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9장. 반전에 반전. -04
카가가강! 꽝!
사방에서 들려오는 금속음과 폭음을 가르며 상관적은 몸을 날렸다.
그런 그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어서 가십시오!”
“반 대협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장 힘이 집중되는 중앙 쪽이기에 예비 병력도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십대세가 중 한 곳인 상관세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명문세가 중의 명문세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상관세가였기에 정천맹의 무인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 주었다.
자신들보다는 상관세가가 빨리 합류하는 게 반호진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고맙소이다!”
상관적은 그런 이들을 향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그런데 표정과 달리 눈빛은 서늘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걸 알아차린 이는 없었다.
“도우러 왔습니다!”
“우리와 같이 싸웁시다!”
길을 열어 준 덕분에 빠르게 반호진이 있는 곳에 도달한 상관적이 호의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린 것이었다.
뒤이어 가주인 상관보 역시 입을 열자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상관세가의 지원에 마음을 놓은 것이었다.
“뭐야?”
“왜 상관세가가?”
반면에 서조운과 사마의성은 얼굴 가득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상관세가가 지원해 오자 이상했던 것이다.
게다가 포위하듯 진영을 구축하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말로는 도와주기 위해 왔다고 하는데 행동을 보면 제갈세가와 떨어뜨려 놓으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귀령문과 흑랑문의 습격에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 그런지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그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히려 상관세가가 와 주었다는 사실에 고마워했다.
비록 오대세가에 속하지는 않지만 상관세가의 전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였다.
“허허허! 이제부터는 우리에게 맡기게나!”
안도하는 제갈세가의 무인들에게 상관보는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빠르게 이동했다.
귀령문주와 흑랑문주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 반호진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그런데 반호진을 쳐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
“그래. 바로 시작하자꾸나.”
“예.”
부친과 똑같은 눈빛으로 반호진을 노려보던 상관적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제갈세가나 정천맹의 무인들에게 보여 주었던 미소와는 전혀 다른 미소였다.
그와 동시에 상관적의 신형이 반호진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쏘아졌다.
“저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나도 돕겠네!”
상관적에 이어 상관보도 합류했다.
두 사람이 호기롭게 귀령문주와 흑랑문주를 향해 달려들었던 것이다.
한데 그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두 부자가 달려들자 흑랑문주와 귀령문주가 반호진을 공격하던 걸 멈추고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듯 살수를 뿌렸던 두 명이 말이다.
대신 등 뒤에서 두 줄기의 예리한 기운이 파고들었다.
정확히 허리 뒤쪽과 등을 노리고서 말이다.
쌔애애액!
“형님!”
그걸 본 서조운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두 자루의 검이 노리는 부위가 단전과 심장이기도 했지만 공격하는 이가 상관적과 상관보였기에 서조운은 거세게 분노했다.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을 텐데?”
“큭!”
하지만 위기는 반호진에게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제갈세가를 떨어뜨려 놓았던 상관세가의 무사들이 가주와 소가주가 움직이기 무섭게 공격해 왔다.
“배, 배신이다!”
“상관세가가 배신했다!”
“커헉!”
그 광경에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설마하니 명문세가 중 한 곳인 상관세가가 전장 한복판에서 배신을 할 줄은 몰라서였다.
그리고 상관세가는 반호진 일행만 공격하지 않았다.
제갈세가도 공격 대상이라는 듯이 살수를 뿌렸다.
“이, 이런!”
그런 상관세가의 모습에 천하의 제갈문곡도 당황했다.
감히 상상조차 못한 상황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마비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죽어 가고 있었기에 제갈문곡은 황급히 평정심을 되찾고는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쌔애액!
‘네놈만, 네놈만 없으면!’
한편 완벽한 기회를 포착한 상관적은 두 눈 가득 살기를 띠고서 검을 찔러 넣었다.
정확히 반호진의 단전을 노리고서 말이다.
그런 그의 뇌리에는 그동안 반호진에게 당했던 굴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인다!’
상관적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는 반드시 반호진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반호진과 관계된 모든 이들을.
‘네놈을 시작으로 모조리 죽이고 내가 최고가 될 것이다.’
상관적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굴욕도 굴욕이지만 반호진은 존재 자체가 그에게 있어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죽이지 못한다면 평생 반호진의 그늘에 가려질 것이 분명하기에 상관적은 지금까지 칼을 갈았다.
언제고 반호진을 죽일 그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휘이익!
비록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정천맹을 배신해야 했지만 상관적은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배신한 대가로 힘을 얻고 반호진을 죽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었다.
더욱이 그와 상관세가가 얻은 힘은 결코 작은 힘이 아니었다.
뱀의 꼬리가 아니라 용의 머리가 될 수도 있는 힘이었기에 상관적은 비릿하게 웃으며 물러났다가 다시 달려드는 귀령문주, 흑랑문주와 눈을 맞췄다.
웅웅웅웅!
예상 밖의 행동으로 반호진의 시선을 끌면 그 틈을 타 등 뒤에서 그와 부친이 기습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바로 아군이라는 점을 십분 이용하는 계획이었다.
관계가 틀어진 상태이기에 의심은 하겠지만 그래도 일말의 믿음은 있을 터였다.
상관적은 바로 그 틈을 노리기로 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스극!
호신강기가 일어나기 직전 상관적과 상관보의 검이 반호진의 등을 갈랐다.
흑랑문주와 귀령문주가 반호진의 시선을 끄는 사이 두 부자의 검이 제대로 파고든 것이었다.
