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41화 (341/468)

제 112장. 이제 와서? -01

“형님!”

“괜찮으세요?!”

정천맹의 진영으로 돌아온 반호진은 곧바로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다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에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걱정은 반호진보다 일행들이 더했는지 바닥에 내려서기 무섭게 주변을 빙빙 돌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나는 괜찮아.”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내상은요?”

괜찮다는 말에도 순순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서조운과 사마의성이 정신 사납게 빙빙 돌았다.

선우방과 모용척, 정이륭도 미심쩍은 눈빛으로 반호진의 전신을 꼼꼼히 살폈다.

“약간 지쳤을 뿐이야. 다친 건 남궁가주님과 일우 도장이 다쳤지.”

“저에게 두 사람은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형님의 안위만이 중요합니다.”

“부담스럽다. 그만해.”

쓸데없이 진지한 서조운의 말에 반호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일행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모두 부상을 하나 이상씩 가지고 있는 만큼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번에는 배신자들이 없었으니까요.”

“하필이면 이 순간에 수적들이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요.”

눈빛만으로도 반호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서조운과 모용척, 사마의성이 연이어 입을 열었다.

절대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말이다.

“천사맹이 소란스럽지 않다는 건 작전이 실패했다는 뜻이겠지?”

“응.”

“너무 신경 쓰지 마.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지. 기회는 또 만들면 되니까.”

혹시라도 반호진이 자책할까 싶어 선우방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절대 실망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른 이들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선우방은 일부러 단호하게 말했다.

“별로 신경 안 써. 거의 잡을 뻔해서 아쉬울 뿐이지. 이번에는 놓쳤지만 다음번에는 안 놓쳐.”

“그래. 그거면 됐지. 다른 분들도 무사히 복귀하셨잖아.”

“다들 그 정도 실력은 되니까. 다만 사사혈천교의 전력이 진짜 예상 밖이었어. 초절정고수가 그렇게나 많을 줄은.”

남궁호와 일우가 밀렸던 건 뜻밖이기는 해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천사맹과 마도련에도 절대고수는 있으니까.

남궁호의 경우 상대가 나쁘기도 했고.

하지만 사사혈천교의 전력은 진짜 예상 밖이었다.

“그 정도야?”

“응. 초절정고수가 찍어 낸 것처럼 많더라고. 장로들은 물론이고 간부들까지 초절정고수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아.”

“허어.”

선우방은 물론이고 일행들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절정을 넘어 최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만큼 초절정고수가 지닌 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단순히 아는 걸 넘어 몸으로 느껴 봤기에 일행들은 하나같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흡정기공의 힘이겠네요.”

“확실하지. 근데 약점이 명확해.”

사마의성에게 대답해 주며 반호진이 눈을 빛냈다.

분명 사사혈천교의 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반호진은 사사혈천교주와 싸우면서 그걸 알아낼 수 있었다.

“약점이요?”

“응. 많은 이들의 정기를 흡수한 만큼 정순하지가 않아. 자기와 비슷하거나 하수에게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동격의 무인에게는 고전을 면치 못할 거야.”

“결론은 경지가 같거나 높아야 한다는 얘기네?”

“맞아.”

“그건 쉬운 게 아니야. 엄청나게 어려운 거지.”

선우방이 쓴웃음을 지었다.

말처럼 쉬운 게 아니어서였다.

“분명 다른 방법도 있을 거야. 단지 모를 뿐이지.”

“있을까나.”

선우방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정석적인 방법은 누구나 다 알지만 문제는 그걸 현실화할 수 있는 이들이 소수라는 것이었다.

그 소수에 자신이 들어가지는 않기에 선우방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방장은 괜찮으세요?”

“사부님은 괜찮으셔. 남궁 대협과 일우 도장이 좀 문제지.”

“크게 다치셨어요?”

“그런 건 아닌데, 내상을 좀 입은 것 같더라고.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반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부보다는 오히려 젊은 두 사람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그 말에 사마의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팽만철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상태인데 남궁호와 일우까지 부상을 입었다고 하자 걱정이 되어서였다.

“회의에는 참석 안 하세요?”

“새로 온 이들도 있는데 나까지 참석할 필요가 있나 싶다.”

서조운에게 대답하며 반호진은 전장을 둘러봤다.

그리 오랜 시간을 싸운 것도 아닌데 전장에는 피와 시체가 가득했다.

시산혈해라는 말처럼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대지에는 피가 가득했다.

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강이 새로 생긴 듯한 광경에 반호진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답은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내는 것. 그래야 죽는 이들이 줄지 않을까요.”

반호진과 같은 심정인지 서조운이 슬쩍 입을 열었다.

그 역시 많은 이들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몇몇 이들의 욕심으로 인해 애먼 이들만 죽어 가는 것 같아서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겠지. 전쟁을 일으킨 이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

“맞습니다.”

“또 우리는 천사맹에 갚아야 할 빚도 있지.”

선우방이 슬그머니 한 발을 걸쳤다.

그런데 그 말에 모두가 두 눈을 번뜩였다.

빚이 있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같아서였다.

***

“면목 없습니다.”

“저 역시.”

정천맹의 무인들이 전장을 수습할 때 수뇌부라 할 수 있는 이들은 대회의장으로 사용하는 커다란 천막에 모였다.

그리고 지원군으로 온 표국의 국주들도 참석했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자 전원 참여한 것이었다.

한데 자리에 참석한 이들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남궁호와 일우가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고개 드시지요. 두 분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숙인 고개를 좀처럼 들지 못하는 둘의 모습에 운상이 따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두 사람은 사과할 이유가 전혀 없어서였다.

