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57화 (357/468)

제 117장. 경사다, 경사. -01

반호진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상상도 못 한 말에 경악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대련을 끝마친 서조운도 마찬가지였다.

충격적인 소식에 서조운은 대련하는 쌍둥이 형제를 내버려 두고 단숨에 뛰어왔다.

“뭐어?!”

얼마나 놀랐는지 헐레벌떡 뛰어온 서조운이 사마의성의 팔을 붙잡았다.

뒤이어 예유화도 달려왔는데 그녀 역시 놀란 기색이 완연했다.

“선우세가에서 오빠 앞으로 공식서한이 왔는데 말이 공식서한이지 방이 오빠 편지야. 우선 오빠 먼저 보여 드리고.”

“그건 당연하지.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여전히 놀란 표정을 수습하지 못한 얼굴로 서조운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리 궁금하다고 하나 반호진이 먼저였다.

“어디 보자.”

사마의성이 공손히 건네는 서신을 반호진은 천천히 펼쳤다.

이윽고 그의 눈에 선우방 특유의 정갈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꿀꺽!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서조운이 뚫어져라 서신을 바라봤다.

곳곳에 먹물로 적힌 글자가 살짝살짝 비쳐 보였으나 몇 장이 겹쳐 있었기에 읽을 정도는 아니었다.

“결혼 상대는 놀랍지 않죠?”

“그러네. 예상했던 대로네. 다만, 날짜가 왜 이렇게 빨라? 혹시 사고 쳤나?”

사마의성과 반호진의 대화에 서조운은 물론이고 예유화가 눈을 껌뻑거렸다.

마지막 발언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서였다.

특히 예유화는 투명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러나 모두의 시선이 반호진과 서신에 향해 있어서 다행히 그 모습을 본 이는 없었다.

“저도 그 생각했어요. 명문세가끼리의 혼인은 아무래도 절차가 좀 많은 편이니까요. 서두른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헙! 방이 형 그렇게 안 봤는데…….”

“아직 몰라. 그냥 추측일 뿐이지.”

서조운이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확실하게 밝혀진 것도 없는데 너무 앞서가는 것 같아서였다.

물론 반호진도 가능성은 열어 두었다.

이십 대 남자의 혈기왕성함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건 너무 앞서갔다. 다른 이들은 그렇게 생각해도 우리는 방이 오빠를 믿어 줘야지.”

“그래서 넌 믿어?”

“흐음.”

“거봐. 너도 의심하잖아.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이기도 하고.”

“방이 오빠는 마음이 없었어도 팽 소저가 먼저 달려들 수도 있으니까.”

사마의성이 진지하게 턱을 쓰다듬었다.

함께한 시간이 제법 길기에 선우방에 대해서는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만약 두 사람이 사고를 쳤다면 사마의성은 선우방이 아니라 여자 쪽에서 쳤을 거라고 예상했다.

“호오. 그것도 신빙성이 있는데. 아니지. 가능성이 높아. 하북팽가 특유의 기질을 생각하면.”

“그렇지?”

“응. 팽가주님의 피가 어디로 가지는 않을 테니까. 또한 피는 남녀를 가리지 않지. 단지 숨기고 있을 뿐.”

“웬일로 날카롭네?”

“나도 이제는 약관을 코앞에 둔 연배이니까.”

서조운이 콧대를 세우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말에 동조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날짜가 얼마나 빨라요?”

“느긋하게 갈 거면 열흘 후에 출발해야 하고 조금 서두를 거면 이레 안에?”

“확실히 빠르긴 하네요.”

조심스럽게 물었던 예유화가 살짝 놀랐다.

이 정도로 빠르게 혼인을 진행할 줄은 몰라서였다.

하북팽가가 아닌 선우세가였기에 이 정도나 시간이 있었지 만약 하북성으로 가야 했다면 더 서둘러야 했다.

“이번에는 너희들도 데리고 갈 거야.”

“네?”

“물론 문도들도 마찬가지고.”

예유화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예상하지 못한 말에 크게 놀란 것이었다.

