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68화 (368/468)

제 120장. 속가장문인. -02

혹여나 반호진이 기분 나빠할까 봐 방일석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그건 옆에 앉아 있던 방현승도 마찬가지였다.

사제이지만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인물이었기에 방현승 역시 긴장한 눈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왜 그렇게 힘들게 물어봐요. 그냥 평소대로 편하게 물어보면 될 것을.”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방 사형이 그렇게 하면 저도 불편해요.”

“편하게 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안 되네. 하하하.”

방일석이 어색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빈말이 아니라 마음은 그도 진짜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음을 먹어도 이상하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조심스러웠다.

“기도는 개방하지 않고 있는데.”

“알지. 나도 나름 절정고수인데. 그 정도는 충분히 느껴. 이건 내가 심적으로 느끼는 부담감이야.”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요?”

“글쎄다. 뭐라 말하기가 힘드네.”

이런 경우는 방일석도 처음이었기에 확답을 하기가 애매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 차차 나아지겠죠. 처음 응접실에 들어왔을 때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나으니까요.”

“똑같은 사람도 있어.”

스윽.

방일석의 시선이 사촌형인 방현승에게로 향했다.

그와 달리 방현승은 여전한 것 같아서였다.

“국주님께서도 대화를 나누면 괜찮아지시지 않을까요?”

“하하하. 노력해 보겠네.”

“힘들겠어.”

누가 들어도 심각하게 떨리는 목소리에 방일석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암만 봐도 가능성이 희박할 것 같아서였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두 분은 모르겠지만.”

“우리도 널널해. 바쁘지 않은 건 아닌데, 그래도 시간을 못 낼 정도는 아니야.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반 사제를 만나러 오는 건데.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지금의 사제인데. 아, 반 문주라고 말해야 하나?”

“편하신 대로 하세요. 어느 쪽이든 저인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저도 아직 적응이 안 된 상태이기도 하고요.”

“그럼 사석에는 평소대로 사제라고 하고 공석에서는 반 문주라고 할게.”

“저는 상관없어요. 자,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청림표국은 훈련을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거죠?”

차마 다시 말을 꺼내지 못했던 방일석과 방현승이 눈을 빛냈다.

그러더니 이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만 괜찮다면!”

“현재 정해진 일정이 딱히 없습니다. 휴식을 취하는 중이라서요. 훈련이라고 해서 제가 일일이 다 챙기는 것도 아니고요.”

“알지. 근데 효과가 확실하잖아. 전원 절정의 벽을 넘었으니까. 이번 전쟁으로 몇몇 죽기는 했지만.”

방일석은 물론이고 방현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전쟁 중에 죽은 이들이 떠올라서였다.

하지만 이내 둘은 그 기색을 털어 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위령제에 참석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위로는 전장에서 충분히 했잖아. 위령제만 참석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리고 죽은 이들은 이제 보내 줘야지. 산 사람을 생각하기에도 시간은 짧으니까.”

“중단했던 훈련을 시작할 마음은 있습니다. 빚과 마찬가지로 은혜도 갚아야 하니까요.”

“진짜?”

“예.”

반호진의 대답에 방일석이 반색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을 들어서였다.

그는 너무나 원하지만 반호진의 입장에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기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한데 의외로 흔쾌히 하겠다고 하자 방일석은 화색을 띠었다.

“고맙다!”

“고맙기는요. 힘들었을 때 도움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당연히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크게 부담이 되는 일도 아니고요.”

“그렇기는 한데 또 쉬운 일은 아니니까. 빚은 잊지 않아도 은혜는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저 그렇게 몰염치한 사람 아닙니다.”

“알지! 아주 잘 알지! 근데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약간의 문제가 있어. 조율을 해야 하긴 하는데 그래도 인원이 좀 될 것 같아.”

방일석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허락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만 아직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방일석은 차마 반호진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약간의 문제요?”

“응. 전쟁 때 참전한 표국이 우리만 있는 게 아니잖아. 사문이 다른 표국들은 애초에 고민할 이유가 없지만 문제는 소림사의 속가제자들이 세운 표국이 우리 청림표국만 있는 게 아니니까.”

“몇 곳 있기는 하죠.”

반호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원십대표국에 속할 정도로 큰 곳은 청림표국뿐이었지만 중소 규모의 표국들은 꽤 되었다.

“사제도 알겠지만 단순히 힘의 논리만으로 일을 처리할 수가 없거든. 우리의 입김이 가장 큰 건 사실이지만.”

“방 사형께 일임하겠습니다.”

“어?”

“잘 조율해 주세요. 근데 인원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세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던 방일석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별다른 고민 없이 시원스럽게 말하자 순간적으로 당황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여러 곳에서 모이는 만큼 저번보다는 많지 않을까 싶은데.”

“생각해 두신 숫자가 있을 것 같은데요.”

“대략 백 명 정도? 그 정도면 뒷말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벽을 앞둔 인원이 그렇게나 많아요?”

이번에는 반호진이 살짝 놀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인원이 많아서였다.

그런데 방일석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많을 수밖에. 절정의 벽을 넘지 못하면 계속 초일류의 경지에 머물러야 하니까. 사제가 못 봐서 그렇지 십대표국쯤 되면 나이 육십이 넘어서도 초일류인 표사들이 많아. 저번에 보낸 애들은 가급적 젊은 애들로 보낸 거고. 근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니까.”

“고르고 고른 숫자가 백 명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아마 장담컨대 경쟁이 어마어마할 거야. 사제가 보여 준 선례를 다 알거든. 사제도 알지? 벽을 얼마나 넘고 싶어 하는지.”

