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46화 (346/468)

제 113장. 인면악심(人面惡心). -04

부지불식간에 배에 관통상을 당한 염라문주가 두 눈을 껌뻑였다.

등 뒤에서부터 파고든 이 공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난감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은 나찰처럼 일그러졌다.

송곳처럼 생긴 핏빛 강기를 다루는 이는 천사맹에서 오직 단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사사혈천교주!”

대노한 염라문주가 사사혈천교주를 부르짖었다.

바로 앞에 방금 전까지 격렬히 싸우던 종남파 장문인 성중경이 있었으나 염라문주의 시선은 뒤쪽으로 향했다.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사사혈천교주를 노려봤던 것이다.

“너무 아쉽게 생각하지 말게. 살아 있어 봤자 기껏해야 마도십문 중 한 곳의 수장일 뿐이잖나. 그럴 바에는 차라리 본좌와 한 몸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게 백배 나을 걸세.”

“이노옴!”

“그러니 영광으로 알도록.”

눈이 돌아간 염라문주가 성중경을 잊고 사사혈천교주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발바닥을 지면에서 채 떼기도 전에 목내이로 변했다.

사사혈천교주가 순식간에 그의 정혈을 흡수한 것이었다.

우우우웅!

염라문주를 잡아먹은 사사혈천교주의 눈빛이 달라졌다.

더욱 진한 혈광과 함께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역시 팽창했다.

그저 그런 무인이 아닌 초월경의 경계에 발을 들인 마인을 잡아먹었기에 그만큼 강해진 것이었다.

더불어 미세하지만 반호진의 눈에는 조금 더 젊어진 것처럼 보였다.

스으윽!

물론 반호진은 그걸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사사혈천교주의 속셈을 알아낸 이상 더는 허락할 수 없었다.

지금은 염라문주 한 명이지만 두 명, 네 명, 여덟 명을 잡아먹으면 제아무리 반호진이라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 전장에는 염라문주급의 고수가 수두룩했다.

“소용없다.”

반호진이 조종하는 열한 자루의 이기어검이 사사혈천교주에게 쇄도했다.

단숨에 꼬치구이처럼 꿰어 버리겠다는 듯이 파고들었으나 그걸 보고도 사사혈천교주는 히죽 웃었다.

반호진의 이기어검은 분명 위협적이었으나 그렇다고 막아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터터터텅!

그 사실을 증명하듯 열한 자루의 이기어검을 사사혈천교주는 완벽하게 막아 냈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강기들을 이용해 반호진의 이거어검들을 휘어잡았다.

부르르르!

갑작스러운 반격에 반호진조차 일순 움찔거렸다.

지금까지 정면 충돌보다는 회피에 중점을 두었기에 예상 밖의 행동에 당황한 것이었다.

그사이 사사혈천교주가 이동했다.

염라문주를 시작으로 다른 이들을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끄으윽! 어, 어째서?”

“배신이다! 사사혈천교가 배신했다!”

“천사맹은 더 이상 아군이 아니다!”

그리고 사사혈천교주의 노림수는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그가 염라문주를 잡아먹은 것을 시작으로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장로들과 간부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심지어 일반 교도들까지 흉심을 드러냈다.

마도련의 마인들이라면 가리지 않고 잡아먹었다.

으드득! 으적!

장로들이나 중간 간부급들이 강기(罡氣)나 강사(罡絲)로 마도련의 마인들의 정혈을 흡수한다면 일반 교도들은 상당히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마인들의 목에 이빨을 박거나 심장과 단전에 손을 직접 넣어 정혈을 빨아먹었다.

“미, 미친 새끼들!”

“사, 살려 줘……!”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수백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마인들을 잡아먹자 마도련이 난리가 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료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맹군이었던 사사혈천교도들이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을 보이자 겁에 질려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혹은 혈맹은 끝났다는 듯이 칼의 방향을 틀어 사사혈천교도들을 공격했다.

“감히!”

“결국 흑심을 드러내는구나!”

염라문주의 죽음에 다른 마도십문의 수장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정천맹과 싸우다 뒤를 내줄 바에는 차라리 둘 다 상대하겠다는 듯이 사사혈천교에 맹공을 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천사맹의 사도육주들도 경계했다.

