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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324화 (324/468)

제 107장. 변수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03

정반대로 몸을 돌려 다시 전력질주하는 살방주의 뒷모습을 보며 팽만철이 히죽 웃었다.

다른 방향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콰아아앙!

팽만철이 딱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무시무시한 폭음이 들려왔다.

우윳빛 검강이 눈부시게 빛나며 살방주의 코앞에 떨어졌던 것이다.

“크흡!”

부지불식간에 떨어져 내린 거대한 우윳빛 검강에 살방주의 얼굴이 다시 한번 해쓱하게 변했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어서였다.

“쯧쯧! 그냥 순순히 붙잡히지. 어차피 빠져나갈 수 없는데.”

뒷모습만 봐도 팽만철은 살방주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아마 대경실색했을 게 분명했다.

호랑이를 피했는데 사자를 만난 느낌일 터였다.

스슥!

그 생각에 히죽 웃는데 살방주가 다시 움직였다.

잠시 멈칫했을 뿐 이내 어느 한 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쩜 생각하는 게 그리 똑같은지. 예상 범위에서 벗어나질 않는군.”

살방주가 향하는 방향을 확인한 팽만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그의 눈에는 훤히 보여서였다.

“차라리 항복하고 목숨을 구걸하는 게 더 확률이 높을 텐데.”

팽만철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닿기에는 살방주가 너무 멀리 있었다.

설사 들었다고 한들 사도육주씩이나 되는 이가 받아들일 리도 없었고.

“큭!”

벼락같은 속도로 소림사의 일대제자 중 한 명을 덮쳐 가던 살방주의 오른손과 양쪽 허벅지에서 피가 솟구쳤다.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기운이 살방주를 베고 지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방주는 멈추지 않았다.

이 자리에 천하십대고수급만 무려 다섯 명이 모여 있었기에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명을 생포해야 했다.

스스슥!

은신술만큼이나 경신술에 일가견이 있는 살방주가 몸을 비틀었다.

목표물을 변경한 것이었다.

원래 노렸던 무승이 뒤로 물러났기에 살방주는 그다음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거지 한 명에게 달려들었다.

“꼴에 집념이 있어.”

“으아아악!”

어느새 근처까지 다가온 반호진이 중얼거리자 살방주가 춤을 추듯 온몸을 흔들었다.

무형지기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었다.

하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호진이 제어하는 무형지기는 그의 손등과 양쪽 장딴지를 베고 지나갔다.

“그래도 꼴에 사도육주라는 건가.”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추격해 온 반호진이 비릿하게 웃었다.

단순히 이름값으로 사도육주의 한 자리를 차지한 건 아닌 듯싶어서였다.

“네놈이, 네놈 때문에……!”

“내 탓하지 마. 시작은 네가 먼저 했어.”

스르릉.

전신을 난자할 듯이 계속 쇄도하는 무형지기를 가까스로 피해 내던 살방주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반호진의 허리춤에 있던 검이 저절로 뽑혀 나와서였다.

저게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수가 없기에 살방주는 이를 악물고서 땅을 박찼다.

그로 인해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살방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푸욱!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한 도주는 얼마 가지 못했다.

전광석화처럼 날아온 검이 왼쪽 허벅지에 꽂혀서였다.

“끄으으윽!”

파공성도 없이 날아와 말 그대로 꽂힌 일격에 살방주가 고꾸라졌다.

달리던 중이었기에 관성에 의해 앞으로 구른 것이었다.

그런데도 살방주는 포기하지 않았다.

땅바닥을 구르면서도 재빠르게 검을 뽑아 다시 도망치려 했다.

저벅저벅.

한데 그때 살방주의 앞으로 두 개의 발이 다가왔다.

동시에 무지막지한 중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더는 못 간다.”

“당신은……!”

“순순히 항복하도록. 조금이라도 더 편히 가고 싶다면.”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여지없이 협박이었다.

게다가 말을 하는 게 염왕 남궁호였기에 살방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니까 얌전히 잡히지. 그럼 고통은 없었을 거 아냐? 허이구. 피도 많이 흘렸네. 얘 이러다가 과다출혈로 뒈지는 거 아냐? 그러면 안 되는데.”

