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장. 검신무쌍(劍神無雙). -02
눈이 뒤집힌 사사혈천교주가 광인처럼 반호진을 향해 두 손을 휘둘렀다.
양쪽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찢어 버리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강기들이 주변을 마구잡이로 휩쓸었다.
이성을 잃고 모든 걸 파괴하는 것이었다.
“읏차!”
그런 사사혈천교주의 모습에 반호진은 기형검을 회수하고는 뒤로 땅을 박찼다.
전광석화처럼 쇄도하는 사사혈천교주의 쌍수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냈던 것이다.
“크아아아!”
그러자 사사혈천교주가 혈안(血眼)을 번뜩이며 재차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었어도 반호진에 대한 적개심과 살의만은 그대로 남았다는 듯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덮쳐 왔다.
그러나 반호진은 이번에도 사사혈천교주의 공격을 피했다.
충분히 싸울 수 있음에도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또다시 뒤로 물러났다.
한데 반호진이 향하는 방향이 묘했다.
마치 사사혈천교주를 유인하는 것처럼 마도련이 모여 있는 곳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서, 설마?”
그걸 알아차린 몇몇 마도련의 마인들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반호진이 무슨 생각인지 모를 수가 없어서였다.
“그래도 한솥밥을 먹던 사이인데 마지막 인사 정도는 나누어야지?”
대경실색하는 마도련의 진영을 보며 반호진이 사악하게 웃었다.
사사혈천교주가 마도십문의 수장 셋을 잡아먹었다고 하나 아직 마도련의 전력은 상당했다.
또한 이이제이 계략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말이다.
그래서 반호진은 친절하게 마도련의 진영으로 폭주하는 사사혈천교주를 보내 주었다.
뻐어어엉!
소천검에서 솟구친 뭉특한 검강이 크게 휘둘러지며 그대로 사사혈천교주를 날려 버렸다.
시원스럽게 강타하며 마도련의 진영 정중앙에 보내 버린 것이었다.
“피, 피해!”
“으아아앗!”
베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에 충격은 있을지언정 상처는 없었다.
폭주한 상태임에도 호신강기가 계속 유지 중이기도 했고.
내공이 넘쳐 났기에 오히려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꽈아앙! 꽝!
반호진에 의해 강제로 날아간 사사혈천교주가 마도련의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원래의 표적은 반호진이었으나 주변에서 살기와 적대감이 휘몰아치자 사사혈천교주는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강기를 뿌렸다.
무작정 마도련의 마인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반호진!”
“감히 이따위 짓을……!”
“왜 그래? 난 나름 생각해 준 건데.”
노성을 터트리는 마인들을 보며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으니 마음껏 싸울 수 있도록 그는 판을 만들어 준 것밖에 없었다.
서로에게 쌓인 것이 많을 것이기도 했고.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사사혈천교주부터 해결하고 오도록.”
마도련주가 사납게 포효했으나 반호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가 제법 강하다고 하나 천사맹주인 사사혈천교주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였다.
게다가 지금은 반호진에게 당장 달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반호진은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으아아아!”
속을 대놓고 긁는 반호진의 한마디에 마도련주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반호진의 예상대로 그는 몸을 뺄 수가 없었다.
마도련의 마인들이 학살당하고 있었기에 그로서는 사사혈천교주와 싸워야만 했다.
“역시.”
사사혈천교주와 마도련을 싸움 붙인 반호진이 시선을 돌렸다.
폭주를 하면 더 이상 흡정을 하지 않는 걸 확인했기에 반호진은 걱정하지 않았다.
또한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폭주한 이가 제정신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폭주 자체가 흡수한 정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반호진은 마음을 놓고 본진의 상황을 살폈다.
“기회를 놓치지 않았네.”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지독한 혼란 속에서도 제갈문곡이 최선의 선택을 했음을 알 수 있어서였다.
게다가 사마의성을 비롯해서 동생들의 활약도 상당했다.
제갈문곡이 큰 틀에서 정천맹의 병력을 지휘한다면 사마의성은 제갈세가와 함께 곳곳에 세밀함을 더하고 있었다.
