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54화 (354/468)

제 116장. 좋은 소식. -01

세인들은 소림검신의 무공과 명성을 칭송하지만 정작 반호진은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검신이라는 별호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생에서는 소림검신이라는 칭호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허명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별호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소림검신이라는 별호는 그에 따른 부산물일 뿐이었다.

“나는 할 만큼 했지. 암.”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정했던 목표는 이제 이룬 상태였다.

완벽하게 없애 버리지는 못해도 한동안 중원침공은 꿈도 꾸지 못할 터였다.

반호진은 그것만으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싸웠으니 이제는 좀 쉬어야지.”

아직 천사맹과 마도련의 잔당이 남아 있기는 하나 그건 다른 이들에게 맡겨도 충분했다.

반호진의 명성이 더 높아지는 걸 원치 않는 이들도 제법 많았고.

그래서 반호진이 먼저 돌아가자 은근히 반기는 이들이 많았다.

“근데 저건 산양인가?”

반호진의 시선이 목장 한 곳으로 향했다.

염소나 흑염소, 양은 원래부터 있었기에 딱히 놀랍지 않았는데 처음 보는 동물이 있자 시선이 절로 향했다.

“산양 맞습니다, 문주님!”

“부지런도 해라.”

“문도로서 당연히 문파의 일을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침부터 목청도 좋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곽춘을 보며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곽춘은 혼자가 아니었다.

입문 동기라고 할 수 있는 한륭과 황동오도 함께였다.

“안녕하십니까, 문주님!”

“그래그래.”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깍듯하게 인사해 오는 황동오와 한륭에게 반호진은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뒤따라 목장으로 오는 문도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산양을 키우기에는 목장 환경이 안 맞지 않나?”

“그래서 매일 근처 산으로 데리고 가요. 충분히 먹고 놀 수 있는 시간을 준 다음에 해가 지기 전에 목장으로 데리고 와요.”

“번거로울 텐데.”

“수련도 되고, 아이들이 많이 도와줘서 괜찮아요. 소나 말도 목장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산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얘네들이?”

곽춘의 말에 반호진이 나름 의젓하게 앉아 있는 삼형제를 바라봤다.

마치 반호진을 호위라도 하겠다는 듯이 양옆에 각자 자리를 잡고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는데 자신들을 얘기한다는 걸 아는 모양인지 귀를 쫑긋거렸다.

“예. 따로 가르친 게 없는데 목양견처럼 행동하더라고요. 일단 덩치가 있어서 그런지 늑대나 멧돼지한테도 안 밀리고요. 아마 새끼들이 다 자라서 성견이 되면 웬만한 늑대 무리도 다 때려잡을 것 같아요. 곰이나 호랑이는 저희들이 상대하면 되고요.”

“맹수가 있긴 하지.”

반호진이 턱을 쓰다듬었다.

맹수라고 해서 겁이 없지 않았다.

오히려 야생에서 살아가기에 본능이 상당히 뛰어난 게 맹수였다.

자기보다 강한 존재를 귀신같이 알아차리기에 아직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아이들은 약해도 주기적으로 그나 일행들이 산을 돌아다녔기에 감히 인가에 내려오는 호랑이나 곰은 없었다.

이제는 예전처럼 인원이 부족하지도 않아서 밤마다 돌아가면서 보초를 서기도 했고.

“맹수는 길들이기 힘들까요?”

“힘들지. 새끼 때부터 키워도 야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니까. 동오 너는 길러 보고 싶구나?”

“예. 할 수만 있다면요. 보통 사람들은 무리겠지만 저희들은 무공을 익혔으니까요. 지금은 몰라도 제대로 된 무인이 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황동오가 눈을 반짝였다.

길들일 수만 있다면 목장을 지키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개인적으로 맹수들을 좋아하기도 했기에 황동오는 한 번 정도는 시도해 보고 싶었다.

“가능성은 있지. 성공한 사례도 드물기는 하지만 있고. 그렇지만 이것 한 가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피해를 보지는 않을까 하고.”

“아…….”

황동오의 두 눈이 일순 흔들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생각했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아서였다.

혼자 살면 모르겠으나 장원에는 많은 이들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툭.

“내가 말했지? 욕심부리지 말라고. 아직은 너무 이르다고.”

“그러네. 내가 바보 멍충이였어.”

곽춘이 팔꿈치로 옆구리를 툭 치며 말하자 황동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미안한 얼굴로 친구들과 동생들을 바라봤다.

“이제라도 알면 됐다.”

“자자, 일 시작하자! 평소보다 늦었어.”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한륭이 익숙하게 환기시켰다.

그런 다음 빠르게 일을 시작했다.

반호진에게 공손하게 인사한 후 매일 하던 일을 능수능란하게 이어 나갔다.

“호오.”

예전에도 어설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왠지 모르게 전문가처럼 느껴지는 움직임과 분위기에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의 모습에서 문도들과 아이들이 얼마나 성실히 각자의 일을 해 왔는지 알 수 있어서였다.

