의 안 좋은 습관, 불필요한 습관에 대해서 알려 드릴 겁니다. 제가 직접.”
“으음!”
“아마 대부분이 잘 모르는 것들일 겁니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일 테니까요.”
“설마 이백 명 전부 다 봐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러려고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중년인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말은 달리 말하면 모두의 습관에 대해서 다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놀란 기색을 띠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살짝 감동했다.
그만큼 반호진이 자신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어서였다.
그걸 깨달은 몇몇 이들은 감동한 얼굴로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대, 대단하세요.”
“시간은 저에게만 소중한 게 아니니까요. 여러분들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로 소중합니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무슨 수를 써도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그럼 시작하죠. 우선 제가 몇 가지 시연을 보일 겁니다. 그중에 아는 것이 나오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중년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어떻게 보면 본인의 약점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다.
약점이 밝혀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보다는 똑바로 마주 보며 개선하는 게 훨씬 더 나았다.
스으윽.
“어?”
중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호진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어서였다.
그가 습관적으로 이어서 펼치는 동작들이었기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시겠습니까?”
“예.”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일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시죠. 설명은 그다음에 하겠습니다.”
“예.”
중년인으로서는 거부를 할 수가 없었다.
또한 할 생각도 없었고.
지금의 시간이 천금과도 같다는 걸 알았기에 중년인은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제가 파악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이 중에 자각하고 있는 게 얼마나 됩니까?”
“……반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괜찮네요.”
부끄러움 때문인지 말이 이어질수록 중년인의 고개가 점점 숙여졌다.
한데 정작 중년인의 단점들을 낱낱이 까발린 반호진은 타박하는 기색 없이 담담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반대로 생각하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건 그만큼 약점들이 줄어든다는 걸 뜻하고요.”
“그, 그렇지요!”
“급격한 경지의 상승은 없겠으나 대신 내실을 단단히 다질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경지로 나아가는 데 힘을 얻겠지요.”
“맞습니다!”
중년인의 고개가 점점 들려졌다.
또한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모르는 습관들에 대해서 몸으로 느끼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스르릉.
말을 마치자마자 반호진이 검을 뽑았다.
직접 움직이기 위해서였다.
중년인이 습관적인 동작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자 그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정말 반호진이 보여 준 대로 자신이 움직여서였다.
“으음!”
“그렇다고 너무 동작에 매몰되어서도 안 됩니다. 습관을 너무 경계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비무나 대련에서 이기기 힘들겠죠. 고쳐 나가되 너무 거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중년인이 마른침을 삼키며 머리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한마디 한마디가 그에게 있어 금과옥조나 다름없어서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한 번에 외우기에는 내용이 생각보다 많아서였다.
“단번에 모두 외우면 좋겠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우선은 외운 것부터 시작하세요. 남은 건 외운 것들을 다 소화한 후 다시 외워도 되니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문주님.”
중년인이 경외감이 서린 눈빛으로 반호진을 바라보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당장 그만 하더라도 자기 것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는데 반호진은 그뿐만 아니라 이백 명 전원의 것을 알고 있기에 존경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하나씩 차근차근하다 보면 금방 다 외우실 겁니다. 물론 다 외운다고 해서 끝이 아니지만요.”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인 것을요.”
“오늘은 하루 내내 이곳에 있을 예정이니 중간에 막히는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오세요.”
“예!”
우렁찬 대답과 함께 중년인이 물러났다.
남아 있는 백구십구 명을 위해 알아서 자리를 피해 준 것이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중년인을 봐주는 사이 따로 순서라도 정해 둔 모양인지 이번에는 하오문의 비천대원이 앞으로 나섰다.
반호진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였는데 그래서인지 마음이 묘했다.
하류무사였던 비천대원이 초일류의 경지에 올라 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자 만감이 교차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성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전부 문주님 덕분입니다.”
감회가 남다른 건 비천대원도 마찬가지인지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반호진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는 모양이었다.
“제 덕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노력한 덕분입니다. 아무리 좋은 무공도 갈고 닦지 않으면 하류무공이나 별다를 게 없으니까요.”
“문주님.”
이십 대 후반의 사내가 촉촉해진 눈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반호진을 잘 모르는 이들은 성격이 더럽고 까탈스럽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반호진을 직접 만나 본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친절함과는 거리가 좀 있었으나 누구보다 세심하고 배려 깊은 게 반호진이었다.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죠.”
“알겠습니다!”
사내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알고 있던 것이든 모르고 있던 것이든 그는 일단 전부 다 외울 생각이었다.
앞서 표사가 상당한 양에 당황해서 반절도 외우지 못한 걸 눈앞에서 봤기에 사내는 최대한 집중해서 반호진의 동작을 뇌에 각인시켰다.
“여기까지입니다.”
“생각보다 적은데요?”
“불필요한 버릇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아마도 기초를 잘 다진 덕분이겠지요.”
“아.”
