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34화 (334/468)

제 110장. 악연의 끝. -02

살벌한 안광을 뿌리는 건 서조운만이 아니었다.

일행들은 물론이고 선우세가와 모용세가, 그리고 소림사와 무당파의 장로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기세로 쏘아봤기에 두 눈을 감고 있어도 상관보와 상관적은 느낄 수 있었다.

“모두 다친 데는?”

“이 정도는 긁힌 거죠.”

“맞아.”

“싸울 수는 있습니다.”

“겉보기에만 좀 커 보이지 괜찮습니다. 내상도 안 입었고요.”

반호진의 말에 서조운, 선우방, 모용척, 정이륭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러나 반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급히 지혈을 하기는 했으나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서였다.

“형님은 어떠세요? 저 새끼들의 공격에 등을 당하셨잖아요.”

“너보다는 괜찮을 거다. 나야말로 살짝 긁힌 정도니까.”

“그럴 리가요. 피가 엄청 솟았었는데.”

서조운은 반호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괜찮다니까.”

“제가 직접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도.”

반호진의 말에도 서조운은 직접 움직였다.

그 뒤로 일행들이 뒤따랐다.

말만 듣고 믿을 수는 없어서였다.

더구나 피가 솟구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에 다들 반호진의 상처를 직접 확인했다.

“봐 봐.”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기색이기에 반호진은 직접 일행들에게 등을 보여 주었다.

따로 지혈을 하지는 못했으나 피는 멎어 있었다.

“상처가 제법 깊은데요?”

“네 긁힌 상처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울상을 짓는 서조운의 표정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본인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상처에는 크게 반응하는 듯해서였다.

“저의 몸과 형님의 몸은 다르지요. 가치가 천양지차입니다.”

“암! 그렇고말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전장부터 정리하자. 천사맹과 마도련도 물러나니.”

더 대화해 봤자 똑같은 말만 나올 것 같았기에 반호진은 화제를 돌렸다.

실제로 마도련과 천사맹은 천천히 퇴각하는 중이었다.

귀령문주와 흑랑문주가 죽은 걸 확인하자마자 두 세력은 망설이지 않고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감사 인사도 전해야 하고.”

전투가 끝나지 않았기에 지원을 와 준 소림사와 무당파의 장로들은 다시 전방으로 복귀한 상태였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기에 반호진은 그 점을 짚었다.

“바로 찾아가겠습니다. 물론 그 전에 이자들부터 확실하게 해야겠지만요.”

“일단은 살려 둬. 사부님께 보고도 해야 하고, 알아낼 것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아무리 때려죽이고 싶더라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했다.

그렇기에 서조운은 분노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대신 죽일 듯한 눈빛으로 상관보, 상관적 부자를 노려봤다.

절대 쉽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눈빛이었다.

거대한 천막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인 인원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어떻게 책임질 것이오?”

“그걸 왜 나한테 묻소?”

“검신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게 당신 아니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광검문(狂劍門)의 수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어지는 침묵을 참다못해 입을 연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한 명에게 삿대질을 했다.

“나만 주장했소이까?! 다른 이들도 다 동의하지 않았소! 광검문주 당신 역시 마찬가지고!”

“내가 언제 찬성했소! 난 그저 다수의 뜻을 따랐을 뿐!”

“허어! 당신만 빠져나가겠다는 뜻이오?!”

광검문주의 삿대질에 염라문주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속내가 너무 뻔히 보여서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사사혈천교주가 조용히 지켜봤다.

마도십문의 분란은 그에게 있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아서였다.

후르릅.

그래서 사사혈천교주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물론 그걸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다.

쾅!

그사이 광검문주와 염라문주의 다툼은 더욱더 거세어져 갔다.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아서였다.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려고만 했다.

“자자, 두 사람 다 너무 흥분한 것 같군.”

그런 염라문주와 광검문주를 마도련주가 말렸다.

더 놔두었다가는 칼부림이 날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서 그는 조용한 천사맹 쪽을 힐끔거렸다.

어째서 가만히 있는지 마도련주는 알고 있었기에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끼리 다툴 때가 아니란 걸 광검문주도 알지 않나.”

“끄으응!”

담담한 마도련주의 한마디에 광검문주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염라문주를 여전히 노려보고 있었다.

“어찌됐건 모두가 다 동의하지 않았나. 천사맹도 마찬가지였고. 결과는 우리에게 썩 좋지 않게 나왔지만.”

마도련주가 자연스럽게 천사맹을 끌어들였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마도련만 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천사맹도 같이 계획을 수립했고, 실행했기에 책임은 천사맹에도 있었다.

“맞습니다.”

씩씩거리던 광검문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염라문주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폭급한 성격을 여지없이 드러냈던 그였으나 마도련주인 구화문주에게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비슷비슷한 다른 곳들과 달리 구화문(九火門)는 중원의 마도무림에서 명문 중의 명문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별 탈 없이 구화문주가 마도련주의 직위에 오른 게 아니었다.

“우리는 소림검신이 만만치 않다고 누누이 의견을 제시했소만.”

“알고 있소. 그리고 나는 맹주를 탓하려고 말을 꺼낸 게 아니외다.”

“소림검신에게 당한 피해는 마도련보다 천사맹이 훨씬 크오.”

마도련주의 속셈을 알았기에 사사혈천교주는 미리 선을 그었다.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한 것이었다.

또한 명명백백한 사실이기도 했다.

반호진에게 당한 곳들만 하더라도 사도육주 중 벌써 세 곳이었다.

“그건 살방과 귀령문, 잔살방이 약해서이지 않나?”

“뭐라고?!”

