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9장. 반전에 반전. -01
단 일격을 막았음에도 얼굴이 해쓱하게 변한 잔살방주의 두 눈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고작 한 방을 받아 낸 것임에도 자신과 반호진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느낄 수 있어서였다.
절정고수라고 해서 다 똑같은 수준이 아닌 것처럼 초월경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초월경의 경지라고 해서 다 같지 않았다.
‘소문이,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라는 말인가!’
잔살방주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상식적으로 반호진의 무위는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천재라도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사도무림과 마도무림에서 아무리 날고 기는 천재가 나타났어도 약관의 나이에 초월경의 경지에 이른 무인은 없었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 전체를 뒤져 보아도 말이다.
때문에 잔살방주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반호진의 소문에 회의적이었는데 직접 손속을 나누어 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소문이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우웅.
가까스로 찌르기를 막아 낸 잔살방주가 땅을 박찼다.
일도양단의 초식으로 검을 내리긋는 반호진을 향해 달려든 것이다.
막기만 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잔살방주는 반격을 선택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잔살방주는 처음과 완전히 달라진 표정으로 쌍겸을 미친 듯이 휘둘렀다.
쌔애액! 쌔애애액!
여유 따위는 없다는 듯이 잔살방주의 겸강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반호진에게 공격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잔살방주는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먼저 죽이지 못한다면,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자신이 당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콰콰콰쾅!
무시무시한 기세로 휘몰아치는 겸강이 허공은 물론이고 지면도 찢어 버렸다.
반호진이 아예 반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공간 자체를 짓뭉갰다.
그럼에도 잔살방주는 부족하다는 듯이 연거푸 쌍겸을 휘둘렀다.
“소용없는 짓이라니까.”
쌔애애액!
반호진의 목소리에 모든 겸강들이 한곳으로 집중됐다.
위치를 파악하기 무섭게 잔살방주가 공격을 집중한 것이었다.
스르륵.
하지만 무지막지한 강기의 폭풍 속에서도 반호진은 여유로웠다.
언뜻 보기에는 피할 공간이 없는 듯해 보였으나 반호진에게는 달랐다.
그의 눈에는 회피할 틈이 보였다.
또한 그 길을 이용할 능력도 있었다.
“죽어! 죽어!”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반호진의 주위로 겸강들이 스쳐 지나갔다.
반호진이 피하는 게 아니라 겸강들이 피해서 지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광경에 잔살방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쌍겸을 휘두르는 속도를 가일층 높였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잔살방주의 공격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반호진의 움직임 역시 빨라졌기에 결과는 똑같았다.
스극.
검을 내려찍다 말고 회수했던 반호진이 이동하는 와중에 다시 검을 그었다.
처음 잔살방주를 향해 휘둘렀던 것처럼 횡베기를 펼쳤던 것이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천검에서 뿌려진 검격이 잔살방주의 겸강들을 일제히 베어 버렸다.
쩌저저적!
단 일검에 날아오던 강기들은 물론이고 쌍겸을 감싸고 있던 겸강까지 갈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잔살방주의 애병인 쌍겸에도 금이 갔다.
“이, 이게 무슨……!”
단순하기 짝이 없는 횡베기에 강기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애병에 금이 가자 잔살방주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의 상황이 뜻하는 바가 너무나 명백해서였다.
엇비슷한 수준이 아닌, 격이 다르다는 걸 뜻했기에 잔살방주는 망설이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그 순간 그의 쌍겸이 허공을 날았다.
쉬이이익!
이기어겸이 펼쳐진 것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가 동시에 허공을 가르며 반호진에게 쇄도했다.
“판단은 빠르네.”
무서운 기세로 덮쳐 오는 쌍겸과 달리 잔살방주의 신형은 반대로 움직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갔던 것이다.
그것도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전력질주로 도주했다.
툭! 툭!
그러는 사이 잔살방주가 날린 두 자루의 이기어겸이 반호진의 지근거리에서 멈춰 섰다.