같은 천사맹 소속인 만큼 한통속일 가능성도 높아서였다.

스스슥!

그런데 사도육주들의 반응이 놀라웠다.

마도련의 의심 섞인 눈빛을 받기 무섭게 사사혈천교를 제외한 사도육주들은 일사불란하게 뒤로 물러났다.

자신들은 일절 가담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번 일은 사사혈천교의 독단적인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도육주들은 도리어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사사혈천교를 바라봤다.

“개판이네.”

한순간에 뒤죽박죽이 된 상황에 반호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으나 실제로 이행할 줄은 몰랐기에 반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곳곳에서 고개를 젓는 이들이 속출했다.

“크륵!”

“끄어어어!”

한데 그때 심상치 않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곳곳에서 왠지 모르게 불길한 괴성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크아아앙!”

“쿠워어!”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광포한 기세들이 사방팔방에서 들끓었다.

그와 동시에 처절한 비명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피, 피해!”

“미쳤다! 정신이 돌아갔어!”

마구잡이로 마도련의 마인들을 잡아먹던 사사혈천교도들이 폭주했다.

결국 남의 정혈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한 것이었다.

일반 교도들은 물론이고 중간 간부들과 장로들도 이성을 잃고 폭주하자 그 주위가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했다.

폭주한 이들은 같은 교도들을 제외하고 모두를 공격했다.

“사사혈천교주!”

“당신은 조금 뒤야. 그러니 그때까지는 내 신도들과 놀도록 해. 아, 그렇다고 장로들에게 잡아먹히지는 말고. 넌 내 거니까.”

“감히!”

대놓고 이죽거리는 사사혈천교주의 모습에 마도련주가 대성일갈했다.

자신을 먹잇감 취급하자 대노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도련주는 사사혈천교주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사사혈천교주의 말대로 폭주한 장로들과 교도들이 그에게 우르르 몰려와서였다.

퍼퍼퍼펑!

이성을 잃은 상태임에도 여전히 사사혈천교주의 지시를 따르는 모습에 마도련주는 이를 악물었다.

분명 그는 강했지만 숫자로 밀고 들어오는 적들에게는 별수 없었다.

죽이고 죽여도 계속해서 달려들었기에 마도련주는 답답한 마음을 얼굴 가득 드러냈다.

거기다 마인들을 잡아먹으면서 더욱 강해졌기에 사사혈천교주와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저쪽은 되었고.’

마도련주에게 커다란 도발을 날린 것과 달리 사사혈천교주는 다급하게 움직였다.

여유로운 표정과는 다르게 속마음은 조급했다.

이번 배신으로 마도련은 물론이고 천사맹도 등졌지만 그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반호진은 달랐다.

‘조금 더 잡아먹어야 해. 염라문주보다 더 강한 무인 둘 정도면 도망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큭!’

뻐어어엉!

이기어검은 이제 어렵지 않게 막아 낼 수 있지만 반호진이 직접 뿌리는 참격은 달랐다.

몸 주변에서 넘실거리는 강기들은 물론이고 여러 겹으로 되어 있는 호신강기조차 종이 찢듯이 찢어 버렸기에 사사혈천교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정면대결은 부담스러웠기에 다음 목표물을 찾았다.

“언제까지 도망칠 거지?”

그런 사사혈천교주를 반호진이 도발했다.

일부러 조롱하듯 말했으나 사사혈천교주는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반호진이 무슨 말을 하든 소 귀에 경 읽기처럼 무시했다.

그 모습에 반호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사사혈천교주의 다리를 향해 검강을 뿌렸다.

쌔애애액!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베어 버릴 기세로 반호진의 검강이 시원스럽게 뻗어 나갔다.

성스러워 보이는 금광이 쭉쭉 뻗어 나갔으나 안타깝게도 검강은 반호진이 목표로 한 부위에 닿지 못했다.

사사혈천교주씩이나 되는 무인이 마음먹고 도주하니 제아무리 반호진이라도 힘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조금씩이나마 간격이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크아아아!”

게다가 이성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사사혈천교도들도 방해에 한몫했다.