“사사혈천교의 장로들도 거의 정리가 됐고.”
반호진의 시선이 다시 한번 이동했다.
정천맹의 진영을 벗어나 여전히 폭주하고 있는 사사혈천교의 장로들에게로 향했는데 처음과 달리 기세가 꺾인 상태였다.
구대문파의 수장들이 나서자 숫자가 하나씩 줄었고,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았다.
제아무리 장로들의 숫자가 많고 강력하다고 하나 천하십대고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콰콰콰쾅! 꽈쾅!
반호진은 다시 천사맹의 진영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도육주를 중심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었으나 승기는 서서히 정천맹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위세를 떨쳤던 사사혈천교가 배신하며 떨어져 나가자 규모가 확 줄었고, 남은 사도육주만으로는 오대세가의 가주들을 상대하기가 버거웠다.
게다가 이제는 수적으로도 불리했기에 천사맹의 진영은 속절없이 밀렸다.
“더욱 몰아붙여!”
“오늘 끝장을 보는 거다!”
“이참에 수적들도 싹 다 매장시켜 버려! 다시는 마주칠 일 없도록!”
승기가 점차 자신들에게로 넘어온다는 걸 느껴서인지 정천맹의 기세가 가파르게 올라갔다.
또한 뒤늦게 합류한 표사들 역시 수적들을 일망타진할 기회라는 걸 알았기에 더더욱 밀어붙였다.
그동안 당했던 수모를 이참에 다 갚으려는 것이었다.
“일단은 천사맹부터.”
크게 세 곳으로 나뉘어진 전장을 둘러보던 반호진은 주인을 잃고 바닥을 뒹굴고 있는 병장기들을 일제히 들어 올렸다.
이윽고 반호진의 주변에 수십 개의 병장기들이 두둥실 떠올랐다.
쌔애애액!
그걸 반호진은 사도육주의 수장들이 있는 곳을 향해 던졌다.
정확도보다는 개수에 중점을 두었기에 정밀함은 다소 떨어졌지만 숫자가 많아서 그런지 기세와 파공성이 굉장했다.
이기어검이라 하기에는 수준이 많이 떨어졌지만 어검술 정도는 되었고, 공격한 이가 다른 이도 아니고 반호진이었기에 가까스로 정천맹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던 사도육주들의 안색이 하나같이 해쓱해졌다.
스스슥!
거기에 더해 구룡문주, 환요궁주, 백귀전주, 무영각주를 몰아붙이던 이들이 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귀신같이 반호진이 날린 공격이란 걸 알아차리고는 절묘하게 빠져나온 것이었다.
“우리도……!”
그건 달리 말하면 사도육주 역시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뜻했지만 넷의 움직임보다 반호진의 공격이 훨씬 더 빨랐다.
단순히 숫자만 최대한 늘린 게 아니었기에 수십 개의 병장기들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퍼퍼퍼펑!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무자비하게 떨어져 내리는 공격에 네 사람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던 이들이 피를 토하거나 꼬치처럼 꿰이며 즉사했다.
어느 누구도 반호진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사도육주도 마찬가지였다.
기습과도 같은 공격인 데다가 주위에 부하들이 잔뜩 있었기에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한 사도육주들은 입가에서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다.
“그러니까 진즉에 귀천했으면 이렇게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거 아냐?”
“네놈들, 욕심이 너무 과했어.”
창백한 얼굴로 겨우 중심을 잡는 네 사람을 보며 당우혁과 남궁호가 입을 열었다.
힘겹게 서 있는 그들과 달리 조금 지친 게 전부인 둘은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툭.
거기에 반호진이 합류했다.
허공답보를 펼치며 천천히 바닥에 착지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사도육주들은 물론이고 천사맹의 무인들조차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토록 강했던 사사혈천교주조차 어쩌지 못한 무인이 반호진이었기 때문이다.
“대,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환요궁주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적이지만 그래도 잠시 싸움을 멈추고 대화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또 어떻게 보면 천사맹 역시 피해자였다.
사사혈천교에게 이용당한.
“이제 와서?”