무언가에 막힌 듯 부르르 떨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와 동시에 반호진이 잡고 있던 소천검을 놓았다.
무형지기로 잔살방주의 쌍겸을 붙잡고 그 역시 똑같이 이기어검을 펼친 것이었다.
쉬이이익!
잔살방주와 달리 미약한 소성과 함께 소천검이 허공을 갈랐다.
쌍겸보다 파공성은 작지만 대신 속도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으억!”
초입이라 해도 벽을 넘은 건 사실이라는 듯이 잔살방주는 등 뒤에서 날아오는 이기어검을 느끼고 몸을 납작 엎드렸다.
용케 이기어검을 피한 것이었다.
그러나 완벽하게 피해 내지는 못했는지 등 부분이 쩍 갈라지며 상의가 벗겨졌다.
부우우웅!
하지만 잔살방주는 그걸 느낄 새가 없었다.
벼락처럼 날아온 소천검이 순식간에 선회해서 다시 떨어져 내려서였다.
“흡!”
한줄기 섬전처럼 머리를 노리고 파고드는 이기어검에 잔살방주가 대경실색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쌍겸을 조종했다.
어떻게든 반호진의 집중력을 흩트려 놓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힘을 집중해도 허공에 붙들린 쌍겸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정확히 미간을 노리고서 파고드는 소천검을 간신히 피해 낸 잔살방주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속절없이 당할 것 같아서였다.
패배하는 건 괜찮아도 죽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기에 잔살방주는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혹시나 이용할 게 있나 싶어서였다.
‘정 안 되면 부하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잔살방주가 독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지만 다른 이들과 힘을 합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힘이 부족해서 협공하는 건 결코 쪽팔린 일이 아니었기에 잔살방주는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이곳에서 무사히 벗어나는 것 하나만.
“크아악!”
“마, 막아!”
그런 그의 눈에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밀어붙이는 부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처음의 살기등등한 기세는 많이 꺾인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광기 어린 모습으로 제갈세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미치광이들이 모인 집단답게 주변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오직 정면에 있는 적들만 공격했다.
‘버티고 있는 게 도움이 될 줄이야. 잘됐어. 이참에 몇 명을 인질로 삼아 빠져나간……!’
푸푹!
평소였다면 고작 제갈세가를 쓸어버리지 못했다고 호통을 쳤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용 가치가 있는 이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잔살방주는 너무나 기꺼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 지워졌던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뻗었는데 그 순간 익숙한 무언가가 그의 양쪽 팔뚝에 박혔다.
“어……?”
잔살방주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적으로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찰나가 승패를 결정지었다.
푹!
두 자루의 낫에 이어 소천검이 잔살방주의 복부에 박혔다.
정확히 단전을 꿰뚫은 것이었다.
“딴생각을 하면 쓰나.”
“우웨애액!”
창졸간에 단전이 파괴된 잔살방주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검붉은 피를 토했다.
그런 그의 표정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사도육주 중 한 사람인 자신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은 몰랐기에 잔살방주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표정으로 피를 흘리면서 소천검을 내려다봤다.
“그러니까 상대를 봐 가면서 덤벼야지.”
“어, 어떻게…….”
털썩!
양팔과 복부에서 피를 흘리던 잔살방주가 허물어졌다.
죽은 게 아니라 반호진이 지풍으로 수혈과 마혈을 점혈한 것이었다.
동시에 지혈도 했다.
사도육주 중 한 곳인 잔살방의 주인인 만큼 반호진은 혹시라도 쓸모가 있을까 싶어 죽이기보다는 제압을 선택했다.
“방주나 방도나 생각이 없는 건 똑같네. 수장이 빈사상태인데도 누구 하나 관심이 없네. 광기에 잠식당해서 그런 건가.”
반호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방주가 죽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잔살방도들은 그저 돌진만 했다.
후퇴 따위는 없다는 듯이 오로지 돌격만 했는데 그게 제갈세가의 무인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자잘한 술수 없이 오직 정면대결만 고집했기에 그만큼 상대하기가 수월했던 것이다.
