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1장. 먹고 먹히는. -03
반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형강기가 허공을 갈랐다.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 이에게 무형강기를 뿌린 것이었다.
“컥!”
초절정과 초월경의 차이가 단 한 단계라고 하나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감히 비벼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 사실을 반호진이 직접 보여 줬다.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무형강기만 일으켰음에도 초절정의 고수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튕기듯 날아갔다.
“날 놔두고 다른 곳에 신경을 쓰면 쓰나.”
“안 그래도 지금 가려고 했어. 안타깝게도 어울려 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거든.”
“후후후!”
자신감 넘치는 반호진의 대답에 사사혈천교주가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두 눈은 달랐다.
서늘한 눈빛으로 반호진을 응시하며 공력을 일으켰다.
웅웅웅!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사사혈천교주 역시 선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굳이 움직이지 않고도 반호진을 쓰러뜨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또한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천사맹주인 자신이 현존하는 무인들 중에 가장 강한 존재임을 말이다.
쑤아아앙!
발에서부터 흘러나온 핏빛 강기가 순식간에 사사혈천교주를 휘감았다.
마치 불꽃처럼 휘감은 채로 일렁이던 강기가 엿처럼 쭈욱 늘어나며 반호진에게 쇄도했다.
근데 그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강기가 섬전처럼 반호진에게 뻗어 나갔다.
“공력이 넘쳐 나는 모양이야.”
“제법 오래 산 몸이거든. 본좌가 말이지.”
콰콰콰쾅!
허공 곳곳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반호진과 사사혈천교주의 기운이 거칠게 충돌하면서 폭발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둘의 주변에는 어느새 아무도 없게 되었다.
사사혈천교도들은 물론이고 장로들과 간부들도 감히 둘의 전장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쩌엉! 쩌어엉!
‘무지막지하네.’
뒷짐을 지고 있던 반호진이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말 그대로 화수분처럼 어마어마한 공력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였다.
장담했던 대로 사사혈천교주는 막대한 공력을 이용해 사방을 장악해 가는 것으로 반호진을 압박했다.
그의 영역을 야금야금 집어삼켰던 것이다.
‘내공싸움으로는 힘들겠는데.’
기가 질리는 물량공세에 반호진은 순순히 인정했다.
적어도 공력의 양으로는 사사혈천교주가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싸움은 내공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공력이 많다면 유리한 건 맞지만 승패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다.
스르릉.
그걸 반호진은 직접 보여 주기로 했다.
양으로 질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으나 반대로 질이 양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너무 늦게 뽑은 것 같은데.”
“영광으로 알도록 해. 내가 검을 뽑았다는 사실에.”
“크큭! 크하하하!”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에 사사혈천교주가 포복절도하듯이 배를 움켜잡았다.
그 정도로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하나 반호진은 사사혈천교주가 그러거나 말거나 전방을 향해 소천검을 휘둘렀다.
쩌어억!
검기 하나 거리지 않은 일검이었으나 결과는 놀라웠다.
저돌적으로 파고들던 핏빛 강기들이 한순간 반으로 갈라졌다.
정확히 반호진이 그린 검격대로 양분되었던 것이다.
“이익!”
그 모습에 사사혈천교주의 표정이 일변했다.
반호진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건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실력이 없었다면 살방과 잔살방, 귀령문이 실패했을 리가 없으니까.
다만 그가 분노한 건 강기가 너무 허망하게 파훼되어서였다.
“벌써부터 놀라면 쓰나.”
인정할 수 없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는 사사혈천교주를 보며 반호진이 비릿하게 웃었다.
고작 이 정도에 놀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기에 반호진은 느릿하게 검을 내질렀다.
바로 달마삼검의 첫 번째 초식인 출검이었다.
“흥!”
건방진 표정만큼이나 여유로운 검놀림에 사사혈천교주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여유를 부리다가 된통 당한 이들이 지금까지 한둘이 아니어서였다.