여전히 온몸에 붕대를 감은 팽만철이 콧방귀를 끼었다.
전세가 불리하다 싶으니 대화로 시간을 끌어 보려는 속셈이 너무 훤히 보여서였다.
“……끝까지 간다면 정천맹의 피해도 적지 않을 거예요.”
“제안 다음에는 협박인가. 뭐, 종잡을 수 없는 게 천사맹과 어울리기는 하네. 근데 애초에 결과는 하나뿐이었어. 우리가 이기든지, 천사맹이 이기든지.”
팽만철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부상당한 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나운 기세에 환요궁주는 마른침을 삼켰다.
새삼 정천맹이 어떤 각오로 이번 전쟁에 임했는지 알 수 있어서였다.
“……안전하게 퇴각하는 걸 보장해 준다면 환요궁은 앞으로 십 년 동안 봉문할게요.”
팽만철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고 판단한 환요궁주가 반호진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최고수는 누가 뭐래도 반호진이었다.
그 사실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 수 있었기에 환요궁주는 결정권이 반호진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이 제안으로 인해 반호진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이 분열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고.
자중지란이 꼭 천사맹에만 일어나라는 법은 없었다.
정천맹 역시 얼마든지 가능했다.
“환요궁주!”
“이게 무슨 말이요!”
다만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초조한 나머지 너무 독단적으로 나섰다는 걸 말이다.
환요궁주가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항복할 것처럼 말하자 구룡문주와 백귀전주가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
무영각주 역시 말은 하지 않았으나 눈빛은 두 남자와 똑같았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그쪽은 받아들였을까?”
“저도 반 문주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죽은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휴전은 없습니다. 사사혈천교 때문이라도 이대로 살려 보내서는 안 되고요.”
“그렇지.”
“오랜만에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군.”
환요궁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서였다.
물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한가닥 기대를 했었는데 모두가 단박에 거절하자 그녀는 연검을 움켜쥐었다.
협상이 실패했으니 남은 건 한 가지뿐이었다.
“무릇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모두 공격해!”
결사항전의 기세로 구룡문주가 소리쳤다.
이제는 정말 죽느냐 사느냐밖에 남지 않았기에 구룡문주는 이를 악물고서 땅을 박찼다.
살기 위해서는 이기는 것밖에 남지 않았기에 구룡문주는 빠르게 세 사람과 시선을 교환했다.
불리한 상황이지만 구대문파의 수장들이 사사혈천교의 장로들과 싸우고 있기에 어떻게 보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구대문파의 수장들이 합류하면 전멸이 분명했기에 어떻게든 서둘러 결판을 내야 했다.
그런데 네 사람 중 누구도 반호진에게 달려드는 이는 없었다.
“내가 만만하단 말이지.”
“근데 부정할 수가 없군.”
한 마리 맹수처럼 이를 드러내며 중얼거리는 팽만철에 이어 남궁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기분 나쁜 기색은 결코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반호진보다는 그나 팽만철, 당우혁, 황보태경이 만만해서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응?”
미리 합의를 한 모양인지 구룡문주와 백귀전주, 환요궁주, 무영각주는 겹치지 않게 상대를 정하고서는 쇄도했다.
어떻게든 빨리 결판을 내겠다는 의지가 두 눈은 물론이고 온몸에서 발산되었는데 그 순간 반호진이 끼어들었다.
짧은 사과와 함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백귀전주를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헙!”
느닷없이 끼어든 반호진의 모습에 절박한 표정으로 달려들던 백귀전주가 기겁했다.
갑자기 반호진이 쇄도하자 대경한 것이었다.
특히 소천검 대신 기형검이 반호진의 오른손에 들려 있자 백귀전주는 황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팽만철은 두렵지 않았지만 반호진은 달라서였다.
스윽.
나름 기민하게 반응하며 몸을 틀었으나 반호진이 좀 더 빨랐다.
어느 순간 백귀전주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마치 축지법을 펼친 것 같은 이동속도에 백귀전주의 입이 떡 벌어졌을 때 반호진이 기형검을 휘둘렀다.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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