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26화 (326/468)

제 108장. 일진일퇴(一進一退). -01

담현의 말에 장로들의 얼굴이 사납게 변했다.

악귀처럼 일그러뜨리며 담현을 노려봤던 것이다.

“허!”

“감히 주제도 모르고!”

“법왕이라 불리니 자신이 뭐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자기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모르니 그럴 수밖에. 그러니 우리가 직접 가르쳐 줘야 하지 않겠나.”

네 사람의 기도가 달라졌다.

장난기는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무시무시한 살기가 채웠다.

“으음!”

그리고 담현의 입에서 미약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네 명의 장로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예상 밖이어서였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가 초절정고수에 육박했기에 담현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살려 달라고 구걸하게 만들어 주마!”

“그런다고 한들 살려 주지는 않겠지만!”

“우선 양쪽 팔부터 뜯어내 주마!”

놀란 속마음과 달리 담현의 표정은 태연했다.

굳이 속내를 이들에게 보여 줄 필요는 없어서였다.

대신 살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이들을 향해 진심으로 무공을 펼쳤다.

쑤아아앙!

질식할 듯한 살기와 함께 피처럼 붉은 강기가 순식간에 사방을 가득 채우며 쏟아졌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담현을 짓뭉갤 듯이 쇄도했던 것이다.

그런데 네 명의 공격을 본 담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분명 기세와 기운이 대단하지만 그의 눈에는 이상하게도 조잡해 보였다.

“크하하하! 뒈지는 거다!”

“저승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을 거야. 곧 이곳에 있는 모든 땡중들이 네놈을 따라갈 테니까.”

이미 다 이긴 것처럼 말하는 장로들의 모습에 담현이 실소를 흘렸다.

분위기만 보면 넷이 승자이고 자신은 패자인 것 같아서였다.

물론 네 명이 지닌 힘은 상당했다.

어설프기는 해도 존재감만 따지면 초절정고수에 비견될 정도였다.

뻐어어엉!

다만 문제는 어설픈 초절정고수 네 명으로는 초월경의 무인을 막아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분명 초절정이라는 경지는 대단하고 초월경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경지이지만 무인들의 싸움에서 한 단계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그 사실을 담현은 말 대신 실력으로 직접 보여 주었다.

전신으로 쏟아지는 혈광 속에서 네 줄기의 금광이 번뜩이는 순간 허공에 검붉은 핏줄기가 솟구쳤다.

“커헉!”

“큭!”

담현이 가볍게 뿌린 대반야장(大般若掌)에 자신만만하게 공격하던 장로들이 하나같이 피를 토했다.

강기와 강기의 충돌에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넷 다 하나같이 가슴 부분의 옷이 바스라져 있었다.

담현의 장인이 찍힌 것이었다.

“노물 따위가 감히……!”

“으아아악!”

단 한 방에 네 명이 동시에 밀렸다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장로들의 표정이 똑같았다.

천하십대고수 중 한 명인 만큼 처음부터 쓰러뜨리는 게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힘의 고하가 분명하게 나타날 줄은 몰랐기에 네 사람은 피로 흥건한 이를 드러내며 재차 달려들었다.

예의 무지막지한 강기들을 줄줄이 뿌려 대면서 말이다.

“아미타불.”

사공의 특징답게 정순함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담현을 의아하게 만든 건 공력의 순도가 아니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세 살짜리 꼬마 아이가 힘을 주체하지 못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처럼 장로들의 공격은 투박하고 단순했다.

그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느낌이었다.

반복수련으로 쌓이는 깊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한 느낌에 담현은 의아해하면서도 재차 쌍장을 내질렀다.

쑤아아앙!

무작정 강기를 쏟아 내기만 해서는 소용없다는 걸 안 모양인지 장로들은 어설프게나마 강환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어설픈 강환은 담현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단순무식하게 막대한 공력을 응축해서 만들어 낸 강환은 분명 평범한 강기보다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초월경의 고수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그걸 담현은 직접 보여 주었다.

쩌저저적!

한두 개도 아니고 사십 개가 넘는 강환들이 담현의 전신으로 쏟아졌으나 몸에 닿은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대반야장에 휩쓸려 모조리 깨졌다.

강환도 아닌 일개 장강(掌罡)에 속절없이 박살 나는 광경에 장로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담현이 초월경의 고수라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부서질 줄은 몰랐기에 다들 입을 쩍 벌렸다.

부우우웅!

그러나 놀란 표정은 얼마 가지 못했다.

담현이 재차 대반야장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앞서 뿌린 대반야장이 길을 만들었기에 뒤이어 뿌려진 장강은 거침없이 장로들의 가슴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장로들이 대경실색하며 개구리처럼 몸을 날렸다.

“허업!”

“히이익!”

장로들은 황급히 이동했으나 담현은 그들처럼 어설픈 사람이 아니었다.

당연히 회피할 거라 예상을 했고, 그 경로 또한 정확히 예측했다.

퍼퍼퍼펑!

물론 피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회피해도 장강은 끝까지 따라갈 테니까.

그걸 증명하듯 네 명의 장로들은 얼마 안 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즉사했다.

“흐음.”

처음에 기세등등했던 모습들을 생각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결과에 담현의 눈썹이 모아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이상해서였다.

세상에는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많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러 개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둥! 둥! 둥! 둥!

그때 약속된 북소리가 담현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바로 퇴각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거기에 사제들의 전음까지 들리자 담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지금은 전열을 정비할 때였기에 무리하지 않았다.

“우리도 물러난다!”

“경계하며 퇴각해!”

죽자사자 달려들던 천사맹과 마도련도 때맞춰 물러났다.