그중 반호진의 위상이 가장 높다고 하나 사사혈천교주는 자신했다.
반호진이라고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쌔애애액!
사사혈천교주의 의지에 따라 수십 줄기의 강기가 반호진에게 쇄도했다.
양분되며 소멸했던 강기들의 빈자리는 어느새 완벽하게 채워진 상태였다.
거기에 반호진 주변을 강기들이 완벽하게 장악했다.
아예 빠져나갈 공간 자체를 없애 버린 것이었다.
스윽.
무시무시한 기세로 파고드는 송곳 같은 강기들의 모습에도 반호진의 표정은 시종일관 담담했다.
흥분도, 긴장도 하지 않은 말 그대로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그 상태로 반호진은 수없이 연습한 일검을 펼쳤다.
단순하지만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무도(武道)의 정수가 전부 담긴 일검이었다.
푸스스스…….
겉보기에는 화려함과 거리가 먼 일검이었으나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단 일검에 반호진을 관통할 듯이 쇄도하던 핏빛 강기들이 소멸했다.
부서지거나 파괴되는 게 아니라 그냥 먼지로 화했다.
그 광경에 사사혈천교주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파스스스…….
그러는 사이에도 사사혈천교주의 강기들은 먼지처럼 흩어졌다.
당황한 사사혈천교주와 달리 반호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전후좌우는 물론이고 머리 위에도 검을 휘둘렀고, 그 결과 그에게 쏟아지던 모든 공격들이 소멸했다.
“아직이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잠시 넋을 잃었던 사사혈천교주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이를 악물었다.
애초에 쉬운 싸움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공격은 말 그대로 시작일 뿐이었다.
아직 그는 전력을 다한 게 아니었기에 단전의 공력을 가일층 끌어올리고서 재차 공격을 쏟아부었다.
쌔애액!
더욱 농밀해지고 더 많아진 강기들이 반호진을 향해 쇄도했다.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힘이 웬만한 강환보다 강력했으나 반호진을 긴장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었다.
쩌어어억!
그 사실을 증명하듯 반호진의 검격에 사사혈천교주가 뿌린 강기들이 위아래로 갈라졌다.
방금 전처럼 소멸하지는 않았으나 중요한 건 이번 역시 반호진의 몸에 닿지도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사사혈천교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몰아넣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정작 유효타가 전혀 없다는 게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투욱.
그때 반호진이 땅을 박찼다.
제자리에서 검만 휘두르던 그가 처음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 모습에 사사혈천교주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반호진이 스스로가 약자이자 도전자임을 인정한 꼴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닌 것이었으나 사사혈천교주에게는 중요했다.
무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연결되어 있어서였다.
쿠구구궁!
속으로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사사혈천교주는 공력을 더욱더 끌어올렸다.
어차피 그에게 있어 공력은 넘쳐났다.
두 번째 공격이 막혔다면 더 강한 힘으로 세 번째, 네 번째 공격을 날리면 되었다.
그렇게 하면 제아무리 반호진이라도 결국 지쳐서 나가떨어질 터였다.
“너무 뻔해서 지겨울 정도인데.”
자르고 깨부숴도 계속해서 자라나는 듯한 강기에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분명 압도적인 힘인 건 맞았다.
그러나 변화가 없었다.
단순하다 못해 뻔한 공격 방식에 반호진은 고개를 저으며 검을 휘둘렀다.
뻐어어엉!
검강이 서린 일검이 무수히 많은 강기들을 날려 버렸다.
반호진이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이윽고 반호진의 신형이 사사혈천교주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퍼퍼퍼펑!
하지만 사사혈천교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반호진이 지척까지 접근하자 공격 방식을 바꿨다.
아직은 직접적으로 손속을 겨룰 수 없다는 듯이 연달아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로 인해 일어난 반발력을 이용해 반호진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밀어 버리려는 것이었다.
