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33화 (333/468)

제 110장. 악연의 끝. -01

“끄아아악!”

“꺼억!”

좌에서 우로 긋는 단순한 횡베기에 상관세가의 무인 수십 명이 양분되었다.

상관적과 마찬가지로 사이한 사공을 익혀 한 명 한 명이 절정고수에 버금가는 무위를 가졌지만 반호진의 일검을 받아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나마 장로급들만 검격의 기세를 느끼고 가까스로 피해 냈다.

“감히……!”

“그런 말은 나나 할 수 있는 거다. 너 따위가 아니라.”

“반호진!”

자신을 상대하면서도 수하들을 도륙하는 반호진의 무위에 상관적이 시뻘게진 얼굴로 울부짖었다.

그토록 원하던 힘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반호진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를 미치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광기와 살기가 극한까지 치솟을수록 상관적의 공력 역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스스로 먹혔나.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텐데.”

“반드시, 반드시 네놈을 천참만륙낼 것이니라!”

웅웅웅웅!

포효와 함께 상관적의 전신이 핏빛 기운에 뒤덮였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불퉁불퉁한 강환들이 생성되었다.

억지로 욱여넣듯이 만든 강환들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불완전해도 강환은 강환이라는 점이었다.

쌔애애액!

상관적은 그 강환들을 반호진을 향해 일제히 날렸다.

더불어 자신 역시 몸을 날렸다.

선언한 대로 반호진을 갈가리 찢어 버리기 위해서였다.

반호진이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보여 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상관적은 자신이 있었다.

“차합!”

상관적에 이어 상관보도 전력을 다해 반호진에게 달려들었다.

배신을 한 순간부터 그에게 주어진 미래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이곳에서 반호진을 죽이지 못하면 그와 아들, 가문이 사라질 것이 자명하기에 상관보로서는 모든 걸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 순간 그의 눈에 황당한 광경이 들어왔다.

‘저, 저놈들이……!’

상관보의 두 눈에 짙은 노기가 서렸다.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그와 아들과 달리 흑랑문주와 귀령문주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어서였다.

협공하기로 약속한 것과 달리 도망칠 기회를 노리는 두 명의 모습에 상관보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두 사람의 배신에 대노한 것이었다.

“죽어!”

게다가 문제는 이성을 잃은 상관적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반호진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죽음을 도외시한 것처럼 달려드는 아들의 모습에 상관보는 이를 악물었다.

약속을 내팽개치는 모습에 화가 났지만 중요한 건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다.

화는 목표를 다 이룬 다음에 내도 되었기에 상관보는 귀령문주와 흑랑문주를 향해 소리쳤다.

“어딜 가는 것이오!”

진기를 가득 실은 목소리가 주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던 흑랑문주와 귀령문주가 움찔거렸다.

은밀하게 반호진의 시야에서 벗어나 물러나려고 했는데 상관보의 외침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자 둘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렇게까지 말할 것 없어. 당신이 부르지 않아도 까먹지 않았으니까.”

“커헉!”

상관보가 두 눈을 부릅떴다.

무미건조한 반호진의 목소리에 이어 상관적의 신음 소리가 들려와서였다.

쿠웅!

뒤이어 상관적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단 일격에 그대로 나자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상관보는 아들에게 달려갈 수가 없었다.

상관적을 괴롭히던 이기어검이 방향을 틀어 그에게 쇄도해서였다.

쌔애애액!

순식간에 두 자루의 검이 전광석화처럼 파고들었다.

한 자루는 정수리를, 남은 하나는 단전을 노렸다.

“흡!”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아도 느낄 수 있었기에 상관보는 반호진에게 달려들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몸을 비틀었다.

크게 움직이지 않고 딱 필요한 부분만 움직이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호진이 상관적에게 가는 걸 막기 위해서는 신경을 계속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상관보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이기어검을 회피하면서 반호진에게 접근했다.

푹.

그런데 그 순간 복부에서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바늘로 찌른 것 같은 느낌에 상관보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고통에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주르륵.