“막는 데 집중하자고!”
“시간을 끌면 끌수록 우리가 유리해!”
“절대 독단적인 행동하지 마!”
그리고 제갈세가는 혼자가 아니었다.
일행들이 함께 싸우고 있었기에 밀릴지언정 크게 수세에 몰리지는 않았다.
이제는 하나하나가 어엿한 무림고수였기에 제갈세가와 협력해서 잔살방의 파상공세를 막아 냈다.
“많이 컸네.”
“지켜보기만 할 거야?!”
“잘하고 있는데 뭘.”
“좀 도와줘!”
어떻게든 전공을 세우고자, 혹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말도 안 되는 헛짓거리를 하는 후기지수들도 있는데 일행들은 달랐다.
누구 하나 절대 무리하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렇지만 그게 힘들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기에 선우방이 반호진의 시선을 느끼고 도움을 요청했다.
“안 그래도 도와주려고 했어.”
“잔살방주가 쓰러졌다!”
“항복해라!”
반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조운과 모용척이 목소리에 진기를 담아 소리쳤다.
그가 왔다는 건 싸우던 잔살방주가 죽었거나 제압되었다는 걸 뜻했기에 망설이지 않고 사방에 알린 것이었다.
한데 문제는 수장이 쓰러졌다고 해서 물러날 이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두 번째 서열이라 할 수 있는 부방주가 현재 전력이라도 보존하고자 퇴각을 지시했겠으나 잔살방은 달랐다.
“죽여!”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는 거다!”
“더러운 위선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죽여!”
“크크큭! 같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이, 이 미친 녀석들!”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멀찍이 물러나 있던 제갈문곡 역시 질린 표정을 지었다.
상식과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잔살방의 모습에 질색한 것이었다.
“잘됐네. 이참에 전부 다 쓸어버리면 되겠어.”
“사도육주 중 두 곳이면 우리로서는 남는 장사죠.”
기겁하는 제갈문곡과 달리 반호진과 서조운은 오히려 잔살방도들의 선택을 반겼다.
위험하다면 물러나는 게 맞았으나 잔살방주도 생포한 반호진에게 잔살방의 잔당은 딱히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걸 서조운도 알았기에 반기는 것이었고.
절대고수 앞에 숫자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잘 알았기에 서조운은 히죽 웃었다.
“죽어!”
“키히히힛!”
적개심을 불태우며 달려드는 잔살방도들을 향해 반호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진기를 끌어올렸다.
이윽고 반호진의 주위에 찬란한 금광을 번뜩이는 강환들이 생성되었다.
반호진은 그걸 그대로 잔살방도들을 향해 날렸다.
꽈과과광!
단 열 개의 강환에 살아남아 있던 잔살방도들이 전멸했다.
어느 누구도 막아 내지 못하고 육편이 되어 흩어졌다.
***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그럼 더 나은 방법이 있나?!”
“뭐라고?!”
“있으면 얘기해 보든지!”
고성이 난무하는 거대한 천막 안에서 사사혈천교주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각자의 목소리에는 진기가 실려 있었으나 그럼에도 사사혈천교주의 표정은 태연했다.
이런 식의 회의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적응이 된 것이었다.
“말이면 다인 줄 아느냐!”
“그러니까 대책을 말해 보라고, 대책을! 얼토당토않는 개소리나 지껄이지 말고!”
“뭐라고 했어?! 개소리? 감히!”
시전바닥보다 더 시끄러운 회의장의 분위기에도 사사혈천교주는 무심한 눈빛으로 차를 들이켰다.
그러면서 슬쩍 마도련 측을 바라봤다.
마도련 쪽의 분위기가 어떤지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후르릅.
그런데 마도련 쪽의 분위기도 사사혈천교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 탓을 하는 사도육주의 수장들과 달리 십대마문의 수뇌부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고성을 내지르는 이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역시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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