“아직은 이르다.”
사방에서 일어나는 폭발을 지켜보며 사사혈천교주가 비릿하게 웃었다.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폭발인 만큼 제아무리 반호진이라고 하더라도 멀쩡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아마 가까스로 버티는 게 전부일 터였다.
더불어 내공도 빠르게 소모될 게 분명했다.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닐 텐데.”
“헙!”
반호진이 그랬던 것처럼 얼굴 가득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던 사사혈천교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
당연히 속절없이 튕겨 날아가야 했을 반호진이 나른한 얼굴로 면전에 도달해 있어서였다.
심지어 그가 일으킨 연쇄폭발 속에서도 반호진의 상태는 멀쩡했다.
땅이 뒤집히고 허공이 터져 나감에도 흑의무복에는 그을린 자국 하나 없었다.
쩌어엉!
폭발을 가르며 나타난 반호진의 검이 사사혈천교주의 정수리로 떨어져 내렸다.
한줄기 벼락처럼 꽂히는 참격에 사사혈천교주가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일으켰다.
본능적으로 모든 힘을 집중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반호진의 검이 막혔다.
“호오.”
“감히!”
반사적으로 두 팔을 교차해서 반호진의 일격을 막은 사사혈천교주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막아 내긴 했으나 이런 공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이 그에게 치욕적으로 다가와서였다.
그래서 사사혈천교주는 포효하며 양팔을 거칠게 휘둘렀다.
쉬이익!
핏빛으로 이루어진 강기가 허공을 거칠게 찢어 버리며 반호진에게 쇄도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속도였다.
거기다 떨어져 있던 전과 달리 지금은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기에 더더욱 빠르게 느껴졌다.
꽝! 꽝! 꽝! 꽝!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한 공격이었음에도 의외로 날카로웠다.
단순히 흡정기공을 익혀서 초월경의 경지에 오른 게 아니라는 듯이 사사혈천교주의 초식은 매서웠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수준은 있으나 반호진이 지금껏 상대했던 초월경의 고수들과 비교하면 실력이 턱없이 떨어졌다.
콰콰콰쾅!
반호진은 말보다 실력으로 보여 주었다.
요혈이나 급소를 노리는 게 아니라 우악스럽게 힘으로 찍어 누르려고 하는 사사혈천교주의 공격을 일일이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 어떤 공격이라도 다 받아 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걸 사사혈천교주가 모를 수가 없기에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더욱 거세게 파상공세를 펼쳤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꽈앙! 꽝!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사사혈천교주가 밀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수세에 몰렸던 것이다.
“이익!”
분명 공력에 있어서는 그가 압도적이었다.
사사혈천교주 본인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반호진은 그 차이를 흘려 내거나 방향을 비트는 것으로 상쇄했다.
무당파의 제자도 아니건만 극성에 이른 유능제강과 사량발천근으로 그의 힘을 흩어 버렸다.
스극.
반호진의 검강에서 흘러나온 예리한 검풍이 사사혈천교주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아주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찔러 넣은 것이었다.
심지어 사사혈천교주는 이런 틈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슥.
따끔한 고통보다 자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틈을 타 반호진의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는 사실에 솜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또 한 번 피가 솟구쳤다.
이번에는 옆구리를 베인 것이었다.
“큭!”
게다가 상처가 제법 깊은 모양인지 출혈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내부가 진탕되었다.
상처를 통해 체내로 들어온 반호진의 진기가 독처럼 그의 공력을 뒤흔든 것이었다.
스며들어 온 양은 얼마 안 되지만 중요한 건 농도였다.
최대한 많이 쌓기 위해 극도로 압축한 그의 진기보다 반호진의 공력이 훨씬 더 농밀했다.
퍼퍼퍼펑!
그리고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공격이 모조리 막히는 것과 달리 반호진의 검은 점점 더 몸에 상처를 남겼다.
“이럴 리가 없어!”
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