빈정대는 마창문주의 말에 구룡문주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뿐만 아니라 백귀전주 역시 살벌한 안광을 토해 냈다.

지금의 발언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사도육주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진정하시오. 우리끼리 싸워 봤자 정천맹에만 좋은 일이오. 또한 싸우려고 이렇게 모인 게 아니지 않소이까.”

마도련주가 서둘러 중재했다.

자칫 잘못하다다가는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도 있기에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천사맹의 힘이 약해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건 정천맹과 붙어서 그리되어야지 내분이 일어나서는 안 되었다.

“맞아요. 그러니 예의를 지켜 주었으면 해요. 우리도 예의를 지킬 테니.”

환요궁주의 뼈 있는 한마디가 내부를 갈랐다.

그런데 그 말에 광검문주와 마창문주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천사맹주도 아니고 고작 환요궁주 따위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거슬린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둘은 환요궁주를 매섭게 노려봤다.

“힘자랑을 하러 온 것이오?”

사나운 기파를 흩뿌리는 둘을 향해 사사혈천교주가 손을 휘저었다.

둘의 기파를 흩어 버리기 위해서였다.

“흥!”

“…….”

광검문주와 마창문주 역시 진짜 싸우려고 기운을 끌어올린 건 아니었기에 적당히 넘어갔다.

하지만 불편한 신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광검문주.”

“……미안하외다.”

마도련주의 근엄한 눈빛에 광검문주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사과했다.

그러나 진심은 눈곱만큼도 담겨 있지 않았다.

한데 그걸 알면서도 꼬투리를 잡는 이들은 없었다.

사사혈천교주는 물론이고 환요궁주도 더 요구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우리가 모인 건 잘잘못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오.”

“맞소이다.”

“결과는 이미 나왔고 이건 뒤집을 수 없소. 그렇다면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논의해야 하지 않겠소?”

마도련주의 시선이 사사혈천교주에게 향했다.

흑랑문과 귀령문에 대한 건 이제 덮자고 말한 것이었다.

“맞소이다. 중요한 건 당면한 문제이니. 그러니 대책을 논의해야 하오.”

“생각해 둔 것이 있소이까?”

사사혈천교주는 천사맹주이기에 마도련주도 대우를 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진심으로 천사맹주가 자신과 동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잠재적 경쟁자라고 생각했다.

정천맹 다음에는 천사맹이었으니까.

“전장을 수습하자마자 이 자리에 오지 않았소이까. 우리도 따로 준비할 시간이 없었소이다.”

“그렇구려.”

묻긴 했으나 마도련주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만약 대책이 있었다면 천사맹의 분위기가 이러지 않았을 것이었기에 마도련주는 아쉽다는 기색만 살짝 드러냈다.

“보아하니 마도련도 상황은 비슷한 것 같구려.”

“우리도 시간이 없었지 않소이까.”

피차일반이라는 대답에 사사혈천교주가 씨익 웃었다.

일일이 따지지 말라는 경고 아닌 경고였다.

“그렇구려.”

“그래서 이 자리가 더욱더 중요하지 않겠소. 머리를 맞대서 대책을 찾아야 하니.”

“동의하오.”

“우리보다는 귀맹이 더 급하겠지만 말이오.”

마도련주도 순순히 당해 주지만은 않았다.

천사맹의 피해를 일부러 꼬집어서 말했다.

“맞소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피해가 커서 말이오. 빈자리 하나를 채웠더니 두 개가 생긴 상태라.”

“으음.”

마도련주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사사혈천교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바로 귀령문과 잔살방, 살방이었다.

근데 그 부분을 콕 짚었음에도 사사혈천교주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는다면 마도련 역시 똑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소이다.”

“맞소. 그래서 이렇게 대책을 구하자고 하는 것이고.”

“미리 말씀드리면 본맹은 여력이 없소이다.”

“하하하.”

마도련주가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게 이 말을 위한 밑밥이었다는 걸 알 수 있어서였다.

“십대마문의 힘이 강성함을 잘 알고 있기도 하고 말이오.”

“본련의 힘이 강하긴 하외다. 그렇지만 우리만으로 정천맹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오.”

추켜세워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사혈천교주가 원하는 건 명백했다.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마도련주는 고개를 저었다.

남 좋은 일을 해 줄 생각은 그 역시 전혀 없었다.

“알고 있소이다. 정천맹은 공공의 적이기도 하고. 또한 본맹은 정천맹에 갚아야 할 빚이 있소이다. 다만 힘이 부족하니 여유가 있는 마도련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오.”

“도움이라.”

“사도무림과 마도무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소림검신은 반드시 제거해야 하오. 법왕과 검왕의 시대는 저물어 가지만 검신은 다르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마도련주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단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그 실력이 초월경의 고수 둘을 상대하고도 이길 줄은 몰랐다.

물론 두 명 다 제대로 여물지 못했다고 하나 그래도 놀라운 일인 건 분명했다.

특히나 반호진의 나이를 생각하면 말이다.

“무조건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하오.”

“문제는 누가 나설 것이냐인데.”

마도련주의 시선이 사도육주에게로 향했다.

반대로 사사혈천교주의 시선은 마도십문에게 움직였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반호진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무인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회의장은 시끄러웠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을 정도로 곳곳에서 고성과 노성이 난무했다.

심심찮게 욕설도 들려오자 반호진과 함께 천막 안으로 들어온 담현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였다.

“저자를 당장 찢어 죽여야 합니다!”

“죽여야 하는 건 맞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어쩌면 배신자가 더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그마치 상관세가입니다. 십대세가라 불리는 곳 중 한 곳이 배신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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