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73화 (373/468)

제 121장. 우리도 간다. -03

당우혁의 얼굴이 밝아졌다.

말투로 보건대 반호진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담현과 반호진, 개왕, 염왕, 도왕, 운왕, 검왕과 자신이라면 구천문을 지워 버리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지만은 않았다.

‘천하십대고수만 무려 여덟 명이니까.’

꿀꺽!

당우혁은 기대감에 침을 삼켰다.

운이 좋다면 기습이 아니라 구천문을 아예 멸문시키는 것도 가능할 듯싶어서였다.

“구천문이라.”

“이 말을 하려고 숭산까지 헐레벌떡 달려왔구만? 역시 꿍꿍이속이 있었어.”

조용히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긴 남궁호와는 다르게 팽만철은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역시나 순수한 의도로 찾아온 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당우혁은 팽만철의 비아냥거림을 흘려 넘겼다.

굳이 반응해 줄 필요가 없어서였다.

“자네답지 않게 약한 소리를 하는군. 웬만한 독은 안 통하지 않나.”

“만독불침은 아니니까요.”

“거의 근접한 것처럼 보이는데.”

당우혁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독에 관해서는 중원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바로 그였다.

그렇기에 당우혁의 눈에는 보였다.

웬만한 독으로는 반호진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근접했을 뿐 만독불침인 건 아니지요.”

“원한다면 만독불침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네만.”

“괜찮습니다.”

단칼에 거절하는 반호진의 대답에 당우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럴 거라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찌릿!

거기에 매서운 두 쌍의 눈빛은 덤이었다.

마치 그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눈빛에 당우혁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왕 시작하는 거 구천문을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싶구나.”

“저는 일단 찬성입니다. 중원을 차지할 마음을 품었으면, 역으로 당할 각오도 해야지요. 그래야 다음에 중원침공을 계획할 때는 신중해지지 않겠습니까. 당한 걸 떠올리면서요.”

“맞아.”

담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호진과 생각이 같았다.

하지만 당우혁을 제외한 세 사람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기에 담현은 개왕과 남궁호, 팽만철을 차례대로 바라봤다.

“흘흘. 나는 찬성이오. 늘그막에 재미있는 일이 생겼는데 빠질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저도 찬성입니다.”

“제가 빠지면 섭하지요. 언제고 한 번은 꼭 갚아 주고 싶었습니다. 제 성격이 당하기만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지라.”

“알겠습니다.”

예상한 대로 누구 하나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기대했던 무당파와 곤륜파보다 더 빠른 선택에 담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인 듯싶어서였다.

“그럼 이제 남은 문제는 순서와 속도겠네요. 아, 두 장문인께 지금의 상황을 알려 드림과 동시에 참여 여부에 대해서도 확답을 들어야 하고요.”

“그 부분은 나에게 맡겨 주게. 남아도는 게 인력이니 전서응보다 빠르게 소식을 전하겠네.”

“이미 출발하셨다면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거라도 파악해야 하지 않겠나.”

절대고수의 이동속도는 일반적인 무인과 궤를 달리했다.

또한 전서응보다도 빨랐기에 개왕은 다양한 경우의수를 생각했다.

“중요한 건 어긋나지 않고 한곳에 모이는 겁니다.”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면 이곳으로 오지 않겠나. 곤륜파 장문인은 거리가 있으니 운상 진인보다는 조금 늦을 테고. 그동안 반 문주의 말대로 공격할 순서를 정하면 되지 않겠나.”

“정보도 통제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개왕이 아랫입술을 핥았다.

잠시 잊었던 실수가 떠올라서였다.

게다가 이미 한 번 배신을 당한 전적이 있기에 개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십대세가 중 한 곳이 배신을 했었기에 여기 있는 이들의 문파와 가문을 제외하고는 어느 곳도 믿을 수는 없었다.

“관건은 속도겠군. 만약 정보가 새어 나갔더라도 전달되기 전에 먼저 도착하면 되니까.”

“그렇습니다. 재수가 없다면 최대 두 곳은 방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

“반대로 재수가 좋으면 세 곳 다 모를 수도 있겠지.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지요.”

팽만철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정보가 샜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서였다.

그리고 설사 방비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천하십대고수 여덟 명을 완벽하게 막아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 전이었다면 모를까 패배로 인해 전력의 상당 부분이 소실된 상태였기에 팽만철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알아보겠소이다.”

“부탁드리겠습니다.”

“허어. 부탁이라니. 당연히 개방이 나서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보다 방장께서는 어디를 첫 번째로 생각하시오?”

“경로를 생각하면 구천문과 북해빙궁 중 한 곳을 택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역시 생각이 같구려.”

개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담현과 같은 생각이어서였다.

그러나 한 곳을 골라야 한다면 개왕은 생각해 둔 곳이 있었다.

“네 의견을 듣고 싶구나.”

“저도 두 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둘 중 한 곳을 골라야 한다면 저는 북해보다는 묘강입니다.”

“이유는?”

“소식이 전해지는 속도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묘강보다는 북해가 상대적으로 전해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까요. 만약 정보가 새지 않았더라도 북해빙궁, 포달랍궁 순으로 공격한다면 구천문은 저희가 노린다는 걸 알아차릴 겁니다. 누가 보더라도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니까요.”

“반대로 구천문, 포달랍궁, 북해빙궁 순으로 경로를 짜면 알려지는 것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할 수도 있겠구나.”

담현의 말에 반호진을 제외한 모두가 눈을 번뜩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인지 다들 마음이 구천문 쪽으로 기울어졌다.

“예. 이왕이면 무방비 상태일 때 기습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니까요.”

