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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384화 (384/468)

제 125장. 비움의 미학. -01

금호연만큼이나 급하게 달려온 손님에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똑똑똑.

“들어와.”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늦었네.”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늦고 자시고가 어디 있어?”

“그래도 두 번째보다는 첫 번째가 낫잖아?”

새하얀 백의경장을 입은 난희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나름 서두른다고 서둘렀음에도 금호연보다 늦은 게 자존심 상하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로 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정말? 인원에 차이가 있거나 그런 거 없어?”

“없지. 내가 순서에 따라 차별할 사람으로 보여?”

“그건 아니지.”

난희주가 곧바로 대답했다.

반호진의 성격상 차이를 둘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밝혔을 게 분명했다.

“우선 앉아서 차 한잔해. 오랜만에 왔는데.”

“다친 곳은 없지?”

반호진의 앞에 앉으며 난희주가 빠르게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혹시라도 다친 곳이 있나 살펴보는 것이었다.

“보시다시피 멀쩡해.”

“결과는 어떻게 됐어?”

“오는 동안 다 파악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래도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것만 못하니까.”

“최상의 결과는 아니지만 차상까지는 될 것 같아.”

담담하게 대답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난희주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차상이라고 말할 줄은 몰라서였다.

더불어 묘하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비록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한 명의 중원인으로서 새외무림에 제대로 한 방을 먹였다고 생각하자 기꺼웠다.

“대단하네.”

“나 혼자서 이룬 건 아니야. 모두가 힘을 합친 덕분이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기도 했고.”

“인정. 나도 세 분이 나설 줄은 진짜 예상하지 못했어. 당연히 참여 안 할 줄 알았거든.”

“나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으나 난희주가 누구누구를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기에 반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티를 내지는 않았으나 반호진 역시 그때 내심 놀랐었다.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서였다.

“좀 신기했어.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대의를 우선시하는 모습이. 역시 백도무림의 기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

“그러니까 지금까지 지킬 수 있었던 거지. 할 때는 하니까.”

“새삼 백도무림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근데 우리들만의 힘으로 이번 결과를 만든 건 아니야. 많은 사람들의 조력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온 거지. 비공식적이지만 개방과 하오문, 금가장의 정보력이 합쳐졌으니까.”

“이 또한 신기한 일이지. 아마 무림 역사상 처음일걸?”

난희주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반호진을 쳐다봤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성사된 이유가 바로 눈앞에 있는 반호진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대단한 일을 성사시킨 반호진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차를 홀짝였다.

“모르지 그건. 이번과 마찬가지로 기록에 남지 않아서 알려지지 않은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하오문에서는 오빠가 최초야. 아마 이 기록은 후대에도 전해질 거고.”

“썩 좋은 일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나쁠 것도 없잖아? 어차피 비공식적으로 문서에 남을 테니까. 오빠의 일생에서 아주 사소한 기록이기도 할 테고. 워낙에 큼지막한 일들이 많아서. 어쩌면 공식적으로 기록을 남겨도 믿지 않는 이들이 분명 있을 거야. 예를 들면 삐뚤어진 녀석들.”

“그러거나 말거나.”

후대의 평가는 반호진에게 있어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은 늘 현재에서 살기에 죽은 뒤의 평가는 의미가 없었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고.

“오빠는 참 한결같다니까.”

“너는 별일 없고?”

“나야 늘 똑같지. 큰일이 있을 수가 없고. 다른 곳들과 달리 우리는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오빠 덕분에 찔러 보는 이들도 없고. 잔챙이들이야 우리 선에서 해결 가능하기도 하고.”

“있기는 있는 모양이네?”

“없던 때가 없었지. 상관세가 같은 놈들은 언제나 있었으니까.”

지금은 멸문한 상관세가를 떠올리며 반호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상관세가 입장에서야 억울하고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반호진이 보기에는 자업자득이었다.

애초에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면 멸문지화를 입지는 않았을 터였다.

결국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기에 동정심은 전혀 일지 않았다.

“너는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갈 거야.”

“당연하지. 근데 나 힘들면 좀 도와줘.”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던 난희주가 슬쩍 반호진의 눈치를 살폈다.

혼자서도 잘해 낼 자신은 있지만 그래도 기댈 구석이 있어서 나쁠 건 없어서였다.

“물론이지. 힘들 때는 서로 돕고 사는 게 인생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오문에서 오십 명 정도 받을 수 있어.”

“오십 명씩이나?”

금호연처럼 난희주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 인원이 많았기에 자기도 모르게 반문했다.

“인원이 안 된다면…….”

“그럴 리가! 오히려 넘쳐 나지! 단순 규모만 따지자면 청림표국을 비롯해서 소림사의 속가제자들이 세운 표국들보다 본문이 더 많아.”

“그럼 됐네. 그중에서 오십 명을 고르면 되겠네.”

“근데 감당할 수 있겠어?”

난희주와 하오문의 입장에서야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제안이지만 반호진은 달랐다.

하오문이 오십 명이라면 금가장 역시 오십 명일 것이었기에 난희주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당분간은 바쁜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도와주는 인력이 늘었거든. 게다가 동생들의 실력이 많이 늘기도 했고.”

“큰 전쟁을 몇 차례나 겪었으니까. 흔치 않은 경험이기는 하지. 근데 선우 공자가 본가로 돌아갔잖아.”

“한 명 정도로는 별 차이가 없어.”

“선우 공자가 들으면 섭섭해하겠다.”

“그럴 정신이 없을걸. 신혼이라.”

난희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 나름 잘 알다 보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한데 정작 말을 꺼낸 반호진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

“부정할 수가 없네.”