스윽.

잠시 구경하던 반호진은 이내 몸을 돌렸다.

지켜보는 게 일을 하는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다.

말로는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이 지켜보면 아랫사람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기에 반호진은 조용히 자리를 이동했다.

킁킁!

“역할 분담이냐?”

이동이, 삼동이가 한륭을 따라 산양과 염소, 말, 소들을 데리고 울타리를 넘어 산으로 가는 것과 달리 자신의 곁으로 바짝 붙는 일동이의 모습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하는 행동이 자신을 끝까지 보필하겠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였다.

월!

“그래. 오늘은 같이 다니자꾸나.”

외로움을 타지는 않지만 그래도 혼자인 것보다는 함께인 게 낫기에 반호진은 뒷짐을 지고서 느릿하게 걸어갔다.

이왕 나온 거 장원을 크게 돌면서 둘러볼 계획이었다.

겸사겸사 일동이 산책도 시키면서 말이다.

“온 김에 인사나 드려야겠다.”

서서히 가까워지는 상일기의 처소에 반호진이 일부러 기척을 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왔음을 미리 알리는 것이었다.

끼이익.

“어서 오십시오, 문주님.”

“문주님께 문주님이라는 호칭으로 들리니 조금 이상하네요.”

“그럼 반 대협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아뇨. 그것도 이상합니다.”

“허허허.”

진심으로 낯설어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상일기가 너털웃음을 흘렸다.

반호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익숙해져야 했다.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죠.”

“그럴 겁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니까요.”

“문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단 말을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문주님 덕분에 걱정 없이 편하게 전쟁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 일이라고는 자리를 지킨 것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 감사 인사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감사 인사는 제가 해야지요. 모자란 제자에게 정말 큰 경험을 쌓게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반호진은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사실이어서였다.

또한 큰 전쟁을 겪으면서 정이륭이 많이 성장했기에 반호진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니 이쯤에서 마무리 지으시지요. 서로에게 감사한 걸로.”

“알겠습니다.”

상일기가 따라 주는 차를 받으며 반호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그 순간 반호진의 시야에 한 마리의 강아지가 들어왔다.

난희주의 백동이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강아지였는데 점잖게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일동이와 달리 강아지는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이름을 명백(明白)이라 지었는데 아무래도 잘못 지은 것 같습니다. 밝다는 의미가 이런 의미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많이 활발하기는 하네요.”

“사고뭉치입니다, 사고뭉치.”

반호진에게 먼저 차를 따른 후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던 상일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데 한탄스러운 말투와 달리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 있었다.

정신이 사나운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웃게 되는 일도 많았다.

다 커서 애교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정이륭과 달리 명백이는 아기처럼 늘 관심을 두고 신경 써야 했는데 그게 상일기는 즐거웠다.

“사랑스러운 사고뭉치인가 보네요.”

“애교가 많습니다. 왜 진작에 키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반 대협을 만나고 정말 많은 걸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한 것도 있고요. 이상하게 빚이 점점 쌓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문주님과 저 사이에 빚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느끼기에요. 마음의 빚이라고 할까요. 너무 편협하게 살아왔다는 걸 요즘에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닌데 말이지요.”

상일기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추 짐작은 갔다.

“문주님께서 걸어오신 길은 절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추구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입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뿐이다라.”

“예. 원래 인생이라는 게 무수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공하기도 하고 발전도 하고요. 또 과거는 바꾸고 싶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가끔 보면 반 대협은 인생을 한 번 더 산 것 같습니다.”

반호진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상일기야 농담으로 말한 거겠지만 듣는 그는 달라서였다.

정곡을 찔린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반호진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또 모르지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는 게 세상이지 않습니까. 괜히 요지경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니.”

“진짜 있다면, 신기하기는 하겠네요.”

너무 무덤덤한 것도 이상하기에 반호진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심장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심지어 사사혈천교주와 싸울 때보다 더 빠르게 뛰었다.

“아, 안 그래도 반 대협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젯밤에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요.”

“편히 말씀하시죠.”

“본문은, 그러니까 방천문은 지금까지 일인전승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게 곧 혼인을 불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부님과의 기억을 전부 다 곱씹어 봤으나 결혼하면 안 된다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다만 비인부전(非人不傳)을 강조하셨지요. 인연이 닿지 않는다면 굳이 자격이 되지 않는 이를 제자로 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안배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륭이의 혼인에 대해서 생각하셨군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상일기를 마주 보며 반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고민인지 충분히 알 수 있어서였다.

실제로 모용척이나 선우방 못지않게 많은 곳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게 정이륭이었다.

반호진도 살짝 떠봤는데 정이륭도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허허허. 아무래도 생각이 변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가게 되더군요. 저야 이미 늦었지만 이륭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만.”

“예?”

“왜 늦었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식을 낳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는 있지 않습니까. 피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이륭이가 있고요. 또 할아버지만 있는 것보다는 할머니도 같이 있는 게 아이 정서에도 좋지 않을까요?”

35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