“좋은 생각이야.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반호진의 의견을 수렴한 담현이 네 사람을 바라봤다.

다른 이들의 의견도 듣기 위해서였다.

한데 담현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개왕이 히죽 웃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있나 싶소이다.”

“구천문부터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두 분께서 도착하시면 최대한 빨리 묘강으로 출발하시지요.”

개왕에 이어 남궁호와 당우혁도 동조했다.

두 사람이 보기에도 가장 효율적인 것 같아서였다.

팽만철이야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 있었기에 담현은 빙긋 웃었다.

“그럼 이렇게 결정 난 것으로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시죠, 사부님.”

“그러자꾸나.”

결정이 났으니 이제는 준비를 할 때였다.

그렇기에 담현은 세세한 것들을 빠르게 조율했다.

***

묘강 제일의 문파답게 구천문은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독문(毒門)답지 않게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대로 중앙에 위치해 있었는데 반호진은 그런 구천문이 멀찍이 보이는 구층전각 지붕 위에 내려섰다.

툭. 투둑. 툭.

반호진의 곁으로 일곱 개의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바로 함께 하늘을 날아서 이동한 담현과 운상, 개왕, 남궁호, 당우혁, 팽만철, 운왕이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여덟 명이 동시에 내려섰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았다.

“구천문의 본진이 저런 곳이었단 말이지.”

“조그마한 녀석들이 어울리지 않게 건물은 크게 올렸군.”

난생처음 보는 구천문을 내려다보며 남궁호와 팽만철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수없이 듣고 직접 싸워 보기도 했지만 이렇게 구천문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어서였다.

반면에 담현과 운상은 다른 점을 보고 있었다.

아무리 가장 높은 건물 지붕에 올라왔다고 하지만 자신들을 발견한 이들이 아무도 없어서였다.

“시작할까요?”

“그러자고. 우리가 구경하려고 이 먼 묘강까지 온 게 아닌데. 기습은 빠르고 강력하게 치고 빠지는 게 묘미이기도 하고.”

담현과 운상을 힐끔거린 반호진이 입을 열자 팽만철이 옳다구나 하고 대답했다.

이곳에 온 건 구천문을 공격하기 위해서이지 구경하러 온 게 아니어서였다.

게다가 구천문에 복수한다고 생각하자 몸이 근질거렸다.

“다행히 정보는 새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니면 아직 도달하지 못했거나.”

“이젠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으니까.”

“그렇죠.”

웅웅웅!

반호진이 대답하기 무섭게 담현과 개왕이 진기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운상과 남궁호, 팽만철, 운왕은 지붕 아래로 손을 뻗었다.

허공섭물로 근처에 있던 무인에게서 검과 도를 빼앗은 것이었다.

“쯧쯧! 이딴 것들을 병기라고 들고 다니다니.”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법이지.”

“내가 그걸 모를까. 다만 너무 형편없어서 그렇지.”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릴 거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쓰레기야.”

그냥저냥 검을 드는 남궁호와 달리 팽만철은 얼굴 가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품질이 중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떨어져서였다.

게다가 형태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 애병을 쓰든가.”

“이깟 일에 내 도를 쓸 수는 없지.”

“그럼 닥치고 그냥 써.”

더 이상 팽만철의 투덜거림을 듣기 싫다는 듯이 남궁호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러고는 강탈한 투박한 검에 진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내, 내 검!”

“누구냐! 누가 감히 내 칼을……!”

구층전각 아래에서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갑자기 허리춤에 있던 검과 도가 허공으로 날아가자 원주인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원래 주인에게서 병장기들을 빼앗은 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쉬이이익!

진기를 잔뜩 머금은 검과 도 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일행들이 하늘 높이 힘껏 던진 것이었다.

그 뒤로 담현과 개왕의 기운이 잔뜩 응집된 강환이 뒤따랐다.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듯 금광(金光)과 백광(白光)이 찬란한 빛을 뿌려 대며 하늘로 올라갔다.

“각자 구역은 다 알고 있지?”

“물론이네.”

“그럼, 떨구자고!”

쌔애애액!

쏘아지듯 하늘 높이 솟구쳤던 강환과 검, 도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팽만철의 말대로 미리 약속된 위치로 살벌한 파공음을 토해 내며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꽈아앙! 꽈과과광!

날린 건 동시였으나 떨어지는 속도는 각기 달랐다.

모두 초월경의 고수였으나 수준이 다 똑같은 건 아니어서였다.

그러나 중요한 건 기습공격이 제대로 먹혔다는 것이었다.

소름 끼치는 파공음에 구천문의 수뇌부가 반응하기는 했으나 안타깝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무언가가 날아오는 걸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마저도 느끼지 못한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시체로 화했다.

“이젠 내 차례로군.”

연달아 일어나는 거대한 폭발들을 지켜보던 당우혁이 섬뜩한 안광을 발했다.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도래해서였다.

당한 거는 절대 잊지 않는 사천당가의 주인답게 당우혁은 오랜 시간 동안 가슴에 쌓아 놓은 한들을 공력과 함께 응집했다.

웅웅웅웅!

“가랏!”

당우혁의 양손 안에서 생성된 강환이 빠르게 커졌다.

압축하고 압축했던 담현이나 개왕과 달리 당우혁은 무식할 정도로 크기를 키웠다.

그의 강환은 단순히 공력이 응축된 게 아니라 독기도 함께 서려 있었기에 크기가 중요했다.

부우우웅!

사천당가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강환이 묵직한 파공성을 흘리며 쏘아지듯 날아갔다.

그렇지만 구천문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똑같은 수법에 두 번이나 당할 수는 없다는 듯이 첫 번째 공격에 살아남은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당우혁이 날린 강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부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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