상관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려한 황의무복의 아랫배 부근에 생긴 작은 구멍에서 새빨간 피가 흘러나와서였다.

동시에 상관보는 느낄 수 있었다.

단전에 생긴 균열을 통해 그가 평생 동안 축적한 내공이 빠르게 새어 나가고 있음을 말이다.

“아, 안 돼!”

“안 되긴. 돼.”

스극!

아주 작은 검환으로 상관보의 아랫배에 구멍을 뚫은 반호진은 그대로 이기어검을 제어해서 두 발의 뒤꿈치를 베어 버렸다.

도망치지 못하게 인대를 확실하게 끊어 버린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반호진은 상관보의 단전을 꿰뚫은 검환을 조종해 상관적의 아랫배에도 똑같이 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커헉!”

고통으로 신음하던 상관적의 입에서 피분수가 작게 솟구치는 걸 확인한 후 반호진은 몸을 돌렸다.

상관보, 상관적 부자를 제압했지만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 두 명이 남아 있었기에 반호진은 고개를 돌렸다.

“제기랄!”

“크윽!”

순식간에 두 부자를 쓰러뜨리고 자신들을 쳐다보는 반호진의 시선에 귀령문주와 흑랑문주는 직감했다.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모두 모여라!”

“반호진을 공격해!”

현재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엄연히 적진이었다.

그렇다 보니 귀령문도들과 흑랑문도들은 반호진에게 지원군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적을 죽이기보다는 공세를 막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변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반호진은 훨씬 더 강했고, 계획은 실패했기에 귀령문주와 흑랑문주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다.

“결국 선택한 게 도주더냐.”

부하들을 밀어 넣고 정작 자신들은 도망치는 흑랑문주와 귀령문주의 모습에 반호진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마도십문과 사도육주의 수장이라 불리는 이들이 망설이지 않고 등을 보일 줄은 몰라서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개죽음을 당할 바에는 일단 물러나서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현실적이긴 했으니까.

투욱.

그러나 도망친다고 해서 반호진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반호진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기회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사도육주와 마도십문의 수장들을 잡을 수 있는 기회였기에 반호진은 상관보의 인대를 끊은 검들을 귀령문주와 흑랑문주에게 날려 보냄과 동시에 소천검에 올라탔다.

“마, 막아라!”

“반호진을 떨어뜨려!”

어검비행을 펼치는 반호진의 모습에 흑랑문도들과 귀령문도들이 기함을 토했다.

이대로 놔두면 얼마 안 가서 주군이 붙잡힐 게 분명해서였다.

“어림없는 소리!”

“더 이상은 네놈들 뜻대로 안 될 것이다!”

“전부 족 쳐!”

“일단 깔아뭉개!”

육탄방어를 해서라도 반호진을 붙잡으려하던 귀령문도들과 흑랑문도들의 진영이 크게 흔들렸다.

정천맹의 진영 후미에서 개방도 수백 명이 달려들어서였다.

한 명 한 명의 힘은 보잘 것 없었으나 숫자가 많았다.

특유의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오자 제아무리 흑랑문과 귀령문이라도 별수 없었다.

“살려 둘 필요 없어! 모조리 죽여!”

그리고 선두에는 오중건이 있었다.

상관세가가 배신하자 가장 먼저 개방도들을 이끌고 달려온 것이었다.

“우리는 상관세가를 맡는다!”

“상관세가는 적이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거기에 모용세가와 선우세가도 합류했다.

상관세가가 배신하며 모용척과 선우방을 공격하자 모용궁과 선우청도 황급히 뛰어온 것이었다.

덕분에 반호진은 아무런 방해 없이 천사맹과 마도련의 진영으로 도망치는 귀령문주와 흑랑문주를 추격할 수 있었다.

“니미럴!”

“끝까지 성가시게……!”

비록 초입이라고 하나 두 사람 다 초월경의 고수였다.

그렇기에 네 자루의 이기어검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도 당하지 않고 이동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본래 속도로 움직일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사이 반호진이 소천검을 타고 두 사람에게 도착했다.