“잘 알죠.”

남들이 보기에는 순탄하기 짝이 없는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금의 경지는 지난 생의 죽음이 있었기에 이룩할 수 있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노력했기에 지금의 힘을 손에 넣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경지에 오르기까지 반호진은 수도 없이 넘어지고 좌절하며 무너졌었다.

“아마 지원자는 순식간에 모일 거야. 문제는 그중에서 선별하는 거지. 일단 뽑히기만 하면 벽을 넘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안 될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어? 이번에도 전원 다 넘게 할 수 있어?”

“꿈은 크게 가져야죠.”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하겠다만.”

방일석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반을 넘어 칠 할이나 팔 할 정도까지는 가능할 거라고 그도 생각했다.

그러나 전원은 솔직하게 무리였다.

또한 욕심이었고.

“저도 경험이 쌓였으니까요. 저번보다는 더 나을 겁니다. 물론 각자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요.”

“그건 당연하지. 내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게 바로 그거야. 노력하지 않는데 벽을 넘게 해 줄 수는 없으니까. 벽은 자기 자신이 넘는 거지 남이 넘게 해 주는 게 아니잖아?”

“그렇죠.”

“딱 봐서 아니다 싶으면 바로 걸러야지. 그러라고 나한테 일임한 거 아냐?”

“맞습니다. 사람 보는 안목은 저보다 정확하시니까요.”

방일석의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어떻게든 웃는 걸 참으려는 것이었다.

“에이. 나보다는 사제가 정확하지. 지금까지 선택한 이들 중에 실패한 사람이 없잖아? 심지어 저번에는 우리 표사들도 다 절정고수로 만들어 주었고.”

“운도 좀 포함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말이죠. 그리고 다 성공한 건 아닙니다.”

“아직은 그렇겠지, 아직은.”

방일석이 능글맞게 웃으며 아직이라는 두 글자를 강조했다.

다들 처음에는 반호진의 선택을 비웃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반호진은 결과로 증명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걱정이 되네요.”

“너무 부담은 갖지 마. 다들 절정의 벽을 넘길 바라지만 그게 욕심인 건 알고 있으니까. 다만 그래도 돌파구는 되지 않을까 생각할 거야. 약간의 운이 따른다면 벽을 넘는 거고. 근데 그건 자기 하기 나름이니까. 나도 안 되겠다 싶은 녀석들은 전부 거를 거고. 일단 인성이 안 되는 이들이 일 순위야.”

“무공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맞아.”

방일석과 방현승이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표국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보다 중요한 건 없었다.

무공도 중요하지만 순위를 매기자면 사람 다음이었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이럴 때는 귀신같다니까.”

“계속 모른 척할까요?”

“에이. 이렇게 말이 나왔는데 이제 와서 그러면 안 되지.”

방일석이 넉살 좋게 웃었다.

내심 먼저 말 걸어 주길 기다렸다는 표정에 반호진은 나지막하게 실소를 흘렸다.

“먼 길을 오셨는데 다 하고 가셔야죠.”

“그럼 편하게 한다?”

“예.”

“혹시 절정고수들을 훈련시킬 생각은 없어?”

방일석이 반호진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그로서는 반호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절정고수라면 최절정고수들도 포함이겠네요?”

“응.”

“그건 싫습니다.”

은근히 기대하던 방일석과 방현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단칼에 거절해서였다.

아예 여지를 두지 않겠다는 듯이 확고하게 거절하는 모습에 두 사람은 입맛을 다셨다.

“역시 그런가.”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효율 때문입니다. 절정의 벽은 진짜 딱 한 걸음이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이의 조언을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고요. 그렇지만 절정고수나 최절정고수들은 다릅니다. 일단 범위 자체가 광범위합니다. 일일이 신경 쓸 시간도 없고요.”

“미안해. 내가 무리한 부탁을 했어.”

방일석이 곧바로 사과했다.

중단된 훈련을 재개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순간의 욕심에 눈이 멀어 과한 요구를 하고 말았다.

그래서 방일석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사제이지만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었기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절정의 경지부터는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방 사형도 아시잖습니까.”

“맞는 말이기는 한데, 사제는 다르니까. 또 대놓고 부탁하는 녀석들도 있어서.”

“그때는 제 이름을 파세요. 제가 하기 싫다고 한다고. 돈이 목적이었으면 진즉에 판을 크게 벌였을 겁니다.”

“하긴. 사제는 빚을 갚는 셈치고 하는 거니까.”

지나치듯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방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그걸 주의 깊게 듣지 않은 자신을 책망했다.

“크게 보면 중원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표사들이 강해져서 산적과 수적, 마적단을 물리치면 세상이 조금은 이롭게 변하지 않겠습니까.”

“이럴 때 보면 진짜 불가의 제자라니까.”

“방 사형도 불가의 제자이지 않습니까.”

“난 너무 세속적이야. 불가의 물은 거의 빠졌다고 보면 돼. 국주님도 마찬가지시고.”

방일석이 키득거렸다.

그러나 반호진은 알았다.

말은 저렇게 해도 불문의 제자라는 걸 방일석은 잊지 않았다.

또한 중원무림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도.

“속가제자가 괜히 속가제자가 아니죠. 그럼 선별해서 이곳으로 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겠네요.”

“새해는 무조건 지날 거야. 각자의 의견을 조율하는 데만도 시간이 제법 걸릴 테니까.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지겠지만 이건 내 문제고. 그보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오늘은 질문이 많으시네요.”

“언제 또 이런 자리가 생길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내가 대표두인 건 기억하고 있지?”

37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