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21화 (321/468)

제 106장. 눈에는 눈 이에는 이. -02

누가 봐도 정말 크게 놀란 제갈문곡의 모습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엇을 보고 놀란 건지 다들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보내오는 뜨거운 시선에도 제갈문곡은 정신없이 책장을 넘겼다.

주위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지 서책에 무섭게 집중했던 것이다.

탁.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책을 읽었기에 제갈문곡은 무서운 속독으로 순식간에 서책을 완독했다.

그러고는 흔들리는 눈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얼른 설명해 달라는 듯이 강렬한 눈빛을 보냈으나 제갈문곡은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서책을 건넨 반호진만 바라봤다.

“이게 사실입니까?”

“예. 출처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출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진위(眞僞)지요. 아니, 진위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게 알려지는 순간 무조건 저희에게 이득이니까요.”

제갈문곡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웬만해서는 평정심이 흔들리지 않는 그가 흥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서책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맞습니다. 그래서 가져온 것이고요.”

“이걸 최대한 서둘러서 뿌려야겠네요.”

제갈문곡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어째서 반호진이 이걸 그에게 넘겼는지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었다.

“역시 바로 알아차리시네요.”

“뭐야? 뭔데 그래? 나도 좀 알려 줘.”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제갈문곡의 밝은 표정에 팽만철이 보챘다.

더는 기다리기 힘들어서였다.

다른 이들도 같은 심정이라는 듯이 제갈문곡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바로 작업하는 대로 모두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게 시간 싸움이라.”

“도대체 뭔데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서 순식간에 전력질주로 사라지는 제갈문곡의 모습에 팽만철이 퉁방울만 한 눈을 껌뻑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였다.

대답을 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궁금증만 더 증폭시키고 사라진 제갈문곡의 모습에 팽만철의 시선이 반호진에게로 향했다.

아니, 모두의 시선이 반호진에게 집중됐다.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냥 속 시원하게 말해 주면 안 되나?”

“내용이 좀 많아서요. 보셨잖습니까. 책이 두꺼운걸요.”

“끄응!”

순순히 말해 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팽만철이 앓는 소리를 냈다.

하지만 재촉하지는 않았다.

말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아서였다.

***

노을이 뉘엿뉘엿 기울어 가는 시간에 천사맹의 숙영지에 수십 개의 종이가 쏟아졌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수백, 수천 개의 쪽지들이 천막에 어지럽게 달라붙었다.

“뭐야?”

“새로운 공격인가?”

순풍을 타고 갑자기 날아온 수천 개의 종이에 긴장했던 천사맹 소속의 사도인들이 미간을 좁혔다.

천막에 달라붙은 쪽지에 아주 작은 글씨가 빽빽하게 적혀 있어서였다.

처음에는 독공이 아닐까 해서 조심했는데 먹물만 묻어 있자 몇몇 무인들이 쪽지를 한 장 떼어 읽기 시작했다.

“어?”

“이거 뭐야?”

“설마 이거 진짜야?”

“이게 사실이라면…….”

가장 가까이에 떨어져 있던 쪽지를 읽던 중년인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그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한 내용이 쪽지에 빼곡하게 적혀 있어서였다.

하지만 놀랄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사방에 수천 개가 넘는 쪽지가 휘날리고 있었고, 내용은 각기 달랐다.

“감히!”

“이 새끼들을!”

중복되는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각기 달랐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노케 하는 내용도 있었다.

아니면 친우, 친구, 사형제에 관한 내용이거나.

그래서인지 첫 번째 쪽지를 읽은 이들은 황급히 두 번째, 세 번째를 읽었고, 다 읽은 다음에는 흉흉한 기세로 몸을 날렸다.

“죽어!”

“가, 갑자기 뭐야?”

“네놈이 감히 내 부인을!”

“무슨 소리를 지껄이……. 꺽!”

천사맹의 진영에 피바람이 불었다.

수천 장의 쪽지가 일으킨 살기와 광기라는 이름의 불꽃은 들불처럼 순식간에 천사맹 진영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곡소리가 쏟아졌다.

“무슨 일이냐!”

“멈춰!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느닷없이 일어난 싸움에 중진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그러나 상황 파악이 어느 정도 되었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 후였다.

아무리 뜯어말리고 소리쳐도 싸움을 말릴 수는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 광경에 사도방파들의 수장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어서였다.

오후까지만 하더라도 웃으며 식사를 하고 인사를 하던 이들이 지금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것도 같은 소속의 무인들이 말이다.

“멈추라고 이 새끼들아!”

눈이 돌아가서 서로에게 칼부림을 하는 모습에 문주나 방주들이 포효하듯 소리쳤으나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광기에 휩싸여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죽어!”

“너나 뒈져라!”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앞에 있는 놈뿐이라는 듯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내뱉으며 살수를 뿌리는 모습에 지켜보는 이들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제는 늦었다는 걸 모두가 느낀 것이었다.

스르륵.

그때 말리는 걸 포기한 이들의 눈에 여러 개의 쪽지들이 보였다.

곳곳에서 터지는 괴성과 피분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흩날리는 쪽지들 중 하나를 사람들이 빠르게 잡아채서 읽어 내려갔다.

“허…….”

“……이것 때문이로군.”

깨알같이 적혀 있는 글자들을 빠르게 읽어 내려가던 이들이 하나같이 침음을 흘렸다.

