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74화 (374/468)

제 122장. 하늘에서 내리는 단죄. -01

구천문도 독문(毒門)이기에 구천문도들은 한눈에 강환에 서려 있는 독기를 알아봤다.

일종의 독강환이라 할 수 있는 당우혁의 강환이 문내에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에 새로이 천좌(天座)에 오른 이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몸을 날렸다.

어떻게든 떨어지는 강환을 허공에서 폭발시키거나 튕겨 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홉 천좌들은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쌔애애액!

사방팔방에서 검, 도, 창 등등의 병장기들이 날아들어서였다.

난데없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공격에 천좌들이 다급하게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전후좌우 할 거 없이 모든 방향에서 날아오다 보니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호신강기밖에는 답이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사천당가가 공격해 온 건가?”

“출병했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당혹스러운 기색이 가득 서린 음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다들 답답해하는 것이었다.

그사이 당우혁이 날린 회심의 일격이 구천문의 장내에 떨어졌다.

뻐어어엉!

당우혁이 평생 쌓아 온 무공의 정화는 거대한 폭발과 함께 사천당가가 자랑하는 독기를 사방에 흩뿌렸다.

구천문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이 폭발로 인해 일어난 바람을 타고 장원 곳곳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간 것이었다.

“끄으윽!”

“커……헉!”

“내, 내 몸이……!”

치이익!

삽시간에 장원 내를 뒤덮은 독기에 곳곳에서 신음과 비명이 솟구쳤다.

속수무책으로 독에 중독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이들에 비하면 상태가 나은 것이었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 가까이 있던 이들은 한 줌 독수로 화했기에 소리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다.

“으아아악!”

“찾아라! 기습한 이들을 찾아……!”

푸푸푹!

몸이 반쯤 녹아내리거나 이미 반 이상 사라진 구천문도들의 모습에 천좌들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처참한 광경에 온몸으로 분노를 토해 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허공 위에서 갑자기 떨어져 내렸기에 도무지 위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공격은 끝난 게 아니었다.

독기가 휩쓸고 지나간 곳을 수십 자루의 병장기들이 날아다니며 구천문도들을 덮치고 있었다.

“큭!”

“빌어먹을!”

이기어검이 아닌 단순히 조종하는 수준이었으나 그럼에도 구천문도들에게는 더없이 위협적이었다.

앞서 무지막지한 공격들이 휩쓸고 지나간 상태였기에 구천문도들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천좌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당우혁의 독에 저항은 할 수 있지만 그게 면역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천좌들 대부분이 중독된 상태였다.

“끄으으으……!”

“워, 원통하도다!”

그렇다 보니 일정 수준이 되지 않는 구천문도들은 속절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끝내 독에 버티다 못해 죽든가 메뚜기 떼처럼 날아다니는 병장기에 꼬치처럼 꿰어 절명했다.

“으아아아!”

“아직도 못 찾았느냐!”

“도, 동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저곳입니다! 숫자는…… 여덟 명입니다!”

갑작스러운 폭격에 커다란 피해를 입었지만 멀쩡한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워낙에 장원이 넓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파괴된 구역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피해를 입지 않은 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며 상황을 파악했는데 그 결과 반호진 일행의 위치를 알아냈다.

그런데 적들의 규모를 알아내기 무섭게 천좌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 여덟 명?”

“그 말은 천하십대고수들만 왔다는 뜻이군.”

분위기가 일변했다.

소수정예로 온 의도가 너무나 명백해서였다.

“뭐야? 꼬리를 마는 거야?”

“우리의 영역에서?”

달라진 분위기에 호전적인 성격의 천좌들이 이를 드러냈다.

공격을 당했음에도 이빨을 드러내기는커녕 꼬리를 내리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겁쟁이 새끼들!”

“병력을 모아! 지금 당장 복수한다!”

“공격해라!”

분노와 살기가 들불처럼 번졌다.

오로지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남은 구천문도들이 앞장서는 천좌들을 따라 몸을 날렸다.

“눈이 돌아갔군.”

“그럴 만하지.”

“근데 의견이 갈린 모양이야?”

살기등등한 기세로 달려오는 적들의 모습에 팽만철이 히죽 웃었다.

구천문주의 자리가 아직 공석이었기에 현재 구천문에서 직위가 가장 높은 건 아홉 명의 천좌들이었다.

한데 선두에서 살기를 풀풀 날리며 쇄도하는 숫자는 다섯 명뿐이었다.

즉 천좌들의 의견이 나뉜 것이었다.

“이거, 일이 좋게 풀리는데?”

그 모습에 당우혁이 눈을 번득였다.

중원을 침공했을 당시의 천좌들은 초월경에 올라 있거나 혹은 거의 근접해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초월경에 오른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심지어 그 한 명은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고.

거기다 구천문의 장원 밖으로 나왔기에 모든 것이 이쪽에 유리했다.

“해볼 만하겠는데?”

남궁호도 턱을 쓰다듬었다.

팽만철, 당우혁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빠르게 계산을 끝낸 것이었다.

“…….”

반면에 반호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광기를 흩뿌리며 달려오는 구천문도들로 인해 일반 양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어서였다.

몇몇은 묘강인들을 오랑캐라 부르며 경시했지만 반호진은 달랐다.

피부색이 다르고 눈동자 색깔이 다르다고 해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최대한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런데 정작 구천문이 일반 양민들을 거리낌 없이 밀어버리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원시천존.”

“아미타불. 어찌 저리한단 말인가.”

근데 그건 운상과 담현도 같은 모양인지 두 사람 다 반호진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게 다치는 이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반 문주는 어찌 생각하는가? 잘만 하면 이대로 지워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선은 저들부터 처리하죠. 그다음은 그때 가서 고민해 봐도 늦지 않으니까요.”

