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50화 (350/468)

제 115장. 가장 바라는 것. -01

달려오는 일행들의 모습에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그러면서 빠르게 일행의 상태를 살폈다.

“고생하셨습니다!”

“너희도 고생했고.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

“흐흐흐! 이 정도에 죽을 제가 아니죠!”

서조운이 히죽 웃었다.

위험했던 순간이 없던 건 아니었으나 중요한 건 결과였다.

중간에 절체절명의 순간도 있었고, 부상도 당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서조운을 비롯해서 일행들은 활짝 웃었다.

“고맙다니. 갑자기 닭살이 돋는다.”

“나로서는 고마울 수밖에. 초상을 안 치러도 되니까. 솔직히 나는 친구나 동생의 초상을 치를 자신이 없다.”

“그렇게 말하니 반박을 할 수가 없네.”

유일하게 질색한 표정을 지었던 선우방이 어깨를 으쓱였다.

반호진의 말도 일리가 있어서였다.

“천사맹 쪽은 어떻게 됐나 모르겠네.”

마도련의 마인들은 같이 죽자는 식으로 끝까지 달려들었으나 천사맹은 달랐다.

사도육주가 죽기 무섭게 제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기에 모두 추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제갈가주님께서 나섰으니 전부는 힘들지라도 구 할 정도는 추살하지 않았을까요. 제갈세가뿐만 아니라 개방과 다른 무문들도 나섰으니까요.”

“어련히 알아서 잘하시겠지.”

사마의성의 말에 반호진은 신경을 껐다.

그가 걱정하지 않아도 제갈문곡이라면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의외로 오중건 역시 뒤끝이 있는 성격이었기에 확실하게 천사맹의 잔당을 추격할 터였다.

스윽.

천사맹에 대한 생각을 떨쳐 낸 반호진은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반호진도 가슴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제야 전쟁이 끝났다는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좀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네.’

반호진은 진심으로 바랐다.

두 번의 큰 전쟁이 지나갔으니 앞으로는 평화가 찾아오기를 말이다.

***

“오셨습니까.”

담현이 대회의장으로 사용하는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제갈문곡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뒤로 익숙한 얼굴들이 담현에게 인사해 왔다.

“아미타불. 좋은 아침입니다.”

“다들 얼굴들이 훤하지요? 허허허.”

담현의 인사에 운상이 싱긋 웃으며 반겨 주었다.

전쟁이 끝나서 그런지 활짝 핀 운상에게 눈인사를 하며 옆자리에 앉았다.

“호진이는 설마 떠난 것입니까?”

“……!”

하루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들 떠 있던 많은 이들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팽만철의 말에 모두가 놀란 것이었다.

반호진 혼자서 전쟁을 끝낸 건 아니지만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한 건 사실이었다.

한데 그런 반호진이 떠난 것처럼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담현에게 집중되었다.

“그렇습니다.”

“허어!”

“지, 진짜로 떠났단 말입니까?”

담담한 담현의 대답에 모두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직접 듣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전쟁은 끝났으나 가장 중요한 논공행상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가장 큰 전공을 세운 반호진이 열두 시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떠났다고 하자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안 보이더라니.”

“반 문주답구먼.”

반면에 반호진과 친분이 있는 이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놀라기보다는 다 그러려니 하는 기색이었다.

물론 가장 격렬하게 반응하는 건 말을 꺼낸 팽만철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로 한마디도 없이 떠났다고 하자 팽만철은 얼굴 가득 서운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역시 떠났군요.”

“제갈가주께서도 아시겠지만 호진이가 번잡스러운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잘 알지요. 이제는 아마 여기 계신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겁니다.”

후기지수지만 동시에 후기지수라고 볼 수 없는 게 반호진이었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없이 떠났음에도 섭섭해할지언정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몇몇 이들은 내심 반색했다.

반호진이 그냥 떠난 만큼 자신들의 몫이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지. 한두 번 같이 싸운 것도 아닌데.”

“이런 일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걸 잘 알지 않나. 정 뭣하면 우리가 찾아가면 되고.”

“왜 우리지? 난 혼자 갈 건데?”

팽만철이 송충이를 닮은 두꺼운 눈썹을 꿈틀거리며 남궁호를 노려봤다.

가더라도 딸을 데리고 가면 갔지 남궁호와 손 붙잡고 갈 생각은 없어서였다.

“그럼 각자 가는 걸로.”

하지만 강렬한 팽만철의 안광에도 남궁호는 태연했다.

이런 눈빛을 받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딱히 반응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대신 두 사람으로 인해 회의장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도왕과 염왕이 티격태격하니 다들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회의를 시작할까요?”

그 분위기를 누구보다 빨리 파악한 제갈문곡이 시기적절하게 입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논공행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작하시지요.”

“감사합니다, 오 대협.”

“별말씀을. 그럼 논공행상에 앞서 천사맹과 마도련에 대해서 논의했으면 합니다.”

오중건에게 짧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한 제갈문곡이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갈문곡을 바라봤다.

갑자기 와해된 천사맹과 마도련에 대해서 얘기하자고 하자 의아했던 것이다.

“뒤처리는 확실해야 하는 법이니. 특히 사사혈천교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합니다. 다른 곳들은 몰라도.”

“맞소이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당우혁의 말에 일우와 성중경이 동조했다.

다른 곳들은 놓치더라도 흡정기공을 가진 사사혈천교만은 반드시 찾아내서 지워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이의 사사혈천교주가 나올 수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격하게 동의했다.