“어쨌든 하오문은 참여하기로 한 거지?”

“응. 오십 명 꽉꽉 채워 올게. 아마 대부분은 비천대에서 차출될 거야.”

“많이 컸네.”

반호진이 살짝 놀랐다.

하오문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로 구성한 게 비천대라고 하나 그럼에도 성장세가 가팔라서였다.

“우리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고. 다들 열심히 수련하고 노력했어. 꽤 많은 실전경험을 쌓기도 했고.”

“그래도 예상 밖인데.”

“호호호.”

반호진의 말에 난희주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비천대의 비약적인 성장은 그녀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더해서 반호진을 놀라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난희주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물론 금액은 금가장과 동일하게 받을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차별대우는 나나 소장주나 싫을 거야. 오빠 성격상 차별하지도 않을 테지만. 대신 할인은 해 줄 거지?”

“물론.”

“고마워.”

난희주가 배시시 웃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거래는 확실하게 해야 했다.

늘 양보하고 배려해 주는 게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난희주는 대충 넘어가지 않고 확실하게 대답을 들었다.

“고맙기는. 당연한 건데.”

“오빠를 찾아간 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같아. 그때 망설였으면 이런 사이가 되지는 못했겠지?”

“아마도.”

“역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야.”

과거를 떠올리며 난희주가 아찔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반대의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훤히 보여서였다.

아마 지금 같은 성장세는커녕 새외무림의 앞잡이가 되어 싸우다가 백도무림에게 갈가리 찢겼을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잘해 왔잖아? 벌어지지 않은 일에 굳이 심력을 낭비하지 마.”

“진짜 냉정하다니까. 어떻게 보면 이것도 일종의 복기라고 할 수도 있는데.”

“너한테는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나라고 늘 최선의 선택만 하는 건 아니니까. 인원은 언제까지 보내면 돼?”

“부총관과 우 의원이 준비할 것들도 있으니까 넉넉히 보름?”

난희주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장 하오문과 금가장의 인원만 합쳐도 백 명이었다.

여기에 표사들까지 추가되는 것이니만큼 식비를 비롯해서 여러모로 들어가는 경비가 상당할 터였다.

그러니 당연히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딱 맞춰서 준비할게.”

“꼭 맞춰야 하는 건 아니고 얼추 그 정도쯤이면 될 것 같아. 너무 일찍만 아니면.”

“내가 그런 눈치는 좀 있지. 걱정하지 마. 적절한 시기에 문도들을 보낼게. 그리고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상부상조하자고 그랬잖아. 그러니 고마워할 거 없어.”

“오빠는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달라. 아니, 정확하게는 본문은. 그리고 나도 할 말은 하는 여자야.”

난희주가 콧대를 세우며 가슴을 내밀었다.

풍만한 상체를 강조하려는 게 아니라 당당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설사 흉부를 도드라지게 보여 준다고 한들 흔들릴 반호진이 아니었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여자이기는 하지.”

“그럼.”

“이 부분은 정리가 되었으니 이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자.”

“응?”

“한 가지 더 제안할 게 있거든. 정확하게는 다리를 놓아주는 거지만.”

난희주가 동그래진 눈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애매모호한 말에 살짝 당황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반호진이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추가 과정이 하나 더 생겼거든. 의성이가 전담으로 맡아서 하는 과정이.”

“설마?”

난희주의 두 눈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듣는 순간 어떤 과정인지 뇌리에 번뜩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희주의 상반신이 반호진 쪽으로 점점 더 가까워졌다.

“네가 짐작하는 게 맞아. 기문진법 과정인데 크게 두 가지 과정이 있어. 하나는 사마세가의 고유한 기문진법을 경험하는 것. 다른 하나는 하오문이 원래 가지고 있거나 혹은 익히고 있는 합격진을 개량시켜 주는 과정이야. 이 과정에는 숙달까지 포함돼. 이론과 실전은 엄연히 다르니까 의성이가 마지막까지 책임져 줄 거야.”

“우와.”

조용히 경청하던 난희주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어서였다.

“두 눈에 욕심이 가득한데?”

“당연한 거 아니야? 이런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니고. 혹시 둘 다 받을 수 있어?”

“그건 의성이하고 조율해야지. 난 소개만 해 줄 뿐이야.”

“금 공자가 왜 사마 소저를 따로 만나나 했더니 이유가 이거였구만?”

“벌써 알아냈어?”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역시 하오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동시에 염려도 되었다.

“혹시 몰라서 얘기하는데 무상문에는 내 정보원이 없어. 아무리 나라도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 다른 곳은 몰라도 오빠가 있는 무상문에는 손을 뻗지 않았어. 소장주에 관한 건 진짜 우연히 알게 된 거야.”

“많이 찔리는 모양이네?”

“안 찔리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그리고 원래 불화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오해에서부터 시작하니까. 위험하다 싶은 건 그때그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게 제일 좋아.”

“솔직히 의심은 했어. 나도 수장이 되니까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더라고.”

“이해해. 나도 그래서 먼저 말한 거고. 근데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난희주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이건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해서였다.

근데 반호진이라면 딱히 큰 어려움 없이 알아서 잘 헤쳐 나갈 것 같았다.

“차차 배워 가는 거지.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오빠는 처음부터 괴물이었잖아.”

“어허. 사람더러 괴물이라니.”

“다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해서 그렇지 나랑 똑같이 생각할걸?”

“의성이에게 가라.”

반호진이 손을 휘휘 저었다.

쓸데없는 말을 할 거면 차라리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호진의 축객령에도 난희주는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고.”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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