“정말요?!”

“저희들도 데리고 가실 거예요?”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 온 백휘경, 백휘성 형제가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서였다.

“너희들도 축하해 줘야지. 방이랑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혹시 가기 싫으면 편하게 말해. 억지로 데리고 가지는 않을 거니까.”

“아니에요!”

“가고 싶어요! 무조건 가고 싶어요!”

혹시라도 불편해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듯싶었다.

오히려 격렬하게 가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쌍둥이의 모습에 반호진은 옅게 웃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부총관도 함께 갈 거야. 자고로 혼인은 북적북적해야지. 적어도 새신부보다는 새신랑 쪽이 북적거려야지. 이건 자존심 문제야.”

“맞습니다. 가뜩이나 하북팽가에 꿀린다고 생각할 텐데 인원이라도 많아야죠.”

“저도 동의해요.”

반호진의 말에 서조운과 사마의성이 격하게 동조했다.

하북팽가와의 인연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선우세가가 두 사람에게는 훨씬 더 가깝고 중요했다.

이왕 하객으로 참석할 거면 확실하게 하는 게 좋았다.

“본가에도 알려야겠어요. 이제는 서가장도 엄연히 무림세가이니까요.”

“그렇지. 방이가 정신없어서 서가장에 초대장을 보내는 걸 깜빡했을 수도 있으니까 네가 확실하게 한 번 더 서신을 보내 봐.”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선우방의 결혼에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새신랑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기에 서조운은 한시가 급하다는 듯이 전력으로 뛰었다.

그 모습에 사마의성도 말을 이었다.

“저는 척이 오빠랑 이륭 오빠에게도 소식을 전할게요.”

“그래. 방천문주께는 내가 전달하마.”

“네.”

사마의성이 곱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갈 곳이 많은 만큼 서두르는 것이었다.

모두가 함께 간다면 일정을 다시 잡아야 했기에 사마의성은 이동하면서도 쉴 새 없이 계획을 짰다.

“너희들도 아이들에게 선우세가에 갈 거라고 알려 주고.”

“넵!”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제가 확실하게 전달할게요.”

평소보다 확연히 들 떠 있는 쌍둥이 형제의 모습에 예유화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두 형제는 미덥지 않았기에 본인이 나서려는 것이었다.

“부탁하마.”

“네.”

반호진도 백휘경, 백휘성 형제보다는 예유화가 훨씬 더 믿음직스러웠다.

나이를 떠나서 말이다.

아마 예유화가 쌍둥이 형제보다 어렸어도 반호진은 그녀를 더 믿었을 것이었다.

***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선우세가 정문의 모습에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난생처음 보는 명문세가의 모습에 다들 놀라고 신기해하는 것이었다.

무상문의 위명이 대단하다고 하나 실질적으로 느끼기에는 힘들었기에 아이들은 다들 똑같은 눈빛과 표정으로 주변을 구경하기 바빴다.

“대부분이 하객들이겠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네요. 예전에 비하면요.”

“그때와 지금은 완전히 다르지.”

“많이 달라지기는 했죠. 방이 형도 그렇고, 선우세가도 그렇고요.”

모용척이 애써 흡족한 기색을 털어 냈다.

고작 이 정도로는 그의 성에 차지 않아서였다.

모용세가도 그렇지만 선우세가도 지금보다 더욱 커져야 했다.

“서가장도 이랬으면 좋겠어요.”

“네가 장가가면 비슷하기는 할걸? 일단 천하십대고수 세 명이 참석하니까. 이 자리에만 일단 두 명이 있잖아?”

“오.”

서조운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반호진의 말대로 천하십대고수 세 명은 확정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소림사와 모용세가, 선우세가에서도 하객이 올 테니 눈앞에 보이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 차이가 나지는 않을 터였다.

“네가 좀 더 강해지고 무명을 더 쌓으면 하객들의 규모도 덩달아 커지겠지?”

“역시 답은 하나뿐이네요.”

“사람을 불러올까요?”