어느새 남궁호의 옆에 나타난 팽만철이 혀를 찼다.

자상도 많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허벅지의 관통상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기에 팽만철은 우악스러운 손길로 살방주를 제압하고는 상처 부위를 지혈했다.

“역시 팽가주님이십니다. 손이 엄청 빠르시네요.”

“우리가 이 고생을 했는데 죽으면 안 되잖아. 투자 대비 얻는 것도 있어야지. 궁금한 것도 많고.”

“뒤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개방을 믿어도 되나?”

살방주를 자연스럽게 인계받은 오중건이 넉살 좋게 웃었다.

하지만 팽만철은 영 못 미덥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중건이 심문을 잘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정 그러시면 같이 심문하시지요.”

“그래야겠어. 자네는 마음이 좀 여리지 않나.”

“꼭 그런 건 아닙니다만.”

오중건의 미소가 점점 어색해졌다.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애매해서였다.

“그냥 맡기게.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흐음.”

“자네가 나서면 더 복잡해져. 한 명이 맡는 게 나아. 우리가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는 한데, 영.”

남궁호의 말에도 팽만철은 떨떠름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의협심 하나로 살아가는 이들이 개방도였기에 심문은 해도 고문은 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어떻게든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못미더웠다.

“전쟁 중이네. 그걸 방주 대리도 알고 있을 테고.”

“물론입니다.”

“자네가 한다고 해서 꼭 원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이어지는 남궁호의 말에 팽만철은 콧김을 내뿜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그래서 팽만철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오중건을 바라봤다.

말 대신 눈빛으로 잘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세 분 다 고생하셨습니다.”

오중건, 남궁호, 팽만철의 곁으로 반호진이 담현과 함께 다가왔다.

장내를 정리한 후에 세 사람을 찾은 것이었다.

“이 정도 가지고 고생은 무슨. 기껏해야 산책 나온 정도인데.”

“그래도 도와주신 건 사실이니까요. 덕분에 쉽게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도와주기는. 우리에게도 이득이 되는 일인데. 서로 좋은 일이니 퉁 치자고. 정 고마우면…….”

“감사합니다.”

“에잉!”

다음에 나올 말을 예상했다는 듯이 반호진이 도중에 끊자 팽만철이 입맛을 다셨다.

이런 건 정말 얄미울 정도로 귀신 같아서였다.

“그나저나 아쉽군. 이 기회를 살려 그대로 몰아붙여야 하는데.”

남궁호가 팽만철과는 다른 의미로 입맛을 다셨다.

천사맹을 기습하기에 지금보다 적기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살방주를 생포한 걸 아직 모를 때 공격하면 혼란은 물론이거니와 큰 피해를 입히는 것도 가능했다.

여기에서야 아무것도 못 하고 사로잡혔지만 살방주는 엄연히 천사맹을 떠받치는 여섯 기둥 중 하나였다.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남궁가주님. 심문하는 데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밤은 깁니다.”

“호오.”

“그리고 꼭 알아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희나 천사맹이나 상황은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시원스럽게 충돌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무상문주님 덕분에 어느 정도는 대비가 되어 있는 상태고요. 제갈가주님 역시 따로 준비한 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슷한 입장이긴 하지.”

“또 복수할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중건의 말에 남궁호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런데 그건 팽만철과 담현도 마찬가지였다.

갚아야 할 빚이 있는 건 두 사람도 남궁호와 같았다.

“해가 뜨기 직전에 시작하시죠. 그때까지 최대한 알아내 보겠습니다.”

“그 말, 아주 마음에 드는군.”

“알겠네.”

호기로운 오중건의 한마디에 팽만철과 남궁호가 똑 닮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담현은 소리 없이 빙그레 웃었다.

***

기습공격은 동이 트기 직전에 전격적으로 행해졌다.

방향도 마도련과 천사맹의 사이가 아닌 오로지 천사맹 쪽으로 향했다.