그 결과 허공에 시뻘건 피가 솟구쳤다.
“호진아!”
“형님!”
흑의무복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치자 선우방과 서조운이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반호진에게 달려갈 수는 없었다.
상관세가의 무인들이 끊임없이 달려들어서였다.
시간을 끌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아서인지 상관세가의 무인들은 최대한 빨리 끝장을 내겠다는 듯이 일행들에게 파상공세를 펼쳤다.
“젠장!”
“이 새끼들이……!”
거기다 문제는 일행들의 상태도 썩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배신이었기에 일행들도 완벽하게 피해 내지 못했다.
제갈세가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한 건 아니었으나 다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
“단 한 명도 남기지 마라!”
그런 일행들을 보며 상관세가의 장로들이 소리쳤다.
상관적이 복수를 원하기도 했지만 향후 상관세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이제 반호진만 잡으면 된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악전고투하는 서조운 등등을 일별한 대장로의 시선이 가주와 소가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네 명으로도 부족하다면 자신도 가세할 작정이었다.
게다가 대장로가 신경 써야 할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근처에 소림사와 무당파가 있는 만큼 두 문파가 끼어들지 못하게 막는 것도 그의 임무였다.
‘서둘러 주십시오.’
쉴 새 없이 눈알을 굴리며 대장로가 다섯 명의 싸움을 지켜봤다.
콰콰콰쾅!
사방에서 터지는 폭발 사이로 반호진의 신형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반격할 틈을 아예 주지 않기 위해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반호진은 지혈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꼴좋구나, 반호진!”
그 모습에 상관적이 파안대소하며 소리쳤다.
회피하는 반호진의 모습이 꼬리에 불 붙은 망아지처럼 보여서였다.
특히 그는 반호진이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사공을 익혔군.”
“맞아. 나 역시 절대무공을 익혔지! 나를 절대고수로 만들어 줄 무공을!”
“절대무공이라.”
“보아라! 너 역시 도망치기 급급하지 않더냐!”
상관적이 기세등등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런데 단순히 목소리만 큰 게 아니었다.
실제로 상관적이 흩뿌리는 기운과 기세는 부친이자 상관세가주인 상관보보다 강렬했다.
절정에도 다다르지 못했던 그가 지금은 초절정고수에 근접한 무위를 보여 주고 있었다.
“내가 도망치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야.”
“너만은 내 발아래에서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어 주마! 그런 다음 사지를 하나씩 뜯어낼 것이야!”
쌔애애액!
포효와 함께 새빨간 검강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반호진에게 쇄도했다.
귀령문주와 흑랑문주, 상관보가 반호진의 움직임을 억압한 사이 상관적의 검이 단전을 노리고서 파고들었다.
즉사시키지 않고 단전만 파괴하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크큭! 아직도 주제파악이 덜 되었구나!”
상관적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냉정히 말해 초절정고수인 그와 부친만으로는 반호진을 잡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나 상관적에게는 상관보뿐만 아니라 흑랑문주와 귀령문주가 있었다.
초월경의 고수 두 명과 함께라면 제아무리 반호진이라도 별수 없을 것이기에 상관적은 얼굴 가득 비웃음을 머금었다.
“주제파악은 네놈이 못 하고 있지.”
푸스스스…….
상관적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가 뿌린 검강은 물론이거니와 부친과 귀령문주, 흑랑문주의 강기들도 일제히 먼지로 화해서였다.
“어, 어떻게……!”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상관적의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그건 다른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흑랑문주와 귀령문주의 충격이 가장 컸다.
다른 이도 아니고 초월경의 경지에 올라 있는 자신들의 강기를 손짓도 없이 의지만으로 파훼하자 둘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한 가지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똑같이 마른침을 삼켰다.
“뭐,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네가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는. 지금 중요한 건 배신을 했고, 그에 따른 죗값을 받아 내는 것이니까. 물론 거기에 이자까지 합쳐서.”
의지만으로 모든 공격을 파훼한 반호진이 싸늘한 눈빛으로 상관적을 응시했다.
배신도 큰 죄지만 반호진을 분노하게 만든 건 일행들을 노렸다는 점이었다.
아예 싹을 자르겠다는 의지로 일행들을 죽이려 했다는 걸 알았기에 반호진은 평소와 달리 살기를 띤 눈빛으로 진기를 끌어올렸다.
슈아아앙!
“헙!”
“흐읍!”
그와 동시에 네 줄기의 빛살이 상관적, 상관보 부자와 귀령문주, 흑랑문주에게 쇄도했다.
바로 주인을 잃고 주변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검 네 자루가 넷을 공격한 것이었다.
“빌어먹을!”
여태껏 반호진을 몰아붙인 게 환상이었던 것처럼 상관적은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반호진과 달리 그는 정신없이 사지를 놀려야 했다.
그게 상관적은 너무나 자존심 상했다.
동시에 잊고 있던 두려움이 등골을 타고 슬금슬금 올라오는 걸 느꼈다.
“미, 미친!”
“지금까지 피하고만 있었다고?!”
그리고 경악한 건 흑랑문주와 귀령문주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둘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을 맞상대했었다.
한데 그런 자신들의 협공을 받아 내는 걸 넘어 이기어검으로 밀어붙이자 두 사람은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스윽.
하지만 반호진의 행동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네 자루로 이기어검을 펼치면서 소천검을 휘둘렀다.
일행들을 포위해서 공격하는 상관세가의 무인들에게 말이다.
쩌저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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