서조운이 의욕을 불태울 때 주변을 살펴보던 사마의성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방문객이 많아 선우세가 측에서 이쪽을 확인하지 못한 것 같아서였다.

미리 도착할 시간을 선우세가에 전달하기는 했으나 워낙에 정문이 번잡하기에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먼저 움직이는 게 나을 듯싶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게 나을 것 같아.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고.”

반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무상문 전체가 오다시피 했기에 인원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이들을 데리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기에 반호진은 정신없이 손님들을 응대하는 정문위사들과 선우세가의 무인들을 살폈다.

적당히 말을 걸 이를 찾는 것이었다.

“제가 가 보겠습니다.”

“반 대협!”

“응?”

그때 활짝 열린 정문 안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일단의 무리가 바다를 가르듯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정문을 갈랐다.

바로 선우세가의 수장인 선우청의 등장에 사람들이 길을 열어 준 것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희도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방이는요?”

“손님 맞이하느라 정신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반호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리 그의 무명이 대단하다고 하나 선우청이 직접 맞이해 주는 건 살짝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배분도 선우청이 높을뿐더러 일단 친구의 아버지였기에 반호진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반 대협께서 오셨는데 당연히 제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천문주님도 계시고.”

선우청의 시선이 정이륭과 나란히 서 있는 상일기에게로 향했다.

반호진도 반호진이지만 상일기 역시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마중을 나오는 게 맞았다.

“바쁘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짬을 낼 정도는 됩니다. 반 대협은 아들의 친구이지만 본가와도 각별한 사이이지 않습니까. 혹시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요?”

“아닙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보다 언제 말씀을 편히 해 주실는지요?”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허허허허.”

선우청이 머쓱하게 웃으며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였다.

예전부터 반호진이 편히 말해 달라고 했지만 생각과 달리 쉽지 않았다.

나이는 물론이고 배분도 그가 높았으나 강호에서의 명성은 반호진이 훨씬 위였다.

아무리 백도무림이 배분을 중요시한다지만 기본적으로 강호는 약육강식의 세계였기에 선우청은 선뜻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저는 방이의 친구입니다.”

“동시에 소림검신이시며 무상문주이시기도 하지요. 그래도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 사석에서라도 편히 말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약속하신 겁니다?”

“예.”

무림에서의 위상이 달라졌음에도 여전히 한결같은 반호진의 모습에 선우청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동시에 감사했다.

이런 반호진이 아들의 벗이라는 사실에.

스윽.

그런 생각을 하며 자연스럽게 일행들과 눈인사를 하던 선우청의 시선이 이내 한곳에 멈춰 섰다.

바로 사마의성이 서 있는 곳이었다.

그녀가 여자였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선우청은 아들만큼이나 놀랐었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기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뵈었을 때와 많이 달라지긴 했죠?”

“솔직히 말하면 정말 많이 놀랐다네. 진짜 예상하지 못했었거든. 근데 지금의 모습도 잘 어울리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와 주어서 고맙네.”

“당연히 와야지요. 방이 오빠의 결혼식인데요.”

사마의성에게도 따로 감사 인사를 전한 선우청은 이내 일행들을 이끌고 별채로 향했다.

귀한 손님이니만큼 가장 좋은 별채로 미리 준비해 두었기에 선우청은 직접 반호진 일행을 안내했다.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 만큼 해 질 녘이 되어서도 선우세가의 외원은 시끄러웠다.

늦은 시간까지 방문객들이 줄을 이어서였다.

그런데도 선우방은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반호진을 찾았다.

“다들 방은 마음에 들어? 내가 특별히 이곳으로 배정했는데.”

“확실히 신경 좀 쓴 티가 나더라. 일단 다른 사람들이랑 부딪치지 않게 동떨어져 있어서 좋아.”

“그래서 내가 이곳으로 정했지. 방장께서 도착하시면 이리로 모실 거야.”

“고맙다.”

“이거 가지고 뭘.”

반호진을 보며 선우방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다행히도 다들 만족해하는 것 같아서였다.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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