“근데 바로 잡기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한 번 고착화된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니까요.”
뼈에 새기겠다는 기세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를 보낸 반호진은 금가장의 무사에게도 똑같이 시연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안 좋은 습관들을 직접 보여 주고 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금가장의 순서가 끝나고 다시 표사들의 차례가 되었다.
그리고 그게 계속해서 이어질수록 지켜보던 이들의 얼굴에 경외심이 떠올랐다.
누구 하나 대충하는 법 없이 시종일관 진지하게 조언을 해 주는 모습에 다들 존경심이 우러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반호진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받은 게 있다면 가는 것도 당연히 있어야 했다.
특히나 금전과 관계된 일일수록 더욱더 확실해야 했다.
‘나중에 다 돌아올 것이기도 하고.’
돈도 돈이지만 반호진은 여전히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금은 절정의 벽을 넘지 못한 무인들이지만 앞으로도 그러라는 보장은 없었다.
절정을 지나 최절정, 초절정에 닿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희박한 확률이기는 하지만 초월경에 오를 수도 있었다.
가능성은 모두에게 있었으니까.
막말로 그가 과거로 돌아온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왠지 모르게 아직 안 끝난 것 같기도 하고.’
천하사패에게 나름대로의 복수도 행했지만 근래 들어 반호진은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애매모호한 불안감이라고나 할까.
무경이 점점 높아질수록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천하사패가 침공한 시기가 빨라진 것은 나로 인해 그렇게 된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천사맹과 마도련은 정말 예상 밖이었으니까.’
반호진의 눈빛이 깊어졌다.
당장 마도련과 천사맹만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며 중원정복의 야심을 드러냈다.
그와 같이 새로운 세력이 중원무림을 손에 넣겠다고 갑자기 등장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미리미리 준비해 둬야지.’
개인적으로 반호진은 각 무가와 문파들이 세력을 확장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당연히 전리품을 챙길 권리가 있었다.
또한 소실된 전력을 빠르게 복구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자가 반드시 필요했기에 너무 과열되지만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 중에서 얼마나 절정의 벽을 넘을지.’
반호진은 불필요한 습관이나 안 좋은 버릇만 알려 주지 않았다.
미진한 것들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짚어 주며 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몸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그것도 당사자에게 딱 맞는 가르침을 말이다.
“이렇게 하니까 초식과 초식 사이의 연결이 훨씬 매끄러워졌습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생사가 갈리는 게 한순간임을 생각하면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판단이 느린 게 약점이라면 예측력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니 꼭 하나의 방법에만 맹신하지 말고 다양하게 생각하세요.”
“명심하겠습니다!”
표정과 달리 성심성의껏 조언해 주는 반호진의 모습에 모두가 감격했다.
그러면서 반호진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더 몸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지금 당장 소화하기 힘들다고 반호진이 말했으나 그 말은 달리 말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에 다들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지렸다.”
“표현이 그게 뭐야? 지렸다니.”
“요즘에 이런 식으로 말을 한다고 하더라고.”
“애들이 사용하는 말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게?”
“젊게 살려는 거지. 막말로 우리도 아직 어려. 정확하게는 어림에서 젊음으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고나 할까.”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서조운의 모습에 사마의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서조운은 개의치 않았다.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벽을 세우는 것일지도 몰랐다.
“때로는 좌우도 보면서 걸어야지.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좋지 않아. 예로 형님을 봐.”
“지금의 발언은 좀 들을 만한 가치가 있네.”
“참나.”
친구의 품평 아닌 품평에 말을 이었던 서조운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말을 해 줘도 어째 욕을 먹는 느낌이었다.
“근데 오빠를 예로 들려면 우리가 그 정도 수준에 도달해야 하지 않을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형님 수준에 도달하려면 우리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죽어라 노력해야 해. 잠도 자지 않고, 뒷간도 가지 않고, 먹으면서 계속 수련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해도 될지 안 될지 모른다는 거다.”
“인정.”
“그나저나 네가 보기에는 어때? 이번 기수에는 몇 명이나 절정의 벽을 넘을 거 같아?”
서조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언제 장난을 쳤냐는 듯이 서조운이 가라앉은 눈으로 일대일 지도를 받고 있는 금가장의 무사를 응시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너는 전부 다는 힘들 거라고 보는 모양이네?”
“인원이 너무 많잖아. 무려 이백 명이야. 저번과 비교하면 여섯 배가 넘어. 서른세 명이야 어찌어찌 가능했지만 이백 명은 솔직히 무리지. 상식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해.”
“그렇기는 한데, 또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이백 명 전원이 ‘계기’만 있으면 언제라도 벽을 넘을 수 있으니까.”
“맞는 말이야. 근데 그 한 발짝을 평생토록 못 넘는 사람도 있어.”
사마의성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서조운은 회의적이었다.
“보통은 그렇지. 그런데 지도해 주는 사람을 왜 쏙 빼놓고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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