“빈승 역시 논공행상은 모든 걸 마무리 지은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겸사겸사 사도무림과 마도무림에 다시 한번 백도무림의 힘도 보여 주고요.”

담현의 의견에 힘을 보태며 남궁호가 눈을 빛냈다.

상관세가의 경우도 있었던 만큼 절대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승리에 취한 건 어제 하루로 충분했다.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기탄없이 손을 들고 말씀해 주시지요.”

대부분이 동의하는 표정이었으나 그럼에도 제갈문곡은 혹시 몰라 물었다.

개인적으로 소수의견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한 만큼 모두가 참여할 필요는 없었다.

이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면 제갈문곡은 돌려보낼 의향도 있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갈문곡이 일부러 편한 분위기를 조성했기에 오중건 역시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말했다.

약간의 불만은 있을지언정 반대하는 이들은 없었다.

“결정난 것 같은데 바로 움직이자고. 잔당 소탕하러.”

“팽가주님은 돌아가셔도 됩니다. 아, 오해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부상자들과 함께 움직일 생각은 없습니다.”

팽만철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제갈문곡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러고는 일부러 과장된 행동으로 담현과 운상을 바라봤다.

그의 말이라면 통하지 않지만 두 사람은 달랐다.

제아무리 팽만철이라도 둘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였기에 제갈문곡은 일부러 담현과 운상을 끌어들였다.

“끄응!”

더구나 담현은 반호진의 사부였기에 팽만철으로서는 더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팽만철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앓는 소리만 냈다.

“옳은 말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부상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정도로 사천당가는 몰염치하지 않네.”

“본문도 마찬가지외다.”

거기에 다른 이들까지 가세하자 팽만철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이런 분위기를 기꺼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차마 반대는 못 했으나 참여하고 싶지 않았던 이들은 부상을 핑계로 자연스레 빠질 궁리를 했다.

“그럼 모두 준비해 주십시오. 출발 시간은 두 시진 후입니다. 위치는 개방이 추적 중입니다.”

“추적하는 인원들 말고도 따로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 부분은 표국주님들께서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제갈문곡과 오중건의 시선이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표국주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쏠리는 이목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이었다.

“두 시진 후라 하셨으니 서두릅시다.”

담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이들도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두 시진이라는 시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기에 다들 서둘렀다.

“호진이 이 녀석. 귀찮은 일 피하려고 일부러 먼저 내뺀 거 아냐?”

우르르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팽만철이 미간을 좁혔다.

그가 아는 반호진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서였다.

더해서 그렇게 행동해도 사람들이 뭐라 하지 않을 것까지도 예상했을 게 분명했다.

“의심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자네도 같은 생각이지?”

“합리적 의심이 들긴 하지. 근데 어찌 보면 알아서 피해 준 것이기도 해. 다른 이들의 몫을 남겨 준 거지.”

“흐음.”

남궁호의 말에 팽만철이 눈을 껌뻑였다.

듣고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서였다.

“또 우리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 뒷방 늙은이가 되기에는 아직 우리는 젊지 않나.”

“그렇지!”

“그러니 자네는 돌아가서 잘 요양하게나. 건강해야 오래 살지. 아들이랑 딸들도 혼인시켜야 하고.”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팽만철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남궁호를 노려봤다.

그러나 미심쩍어하는 팽만철의 시선에도 남궁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천막을 나섰다.

“집이다!”

“드디어 돌아왔다!”

“진짜 소림사하고는 느낌이 다르네.”

무상문의 현판이 보이기 무섭게 열광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모습에 반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서조운과 정이륭의 반응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지만 선우방은 달라서였다.

그는 선우세가라는 본가가 엄연히 존재했기에 반호진은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친구를 쳐다봤다.

“되게 오랜만에 돌아온 거 같아요.”

월! 월월월!

서조운만큼은 아니지만 사마의성도 나름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반가워하는 건 일행들만이 아니었다.

활짝 열리는 정문을 가로지르며 개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일동이, 이동이, 삼동이 가족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아이구, 내 새끼들! 잘 지냈어?”

“그래그래.”

세상 행복한 얼굴로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반겨 주는 개들의 모습에 모용척과 선우방이 활짝 웃었다.

오자마자 이렇게 격렬하게 반겨 주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헥헥헥!

“잘 지낸 모양이네.”

달려와서는 배부터 발랑 까는 삼형제의 모습에 반호진은 피식 웃었다.

이제는 아빠가 되었음에도 여전한 것 같아서였다.

자식들이 주변에 잔뜩 있는데도 새끼 때처럼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반호진은 가볍게 한 번씩 통통한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문주님.”

“주군.”

“오빠!”

개들에 이어 상일기와 유호량, 난희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호진은 세 사람과 차례대로 눈을 맞췄다.

“고생하셨습니다, 상 문주님.”

“아닙니다.”

“지금은 이륭이와 대화를 나누시지요. 제가 나중에 따로 찾아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상일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반호진은 눈치껏 물러났다.

자신보다는 제자인 정이륭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럼 자연스럽게 내 차례인 건가?”

“아니. 외부인보다는 문도가 먼저지.”

“쳇!”

난희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은근슬쩍 선수 치려고 했는데 역시나 철벽같이 막아 내자 그녀는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서운해하지는 않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보다는 주군께서 더 고생하셨지요.”

유호량은 겸허하게 고개를 저었다.

장원을 지킨 건 엄밀히 따지면 상일기였기에 그가 한 일이라고는 아이들을 가르친 것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유호량은 진심으로 고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생은 좀 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게 튀어나와서. 그래도 잘 정리되었습니다.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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