마도련이 참전하기 위해서는 천사맹 진영을 가로지르거나 우회해서 올 수밖에 없게 말이다.

뎅뎅뎅뎅!

갑작스러운 정천맹의 기습공격에 천사맹의 진영 곳곳에서 경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늦게 정천맹의 움직임을 파악하고는 보초들이 경종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종 소리가 울렸을 때는 이미 천사맹의 숙영지 근처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막아!”

“어떻게든 못 들어오게 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우회하기도 했지만 긴장이 제일 풀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대를 노리고 공격했기에 대응이 느렸다.

일부러 최대한 늦게 들키도록 정천맹의 무인들이 조심하기도 했고 말이다.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늦게 발각되었고, 그건 곧 우세로 이어졌다.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천사맹을 정천맹이 말 그대로 집어삼켰던 것이다.

“크아악!”

“끄윽!”

“컥!”

천사맹의 무인들이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보려고 애를 썼으나 간절한 건 정천맹도 마찬가지였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었기에 기를 쓰고 살수를 뿌렸다.

그리고 총공세도 총공세지만 배신자를 찾아내 복수하는 것도 목표였기에 많은 이들이 살기충천한 얼굴로 사납게 날뛰었다.

콰앙! 꽝! 꽈과과광!

그 결과 사방에서 폭음과 비명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살방주가 없고, 마도련이 오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기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한 정천맹의 전력은 천사맹의 숙영지를 사정없이 휩쓸었다.

“죽여라!”

“전부 밀어 버려!”

물론 천사맹도 순순히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초반에야 기습공격에 당황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으나 막대한 인원을 이용해 벽을 만들어 시간을 벌었다.

그사이 전열을 재정비하고는 본격적으로 정천맹을 밀어붙였다.

드디어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 것이었다.

“역시 쉽게 무너지지 않네.”

“하수들을 고기방패로 사용할 줄이야.”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전장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반호진과 일행들이 있었다.

그런데 근처에 조금 특이한 물건들이 있었다.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가능한 작은 망루가 있었던 것이다.

수레를 이용해서 만든 조악한 망루였는데 이런 간이 망루가 곳곳에 있었다.

“나나 조운이, 이륭이, 의성이야 이곳에 있어도 상관없다지만 너희 둘은 괜찮아? 가주님들 모셔야 하는 거 아냐?”

반호진의 시선이 선우방과 모용척에게 향했다.

선우세가와 모용세가도 전투 중인데 이곳에 있어도 되나 싶어서였다.

“우리는 놀고 있는 게 아냐.”

“맞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 중입니다.”

“만약의 사태?”

반호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였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고나 할까. 나는 선우세가의 대를 이어야 하니까.”

“저도 마찬가지고요.”

“변명이 궁색하다는 건 알고 있지?”

실소와 함께 반호진이 눈짓으로 몇몇 곳을 가리켰다.

바로 남궁광과 당서건, 팽추영이 싸우고 있는 곳들이었다.

“역시 이런 변명은 안 통하나.”

“너무 빈약했어.”

“네 곁을 지키라고 하셨어. 어쩌면 이곳이 매우 중요해질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겸사겸사 경험도 좀 더 쌓고.”

“그렇게 말씀하셨단 말이지.”

“본가는 내가 없어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지.”

반호진의 시선이 선우세가가 지키는 전선으로 향했다.

오대세가처럼 눈부시게 활약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전선은 확실하게 유지했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제 몫을 다 해 주었던 것이다.

눈에 띄지는 않아도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았기에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모용세가도 살펴봤다.

“다른 곳들은 어때?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이들이 보여?”

“아직은 안 보여. 간이 망루를 만든 이유를 모르지 않을 테니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거야.”

유일하게 망루 위에 올라가 있는 사마의성이 서조운에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사마의성은 쉴 새 없이 전장과 정천맹의 진영을 살폈다.

또 다른 배신자가 나오는 건 아닐까 주시하는 것이었다.

“사도육주는?”

“사사혈천교주를 제외하고는 전부 나섰어. 근데 분위기가 묘한데? 마치 천사맹주처럼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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