“하긴. 그래도 복수하겠다고 달려오는데 마중은 나가 줘야지.”

당우혁이 씨익 웃었다.

조소와 함께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절독이 묻은 암기들이 끼어졌다.

독왕이라는 별호에 가려져서 그렇지 그의 암기술도 상당히 뛰어났다.

하지만 당우혁의 암기보다 반호진이 먼저 움직였다.

쑤아아앙!

구천문 내부를 휩쓸던 병장기들과의 연결을 끊은 반호진은 딱 열 개의 검만 새롭게 빼앗았다.

이기어검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숫자가 딱 열 개였기 때문이다.

그 열 개의 검을 반호진은 선두에서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천좌들에게 날렸다.

“이깟 어설픈 어검술 따위……! 컥!”

“끄어어억!”

구천문에서 날아다니던 병장기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생각했던 천좌들의 몸에 구멍이 뚫렸다.

단순히 병기의 개수만 늘렸던 조금 전과는 위력 자체가 달라서였다.

일부러 반호진이 그렇게 보이도록 하긴 했으나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당할 줄은 몰랐기에 반호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나 그렇다고 봐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피, 피해라!”

뒤늦게 열 개 다 이기어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이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게다가 이기어검은 반호진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쌔애액!

초월경의 경지에 오른 검객은 반호진만이 아니었다.

운상과 남궁호, 운왕 역시 절대고수였기에 세 사람 다 이기어검을 펼쳤다.

“크하하핫! 이 몸도 있다!”

거기에 팽만철 역시 이기어도를 펼치자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던 구천문도들의 육신이 터져 나갔다.

그의 성향을 고스란히 담은 대도(大刀)가 막강한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였다.

남궁호나 운왕처럼 간결하게 처치할 수 있었음에도 팽만철은 일부러 보여 주려는 듯이 힘을 과하게 사용했다.

“이, 이럴 수가…….”

“힘을, 힘을 합쳐야 해! 이대로는 안 돼!”

피와 육편, 비명 소리가 난무하는 광경에 구천문도들이 정신을 차렸다.

분노로 뒤집혔던 눈이 제자리를 찾아오고 흥분이 가라앉았던 것이다.

그러자 코앞에 닥친 현실이 보였다.

정확하게는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천좌들의 모습이 말이다.

치이익! 부글부글!

묘강에서는 절대고수로 군림하던 천좌들이 팔다리가 잘리거나 배에 구멍이 뚫렸다.

그게 아니면 당우혁의 절독에 몸이 녹아내렸다.

누가 봐도 수준 차이가 극명하게 나는 모습에 정신을 차린 이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었다.

“물러나라! 아군과 합류한다!”

그걸 천좌 중 한 명도 깨달았는지 울부짖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어허! 올 때는 네들 마음대로지만 갈 때는 아니란다!”

“정 가고 싶으면 머리를 내어놓고 가거라!”

퇴각 명령에 구천문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몸을 돌렸으나 안타깝게도 성공한 이들은 소수였다.

반호진을 비롯해서 일행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였다.

구천문의 침공으로 죽은 무인들의 숫자만도 수천 명이었기에 일행들 모두 손속에 사정을 조금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서 손을 움직였다.

“이대로 쓸어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나무아미타불.”

도망치는 구천문도들을 향해 거침없이 살수를 뿌리던 당우혁이 들뜬 어조로 말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구천문의 전력이 신통치 않아서였다.

숫자는 묘강 제일의 문파답게 여전히 어마어마했지만 절대고수의 숫자가 과거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즉 지금의 전력으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당우혁은 두 눈을 빛내며 담현을 바라봤다.

“처음 계획대로 가야 합니다.”

“음!”

그때 반호진이 입을 열었다.

추격 쪽으로 마음이 서서히 기우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반대했던 것이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포달랍궁이나 북해빙궁이었다면 저 역시 당가주님의 의견에 찬성했을 겁니다. 그러나 구천문은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당가주님이야 만독불침이시니 웬만한 독은 위협이 안 되겠지만 저나 사부님, 그리고 다른 분들은 다릅니다. 자칫 잘못하면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맞아. 독은 위험해.”

담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반호진과 생각이 같았다.

다들 어느 정도 독에 면역이 있기는 하나 완벽한 건 아니었다.

심지어 만독불침조차 독에 당할 수가 있는 만큼 무리해서 구천문의 내부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으음!”

다만 당우혁만은 아쉬운지 침음을 흘렸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서였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기에 당우혁은 아쉬운 표정으로 연신 입맛을 다셨다.

“저희가 우위를 점한 건 절대고수의 숫자도 숫자지만 기습 때문입니다. 이 이점이 사라진 이상 모든 것이 저희에게 불리합니다.”

“맞소이다.”

“동의하네.”

당우혁을 힐끔거리며 운상과 개왕이 동조했다.

사실 두 사람도 당우혁과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이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풀려야 기회이지 안 풀리면 함정에 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었기에 이내 마음을 돌렸다.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구천문을 끝내고 포달랍궁과 북해빙궁에도 가야 했기에 피해를 최소화해야 했다.

“……알겠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땐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준비를 하고 오죠. 구천문을 지워 버릴 각오로 말이죠.”

“자네도 함께해 주는 건가?”

“이것으로 빚을 다 갚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서요. 오늘은 경고일 뿐입니다.”

“크하하하!”

당우혁이 그답지 않게 호탕하게 웃었다.

기가 막힌 생각의 전환에 당우혁은 울 것처럼 박장대소했다.

또한 팽만철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포기하고 물러나는 게 아니라 경고의 의미라고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져서였다.

“물론 이대로 그냥 갈 생각은 없습니다.”

스윽.

37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