더는 물고 늘어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퇴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의 전투는 말 그대로 전초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

고요하던 평원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정천맹과 천사맹, 마도련이 다시금 격돌해서였다.

어제와 달리 이번에는 마도련과 천사맹이 밀고 들어왔는데 기세로 보건대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았다.

콰콰콰쾅!

그리고 물러날 마음이 없는 건 정천맹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패배하는 순간 중원의 패권이 천사맹과 마도련에게 넘어갈 것이기에 정천맹으로서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했다.

“셋 다 의지는 확실하네.”

“휴전은 없다는 거?”

“역시 똑똑하다니까.”

“똑똑하기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일걸.”

“반신반의하는 사람은 많아도 확신하는 이는 별로 없을걸.”

서조운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하는 것과 확신하는 것에는 엄연히 큰 차이가 있어서였다.

그러나 사마의성의 생각은 달랐다.

“정마대전이나 정사대전이었다면 휴전이 가능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세 곳의 뜻이 같아지기는 힘드니까. 전쟁이 십 년 가까이 이어진 것도 아니고.”

“확실히 특이한 상황이기는 해. 그나저나 비축한 힘이 상당하네. 역시 납작 엎드려서 힘을 키우고 있던 건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발호한 것이겠지.”

서조운이 전장을 바라보며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천사맹과 마도련의 전력이 상당해서였다.

백도천하였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도련과 천사맹의 전력은 상당했다.

숫자는 물론이거니와 질적으로도 정천맹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

“천하십대고수급의 강자들이 저렇게나 많을 줄이야.”

“괜히 은거고수가 모래알처럼 많다는 격언이 있는 게 아니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용척의 모습에 정이륭이 입을 열었다.

당장 그의 사부인 상일기만 하더라도 알려지지 않은 고수였었다.

만약 반호진이 아니었다면, 새외무림이 침공하지 않았다면 상일기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달리 말하면 알려지지 않은 절대고수가 무림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잘 봐 둬. 저런 대결은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당연하지. 두 눈 부릅뜨고 보고 있다.”

“저도요.”

“솔직히 저는 잘 안 보이지만요.”

반호진의 말에 선우방과 서조운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반면에 사마의성은 어색하게 웃었다.

절정의 벽을 넘지 못한 사마의성은 보고 싶어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안력을 집중해도 희끄무레한 것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의성이는 다른 걸 봐야지. 무인의 싸움과 군사의 싸움은 다르니까. 새외무림과의 전쟁도 겪어 봤지만 경험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맞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제갈가주님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사마의성의 시선이 정천맹의 전선 전체를 조율하는 제갈문곡에게로 향했다.

먼 옛날 촉나라를 지휘하던 제갈공명처럼 제갈문곡은 정천맹의 전투를 이끌고 있었다.

“맞아. 나중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앞일이라는 게 한 치 앞을 보기 힘들었다.

천하사패와의 전쟁을 끝낸 지 얼마나 흘렀다고 천사맹과 마도련이 등장하자 반호진은 한숨이 나왔다.

승리 후 평화가 오기는커녕 다시 전쟁이 발발해서였다.

게다가 알고 있는 미래가 바뀌었기에 반호진으로서는 더 이상 예측하는 게 불가능했다.

꿀꺽!

“으음!”

그때 묘한 소리가 반호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침을 넘기는 소리와 침음이 동시에 들려왔는데 그 안에서 왠지 모르게 묘한 열기가 느껴졌다.

“짜식들.”

“흥!”

선우방과 정이륭도 반호진과 똑같이 느낀 모양인지 서조운과 모용척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 다 넋을 놓고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거의 나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얇은 나삼을 입고 싸우는 환요궁(幻妖宮)의 여인들이 있었다.

옷차림도 옷차림이지만 환요궁의 무공이 남자의 혼을 쏙 빼놓는 데 특화되어 있기에 여승들로 이루어진 아미파가 전담하듯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주변의 남자들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으이그.”

“침 닦아라.”

“아, 형님.”

그 모습에 사마의성은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혈기왕성한 나이라지만 못난 모습인 건 사실이어서였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꼴불견이라고나 할까.

반호진도 마찬가지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형님!”

“맞습니다! 본능이에요!”

“그러다가 훅 가는 거야.”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용척과 서조운의 모습에 반호진도 혀를 찼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역시 사도육주 중 한 곳이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도 했다.

만약 아미파가 없었다면 피해가 상당했을 게 분명했다.

“에이. 저희도 알죠. 막상 싸우게 되면 제대로 싸울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켜보는 입장이니까요.”

“사도육주 중 한 곳이니 더 자세히 파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이니까요.”

“말은 아주 그냥 청산유수야.”

반호진이 실소를 흘리자 같은 생각이라는 듯이 선우방과 정이륭, 사마의성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동조하면서도 선우방과 정이륭도 환요궁 진영을 힐끔거렸다.

환요궁도들이 춤사위처럼 움직일 때마다 나삼이 거칠게 펄럭이며 속살이 보였기에 둘 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모양이었다.

“참나.”

그걸 알아차린 사마의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언행이 불일치해서였다.

“흐음.”

반면에 반호진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여자에 대해 궁금한 건 사실이었으나 고작 나신에 흔들릴 정도로 반호진의 정력은 얕지 않았다.

따로 시선을 끄는 곳도 있었고.

‘사도육주와 십대마문이라.’

사파무림과 마도무림이 힘을 축적하고 있었다는 건 반호진도 알고 있었다.

한데 그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솔직히 몰랐기에 반호진은 내심 놀랐다.

‘만약 새외무림과의 전쟁이 길어져 천하사패와 손을 잡았다면…….’

반호진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해서였다.

“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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