쑤아아앙!

“어딜 그리 급히 가시나.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볼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젠장!”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반호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귀령문주의 새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넷이서 힘을 합쳤음에도 죽이지 못한 인물이 반호진이었다.

그런 반호진을 둘이서 협공해 봤자 필패이기에 귀령문주는 간절한 눈빛으로 천사맹의 진영을 바라봤다.

둘이서는 부족하지만 다른 이들이 힘을 보탠다면 얘기가 달라져서였다.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텐데.”

“큭!”

싸늘한 반호진의 목소리와 함께 왼팔과 오른쪽 다리에서 따끔한 고통이 느껴졌다.

두 자루의 검이 섬전처럼 그의 팔다리를 베고 지나간 것이었다.

한데 이번에 그를 노린 검은 두 자루만이 아니었다.

흑랑문주를 공격하던 두 자루도 그에게 날아왔다.

쌔애애액!

섬뜩한 파공성과 함께 살벌한 기세로 날아오는 총 네 자루의 검에 귀령문주가 정신없이 경신술을 펼쳤다.

귀령(鬼靈)이라는 이름답게 귀신과도 같은 몸놀림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귀령문주의 손발은 어지러워졌다.

“크흡!”

상황은 흑랑문주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반호진에게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서둘렀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또한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가 반호진에게 붙잡혀 있는 것처럼 마도십문의 다른 문주들도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수장들에게 붙들린 상태였다.

스극.

그를 괴롭히던 두 자루의 검이 사라졌지만 대신 반호진이 직접 공격해 왔기에 흑랑문주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무리 기를 쓰고 싸워도 막막함이 사라지지 않아서였다.

전심전력을 다해도 그의 도는 반호진에게 닿지 않았고, 대신 반호진의 검은 연신 그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꽝! 꽝! 꽝! 꽝!

혼신의 힘을 다해 도강을 뿌렸으나 안타깝게도 흑랑문주의 공격은 번번이 막혔다.

그의 도강은 반호진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기어도를 펼칠 수도 없었다.

고작 수어도(手馭刀)의 수준으로는 심어검(心馭劍)의 경지에 이른 반호진에게 역으로 잡아먹힐 게 분명해서였다.

‘이, 이대로는……!’

흑랑문주의 두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언뜻 보기에는 그가 반호진을 몰아붙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달랐다.

죽지 않기 위해, 반호진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더불어 자신이 여기 있음을 마도련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네가 갈 곳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 흑랑문주.”

쩌어엉!

흑랑문주의 도가 산산조각 났다.

검강과의 충돌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난 것이었다.

“끄으윽!”

그리고 산산조각 난 도의 조각들은 그대로 흑랑문주의 전신을 덮쳤다.

폭발과 동시에 그에게 날아왔기에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서걱.

전신에 구멍이 뚫려 비틀거리는 흑랑문주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반호진이 단숨에 목을 벤 것이었다.

“젠장!”

흑랑문주를 처치한 반호진은 땅을 박찼다.

마지막으로 남은 귀령문주를 잡기 위해서였다.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네 자루의 이기어검을 어찌어찌 막아 내고는 있었으나 반호진이 직접 검을 휘두르자 귀령문주도 얼마 버티지 못했다.

사지에 각각 한 자루씩의 검이 박힌 채로 귀령문주 역시 목이 잘렸다.

“저승에 가서도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웃기는 놈이네. 네가 먼저 와 놓고 분해하다니.”

반호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처럼 딱 그 꼴이어서였다.

그렇다고 흥분하지는 않았다.

죽여야 할 놈을 죽인 것이기에 반호진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일행들에게로 날아갔다.

“형님!”

“다 정리된 모양이네.”

“소림사와 무당파의 장로님들 덕분에 살았어요. 두 놈도 죽이지 않고 잘 보존해 놓았고요.”

서조운이 대답하며 형형한 눈빛으로 상관보, 상관적 부자를 노려봤다.

허락만 떨어지면 언제라도 오체분시를 하겠다는 눈빛이었다.

부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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