작전은 실패했으나 그렇다고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 얻은 게 많았다.

“맞습니다.”

“이렇게 무사히 귀환하신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합니다.”

운상을 지지하듯 담현과 제갈문곡이 말했다.

그러자 곳곳에서 동조하는 듯한 말들이 흘러나왔다.

“작전에 실패했다고 전쟁에 패배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다음번에 잡으면 됩니다.”

“이번 작전으로 얻은 것도 많지 않습니까. 천사맹의 숨겨진 전력을 파악한 건 큰 성과입니다.”

어느 누구도 일우와 남궁호를 나무라지 않았다.

특히 남궁호는 마도련의 정점인 마도련주를 적진에서 홀로 상대했었다.

그렇기에 다들 격려하면 격려했지 탓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감사하외다.”

“별말씀을요!”

“네 분께서 고생하신 거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대답하던 남궁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일우와 운상, 담현도 미간을 모았다.

“네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오. 이 자리에는 없지만.”

“아…….”

냉랭한 어조로 정정하는 남궁호의 모습에 넷이라는 말을 꺼냈던 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별거 아닌 말에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기에 중년인은 민망한 얼굴로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사죄는 제가 해야지요. 수적들이 이동하는 걸 파악하지 못했으니까요.”

침묵을 가르며 오중건이 입을 열었다.

마치 죄인처럼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말이다.

“개방을 탓할 마음은 없소이다.”

“맞소. 다들 알지 않소이까? 개방과 오 대협이 주야장천 고생한다는 사실을 말이오.”

모두가 괜찮다는 듯이 말했으나 오중건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어찌 됐건 알아차리지 못한 건 개방의 실책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과 핑계라는 걸 알았기에 오중건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기본적으로 경계는 모두가 해야 하는 게 맞았고. 너무 개방만 의지해서는 안 되지. 개방이 우리의 눈과 귀는 아닌데.”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는 오중건의 모습에 팽만철도 두둔했다.

잘못이 아예 없다고는 볼 수 없으나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개방에 돌리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맞네. 결과적으로 우리 역시 지원군이 시기적절하게 오지 않았나. 이 문제는 이쯤에서 덮어도 될 듯싶은데.”

팽만철의 말을 받으며 당우혁이 대화를 정리했다.

잘잘못을 따질 시간에 앞으로에 대해서 의논하는 게 훨씬 더 생산성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 나중에 여유로울 때 해도 늦지 않았다.

“오랜만에 맞는 말을 하는군.”

“나는 늘 맞는 말을 했네.”

“그만하시지요. 처음 보는 분들도 계시는데.”

사석에서처럼 선을 넘나드는 팽만철과 당우혁의 대화에 제갈문곡이 중재했다.

두 사람이야 다른 이들의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지만 새로이 합류한 이들은 달라서였다.

아는 얼굴도 있지만 반 이상이 초면인 이들이었기에 제갈문곡은 그들을 배려했다.

정천맹에 힘을 보태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이들이기도 했고.

“알겠소이다.”

“흠흠!”

그 사실을 당우혁과 팽만철도 모르지 않았기에 제갈문곡의 중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또 이 정도면 분위기는 충분히 환기시켰다고 생각했다.

스윽.

두 사람을 일별한 제갈문곡은 지원군의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 열다섯 명과 한 명씩 눈을 맞췄다.

모두 아는 이들이지만 이렇게 직접 대면한 건 처음인 사람도 있었다.

“먼 길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늦게 와서 저희가 죄송합니다.”

“딱 적당한 시기에 와 주셨습니다.”

깊게 허리를 숙이는 제갈문곡을 향해 표국주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몇몇 이들은 손사래까지 쳤다.

“저희도 수적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천사맹에 붙었다는 소문을 듣긴 들었는데.”

“합류를 안 해서 헛소문이라 생각했거든요.”

“배에서 내려온 녀석들이라 무시하기도 했고요. 근데 숫자를 보니까 상당하더라고요.”

“얼추 천육백 내지 천팔백 명 정도 되어 보이더군요.”

한번 물꼬를 트자 표국주들이 돌아가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문의 존장이야 자주는 못 보더라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본다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을 직접 대면하는 경우는 드물었고, 천하십대고수들이 즐비했기에 표국주들은 긴장하면서도 설레는 표정으로 회의장 곳곳을 힐끔거렸다.

“숫자로만 따지자면 저희가 조금 부족합니다.”

“대신 질적으로는 훨씬 뛰어나지 않습니까. 수적들이 본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건 물 위에서입니다. 땅 위에서는 제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지요.”

예상치 못한 규모의 적이었으나 제갈문곡이 당황한 건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포위를 당하면 여러모로 불리한 점들이 많았기에 그걸 걱정한 것이었다.

똑같은 피해라면 정천맹이 더 불리하기도 했고.

“수적들보다는 저희가 확실히 나을 겁니다. 다수끼리의 전투를 치른 경험도 많고요.”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지원을 와 주신 건 너무나 감사하지만 당분간은 독립적으로 움직여 주셨으면 합니다.”

“아.”

부드럽지만 단호한 제갈문곡의 말에 표국주들의 눈이 커졌다.

무슨 말인지 다들 단박에 알아들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불편해하거나 불만을 드러내는 이는 없었다.

배신자들로 인해 정천맹이 얼마나 흔들렸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이 부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이해합니다. 무조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곳도 아니고 십대세가에 속해 있던 상관세가가 배신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희는 십분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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