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0장. 악연의 끝. -04
당우혁은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상관적에게 집중되었다.
당우혁뿐만 아니라 모두가 궁금했던 것이기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
당우혁이 얼굴 가득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옥병을 흔들었다.
당장이라도 더 몸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상관적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숨기는 게 아니라 진짜 모릅니다. 앞서 배신했던 이들이 배신자였다는 사실도 저는 몰랐습니다.”
“그 말은 상관보는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
“예.”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상관적이 대답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당우혁은 고개를 돌려 상관보를 쳐다봤다.
하지만 상관보는 아예 두 눈을 감아 버린 상태였다.
“장로들이 알고 있을 가능성은?”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태도는 마음에 드네. 가장 마음에 들어. 자, 그러면 대장로에게 물어 볼까.”
협조적인 상관적의 태도에 당우혁의 시선이 옆에 무릎 꿇고 있는 대장로에게 향했다.
얼마나 당했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눈빛이 사뭇 도전적이었다.
당우혁이 무슨 짓을 해도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 눈빛과 표정으로 전달되었다.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기색인데.”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을 들은 것 같은 대장로의 표정에 당우혁은 다른 장로들을 살펴봤다.
혹시나 상관적처럼 협조적인 이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상관적이 특이한 모양인지 다들 눈빛이 비슷비슷했다.
“이간질일 수도 있습니다.”
그때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제갈문곡이 입을 열었다.
설사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도 믿는 건 다른 문제였다.
제갈문곡은 바로 그 점을 짚었다.
“그렇기는 하지요.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고.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무슨 무공을 익힌 거지? 대체 어떤 무공을 익혔기에 절정에도 오르지 못했던 녀석이 초절정고수가 된 거야?”
다시 한번 상관적에게로 시선이 집중됐다.
배신자만큼이나 궁금한 게 바로 이것이었기에 다들 눈을 빛냈다.
“……흡정기공(吸精奇功)입니다.”
“흡정대법?”
“허어! 그 금공(禁功)은 분명히 소실되었을 터인데!”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상상도 못한 무공에 다들 대경한 것이었다.
몇몇은 아예 두려운 표정까지 지었다.
그 정도로 흡정대법은 중원무림에 있어 공포나 마찬가지였다.
“누구에게 받았지?”
“사사혈천교에게 받았습니다.”
“으음!”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경악한 당우혁이 침음을 흘렸다.
어째서 사사혈천교가 단숨에 세력을 키웠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어서였다.
동시에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사사혈천교주를 잡아야 한다는.
“흡정대법이라니…….”
“서둘러야 합니다. 시간을 주면 줄수록 사사혈천교주는 강해질 겁니다!”
“문제는 광신도들이외다. 그들을 뚫지 않으면 사사혈천교주를 잡을 수 없소이다.”
언제 조용했었냐는 듯이 모두가 입을 열었다.
하나같이 조급한 얼굴로 의견을 제시했으나 결론은 같았다.
금공이 나타났다면 어떻게든 다시 소멸시켜야 했다.
“흡정기공이라. 증명할 수 있느냐?”
“구결을 원하신다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안 되지. 나도 들어서는 안 되고. 구결 말고 달리 증명할 방법은?”
당우혁은 상관적의 말을 순순히 믿지 않았다.
이 또한 정천맹을 흔들기 위한 수작일 수도 있어서였다.
모든 가능성은 다 열어 두어야 했기에 당우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본가에 대해서 알아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이들이 꽤 많을 겁니다.”
“그 부분은 제가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오중건이 슬쩍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단순히 알아보는 일이라면 백도무림에서 개방을 따라 올 곳이 없어서였다.
심각성을 생각하면 반드시 알아내야 하는 일이기도 했고.
“부탁하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궁금하기도 하고요. 또 흡정대법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맞네.”
흡정대법은 무림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흉악한 금공이었다.
강호에 등장할 때마다 수많은 이들이 정혈을 뽑혀 죽었기에 역사적으로 흡정대법을 익힌 이들은 무림공적이 되어 죽었었다.
달리 흡정마공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반드시 뿌리를 뽑아야 했다.
“본가에도 익힌 이들이 있나?”
“없을 겁니다.”
“겁니다?”
냉기가 풀풀 날리는 표정으로 물었던 제갈문곡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애매모호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저라고 가문의 일을 전부 다 아는 건 아닙니다.”
상관적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 양쪽에 있는 부친과 대장로를 힐끔거렸다.
소가주이지만 그보다는 두 사람이 더 가문의 대소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였다.
“다 좋아. 근데 너무 술술 불어서 신빙성에 좀 의심이 가네. 지나칠 정도로 협조적이란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저는 원하신 대로 다 말했습니다.”
상관적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서 대답했다.
원하는 대로 해 줘도 뭐라고 하자 난감했던 것이다.
동시에 불안감도 들었다.
지금의 발언이 약속을 지키지 않기 위한 밑밥은 아닐까 하는.
“우리 입장을 바꿔 보자고. 네가 만약 나라면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겠어?”