몸을 들이밀며 길목을 차단하자 반호진이라도 약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사사혈천교주는 그 틈을 교활하게 이용했고.

“두 마리째.”

반호진의 말을 무시한 사사혈천교주가 씨익 웃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는 했으나 그래도 원하던 바를 이루게 되어서였다.

“워, 원통하도다!”

염라문주와는 다르게 사지와 심장, 단전이 꿰뚫린 숭염문주가 피를 토하듯이 소리쳤다.

앞서 염라문주가 당했기에 숭염문주는 만반의 준비를 다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사혈천교주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힘 앞에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문주님!”

“이놈!”

“우리가 구해 주겠소이다!”

순식간에 피골이 상접해 가는 숭염문주의 모습에 숭염문도들은 물론이고 근처에 함께 있던 명천문주와 현성문주가 진득한 살기를 온몸으로 뿌려 대며 달려들었다.

양쪽에서 사사혈천교주에게 파고들었던 것이다.

반대로 숭염문도들은 문주에게 모여들었다.

숭염문주를 관통한 강기들을 끊어 내기 위해서였다.

“잡아먹어 달라고 알아서 와 줄 줄이야. 이거 고마운데?”

“네놈이 죽을 수도 있지!”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현성문주와 명천문주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두 사람도 알고 있었다.

염라문주를 잡아먹은 사사혈천교주가 어제보다 더욱 강해졌다는 걸 말이다.

거기에 숭염문주의 정혈을 흡수하는 중이었기에 두 사람만으로 사사혈천교주를 잡는 건 무리였다.

우우우웅!

그 사실을 둘 다 알고 있었으나 공격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둘을 시작으로 마도십문의 수장들이 모이고 있어서였다.

제아무리 사사혈천교의 규모가 엄청나다고 하나 마도련 전체를 감당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흥!”

그걸 사사혈천교주 역시 알고 있었기에 숭염문주를 놓아주고 명천문주와 현성문주에게로 방향을 틀었다.

이미 충분히 정혈을 흡수하기도 했을뿐더러 숭염문주는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마음 놓고 현성문주와 명천문주를 공격했다.

지원군이 더 합류하기 전에 끝내고 싶었기에 사사혈천교주는 처음부터 맹공을 퍼부었다.

다행히 아직은 교도들이 반호진을 상대로 시간을 잘 끌고 있지만 이게 얼마 가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무조건 그 전에 승부를 낼 작정이었다.

‘둘을 흡수하면 더는 도망치지 않아도 되겠지. 만약 부족하다면 한둘 정도 더 잡아먹어도 되고.’

살기등등하게 달려드는 둘을 보며 사사혈천교주는 빠르게 계산했다.

도망을 쳤다면 일일이 찾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겠지만 다행히 동료의 죽음에 눈이 돌아가 알아서 다가와 주었기에 사사혈천교주는 비릿하게 웃으며 둘에게 파상공세를 펼쳤다.

퍼퍼퍼펑!

마치 분열하듯 계속해서 갈라지고 찢어지며 쇄도하는 수십, 수백 개의 강기에 명천문주와 현성문주의 안색이 해쓱하게 변했다.

둘의 협공이면 충분히 상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전력을 다해도 가까스로 버텨 내는 게 전부이자 두 사람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 미세한 틈을 파고든 사사혈천교주의 강기가 현성문주와 명천문주의 정강이와 발등에 박혔다.

푹! 푹!

“……어?”

“제, 젠장!”

따끔한 감각과 함께 선천진기가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자 두 사람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근데 반응은 각기 달랐다.

현성문주가 멍하니 넋을 놓는 것과 달리 명천문주는 기민했다.

재빨리 왼쪽 발목을 검으로 잘랐다.

“끄으윽!”

그 결과 명천문주는 살아남았고 현성문주는 목내이로 화했다.

찰나의 결정이 생사를 가른 것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는데?”

“나도 마찬가지야.”

“응?”

현성문주를 잡아먹고 흡족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사사혈천교주가 퍼뜩 놀랐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기겁한 것이었다.

“내가 할 일을 덜어 주었으니까. 마도십문 중에 넷이라. 나쁘지 않아. 이왕이면 명천문주도 끝을 내 줬으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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