지금의 사태가 왜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어서였다.

크고 작은 사기를 시작으로 치정 문제, 거기에 살인 청부에 관한 내용까지 있자 다들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왜 저렇게 죽기 살기로 칼부림을 하는지 이해가 되어서였다.

“도대체 어디서 이걸 얻은 거지?”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이런 고급 정보들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진위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파문이 일어나고 의심이 싹튼다면 더는 함께 싸울 수 없었다.

저 멀리 보이는 정천맹처럼 말이다.

“……당했군.”

“니미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확인할 것도 없이 쪽지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게 될 건지를 생각하면 출처를 추측하는 건 쉬웠다.

그렇기에 다들 이를 갈았다.

한데 더 짜증이 나는 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스윽.

몇몇 수장들의 시선이 천사맹의 진영과 맞붙어 있는 마도련의 진영으로 향했다.

이곳은 난장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끄러운 것과 달리 마도련의 진영은 고요했다.

동맹을 맺었지만 이런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러는 게 마도련 입장에서는 이득이었다.

“일단 각자 할 수 있는 것부터 합시다.”

“각자 집안 단속부터 하자고.”

“좋소이다.”

천사맹이라는 이름 아래에 뭉쳤지만 결속력은 정천맹과 마찬가지로 모래알과 같았다.

사도육주가 중심이 되었으나 아직 맹주는 없었기에 지금과 같이 분열이 일어나면 누구도 완벽하게 수습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기에 수장들은 각자 집단속에 들어갔다.

“시끌벅적하네요.”

“그러라고 한 짓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곳곳에서 싸움도 났고요.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싸움 구경하고 불구경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흐흐흐.”

서조운이 사악하게 웃었다.

똑같은 수법으로 되돌려 준 게 그는 특히 마음에 들었다.

“외통수이기도 하고. 내부 상황은 정천맹이나 천사맹이나 비슷하니까. 그나저나 결과적으로 가능 크게 이득을 본 곳은 마도련이네요.”

“그렇지. 가장 좋은 건 마도련과 천사맹이 치고받고 싸우는 건데.”

“천사맹과 달리 마도련은 아직 알려진 게 별로 없어요. 천사맹은 하오문을 통해서 내부 기밀을 알아냈는데 마도련은 그런 게 없으니.”

사마의성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서였다.

오죽했으면 천하의 개방조차 알아낸 게 얼마 없을 정도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야.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일단 균열이 일어났으니까. 거대한 방둑도 미세한 금에 무너지는 것처럼 천사맹과 마도련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일단 시선은 돌렸네요. 천사맹이 저 꼴이니 마도련도 단독으로 움직이는 건 피할 거예요. 괜히 욕심을 부렸다가 남 좋은 일만 해 줄 수 있으니까요.”

“맞아. 천사맹이나 마도련이나 똑같은 놈들이지. 자기에게 이득이 있으니까 함께하는 것뿐 잡아먹을 기회가 있다면 망설이지 않을 거야.”

“상황이 재미있게 되었어요. 이번 일로 천사맹의 세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근데 천사맹이 짜증 나는 건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마도련이 늑대라는 걸 천사맹도 알고 있을 테니까.”

반호진과 사마의성의 대화에 서조운과 정이륭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천사맹의 진영을 주시했다.

거리가 상당함에도 얼마나 큰 싸움이 벌어졌는지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간간이 강기도 하늘 높이 솟구쳤다.

“더 재미있는 건 마도련도 천사맹이 무너지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힘의 균형이 깨지면 불리한 건 마도련이야. 현재 정천맹은 독이 바짝 올랐으니까.”

“맞아요.”

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했으나 사마의성도 귀가 있었다.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슬슬 똥줄이 타겠는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출처가 어디인지 모를 수가 없으니까요.”

사마의성이 반호진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누구라고 정확히 지칭하지 않았음에도 단박에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미소는 서조운과 정이륭에게도 번졌다.

“무상문주님.”

“개방주님.”

“으허허허. 아직 아닙니다. 저는 그저 방주 대리입니다.”

“방주님이나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개왕 대협께서 돌아오실 생각이 없다고 하시던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죽겠습니다. 한 몇 년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반호진에게 다가온 오중건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부상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방주로서의 업무를 넘겼기에 오중건은 빼도 박도 못했다.

그렇다고 거절하면 개방이 돌아가지 않았기에 그로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잘하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도 않습니다. 당장 이번 일만 하더라도 개방이 한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요. 개방이 있기에 마도련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번 일은 저도 운 좋게 구한 것이고요.”

“문주님께서 이렇게 사용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반호진이 우연찮게 떠올렸다는 듯이 말했으나 오중건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 반호진이 보여 준 모습들을 생각하면 절대 우연일 리가 없어서였다.

게다가 반호진의 곁에는 사마의성이 있었기에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기밀문서를 찾기 힘드셨을 텐데.”

“전문가들과 함께 가서요. 의성이도 기관진식에 일가견도 있고.”

“하긴. 확실히 전문가들이라면 얘기가 다르지요. 그런데 문주님. 혹시 다른 기밀문서들은 없었습니까?”

“흐음.”

반호진이 처음으로 말을 아꼈다.

망설이지 않고 바로바로 대답하던 그가 대답을 하지 않자 오중건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말이다.

“불편하시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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