“이간질이 목표였다면 애초에 이렇게 많은 걸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건 모르는 거지. 이조차도 약속되어 있을 수도 있고. 부자지간 정도면 눈빛으로도 대화가 될 거 아냐?”
상관적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올 정도였다.
더불어 깨달았다.
무슨 말을 해도 당우혁이 듣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들을 만한 건 다 들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소이다. 그럼 둘의 처분은 제갈가주께 맡기겠소.”
“감사합니다.”
물건을 대하듯 말하는 제갈문곡과 당우혁을 일별한 상관적은 잠자코 듣기만 하고 있던 반호진을 노려봤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반호진이었다.
그가 난희주와의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안 왔을 것이었다.
“내 탓하지 마라. 네 욕심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까.”
“……내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본 것처럼 말하는군.”
“눈빛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은 알 수 있지. 근데 네가 바르게 살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스스로 자기중심적인 성격이라고는 생각 못 하나?”
“그게 무슨 소용일까. 어차피 결과는 나왔고, 곧 나는 죽을 텐데.”
“맞아. 그건 피할 수 없는 진실이지.”
반호진이 싸늘한 눈빛으로 상관적을 응시했다.
솔직히 그는 자신을 공격한 데에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일행들은 달랐다.
백도무림의 미래를 지워 버리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반호진은 평소와 달리 노기가 서린 눈빛으로 상관적을 노려봤다.
“한 가지 예고하지. 네놈도 곧 나를 따라올 거다. 천사맹주와 마도련주가 널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니까.”
“그건 올라가서 지켜보고 있어. 아마 몇십 년 동안 지켜봐야 하겠지만.”
“…….”
상관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반호진을 죽일 듯이 쏘아봤다.
마지막까지 여유로운 꼴을 보고 있으니 배알이 뒤틀린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노려보는 것뿐이었다.
“끌고 가.”
“예.”
대화가 얼추 끝난 듯하자 당우혁이 정리했다.
더는 얻을 게 없어 보였기에 상관세가를 내보낸 것이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심문이 끝남과 동시에 제갈문곡은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당장 날이 밝으면 천사맹과 마도련이 다시 공격해 올 수도 있었기에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장내의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다들 집중했다.
“상관세가는 오중건 방주 대리가 확인해 준다고 했으니 넘어가고. 문제는 천사맹인데. 만약 상관적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사혈천교도들이 다른 사도육주의 무인들보다 강한 게 이해가 돼.”
“더 큰 문제는 어디까지 퍼졌을지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상관적의 말을 들어 보니 임시맹주, 임시련주가 아니라 확고하게 천사맹주와 마도련주가 정해진 듯합니다.”
일우를 바라보며 제갈문곡이 답했다.
지금으로서는 유추할 수밖에 없기에 제갈문곡은 답답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럴 때는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장문인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일우에 이어 운상이 입을 열자 제갈문곡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우가 화산파의 장문인이라고 하나 무당파의 수장인 운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고견까지는 아니고 다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말이오. 어려울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기본으로 돌아가라.”
제갈문곡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렇게 말하니 딱 떠오르는 게 있어서였다.
“고민할 게 있겠습니까? 어차피 우리들이 이곳에 모인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인데.”
“맞습니다, 방장.”
운상에 이어 담현도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운상과 같은 생각이었다.
한데 담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옆에 앉은 반호진을 바라봤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저도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긴 했으나 근본적인 목표는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거기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는 그걸 어떻게 해결하느냐겠지요.”
“그렇지.”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담현은 제갈문곡을 바라봤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전적으로 제갈문곡을 의지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단순무식하게 그냥 힘 대 힘의 싸움을 할 수도 있지만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굳이 미련하게 싸울 필요가 없었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피해를 줄이는 것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했다.
“천사맹과 마도련을 무너뜨리는 방법이라. 혹 반 문주께서는 묘안이 있으십니까?”
“저요?”
“예. 여러 의견을 취합하다 보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반호진이 진심으로 깜짝 놀라자 제갈문곡은 물론이고 담현과 운상 역시 미소 지었다.
지금 광경은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어서였다.
그리고 일부러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기도 했다.
독단만큼 무서운 게 없기에 제갈문곡은 많은 이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일단 최우선 목표를 확실하게 정해 놓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제일 위험한 인물은 아무래도 사사혈천교주이니까. 거기에 더해서 사사혈천교까지.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천사맹의 핵심은 사사혈천교이니까. 가장 세력이 크기도 하고. 거기다 흡정기공이라고 했나? 흡정대법과 흡사한 무공까지 익히고 있으니 가장 먼저 제거해야지.”
“나 역시 동감일세.”
“나도.”
웬일로 바른말을 하는 팽만철의 모습에 남궁호와 당우혁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동조에도 팽만철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전혀 기쁘지가 않아서였다.
오히려 놀리는 쪽에 가까웠기에 팽만철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저 역시 방장과 운상 장문인의 생각과 같습니다.”
남궁호, 당우혁에 이어 담현과 운상도 적극 지지한다는 듯이 입을 열자 다른 이들도 합류했다.
그만큼 흡정기공이 위험하기도 했지만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저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더했으면 합니다.”
“더한다고 하심은?”
“저희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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